업(業)의 기원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

-梵水-




 
업감연기설을 따르면 우리의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 의해 조작된 업(業)은 어디에 보존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하여 유식학에서는 아뢰야식연기설로 업의 기원을 밝히고 있다.
 모든 업의 여력은 종자
의 형태로 고스란히 아뢰야식에 보존되며, 이로부터 일체 유정 각자와 세간이 나타난다고 한다.이것은 아뢰야식(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 종자를 매개로 하여 상호 인과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유식설에서는 이런 관계를 훈습(熏習)과 현행(現行)으로 설명하고 있다.
 
훈습(熏習): 아뢰야식에 새로운 종자를 이식시키고, 본래 있는 종자를 生長케 하는 작용.

현행(現行): 종자가 아뢰야식 속에서 찰라 생멸하며, 生緣을 만나 생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종자 자체만으로 어려우며, 식과 심리 작용(心所), 감각 기관(根), 환경 요인(境)이 유기적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편 모든 인식과 행위의 결과가 종자(種子)의 형태로 아뢰야식에 저장되기 때문에 이것을, 유정의 주체(윤회의 주체)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불교에서는 영혼에 의한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전생에 지은 업의 결과를 따른다고 할뿐이다.
 유식 사상
에선 우리 몸밖에 있다고 생각되는 일반적인 대상에 대하여 인식 작용으로부터 독립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 8 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로부터 생긴 것으로 본다. 즉 인식(견분((見分))과 인식의 대상(상분(相分))이 인연하여 생긴 것으로 본다. 따라서 대상은 결정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통해 비로소 존재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말은 식(識)이 변하여(轉變) 주관(我)과 객관(法) 그리고 갖가지 모습(종종상((種種相))이 나타난다는 말로, 종종(種種)의 상(相)이란 일체 만법이며, 오직 식(識)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인의 식(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끊임없는 종자의 현행과 훈습의 관계에 따라 육체뿐만 아니라 우주까지도 나타내는(顯現) 것이 바로 아뢰야연기설의 요점이지만,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먼저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식의 현상일 뿐이고 이 밖에 식과는 별개로서 존재하는 대상은 없다. 이 말은 본인의 식전변(識轉變)을 통한 일체 존재의 생기는 가능하나, 타인의 식전변을 통한 존재의 생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의 존재는 모두 본인의 식으로부터 전변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타인에 의한 식전변이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엄연히 타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또 아뢰야식은 어디로부터 연유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 역시 보충되어야 할 부분이다.

<成唯識論>, 《大正藏》, 卷 31, p.8上 "何法名爲種子 謂本識中 親生自果功   能差別" 일반적으로
    種子란 '어떤 것을 낳는 가능성'이라는 뜻으로, 아뢰야식에 일체의 현상을 낳을 능력이 있는 것을
    식물의 씨앗에 비유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물의 세력을 남겨 다시 사물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며, 아뢰야식이 발휘하는 힘으로서 결과를 낳는 가능력을 말한다.

<成唯識論>, 《大正藏》, 卷 31, p.12中 "果生故非斷 因滅故非常" 이라 하여 種子의 相續 關係를
    前滅後生하며, 間斷없이 一類로 相續한다고 한다.

唯識思想은 唯心思想과 상통하는 점이 있으나, 유심사상이 <화엄경>과 <기신론> 등의 진여설에
    기초를 두었다면, 유식사상은 아뢰야식에 근거한 인식론적 성향이다.

 견분(見分)이란 하나의 식이 그 자체 내의 대상을 보는 것으로 객관의 형상을 보는 작용.
    상분(相分)이란 하나의 식 자체 안에서 보여지는 것으로 마음 안에서 대상이 되는 측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