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설의 의의

-梵水-




  제법(諸法)의 성립과 유래를 밝히는 연기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은 교리(敎理)라는 이름으로, 시대적 문화적 환경과 어울려 표현의 다양한 변천 과정을 겪었지만, 결코 그 사상까지 변한 사실은 없다. 그러므로 불교 교리는 고타마 붓다로부터 시작한 단순한 역사적 전개가 아니라, 사상적 동일성을 가지고 전개되어 온 것으로 역사성을 띤다. 우리는 이를 교리사(敎理史)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즉 교리사란 진리에 대한 설명 내지 표현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확립 시켜 놓은 것으로, 고타마 붓다의 사상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그 가운데 진리에 대한 관찰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에 대한 관찰 방법과 및 그 표현 방법을 나누어 설명하면, 먼저 모든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공간적(空間的) 관찰로써 실상론(實相論)과, 모든 존재는 어떻게 하여 성립되었는가 하는 시간적(時間的)인 관찰로써 연기론(緣起論)이 있다.  
 공간적 관찰법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참 다운 모습을 파악하는 것으로,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적 관찰법이란, 그와 같은 존재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성립되는가 하는 성립과 유래의 참 모습을 규명하는 것으로, 존재의 생성(生成)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상 전자는 객관적(客觀的) 존재에 관한 논의로 존재론(存在論)이며, 후자는 주관적(主觀的) 인식주체를 다루는 것으로 인식론(認識論)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주 만물을 주객(主客)으로 나눌 때, 주관적인 마음에 인식되는 객관적 형상을 상분(相分) 또는 객(客)이라 하며, 그것을 인식하는 주관적 마음 작용을 견분(見分) 또는 주(主)라고 한다. 이런 과정은 일체를 주와 객으로 나눠 모든 존재가 바로 유심(唯心)에 의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인식론은 단순히 분별 작용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진리와 합치(合致)를 전제로 한 지혜론(智慧論)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존재론이나 인식론이 단순한 유물론적 존재의 탐구나,
관념론적 인식 작용의 논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둘은 주(主)와 객(客)의 관계로써 각각에 대한 교의를 가지면서도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실상론(實相論)-이성(理性)의 대상으로 존재의 실체를 다루는 본체론(本體論)  ┐
                                                                                                                    ├ (소관(所觀)) 경(境)
연기론(緣起論)-감각(感覺)의 대상으로 존재의 생성을 다루는 현상론(現象論) ┘
지혜론(智慧論)-인식 주체를 다루는 인식론(認識論)                        ───--── (능관(能觀)) 주(主)
                                                         
 
일반적인 유물론(materialism)이란 물질을 근본적인 실재로 여기며, 마음이나 정신작용은 이로부터
    파생으로 여김.
 
일반적으로 관념론(idealism)이란, 외적 실재에 대한 내적 관념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적 세계의 실재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에 관한 입장을 나타내는 말로서. 실재론 또는 유물론에
    대립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연기설의 의의(意義)
 
고타마 붓다는 제법의 법칙인 연기의 도리를 깨달음으로 정각(正覺)을 이뤘다. 따라서 현상계에 대한 생기 소멸의 원인과 조건을 밝히는 연기의 법칙은 시대나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불교 종파에서 근본 교리로 삼았다. 그러므로 불교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있어서 먼저 이를 살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이 같은 도리를 깨달음으로 붓다로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불교의 전반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연기라는 것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으며.(략).
                                        여래는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달아 정각(正覺)을 이뤘다."

  
 연기(緣起)는 유위법(有爲法)에 속하는 모든 존재들이 갖가지의 조건으로 화합되어 이루어진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의 연쇄 관계를 뜻하는 말로, 현상 세계의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여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연 생기에 의한 존재의 성립과 유래에 대한 논의로 연기란 무수한 원인과 조건(緣)이 상호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독립 자존적인 것은 없을뿐만 아니라, 그 속에 실체성을 가진 존재란 더욱 더 없다. 그러나 고대 인도 사상 가운데 힌두교에서는 창조주로서 범(大我)이라고 하는 신격화된 만유(萬有)의 근원을 상정하고, 이와 일치됨으로 진리를 완성하게 될 소아(小我)를 세운다. 그리고 이 때 아(我)란 행위의 주체인 자기, 자기 자신, 자아이며, 주체적 존재, 고정적 실체, 영원 불멸의 본체 등 실체적 존재로 여겼다. 이것은 존재를 실체시하는 것으로 창조론적(創造論的) 발생론(發生論)의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사상은 이후 다른 종교나 철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지금도 비슷한 형태로 인류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어떤 존재든지 서로 의존하여 상의성(相依性)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무상(無常)하다고 보며, 이러한 상의상관(相依相關)의 관계를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등의 인연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계를 <아함경>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연연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으며, 또 무명(無明)을 말미암아 행(行)이 있으며, 행을 말미암아 식(識)이 있다…(중략)…내가 이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이 법은 상주하며 법은 법계(法界)에 머무른다…(중략)…이와 같이 연기에 수순(隨順)하므로 이를 연생법(緣生法)이라 한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한다면, 존재의 법칙은 정해지고 확립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연생법(緣生法) 즉 상의성(相依性)이며, 연기의 입장인 것이다. 그리고 실재한다고 여기는 자아나 그에 상응하는 세계에 대하여 연기의 법칙으로써 무상(無常)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무상이란 곧 무아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상상(無常想)이란 무아상(無我想)을 세우는 것이다."

  
 무아(無我)란 영원불변(常)하고 독립자존(一)하는 중심(主)으로, 자재한 능력(宰)을 갖췄을 것이라고 여기는 아(我)를 부정하는 것이다. 즉 유아(有我)의 상견(常見)에 대하여, 연기의 입장에서 무아(無我)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에 대한 개별적인 아(我)뿐만 아니라, 총체적(總體的)인 실아(實我)의 개념마저도 부정하는 것으로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영혼, 자아, 자기, 그리고 아트만 등은 인간 내부에 영원하고 영속적이며 절대적인 어떤 실체, 즉 변화하는 현상 세계의 배후에 어떤 불변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최고 원리로 절대자를 믿는 종교의 공통적 사상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존재나 개체는 오온(五蘊)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을 분석하고 해명해 보아도, 나, 아트만, 자아, 혹은 불변하는 영속적 실체로 인정될 수 있는 어떤 것도 그 배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雜阿含經>, 《大正藏》, 卷 2, p.84.中 "云何緣起法 謂此有故彼有 (中略) 若佛出世 若未出世 此法常住
     法住法界 彼如來自所覺知 成等正覺"

<雜阿含經>, 《大正藏》, 卷 2, p.84.中 "云何因緣法 爲此有故彼有 爲緣無明 行 緣行識 乃至如是如是
     順大苦聚集, 云何緣生法 謂無明行 若佛出世 若未出世 此法常住 法住法界…是名緣生法"

<雜阿含經>, 《大正藏》, 卷 2, p.71.上 "無常想者 能建立無我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