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51(2007)년 7월호 Vol.7,No.78. Date of Issue 1 Jul ISSN:1599-337X 

 

 

 

 

 

 

 

 

 화합은 ‘네 탓’이 아닌 ‘내 탓'

범수

 신발을 새로 사서 머리맡에 두고서는 쳐다보고 또 매만지느라 잠을 설쳤던 적이 있다. 그런데 오랜만에 같은 경험을 했다. 얼마 전부터 운동 삼아 시작한 조기축구 때문에 새로 축구화를 산 것이다. 신발 끈을 매면서 날씨를 걱정하던 모습이 꼭 어릴 적 느꼈던 그 느낌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음 날 새벽 “잠깐 동안이라도 잠을 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짧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새로 산 축구화를 신고 싶어 운동장에 나갔다. 보호 장구를 갖춘 뒤 뽐내듯 운동화를 신고 뛰었지만, 그날따라 왜 그렇게도 실수연발이던지 내내 “새로 샀는데...”만 되 뇌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어른들이 깡통을 골대삼아 뛰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골목축구가 연상되겠지만, 마음만은 K-리그의 열정이 부럽지 않다. 그리고 정식게임 못지않은 운동량도 양이거니와 선수 개개인의 실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처음 운동장에 나오면 골대를 지키며 적응시간을 거치는데 필자도 그랬다. 마음은 신고 있는 오랜 된 축구화 마냥 익숙하지만, 몸은 버스가 떠난 뒤 손 흔드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헛발질에 넘어지기까지 하다보니 속된말로 졸지에 ‘개발(공을 아무렇게나 차는 것)’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우스개 소리로 “고기도 못 먹지... 체력이 딸려서...” 라고 하면, 다들 건강한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경기를 해봤으면 알겠지만 공을 두고 상대선수와 다투면서 몸이 부딪히기도 하고, 또 같은 편끼리 주고받다보면 엉뚱한 곳으로 차기도 한다. 이때 자신의 실수라고 얼른 인정해버리면 별로 문제될게 없지만,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면 좋은 경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알다시피 단체 경기는 팀웍(teamwork) 즉 화합이 중요하다. 역할을 나눠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되기 때문에 누가 잘하고 못하는가 하는 지엽적인 것보다는 전체가 얼마나 함께 노력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중요하다. 다들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막상 경기를 해보면 ‘내 탓’보다는 ‘네 탓’이 더 많은데,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신만 빼고 모두 잘못된 식이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잘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
 단체 운동의 결과는 선수 개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제가 받아 들여야 하는 공동의 책임이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굳건한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면 전체가 함께 발전하겠지만,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는 경우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끝은 자명할 것이다. 불경인 <경률이상>에 보면 단체의 화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타내는 이야기가 있다.
 사자의 젖을 마셔야만 나을 수 있는 병에 걸린 왕이 "사자의 젖을 구해오는 사람에게 땅과 막내공주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한 사냥꾼이 자신이 그것을 하겠다며, 양 한 마리와 포도주 한 통을 구해 사자굴 속에 넣어뒀다. 때마침 먹이 감을 구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 사자가 이것을 보고는 한 잎에 삼켜버렸는데, 그만 술에 취해 잠들고 말았다. 이때를 틈타 사냥꾼은 얼른 사자의 젖을 짜서 돌아 왔다. 그러자 이 때부터 사냥꾼의 신체기관들이  서로 공을 다투었는데, 먼저 발이 말했다. "사자 젖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덕이야. 발이 없으면 어떻게 산에 올라갔겠어." 이번에는 손이 자랑했다. "손이 있으니까 젖을 짰지." 그러자 다른 기관들도 저마다 자신의 공을 다투었다. 이를 지켜보던 혀가 말했다. "다투지 마. 너희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모두 나에게 달렸어." 그래도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 사냥꾼은 사자의 젖을 가지고 왕에게 갔다. 그때까지도 발, 손, 눈, 귀 등이 서로 공을 다투며 상대를 헐뜯자 혀는 짜증을 내며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시끄럽게 다투는군. 어디 두고 봐.” 그 때 왕이 사자의 젖인가를 확인하며 사냥꾼에게 묻자 혀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 나귀의 젖입니다.”

 

 

 

 낡은 종이

장남지

 처음에는
누군가의 마음을 담는  연필이었는지도 모른다.

저 구름은 누군가의 눈물이었는지도
이 바람도,
누구의 마음이었는지도,

어쩌면 널 사랑한다 속삭이던 편지지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낡은 종이는 아니었다

 

 

 

 밀양  - secret sunshine,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

강승재

 미디어의 시대, 우리는 많은 매체를 통해 세상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살아간다. 특히나 뉴스, 신문 등의 매체는 현시대의 다양한 인생들을 우리에게 생중계 해주고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발생한다. 그것은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그저 공감만 할 뿐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인생엔 굴곡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것이 큰 파도이든 잔잔한 물결이든 말이다. 최근 들어 유괴에 관한 영화가 몇 개 개봉했다. 얼마 전에 개봉한 ‘그 놈 목소리’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요즘에 상영되고 있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도 그 영화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두 영화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놈 목소리’가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비해 ‘밀양’은 범인이 아닌 유괴로 자식을 잃은 사람의 인생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남편을 잃고 서울에서 밀양으로 이사 온 신애(전도연 분)은 밀양시내에서 피아노 학원을 열고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밀양에 도착하자마자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만나게 된 종찬(송강호 분)은 신애에게 끌려 그녀를 쫓아다니게 되지만, 그녀는 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외지인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 밀양이라는 도시. 그러던 중 신애의 아들이 유괴당하고...

 호수가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절망하는 신애. 절망을 이기지 못하는 신애는 종교에 귀의하게 되지만 그 마저도 자신을 달래주지 못한다.  그런 신애를 바라보는 종찬,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애는 점점 절망해간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절망적이다.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거기엔 절망적인 인물들이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감독은 언제나 거기서 조그만 희망의 싹을 이야기한다. 밀양 또한 마찬가지로 결국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밀양(secret sunshine)-비밀스런 빛 이라는 영화제목의 해석에서 보듯이 희망은 볕이 내리쬐듯 그렇게 우리내 인생에 존재하고 있다.
 신애의 상황은 감독의 전작보다 더 절망적이다. 신애는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절망에 못이겨 종교에도 귀의하지만 그 마저 자신을 달래주지 못한다. 하느님은 신애에게 용서하라 이르지만 정작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러 간 교도소에서 범인이 이미 하느님께 용서받았다고 하는 대답에 신애는 또다시 절망하게 된다. 대체 누가 용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용서가 하느님의 뜻이라지만,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영화는 용서와 분노가 뒤섞인 채 묵묵한 시선으로 신애를 따라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용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용서를 하든 못하든 절망이든 희망이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에 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인 ‘어디든 사람 사는 동네다.’ 하는 말의 함의를 감독은 종찬의 입을 통해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오해 중의 하나가 이것은 기독교 '비판영화'다 내지 '찬양영화'다라고 하는 찬반논쟁인데, 이는 그런 맥락에서 해석되면 안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기독교가 나온 것은 신애의 절망 속 하나의 여정일 뿐이지 하느님이 위대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문제가 되지 못한다.  이 영화는 용서에 관한 것도 이해에 관한 것도 그리고 종교에 관한 것도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이며 거기엔 늘 작게나마라도 햇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도연의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많은 유명세를 치른 영화 밀양. 개인적으로는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아 마땅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여타 감독들이 가지지 못한 문학적, 영화적 깊이를 가진 이창동 감독의 다음 행보를 주목해 본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九五)一합喩
昔有雄雌二합共同一巢。秋果熟時取果滿巢。於其後時果乾減少唯半巢在。雄瞋雌言。取果勤苦汝獨食之唯有半在。雌합答言。我不獨食。果自減少。雄합不信。瞋합而言。非汝獨食何由減少。卽便以합啄雌합殺。未經幾日。天降大雨。果得濕潤還復如故。雄합見已方生悔恨。彼實不食。我妄殺他。卽悲鳴命喚雌합汝何處去。凡夫之人亦復如是。顚倒在懷。妄取欲樂不觀無常。犯於重禁悔之於後竟何所及。後唯悲歎如彼愚합

95. 어리석은 수비둘기
  암수 한 쌍의 집비둘기가 한 둥우리에 살면서 익은 과실을 둥우리 속에 모았다. 그런데 과실이 차츰 마르면서 부피가 반 정도로 줄어 들었다. 이것을 본 수컷은 성을 내며 암컷에게 말했다. “과실을 모으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왜 혼자서 먹고 반만 남았느냐?” 암컷이 대답했다. “나는 먹지 않았습니다. 과실이 저절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수컷은 믿지 않고 성을 내며 암컷을 보고 말했다.“네가 혼자 먹지 않았으면 왜 줄어들었겠느냐.” 수컷은 곧 주둥이로 암컷을 쪼아 죽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큰비가 내려, 과실은 차츰 불어나 전과 같이 되었다.  수컷은 그것을 보고 비로소 후회했다. “실은 그가 먹은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망령되이 그를 죽였다”고. 수컷은 곧 슬피 울면서 암컷을 불렀다. “너는 어디로 갔느냐.”
 범부들도 그와 같다. 뒤바뀐 생각을 마음에 품고 망령되이 쾌락을 누리면서, 덧없음을 보지 않고 중한 계율을 범하다가 뒤에 가서 후회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리하여 슬피 탄식하였으니, 그것은 어리석은 비둘기와 같다.

 

(九六)詐稱眼盲喩
昔有工匠師。爲王作務不堪其苦。詐言眼盲便得脫苦。有餘作師。聞之便欲自壞其目用避苦役。有人語言。汝何以自毁。徒受其苦。如是愚人爲世人所笑。凡夫之人亦復如是。爲少名譽及以利養。便故妄語毁壞淨戒。身死命終墮三惡道。如彼愚人爲少利故自壞其目

96. 제 눈을 멀게 한 장인
 어떤 장인(匠人)이 왕을 위해 일을 하다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거짓으로 '눈이 멀었다' 하여 겨우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다른 장인이 그 말을 듣고, 스스로 제 눈을 다치게 하여 괴로운 노역을 피하려 했다. 옆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스스로 눈을 상하게 하여 공연히 고통을 받는가.”
 범부들도 그와 같다. 조그만 명예와 이익을 위하여 일부러 거짓말로 깨끗한 계율을 깨뜨리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진다. 그것은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조그만 이익을 위하여 스스로 제 눈을 상하게 한 것과 같다.

 



좋은인연

 

 

 경남 양산 영축산 통도사

 편집부

 

 화합은 ‘네 탓’이 아닌 ‘내 탓'

 범수

 

  낡은 종이

 장남지

 

 밀양

 강승재

 

 백유경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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