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51(2007)년 5월호 Vol.7,No.76. Date of Issue 1 May ISSN:1599-337X 

 

 

 

 

 

 

 

 

 

 

 효도

범수

 오월하면 비록 음력이지만 ‘단오날’이 떠오른다. 이 날은 일 년 가운데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여겨 왔고, 지금도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행해지고 있다. 외국의 여러 축제 가운데도 오월제(五月祭 May Day)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계절을 세분한 절기(節氣)대신 기념일에 치중하는 것 같다. 달력을 보니 여름을 알리는 입하(立夏)보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날이 먼저 들어온다.  
 달콤한 단팥빵에 하얀 우유가 기억나는 어린이날, 붉은 카네이션이 생각나는 어버이날, 목청껏 ‘스승의 은혜’를 부르던 스승의 날, 아름다운 연등이 떠오르는 부처님 오신날 등 여러 기념일이 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어린이날’이 아닌 날이 없으며, ‘어버이날’이 아닌 날이 없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그 의미를 잊고 지내는 것이 현실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감동 없이 의무처럼 치러지는 듯한 기념일 행사를 보면 더욱더 그렇다.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며 기념하기 보다는 그런 날이 있으니까 지내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한편 ‘어버이날’에 불렀던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라는 '어머니 마음'을 떠 올리면 누구든지 가슴이 찡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훈련병 시절 조교들이 일명 ‘눈물의 고개’를 힘들게 오르게 한 뒤 이 노래를 시키던 기억이 새롭다. 몸만 컸지 천지도 모르면서 부모 속을 썩였던 지난날을 뉘우치기라도 하듯 눈물과 콧물 그리고 땀에 범벅되어 악을 써가며 목이 터지라 부르던 노래, 그 노래의 참 모습이 불경인 <아속달경>에 잘 드러나 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젖먹이고 씹어 먹여 기르고, 장성하고 나서는 천하 만물을 자식에게 보여 선악(善惡)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자식이 한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다른 어깨에 어머니를 업어 목숨이 다하고서야 그친다든가, 다시 보배로써 부모의 몸에 달아 드리든가 한대도, 부모의 은혜는 갚을 수 없을 것이다.
 부모가 살생(殺生)을 좋아하면 자식된 자는 말씀드려서 그치게 하며, 부모가 악한 마음이 있으면 늘 간청해서 선(善)을 생각하게 하며, 부모가 어리석고 지력(智力)이 둔해서 진리(佛法)를 모르면 순리를 일러 드리며, 부모가 탐욕이 많고 질투심이 있으면 유순하게 말씀드리며, 부모가 선악을 모르면 차례로 유화스럽게 간청 드릴 것이니, 자식된 자는 마땅히 이 같아야 하느니라. 그러나 자식이 의복을 부모보다 더 좋은 것을 입고자 한다든가, 음식을 부모보다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한다든가, 말을 부모보다 높이고자 한다면, 이런 자는 죽어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부모자식간의 도리를 한꺼번에 잘 아우르는 이 말씀이야 말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되새겨봐야 할 참된 내용이 아닐까 한다. 이상의 내용을 간단히 줄인다면 “선의 최상은 효도보다 큰 것이 없고, 악의 최악은 불효보다 큰 것이 없다.”

 

 

 

 부처님

장남지

 꽃을 배경 삼아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데
바닥으로 떨어진 잎들이
다시 꽃이 되어 향기를 뿜을 때

비 내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는데
억수같이 내리는 비속에서
비 막이가 되어주는 은행나무가 듬직할 때

강하구 모랫가를 거닐다 보이는
무심결에 뱉은 수박씨앗이
곧 쓸려내려가는 모래틈에 싹을 틔워 그 떡잎들이 푸릇할 때

그렇게 계신다
그 자리에

 

 

 

 말죽거리 잔혹사

강승재

 사람은 거의 누구나 학창시절을 겪는다. 그 시절은 누구나 추억속에 아련히 방 한칸씩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 추억이란 것은 시대의 유물일 것이다. 동시대의 사람은 동시대의 추억을 갖기 마련이기에. 그리고 그 여러 시대의 추억중 1970년대는 특별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잔혹했던 1970년대 학창시절의 이야기이다.

 1978년 말죽거리의 봄, 현수(권상우)는 강남의 정문고로 전학 온다. 거기서 현수는 학교 짱인 우식(이정진)과 친해지지만 하교길 버스 안에서 아름다운 은주(한가인)을 보고 동시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은주는 다정한 현수보다 남자다운 우식에게 빠져들고 현수는 가슴 아픈 짝사랑을 앓는다. 한편, 학교짱 자리를 놓고 선도부장 종훈과 한 판 붙은 우식. 종훈은 비열한 방법으로 우식을 이기고, 우식은 그 길로 학교를 떠나버린다.

  우식 없는 틈을 탄 종훈의 괴롭힘, 열반으로의 강등, 더해가는 선생들의 폭력 게다가 우식과 함께 가출했다는 은주의 소식은 현수를 점점 죄어간다.
 현대의 학교와 1970년대가 다른 점이 있다면 학교에 군인이 있었다는 점이겠다. 학교 안에서의 그들의 존재는 학생선도의 역할과 군사적 성격이 컸겠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계급에 대한 복종이 잘 투영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계급상승을 위해 꼭 대학에 가야했던 시절, 왜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일방적인 교육을 강요당했던 시절에 이소룡이 있었다. 감독(유하)은 이 영화에서 이소룡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시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1 대 여럿의 결투신은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에 대한 오마주로 보여진다. 감독이 살아왔던 그 시절에 이소룡이 휘두르는 쌍절곤은 부조리한 세상에 공상으로나마 저항할 수 있었던 하나의 돌파구였으리라.
이 영화의 강점은 시대의 서사를 학교라는 틀 안에서 써 내려간 점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시대의 정교한 디테일 표현이 영화에 힘을 싣는다. 지친 머리를 쉬곤 했던 독서실 옥상, 가발을 쓰고 들어간 고고장, 그리고 진추아의 One summer night까지 시대의 모습을 정겹게 구현하려 한 감독의 노력이 돋보인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여러 얘기가 등장한다. 대학에 대한 압박, 친구와의 우정, 짝사랑 등 여러 얘기들이 섞인다. 무슨 영화이든지 하나의 이야기, 즉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영화는 주제를 잃고 이리저리 표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그것들이 전혀 부조리하게 얽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 현수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그 시대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제목 또한 그 주장을 지지한다. 말 그대로 말죽거리`잔혹사`인 것이다.
잔혹했던 시절 세상에 쌍절곤을 휘두르고 싶었던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연가. 70년대의 향수가 영화와 함께 흐른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九一)貧兒欲與富等財物喩
昔有一貧人少有財物。見大富者意欲共等。不能等故。雖有少財欲棄水中。傍人語言。此物雖?可得延君性命數日。何故捨棄擲著水中。世間愚人亦復如是。雖得出家少得利養。心有?望常懷不足。不能得與高德者等。獲其利養見他宿舊有德之人。素有多聞多衆供養。意欲等之不能等故。心懷憂苦便欲罷道。如彼愚人欲等富者自棄己財

91. 가난한 사람의 헛된 욕심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 재물을 조금 있었다. 그런데 큰 부자를 보고는 그와 같은 재물을 갖고자 하였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가지고 있던 재물을 버리려고 하였다. 그때 옆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 재물은 비록 적지만 늘릴 수도 있다. 그대는 아직 젊은데 왜 그것을 물 속에 버리려고 하는가”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도 그와 같다. 마음에 바라는 것은 항상 부족을 느낀다. 그러나 덕이 높은 이만큼 이익을 얻지 못한다. 나이 많고 덕이 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양을 받는 것을 보고, 생각으로 그이와 같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다가 그만 공덕 닦기를 집어치운다.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부자와 같이 되려고 하다가, 자기가 가진 재물마저 버리는 것과 같다.

 

(九二)小兒得歡喜丸喩
昔有一乳母抱兒涉路。行道疲極眠睡不覺。時有一人持歡喜丸授與小兒。小兒得已貪其美味不顧身物。此人卽時解其鉗鎖瓔珞衣物都盡持去。比丘亦爾。樂在衆務?鬧之處。貪少利養爲煩惱賊奪其功德戒寶瓔珞。如彼小兒貪少味故一切所有賊盡持去

92. 환희환을 먹은 어린 아이
 
어떤 유모(乳母)가 아이를 데리고 길을 가다가 너무 지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그 때 어떤 사람이 가졌던 환희환(歡喜丸)을 어린아이에게 주었다. 어린아이는 그것을 먹고 그 맛에 빠져 그만 제 몸이나 물건을 돌아볼 줄 몰랐다. 그 사람은 곧 아이의 족집게와 패물과 구슬과 옷을 모두 벗겨 가지고 달아났다.수행자도 그와 같다. 온갖 일이 번거로운 곳에 즐겨 살면서 조그만 이익을 탐하다가, 번뇌의 도적에게 공덕과 계율의 보배 구슬을 빼앗긴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작은 맛을 탐했기 때문에 가졌던 모든 물건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 5월 24일(음 4월8일)은 불교의 사대명절 가운데 하나인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좋은인연

 

 

 경북 상주 남장사

 편집부

 

 효도

 범수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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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유경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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