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설의 실천방법 중도(中道)

-梵水-




 
고대 인도의 종교와 사상가들이 전변설(轉變說)과 적취설(積聚說)등으로 존재의 성립과 유래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고타마 붓다의 입장에서는 동시대인들의 인과론(因果論)이 다양한 극단적 이론에 불과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인과성(因果性)의 이론은 연기(緣起)를 통한 중도(中道)적인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연기설은 인위적(人爲的)인 이론이 아니므로 대립적 견해를 초월한다. 혹자는 이러한 사실을 "관념론적 전변설과 유물론적 적취설에 대한 이론상의 중도" 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수정주의(修定主義)나 고행주의(苦行主義)에 대한 불교의 실천 원리 역시 연기의 이치에 입각한 중도(中道)이다
. 이와 같은 입장에서 시설되는 불교의 모든 교의는 곧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위한 것으로 현실의 고통에 대하여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다음 인용문에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변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취함으로 밝음(明)과 지혜(智)를 이루어 삼매(定)을 성취하게 된다. 따라서 자재(自在)를 얻어 지혜(智)와 깨달음(覺)을 얻게 되며, 열반(涅槃)에 이르게 된다."

 
 중도의 원리는 여러 교설의 기본 입장으로 연기론과 같은 맥락에서 설해지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보듯이 두 변이란, 연기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단견(斷見)이다. 그러면 여기서 유(有)와 무(無)의 두 대립 개념으로 극단의 개념과 연기론의 실천 원리인 중도를 간단히 살펴보자.
 유(有)에 대한 인식은 무(無)에 기초한다. 따라서 무에 대한 인식은 유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만약 유가 실재하는 개념 내지 불변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있다 거나, 없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하는 개념이 없는 절대의 개념이란,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무한하여 끝이 없기 때문에 한정 지을 수 없음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대립하는 개념은 반드시 상대로부터 차별화되고, 또 그것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즉 긴 것은 짧은 것을 전제로 하여 긴 것이다. 그렇듯이 유 역시 무를 전제로 하여 파악된다. 따라서 두 가지 개념은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상의성(相依性)의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의성은 현상 세계의 원리로써 연기의 법칙에 포함된다. 이러한 사상적 원리를 삶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 바로 중도의 실천법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고행이나 쾌락을 따르지 않는다.
  
 무상(無常)이 절대주의(絶對主義)에 대한 비판이라면, 무아(無我)는 영원성(永遠性)에 대한 부정이며, 중도는 이를 바탕으로 한 바른 자세이다. 그리고 중도는 구체적인 팔정도의 형식으로 설명되어진다.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은 쾌락주의(快樂主義)와 고행주의(苦行主義)로 치우친 생활 태도를 버리고 중도에 의해 지혜를 완성하여 열반으로 가는 길이므로 팔정도를 중도(中道)라고한다.
그리고 십이연기의 진리를 옳게 이해하는 것은 상견(常見)과 단견(斷見), 그리고 유무견(有無見) 등과 같이 치우친 견해로부터 떠나는 것이므로, 십이연기를 옳게 관하는 것이 중도의 올바른 견해(正見)에 주 하는 것과 같게 된다. 이상 전자는 실천상(實踐上)의 중도이며, 후자는 사상상(思想上)의 중도라고 한다.

 
<雜阿含經>, 《大正藏》, 卷 2, p.86.上 "離此諸邊 說其中道 如來說法"
    <佛說轉法輪經>, 《大正藏》, 卷 2, p.503中 "世間有二事墮邊行....(略)...一爲念在貪欲無淸淨志 二爲
    著身愛 不能精進...(略)...不念貪欲著身愛行 可得受中...(略)....何謂受中 謂受八直之道 一曰正見
    二曰正思 三曰正言 四曰正行 五曰正命 六曰正治 七曰正志 八曰正定"
<中阿含經>, 《大正藏》, 卷 1, pp.778下~778.上 "捨此二邊 有取中道 成明成智   成就於定 而得自在
    趣智趣覺 趣於涅槃"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방향 설정의 표준이 되는 正으로서 법은 불교에 일러 불타의 전 교설을
    통칭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법칙을 나타냄은 물론이고, 우주를 따르는 법칙과 질서 등의 뜻을 포함
   하고 있다. 즉 법은 불교에서 행위 '법'이라고 표현되어지며 '정'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가진다.  

<中阿含經>, 《大正藏》, 卷 1, p.701.中 "莫求慾樂極下賤業謂凡夫行 亦莫求自身苦行至苦非聖行無義
    相應  二此二邊則有中道 成眼成智自在成定 趣智趣覺趣於涅槃"

상견(常見)과 단견(斷見): 중생의 생명 주체인 我는 영원히 존속한다는 생각과, 사후엔 아주 滅無로
    돌아간다는 생각.

유무견(有無見): 우주와 내가 상주한다는 견해와 斷滅한다는 견해로써, 상견, 단견과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