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51(2007)년 9월호 Vol.7,No.80. Date of Issue 1 Sept ISSN:1599-337X 

 

 

 

 

 

 

 

 

 선지식

범수

 작년 이때쯤인가. 경북 청송에 매주 한 차례씩 석 달 동안 다녀할 일이 있었다. 사찰의 소임보다는 밖에 일이 더 많았던 시기라서 자주 외출하다보니 자연히 공양에 소홀히 하기 일쑤였다. 때를 건너 뛰든지 아니면, 식당같은 곳에서 사 먹을 때가 많았다. 그 날은 차안에서 공양할 요량으로 시골의 어느 빵집에 들어갔다. 식빵을 고르기 위해 크지 않은 가게 안을 쭈욱 한 번 흝어 본 뒤 옷 섶을 매만졌다. 한복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승복의 특성상 좁은 곳을 지날 때는 물건과 부딪히기 쉬움으로 옷을 여미야 한다. 특히 깨지기 쉬운 물건이 있는 곳은 더더욱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날도 탁자 위에 놓여져 있는 케익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조심했지만, 의식하지 못한 사이 케익의 윗 부분이 옷자락에 스치고 말았다. 가게 주인이 "스님. 옷에 크림이 묻었어요."라고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또 어떤 상황인지 알기 위해 조심스럽게 뒤로 돌아 보았다. 그러자 걱정스러운 눈길로 필자를 쳐다보는 두 분이 계셨다. 겸연쩍게 웃은 뒤, 눈 길을 돌려 케익을 살펴보니 상품가치가 없을 정도로 심하게 생크림이 벗겨져 있었다. 먼저 미안함을 표시 한 뒤, 망가진 케익을 포장해 달고 했다. 그러자 두 분 모두 정색을 하며,  괜찮으니 개의치 말라며 손사래를 쳐 보였다. 더더욱 미안한 마음에 "안 그래도 오늘 케익이 먹고 싶었다."며 계산하려 하자. 옷에 묻은 생크림을 닦아 주려는 듯 휴지를 집어 들고서는 "그냥 가셔도 됩니다."고한다. 그렇게 몇 번 말을 주고 받다가, 케익을 진열장밖에 놓아둔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가게 주인이 옆에 선 아주머니를 가르키며, 저 분의 아들이 오늘 생일이라서 케익을 고르기 위해 이것저것 꺼내보던 중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분을 쳐다 보고는 다시 한 번 "이 케익은 제가 가져 가겠습니다."고했지만, 그 분 역시 주인과 마찬가지로 "괜찮습니다."로 일관하였다. 어떤 식으로든지 미안함을 표하려 했지만, 거짓없는 그분들의 사양 때문에 식빵만 들고 나오면서 여러 생각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아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사려던 케익이 망가졌을 때 보통 어떤 반응일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 이런저런 생각으로 두어 걸음 걸었을까. 이 번에는 처음 보는 초등학생이 합장을 하며 지나가지 않는가. 순간 기분 좋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이 마을의 절엔 어떤 스님이 계실까." "스님의 덕화(德化)가 어떠하길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공손하며, 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스님에게도 자연스럽게 합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를 계기로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특정인들만 만나다 보면 자기체면에 걸려 지낼 수도 있다. 경전을 대할 때면 삼계(三界)를 왔다갔다 하지만, 저잣거리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생사(生死)를 논하며 인과(因果)를 말하고 공(空)을 얘기하지만, 집착하고 몽매하며 인색할 수도 있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당연하듯 불문(佛門)에  들어서면 누구든지 수행하는 것이지 상(相)을 낼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한 전쟁에 많이 참전했다고 모두가 장군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아무런 반성 없이 일상(生活)인으로 전략하지는 않았는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차 안에서 옷자락에 묻은 생크림의 흔적을 되돌아 보았다.

 

 

 

 위로

장남지

달콤하지만 나에겐 너무 시린
딸기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냥 차갑기만 아이스크림이 아니어서 내 머릴
쓰다듬어주던 딸기가 있어 고마웠다

별은 있었지만 너무 캄캄한
밤아래 서 있었다
닿지도 못할 별을 그리워 하지 않게
비춰주는 등불이 있어 따뜻했다

뻔히 다 아는 길인데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어설픈 걱정으로 들추어 내미는 손보다
실수인 것처럼 웃어주는 니가 고마웠다

 

 

 

 디 워

강승재

 800만을 넘어선 괴력의 영화. 6년을 준비한 야심작. 인간 심형래의 도전.  엄청난 논란을 넘어서 아직도 상영 중인 영화 디 워. 한국의 전통 설화를 주제로 세계시장을 공략한다는 야심찬 영화다. 지금은 그 기세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침체됐던 한국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LA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의문의 대형 참사를 취재하던 방송기자 이든(제이슨 베어)은 어린 시절 잭(로버트 포스터)에게 들었던 숨겨진 동양의 전설을 떠올리고 여의주를 지닌 신비의 여인, 다시 환생한 세라(아만다 브록스)와의 만남으로 인해 위험이 닥치고 있음을 직감한다. 여의주를 얻어 용이 되기 위한 악한 이무기 ‘부라퀴’와 그의 무리들이 서서히 LA를 뒤덮는 가운데, 위기에 처한 이든과 세라, 여기에 미국 FBI까지 움직이면서 상황은 점차 예측불허의 국면으로 치닫는다.

 디워의 강점은 단연 CG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순수 제작사 영구아트무비의 기술력으로 만든 CG는 관객의 눈요기를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이는 한국 영화의 기술력을 한단계 진일보 시킨 것으로 그 의미가 평가된다. 하지만 그 CG외에, 불행히도 디 워는 그렇게 내세울만한 장점이 없는 영화다. 얼마 전 100분토론에서 영화평론가 진중권씨와 네티즌들의 대담이 있었다. 그 대담은 그리 이성적이지만은 않았지만 사실 진중권씨의 말이 틀린 건 없었다. 디 워의 CG는 이야기를 위한 CG가 아니라 CG를 위한 CG였으며 심형래감독은 여러 언론매체에서 자신의 이야기나 민족주의적인 발언만 하였지 정작 영화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니 말이다. 100분토론이나 얼마전 자신의 블로그에 디워 폄하 글을 올렸다가 네티즌의 집중포화를 당한 이송희일 감독의 사례나, 그 논쟁이 영화를 비켜가고 네티즌과 평론가 같은 방식으로 이분화되어 논쟁이 아닌 투쟁으로 번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디 워를 흔히 트랜스포머와 비교하곤 한다. 둘 다 내용보다는 볼거리로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포머가 디 워보다 앞서는 것은 그 CG와 이야기가 전혀 무리 없이 어우러졌으며 영화 곳곳의 감독이라는 사람의 연출력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심형래감독의 연출력은 아직 미흡하다. 사실 디 워는 영화라기 보단 한편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
 2007년 가장 뜨거운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디 워. 많은 볼거리에 단순한 이야기 구조로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좋은 영화. 이 영화 한편이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도 엄청나니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좀 더 이야기와 연출에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9월중순 미국개봉을 앞둔 디워. 미국에서도 흥행하여 앞으로 더 좋은 영화로 나아가길 기원해 본다.

 

 

受持
讀誦

 

 법구경

편집부

法句經卷上

                                                                                                         尊者法救撰
                                                                                                吳天竺沙門維祇難等譯
 

無常品第一二十有一章 : 無常品者。寤欲昏亂。榮命難保。唯道是眞
무상품이란 어둡고 혼란하여 영화로운 목숨이라도 보전하기 어려우니 오직 진리만이 진실한 것이니라.

 

잠이 깨거든 즐겁고 기쁘게 생각하라.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 부처님 말씀을 기억하라.

  睡眠解寤   宜歡喜思   聽我所說   撰記佛言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으니 흥하고 쇠하는 법이다. 태어나면 이내 죽나니 열반(滅)만이 즐거움이라.

  所行非常   謂興衰法   夫生輒死   此滅爲樂

마치 저 옹기장이가 흙으로 그릇을 만들지만 반드시 깨지고 마는 것처럼 사람도 그러하니라

  譬如陶家   연埴作器   一切要壞   人命亦然

강물이 빨리 흘러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와 같아서 가면 돌아오지 않느니라.

  如河사流   往而不返   人命如是   逝者不還

마치 목동이 소 치는 것처럼 늙음과 죽음도 그와 같이 사람의 목숨을 몰고 가네.

  譬人操杖   行牧食牛   老死猶然   亦養命去

모두 한결 같지는 않으나 남녀가 재산을 쌓는다. 그러나 쇠하거나 망하지 않는 이가 없다.

  千百非一   族姓男女   貯聚財産   無不衰喪

밤낮으로 명을 깎아 목숨이 줄어드는 것이 마치 저 끓는 솥에(榮穽水) 물이 줄어드는 것 같네.

  生者日夜  命自攻削  壽之消盡
  如[榮-木+巾][雨/井]水

항상한 것은 없고 높은 것도 떨어지며 모인 것은 흩어 지나니 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네.

  常者皆盡   高者亦墮   合會有離   生者有死

중생은 서로 해쳐 목숨을 잃나니 그 소행을 따라 떨어지는 곳에서 스스로 재앙과 복을 받는다.

  衆生相剋   以喪其命   隨行所墮   自受殃福 

늙어서 고통에 이르고 죽으면 곧 의식이 떠나건만 세간을 즐겨 감옥으로 삼고 세상 탐하기를 그치지 않네.

  老見苦痛   死則意去   樂家縛獄   貪世不斷

아아, 어느덧 노년에 이르러 좋던 몸이 변해 늙음이 되었네. 젊을 때에는 뜻대로 되었으나, 늙으면 자취뿐이라네.

  돌嗟老至   色變作모   少時如意   老見蹈藉

비록 백 년을 살아도 죽고 나면 과거이다. 늙는 것은 꺼리는 바인데 거기에 또 병까지 이르네.

  雖壽百歲   亦死過去   爲老所厭   病條至際

오늘이 지나면 목숨도 따라 줄어드나니 마치 작은 물고기에 무슨 즐거움 있으랴.

  是日已過   命則隨減   如少水魚   斯有何樂

늙으면 몸이 쇠하고 병에 시달려 무너지나니 육체가 허물어져 썩는 죽음은 자연스럽네.

  老則色衰   所病自壞   形敗腐朽   命終自然

이 몸 어디에 쓸 것인가. 언제나 더러운 것 새어 나오고 거기에 또 병에 시달려 늙음과 죽음의 근심만 있을 뿐,

  是身何用   恒漏臭處   爲病所困   有老死患

욕심을 즐기고 스스로 방자하면 나쁜 것만 늘어나니 변한다는 것, 보도 듣도 못했는가. 목숨이란 영원하지 않느니라.

  嗜欲自恣   非法是增   不見聞變   壽命無常

자식인들 어쩔 수 없고 아버지, 형이라도 의지할 수 없네. 죽음의 핍박을 받을 때에는 어떤 친한 이도 대신 할 수없네.  

  非有子恃   亦非父兄   爲死所迫   無親可호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게으르고, 늙어서도 음행을 그치지 않네. 재산이 있어도 보시하지 않으며, 부처님의 말씀을 받들지 않는 이 네 가지의 나쁜 것이 있으면 저를 속이는 것이니라.

 晝夜慢惰   老不止음   有財不施 
 不受佛言   有此四弊   爲自侵欺

허공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다. 산속의 바위 틈도 아니다. 죽음을 받지 않고 벗어날 그 어떤 곳도 없다.

 非空非海中 非入山石間 無有地方所 脫之不受死

'이 일은 내가 할 일이며, 내가 성취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떠들어대면서 늙어 죽을 걱정은 그대로 받아 지니네.  

  是務是吾作   當作令致是
人爲此[跳-兆+參]擾   履踐老死憂

이런 사실을 알아 깨끗이 하며, 이와같이 생(生)의 다함을 보면, 비구는 악마의 군사들을 여의어 나고 죽음을 건너게 되느니라.

 知此能自淨 如是見生盡 比丘厭魔兵 從生死得度

   법구경 (法句經)은 초기불교 경전에 해당된다. 내용은 시(운문)형식인데 팔리어는 423게(偈)이며, 한역(漢譯)은 500게이다. 주제 등에 따라 26장으로 나누는데,  한역 경전은 13장 258게가 추가되어있다. 또 <법구비유경>, <간다리다르마파다>, <우다나바르가>, <출요경(出曜經)> 등의 여러 가지 이본(異本)이 있으며 팔리어로 된 경전은 <담마파다>라 한다.



좋은인연

 

 

 경주 남산 탑골 마애 조상群 부분

 편집부

 

 선지식

 범수

 

 위로

 장남지

 

 디 워

 강승재

 

 법구경 무상품

 편집부

 

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발행인: 범수스님
(EDITOR E-mail   savaha@nate.com)
www.savaha.or.kr



 

 나눔과 어울림을 지향하는 좋은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