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51(2007)년 4월호 Vol.7,No.75. Date of Issue 1 Apr ISSN:1599-337X 

 

 

 

 

 

 

 

 

 

 주국(酒國)에서 전하는 말

범수

 불교에서는 행복한 삶을 돕기 위해 ‘좋은 습관’ 등으로 풀이하는 계(戒)를 두고 있다. 이것은 ‘경계한다.’ ‘조심한다.’ 등의 의미로써 나쁜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생명을 존중하라), 훔치지 말라(不偸盜 아낌없이 베풀어라), 사음하지 말라(不邪淫 청정한 행위를 하라), 거짓말하지 말라(不妄語 진실을 말하라), 술 마시지 말라(不飮酒 깨끗한 생각을 지켜라)’의 다섯 가지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권하는 보편적인 규범이다. 그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서 더욱 그렇다. 만약 외딴 곳에서 혼자 산다면 누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어떤 이의 노력을 훔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계는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위와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공동의 노력이다. 즉 서로에 대한 배려이며,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믿음이자 실천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잘못된 행위 때문에 고통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은 감정과 욕망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
 작은 이익을 위해 뒤에 올 결과도 생각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흔히 ‘어리석다’고 한다. 이는 현상이나 사물의 이치를 살피기보다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며, 금방 들킬 거짓말 등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습관인 계를 지키지 못했다고 죄인 취급하거나 심하게 자학한다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킬 뿐이다. 간혹 타인의 잘못에 저주를 퍼붓거나 자신의 실수에 대해 심한 자책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문제 해결의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자신의 행위가 잘못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은 아무런 가책 없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지만, 죄를 지으면 나와 남이 동시에 아픔을 겪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동을 조심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지은 것을 자신이 되돌려 받는다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신념을 지키며 꾸준히 좋은 행동을 할 때 그곳에서 행복이 싹트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습관인 계를 지킨다는 것은 행복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날이 갈수록 범죄는 더욱 흉악해지고 사람들은 저 마다의 고통으로 신음한다. 그렇다보니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무리수를 두곤 한다. 그중에 하나가 음주일 것이다. 애주가들은 술을 주백약지장(酒百藥之長)이라 찬미하곤 한다. 백 가지 약 중에 술이 최고라는 뜻으로 마음에 병이 있으니 술로 다스린다고 한다. 그리고 놀고 먹어도 술만큼은 마셔야 한다며, 주천지미록(酒天之美祿)을 든다. 즉 술은 하늘이 주는 훌륭한 녹봉(祿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술과 밥을 넣는 포대라는 뜻인 주낭반대(酒囊飯袋)도 알아야 한다. 먹고 마실 줄만 아는 무능한 자를 욕하는 말이다. 그러면 왜 술을 경계해야 하나.
 술 자체를 두고 좋고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평가는 곤란하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작은 즐거움을 위해 마시는 술이 도리어 큰 고통을 불러들이는 화근이 되고 만다.
 주국(酒國 술에 취해 느끼는 별천지)에서 전하는 슬픈 이야기 한 가지. 주붕(酒朋 술친구)들이 주력(酒力 술의 힘)을 자랑하기 위해 주전(酒戰 술 많이 마시기 내기)을 자주 벌이면, 아내들은 안타까움에 몸서리치다 슬픈 마음으로 보험 하나 더 든다고 한다.

 

 

 

 연애

장남지

 봉우리가 아무리 작아도 때가 되면 틔울줄 안다
꽃잎은 그 한쪽 잎만으로도 더 바라지 않은 향기임을 안다
모든 잎이 하늘을 향하는 만개한 꽃은 그 짧고 찬란했던 기억을 뿜어내며
이내 한잎 두잎 바닥으로 향하는 줄도 안다

봉우리가 추운바람을 이겨 봄빛으로 피어오르고,
화알짝 피었다 이내 색이 파래 결국 져버릴줄도,
그래서 보이지 않은 흔적으로 남는 줄로 알면서도
다시 피고지고,

피고지고
한다

 

 

 

 봄

조혜숙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봄처럼 나뭇가지의 연두빛 새순을 보며 가슴이 떨린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봄처럼 피어나는 작은 꽃들을 보면 너무 경이로워  황홀에 빠진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봄처럼 온통 신비로운 세상에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있는 나라에 살면서 해마다 새봄이 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건만, 해마다 봄을 맞이할 땐 그 봄이 더 절절하고 더 감사하고 더 환희스러워 도리어 안타깝기까지 하다. 스스로 너무 호들갑스러운게 아닌가 싶어 자신을 가만히 되짚어 생각해 보니 , 그건 아마도 나이가 들어 간다는 얘기이고, 삶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세상의 모든 것이 세상에 태어나면 당연히 죽음이 함께 한다. 하지만 그건 개념으로서일뿐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걸 진정으로 받아 들이고 살지는 못한다. 그러하기에 영원히 살것처럼 자신의 계산에 맞추어 분별하고 집착하며 "내 것"에  온통 올인하며 사는 것일 게다.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 또 미처 그 생각까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고 있는 환자들조차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두렵고 낯설기만 한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기간이 영원인 듯 더더욱  고통과 두려움에 벗어나려 자기자신에게 집착한다. 더 좋은 영양제, 더 좋은 치료, 더 좋은 환경등등. 보호자 역시도 더 오래 살리고 싶어 하는 맘에 환자에게 더더욱 부질없는 정성을 쏟기도 하고, 혹은 환자가 어서 임종 하시길 기다리느라 환자의 고통보다 남아있는 가족의 수고로움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이 영원인양 지루해 한다.
 "태어남과 죽음" 이것은 늘 함께 하는 것인데 언제나 태어남의 기쁨은 경이로워 하고 시작이라 여기며, 죽음은 끝이고 추운 겨울처럼 두려워 한다. 이 봄을 신비로워 감탄하고 경이로워 하듯 태어남 역시 그 신비롭고 경이로움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죽음 역시도 여여히 받아 들여야 할 자신의 몫이라고 당연히 알고 있고 느낀다면, 그 삶이  숱한 질곡의 세월이라 할지라도 그 삶을 여여히 받아 들이게 될 것이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천상변시인의 (귀천)의 한 구절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이 봄날 산 언저리를 천천히 거닐면서 이 봄날에 취해 상념이 널뛰기를 한다.

 

 

 

 아픈 이야기

무연

 "思量惡法化爲地獄 思量善法化爲天堂( 악한 것을 생각하면 그곳이 지옥이고, 선한 것을 생각하면 그곳이 천당이다."  <六祖壇經>
  금성인들은 좋겠다.  요 며칠 동안 감기가 들어 물 코를 흘릴 때마다 그런 공상에 빠지고는 한다. 올해는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라는데, 그래도 지구의 겨울은 너무 춥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 따뜻한 맨바닥에 다시 눕곤 하는데 그 따뜻함이 더없이 고맙고 편안하다. 그렇게 누워있으니까, 언젠가 강원에서 수학하던 시절 몹시 앓아 누워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소위 강단이라는 게 있어서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약을 먹지 않고 나으면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곤 했는데, 웬일인지 그 해 겨울에는 병원을 가도, 약을 먹어도 듣질 않았다. 온 몸에 열이 끓고 식은땀이 흐르고 두통과 열 때문에 바짝 탄 입술을 벌리고 지금처럼 방바닥에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 때 도반스님 둘이서 내 머리맡에서 무언가 쑥덕쑥덕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멍한 와중에 들리던 그들의 대화 한 토막에 나는 그만 억장이 무너지고 설움이 복 받쳐 눈을 지그시 감았고, 감은 두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 두 스님들은, 나를 가리키며 "엄살이 심하다."고했던 것이다.  남은 아파 죽겠는데,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엄살이라니!  아,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그러면 그들은 얼마나 후회하고 미안해할까.
 나의 느닷없는 흐느낌에 그들은 놀라 다가왔다. 조심스러운 얼굴로 많이 아프냐고 묻는데 약이 오르고 가증스럽고도 서러웠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몸살이 심하다."고 한 말을 내가 과문한 탓에 '엄살이 심하다'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듣기 좋은 말도 싫은 말도 누가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서 듣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들, 영문도 모른 채 내게 미움을 받았을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반대로 나도 모르게 한 말이 남에게는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것 또한 미안했다. 결국, 모든 순간은 꽃봉오리이다. 내 마음 먹기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노다지 일지도 모른다.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하자. (정현종 詩인용)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八九)得金鼠狼喩
昔有一人在路而行。道中得一金鼠狼。心生喜踊持置懷中。涉道而進至水欲渡。脫衣置地。尋時金鼠變爲毒蛇。此人深思寧爲毒蛇?殺要當懷去。心至冥感。還化爲金。傍邊愚人見其毒蛇變成眞實。謂爲恒爾。復取毒蛇內著懷裏。卽爲毒蛇之所??喪身殞命。世間愚人亦復如是。見善獲利內無眞心。但爲利養來附於法。命終之後墮於惡處。如捉毒蛇被?而死

89. 금족제비와 독사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금족제비 한 마리를 얻고는 몹시 기뻐하며 그것을 품안에 품고 갔다. 강에 이르러 물을 건너려고 옷을 벗어 땅에 두었더니, 금족제비가 이내 독사로 변해 버렸다. 그는 가만히 생각했다. "독사에게 물려 죽더라도 꼭 품에 안고 가리라". 그의 지극한 마음에 감동되어 독사는 도로 금으로 변했다. 옆에 있던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독사가 순금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항상 그런 줄 알고 자신도 독사를 잡아 품속에 품었다가 그만 독사한테 물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다. 남이 좋은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 속에는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서도 다만 이익을 위해 부처님 법에 와서 붙는다. 그리하여 목숨을 마친 뒤에 나쁜 곳에 떨어지는 것이니 독사를 품었다가 물려 죽는 것과 같다.

 

(九○)地得金錢喩
昔有貧人在路而行。道中偶得一囊金錢。心大喜躍卽便數之數未能周。金主忽至。盡還奪錢。其人當時悔不疾去。懊惱之情甚爲極苦。遇佛法者亦復如是。雖得値遇三寶福田。不勤方便修行善業。忽爾命終墮三惡道。如彼愚人還爲其主奪錢而去。如偈所說
今日營此事 明日造彼事  樂著不觀苦 不覺死賊至 총총營衆務 凡人無不爾  如彼數錢者 其事亦如是

90. 돈주머니를 얻은 사람
 
어떤 가난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돈 뭉치를 주웠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그것을 세어 보았다. 그러나 미처 다 세기 전에 돈 주인이 나타나서 그것을 도로 빼앗아 갔다. 돈을 주웠을 때 빨리 그 곳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안타까움에 심정이 괴로웠다.
 부처님의 법을 만난 사람도 그와 같다. 비록 세 보배(三寶)의 복 밭을 만났더라도 부지런히 착한 법을 닦아 행하지 않다가, 갑자기 목숨을 마치고는 세 갈래 나쁜 길(삼악도)에 떨어진다.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주인에게 도로 돈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오늘은 이 일을 경영하고, 내일은 저 일을 만들면서, 즐겨 집착하여 괴로움을 못 보다가, 죽음의 도적이 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총총히 갖가지 일하는 것, 범부로서 누구나 그러하거니, 마치 돈을 세는 사람처럼, 범부의 하는 일도 그러하니라.

 

* 4월 2일(음 2월15일)은 불교의 사대명절인 열반재일입니다.*



좋은인연

 

 

 경남 하동 쌍계사

 편집부

 

 주국에서 전하는 말

 범수

 

 연애

 장남지

 

 봄

 조혜숙

 

 아픈 이야기

 무연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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