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에 있어서 납골에 따른 문제점
-탑과 부도와 사리의 오용문제-

-梵水-




서론

 통과의례(通過儀禮)란 일생 가운데 반드시 거치는 부분으로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망라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전 과정을 간단히 관혼상제(冠婚喪祭)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하는데 인생의 전 과정을 크게 네 부분으로 요약한 말이기도 하다. 
 관혼상제 가운데 관례(冠禮)와 혼례(婚禮)는 일면 즐겁지만,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슬픔이 앞 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부분으로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자세히 알아둠으로써 두려움과 슬픔마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누구든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로써, 특히 자신과 관련된 상례와 제례에 대하여서는 더욱 고통과 슬픔이 앞서기 마련이다. 그리고 특히 효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조상에 대한 상, 제례는 더욱 정성을 쏟게 마련인데 그러다 보니 의례가 매우 복잡하게 발전 되어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유교를 정책적으로 숭상하여 그에 따른 정책을 시행한 결과, 유교의 통과의례가 불교문화에 따른 통과의례를 대신하여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같이 유교를 정책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관혼상제는 매우 복잡한 의례로 발전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가정의례준칙'등을 제정하여 오히려 간소화를 권하며, 또 화장에 따른 국토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 화장이 적극 권유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한편 매년 여의도 면적 정도가 묘지로 잠식되고 있는 실정에서 매장보다는 화장을 권하는 실정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형성된 매장문화를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비록 화장을 하더라도 납골을 선호하는게 요즈음 실정이다. 필자가 보기에 납골은 화장과 매장의 장점을 취한 것으로써 일반 국민들에게 쉽게 다가 설 수 있는 방법이지만, 이에 따른 문제점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가 납골의 방법으로써 탑과 부도가 오용되는 경우이다.  이는 분명 탑에 대한 이해 부족 내지는 상술에 따른 것으로써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불교도들의 존경 대상인 탑과 부도를 똑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아무렇게나 이용하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상업적인 목적에 이용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 하다. 이 글에서는 납골에 따른 방법으로써 탑 내지는 부도, 사리 등이 오용되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올바른 납골 문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는 마음에서 탑과 부도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하려고 한다.

1. 탑(塔) 

탑(塔)은 범어 stupa. 팔리어 thupa로서 바르게는 탑파(塔婆)라 음역한다. 또는 두파(兜婆),솔도파(率都婆), 수두파(藪斗婆), 사륜파(私倫 ), 소륜파(蘇倫婆)라고도 음역하며, 방분(方墳) 원총(圓塚), 귀종(歸宗), 고현(高顯), 취상(聚相)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본래 부처님 사리를 묻고, 그 위에 돌이나 흙을 높이 쌓은 무덤으로서 고타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묘(廟)를 말하는 것이다.

1) 지제(支提)

 유골을 묻지 않고 다만 특별한 영지(靈地)임을 표시하기 위하거나, 또는 그 덕을 앙모하여 은혜를 갚고 공양하는 뜻으로 세워진 것을 제저(制底), 지제(支提), 질저(質底)라 하여 탑파와는 완전히 구별하였으나, 후세에는 두 가지를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2) 탑(塔)의 구조(構造)

고타마 부처님께서 남기신 사리는 여덟 곳에 탑을 쌓아 각각 봉안하였다. 그 후 인도 아육왕이 전 인도를 통일하고 법에 의한 통치를 펴면서 여덟군데 탑에 봉안되었던 사리를 꺼내어 다시 8만 4천 곳에 탑을 세웠다. 이 때 탑의 형태는 반구(半球)형으로서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구멍을 뚫어 지평면에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밑바닥에는 사리 등의 유물을 장치하였으며 주위에 예배하는 길을 만들고 바깥에는 돌로 난간을 둘러 장엄하였다.

3) 탑(塔)의 모형(模型)

 후세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하여 복발탑(伏鉢塔), 옥탑(屋塔), 영탑(露塔),  주탑(柱塔), 상륜탑(相輸塔), 무봉탑(無縫塔), 안탑(雁塔), 삼중탑(三重塔), 칠중탑(七重塔), 오륜탑(五輪塔), 감탑(龕塔)등의 구조로 발달하였다.
탑을 만드는 재료에도 돌 ·벽돌 ·금속 ·나무 등 여러 가지를 이용하는데 중국에서는 벽돌로 만든 전탑(塼塔), 우리나라에서는 석조탑(石造塔), 일본에서는 목조탑(木造塔)이 특수하게 발달하였다.

2. 파고다(pagoda)와 타워(tower)의 차이

 탑 즉 스투파(stupa)의 원래 뜻은 ‘신골(身骨)을 담고 토석(土石)을 쌓아 올린 것으로써, 불신골(佛身骨: 眞身舍利)을 봉안하는 묘(墓)’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탑이란 ‘고타마(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이다.
인도 남단의 스리랑카 같은 나라에서는 탑을 다가바 또는 다고바라 부르는데 다투가르바, 곧 ‘사리봉안의 장소’라는 말을 약(略)하여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현재 미얀마에서는 탑을 ‘파고다’라고 일컬으며 유럽이나 미국등지에서도 역시 파고다라고 부르는데, 원래 이 말은 미얀어인 바야와 스리랑카어인 다고바의 혼합어(混合語)이며, 영어에서의 tope라는 말도 thupa에 어원(語源)을 둔 것이다.
흔히 세간에서는 뾰족한 고층건물까지도 탑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타워 같은 것이지 스투파 즉 탑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탑은 불교의 교주이신 고타마(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적하시자 그 분을 모시기 위한 분묘(墳墓)로서 축조 된 것이다. 따라서 그 형식은 후세까지 불탑으로서의 기준을 이루며 내려왔다.
이상에서 보듯이 탑이라는 말의 원래 뜻은 고타마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로써 엄격하게는 다른 곳에 붙여서는 안되지만, 탑의 어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해 시계를 높이 올려놓은 것까지도, 시계탑이라고 불려지는 현실이다.

1) 탑(塔)과 사리(舍利)

고타마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밑에서 입멸(入滅)하시자 그의 제자들은 유해를 다비(茶毘=火葬)하였다. 그러자 평소 부처님을 존경하던 인도의 여덟 나라는 그의 사리(舍利)를 차지하기 위하여 무력에 호소할 태세까지 보였는데, 이때 도로나(徒盧那)의 의견을 따라 부처님의 사리를 똑같이 여덟 나라에 나누어 각기 탑을 세웠다. 우리는 이를 분사리(分舍利) 또는 사리팔분(舍利八分)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고타마 부처님의 입멸 후 신자들은 그를 존경한 나머지 진신사리(眞身舍利)를 탑 속에 안치하고 신행으로써 예배 공양하게 된 것이다.

2) 사리신앙(舍利信仰) 

불교도들은 고타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을 단순한 무덤으로는 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주이신 고타마 부처님의 신성한 신골이 봉안되어 있는 신성한 구조물로 여겨서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이 때 부터가 사리에 대한 신앙의 시초로 보는 것이 타당 한 것으로 이 역시 고타마 부처님을 예배하고 찬탄한 것이다.
고타마 부처님께서 입멸 하신 뒤 B.C. 3세기 경, 인도제국을 건설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阿育王)은 불사리를 안치한 근본 8탑을 발굴하여 고타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다시 8만 4000으로 나누어 전국에 널리 사리탑을 세웠다.

3. 부도(浮屠)와 탑(塔)의 차이

부두(浮頭) 또는 포도(蒲圖) ·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 불타(佛陀) 또는 착도파(窄堵婆)는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다.
어원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외형적으로 나타낸 불상이나 불탑이 즉 부도이다. 그러면 불탑으로서 부도와 스님의 묘탑으로서 부도를 살펴보자.
고타마 부처님의 사리를 불사리,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경전을 법사리, 스님들의 사리를 승사리라 불렸다. 그러면 우선 불탑 개념으로서의 부도와 스님의 묘탑(廟塔)으로서 부도를 살펴보면 외양부터가 다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도라 함은 이와 같이 외양적인 면에서 구별되는 스님들만의 묘탑을 일컫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탑이라고 불리는 불탑(佛塔)은 무 불상 시대에는 예배의 대상으로서, 사찰을  중심에 위치하였으며, 그 뒤 불상의 출현 후에도 여전히 예배의 대상으로 남아 오늘에 이른다.
부도란 스님들의 묘탑으로서 탑과 같은 양식의 예배 대상은 아니지만 불교교단에서 중히 여긴다. 탑은 불교의 교주이신 고타마 부처님을 모신 것이며, 부도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은 엄격히 구별하였는데 신라시대로부터 불교가 억압받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런 양식은 엄격히 지켜졌다. 

4   탑과 부도 그리고 사리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사례.

이미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예배의 대상이며 부도 역시 스님들의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서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사리 역시 신성한 존경의 대상으로서 각기 탑과 부도에 봉안하여 예배의 대상이나 존경의 대상으로 추앙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얄팍한 상술에 의해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요즈음 자행되고 있다. 이곳에서 이와 같은 몰지각한 사례를 살펴 널리 경계하고자 한다.

1) 부도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례.

 "부도란 스님이 입적하면 화장을 하여 유골이나 사리를 넣은 석종(石鍾)을 말한다. 요즘은 일반인들도 화장하여 유골을 안장하고 있으며, ㅇㅇ사에서도 신도와 일반인을 위한 부도원을 갖추고 있다. 신도 및 일반인들을 위해 부도 상담을 해드립니다."  라는 안내문구와 함께 사진을 소개하고 있는 경우로서 모 사찰에서 버젓이 자행 되고 있다 .

 

                                                             (그림 1)

2) 사리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례.


(그림 2)

 "고승들의 시신을 화장하면 사리라는 것이 간혹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고인의 가장 귀한 유물로 여겨 유명 사찰에서는 이러한 사리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ㅇㅇㅇㅇ사리는 이렇게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사리를 말합니다. 이렇게 인공적인 사리를 조성하는 이유는 장묘 문화의 혁신을 꾀하기 위한 것입니다.  (중략)  화장을 하고 남은 유골을 납골당에 모시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다른 대안으로서 사리로 만들어 간직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시신의 유골을 사리로 만들 경우 냄새나 유해성이 전혀 없어 납골당이 아닌 집에 모셔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사리를 만들어 팔고 있는 실정이다.

3) 부도를 상업적인 목적에 사용하고 있는 사례. 


(그림 3)

*부도탑 *안치기수:1~2기"    

 
 

4) 탑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례.
  "주요물건 납골탑: 갑형, 을형, 병형이 있으며

 

 (그림4)
 사진 규격만 있으면 특별주문도 받습니다."

 

결론

 
이상으로 탑, 사리, 부도에 대하여 개념정리를 함과 동시에 상업적인 이유 내지, 이해 부족으로 불교의 성물(聖物)을 잘못 이용하고 있는 실정까지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몰지각한 상업 행위가 비록 몇몇 소수에 의해서만 저질러진다고 할지라도 그에 대한 피해는 심각한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문화의 파괴이며, 사회의 혼란과 분란을 조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예배하는 성스러운 탑의 개념과 인식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성물(聖物)이 좋아 보이고, 또 경제적 이득이 된다 할지라도, 이것을 이용한 상업적인 행위는 문화의 파괴며 신성한 성물에 대한 모독 행위임을 자각하여 하루 빨리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과 종교심을 교묘히 이용하는 이들이 오히려 불교 신도들을 부추켜 이런 일을 조장하는 것은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신 즉 나에 대한 교리를 간략히 살펴봄과 동시에 이것으로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 유무(有無)에 대한 물음에 고타마 부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는 ‘무기설(無記說)’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아는 나의 것,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집착을 배제하는 것이다. 또한 <아함경(阿含經)>에는 오온(五蘊)의 하나하나가 무상(無常)하며, 무상하기 때문에 고(苦)이고, 그렇기 때문에 무아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살아있는 육체에 대한 강한 집착심마저 경계하는데 죽은 육신을 위해 무엇을 집착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