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51(2007)년 3월호 Vol.7,No.74. Date of Issue 1 Mar ISSN:1599-337X 

 

 

 

 

 

 

 

 

 뉘우침

범수

 마음이란 묘한 것이라서 살다보면 좋은 일을 도모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경험해봤다면 알겠지만, 자신이 한 행위를 스스로 생각해봐도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될 때의 그 부끄러움이란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말 그대로 '후회막급'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마음 한 구석으로 '뉘우침'과 함께 '인과법'을 부정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지은 좋지 못한 행위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 만큼은 유독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중생심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회피나 외면 등으론 자신이 지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 않는가. 이를 불자라면 누구나 아는 참회를 통해 알아보자.
 재가자가
생명을 존중하라(不殺生戒), 아낌없이 베풀어라(不偸盜戒), 청정행을 하라(不邪淫戒), 진실을 말하라(不妄語戒), 정념을 지켜라(不飮酒戒)라는 다섯 가지 계를 어기더라도 그에 따른 어떤 벌칙이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고통스러운 삶으로 되돌아 갈뿐이다. 그것은 계(좋은습관)를 지키는 것이 행복으로 인도되는 길이라면, 훔치고 거짓말하는 등은 평온한 생활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고통의 늪으로 빠져들기도 하는 것은 복잡하게 얽힌 삶의 형태도 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계를 지키지 못한 것을 두고 자학하거나 범죄자 취급을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어진다. 지옥 중생까지 구제하려는 대자대비의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설렁 어겼다손치더라도 참회를 통해 고통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불교의 계율관인데, 그러면 참회란 어떤 것인지 간단히 살펴보자.
 참회(懺悔)는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는 행위로써, 참(懺, 是請求原諒)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고, 회(悔, 卽自申罪狀(說罪)之義)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죄를 없애는 것이다(說罪).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회의 방법인데, 처벌위주가 아니라 공덕을 쌓아 죄를 멸하는 것이다. 물론 엄중한 방법도 있지만, 다섯가지의 참회(五悔)를 보면 참회(懺悔, 悔罪而修善果), 권청(勸請, 진리 설하기를 청하는 것勸請十方諸佛轉法輪以救衆生), 수희(隨喜, 다른 사람의 공덕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喜悅稱讚他人之善行), 회향(回向, 자신이 쌓은 공덕을 중생에게 돌리는 것把善行之功德回向菩提), 발원(發願,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위해 원을 세우는 것發願一心成佛)으로써, 자신을 살펴 바른 행위를 하고 그에 따른 이로움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청소나, 독경 등이 거론되는데, 결국 참회란 자신을 정화시키려는 자세로.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그 근본원인을 알아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참회와 관련해 <잡보장경>의 내용을 보자. 옛날 어떤 나라의 왕이 이웃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일으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땅을 정복했다. 얼마 후 왕은 "죽어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생각하고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그래서 궁궐에다 절을 짓고 스님들을 공양하며 스스로 청정한 계율을 받아 지녔다. 왕의 이런 모습을 본 여러 신하들이 수군댔다. "왕은 이미 무수한 인명을 살상했는데, 이제 와서 좋은 일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 왕은 신하들의 수군거림을 듣고 그들에게 엄히 명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7일 동안 커다란 솥에 물을 끓이라."  7일 후 왕은 끓는 가마솥에다 반지 하나를 던져 넣고 다시 신하들에게 명했다. "이제 끊는 물 속에 있는 반지를 꺼내오너라." 신하들이 외쳤다. "차라리 죽이려거든 다른 방법으로 죽여주십시오. 어찌 펄펄 끓는 물 속에 있는 반지를 꺼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반지를 꺼낼 수 있겠느냐." 그러자 신하들이 "불을 끄고 찬물을 넣어 물을 식힌 다음에 꺼내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왕은  "그렇다. 내가 과거에 지은 죄는 뜨거운 가마솥의 끓는 물과 같다. 하지만 더 이상 불을 때지 않고 찬물을 부으면 뜨거운 가마솥을 식힐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부터 참회를 하고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어찌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느냐."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고개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참회하려 할 때 빈정거리거나 약점을 잡아 괴롭힌다면 그 역시 언젠가 크게 참회할 날이 오지 않을까.

 <雜寶藏經> 卷第七, 九四 月氏國王與三智臣作善親友緣
時月氏國有王。名전檀계尼타。與三智人。以爲親友。第一名馬鳴菩薩。第二大臣。字摩타羅。第三良醫。字遮羅迦。如此三人。王所親善。待遇隆厚。進止左右。馬鳴菩薩。而白王言。當用我語者。使王來生之世。常與善俱。永離諸難。長辭惡趣。第二大臣。復白王言。王若用臣密語。不漏泄者。四海之內。都可剋獲。第三良醫。復白王言。大王若能用臣語者。使王一身之中。終不橫死。百味隨心。調適無患。王如其言。未曾微病。於是王用大臣之言。軍威所擬。靡不최伏。四海之內。三方已定。唯有東方。未來歸伏。卽便嚴軍。欲往討罰。先遣諸胡及諸白象。於先導首。王從後引。欲至蔥嶺。越度關험。先所乘象馬。不肯前進。王甚驚怪。而語馬言。我前後乘汝征伐。三方已定。汝今云何不肯進路。時大臣白言。臣先所啓。莫泄密語。今王漏泄。命將不遠。如大
臣言。王卽自知定死不久。是王前後征伐。殺三億餘人。自知將來罪重必受無疑。心生怖懼。便卽懺悔。修檀持戒。造立僧房。供養衆僧。四事不乏。修諸功德。精懃不권。時有諸臣。自相謂言。王廣作諸罪殺戮無道。今雖作福。何益往咎。時王聞之。將欲解其疑意。卽作方便。칙語臣下。汝當然一大확。七日七夜。使令極沸。莫得斷絶。王便以一指환。擲於확中。命向諸臣。仰卿확中得此來。臣白王言。願更以餘罪。而就於死。此환?得。王語臣言。頗有方便可得取不。時臣答言。下止其火。上投冷水。以此方便。不傷人手。可取之耳。王答言。我先作惡。喩彼熱확。今修諸善。참愧懺悔更不爲惡。胡爲不滅。三塗可止。人天可得。卽時解悟。群臣聞已。靡不歡喜。智人之言不可不用

 

 

 

 이별

장남지

 찢어진 종이 위에 그리다
작은 종이 위에 그리다
까만색 종이인줄 모르고 그리다
문득,
보이지 않을 얼굴로 남을 줄이야

어깨위에 말하다
뒷모습에 말하다
발자국에 말을 하다가
결국,
들리지 않는 그림자로 있을 줄이야

아무리 보여주려해도
보이지 않을 별자리로 보일 줄이야

 

 

 

 물려받은 재산

박진우

 나에게 밭이 한 뙤기 있습니다. 밭은 넓고 넓어 끝이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에게는 그 드넓은 밭에 맘껏 뿌리고도 남을 만큼 많은 씨앗들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늘 무엇을 구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배가 고플 때에도 불행하다고 느낄 때에도 무엇이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면 내가 그것들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노력도 한 것이 없으면서 그것들을 맡겨 둔 적도 없으면서 나는 늘 부처님께 그것들을 달라고 손을 벌립니다. 부처님은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고 언제나 그렇게 빈 손바닥을 보여 주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늘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부처님을 늘 그렇게 가슴 아프게 해드리고 안되면 심지어 원망까지 하니 무슨 염치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제정신이 들면 다시는 그렇게 어리석고 무모하게 부처님을 귀찮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무슨 일만 생기면 나는 또 정신을 잃어버리니 참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은 내가 너무 어리석고 불쌍해서 우리의 자비하신 부처님은 늘 나의 그런 말도 안 되는 투정들을 곧잘  들어 주곤 하시지만, 또 언제까지나 그렇게 봐 주실 거지만 이제는 염치가 있어야지요. 이제 나는 내 유산도 알았고 그럴 힘도 생겼으니 부처님께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자립을 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부처님께서는 정말 대견해서 늘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 자상하고 알뜰하게 지도하고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나의 밭에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어 당당하게 수확을 해야겠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돈씨를 뿌리고, 명예가 필요하면 존경씨를 뿌리겠습니다. 원망씨나 도둑씨는 뿌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부자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나는 내가 부처님의 친아들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씨앗들을 어떻게 뿌려야 할지, 어떻게 가꾸어 가야 할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하나 씨를 뿌리고 가꾸는데 온 힘을 쏟겠습니다.  그래서 연을 만나 좋은 열매를 많이많이 얻게 되면 제일 먼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 다음에는 나와 내 주위의 모든 이웃들에게 골고루 회향하겠습니다. 우선 그 좋다는 돈씨나 힘닿는데 까지 듬뿍 뿌려볼까 합니다. 하하하!

 

 

 

 그놈 목소리

조혜숙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각종 강력범죄는 계속되던 1990년대.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기만한 방송국 뉴스앵커 한경배(설경구)와 그의 아내 오지선(김남주)은 아들의 모든 것을 관리하며 남편을 맞이하는 완벽한 내조자다. 그러던 어느 날, 9살 난 아들이 유괴되면서 이들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
 1991년,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압구정동 이형호 유괴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그놈 목소리'는  9살 아들 상우가 어느날 저녁에 집에 오지 못하고, 1억 원을 요구하는 유괴범(강동원)의 피 말리는 협박전화로 시작된다. 그 당시로선 최선(?)의 과학수사가 진행되고 ,전담형사(김영철)까지 붙여지지만  범인을 잡는 일은 갑갑하기만 하다. 오로지 유일한 단서는 감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냉정하고 사무적이고 차분하기까지 한 그놈 목소리뿐이다.

 사건발생 40여일이 자나도록 수사엔 전혀 진전이 없다.  범인이 상우의 생사를 묻는 부모에게 잠깐 들려주는 겁에 질린 상우의 목소리에 부모의 마음은 짖이겨진다.
 범인에게 매달리며 아이의 생존을 간절히 원하던 부모의 맘이 이젠 그놈목소리에게 분노로 바뀔 만큼 부모의 맘은 간절하기만 하다. 결국 사건발생 44일만에 상우는 발견되었지만, 이미 사건발생 다음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그놈목소리는 영원히 미궁에 빠진채 미결되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얘기하면 제일 먼저 설경구의 너무 진한 연기를 말해야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설경구만 보고 나온 듯 하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설경구 표정과  몸짓만이 생각난다.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유괴당한 아빠의  마음을 표현하려 애썼다. 워낙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이지만,  배우의 엄청난 노력의 결과이라 생각된다.
 두 번째로 박진표감독에 대한 얘기이다. 감독은 지금까지 영화 모두를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모두들 알지 못했던 노인의 성과 사랑을 그린(죽어도 좋아). 에이즈 환자와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그렸던 '너는 내운명'. 그리고 유괴라는 악랄한 상황을 그린 그놈목소리. 박진표감독은 이렇게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보는것은 곧 이해하는 것이고, 이해는 곧 변화이며, 영화의 힘은 관객을 보게함으로써 변화시키는데 있다."라고 한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감독이 의도한대로만  되는건 아니다. 도리어 영화를 보면서 반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자식을 빼앗긴 부모의 감정을 너무 과장하여  도리어 관객이 냉정해지게 하였고,  또한  감독은 범인의 실제 목소리를 듣고, 실제 몽타주를 보고 범인을 함께 찾아내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래서 그 오버된 감정의 자극이 당국의 헛물켜는 무능력한 과학수사를 더 비웃게 만든다. 지나친건 모자람만 못하다 했던가.....감독의 욕심이 너무 지나쳐 관객이 할 일이 없게 만든 지루해지기까지 한 영화였다.

 

 

 

 불립문자(不立文字)

무연

 십분심사일분어(十分心思一分語)란, 마음에 품은 뜻은 많으나 말로는 그 십분의 일밖에 표현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다 말 못 하는 사정은 남녀간 정한사(情恨事)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 표현이 모두 그렇지 않은가 느껴집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뜻을 세울 수가 업고, 말을 붙일 수가 없어 꼼짝 못 하는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요즘 시간이 나면 북한산에 올라가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사람이 드문 곳으로만 다니다 보니 에움길로 접어들거나 부러 두름길을 택하기 일쑤입니다. 덕분에 흘린 땀으로 옷은 물말이가 됩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겨울하늘은 공활하며, 또 높고 구름 없이 아파트나 빌딩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극찬을 해도 모자라 열이 보다 아홉이 죽어도 모르겠다는 좀 야만적인 표현을 써야만 성에 찹니다.  
  가끔 옆에서 묻는 이가 있습니다. 거기까지 힘들게 올라가서 보는 하늘이 뭐가 그리 좋으냐는 것입니다. 나는 더러 더듬더듬 설명을 해보려 하지만 결국 해내지 못합니다. 내가 이 풍경이 가진 아름다움을 십분지일도 전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환공(桓公)이 당상에 앉아 글을 읽노라니 뜰 아래에서 수레를 짜던 늙은 목수가 톱질을 멈추고, 읽으시는 책이 무슨 책이오니까 물었습니다.  환공 대답하기를, 옛 성인의 책이라 하니, 목수하는 말이 그럼 대감께서 읽으시는 책도 역시 옛날 어른들의 찌꺼기올시다 그려 합니다. 工人의 말이 너무 무엄하여 환공이 노기를 띠고, 그게 무슨 말인가 성인의 책을 찌꺼기라 하니 찌꺼기 될 연유를 들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살려두지 않으리라 하였습니다. 늙은 목수 자약(自若)하여 아래와 같이 아뢰었다 합니다.  저는 목수라 치목(治木)하는 예를 들어 아뢰오리다. 톱질을 해보더라도 느리게 다리면 엇먹고 급하게 다리면 톱이 박혀 내려가질 않습니다. 그래 너무 느리지도 너무 급하지도 않게 다리는 데 묘리(妙理)가 있습니다만, 그건 손이 익고 마음에 통해서 저만 알고 그렇게 할 뿐이지 말로 형용해 저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마 옛적 어른들께서도 정말 전해주고 싶은 것은 모두 이러해서 품은 채 죽은 줄 아옵니다. 그렇다면 지금 대감께서 읽으시는 책도 옛 사람의 찌꺼기쯤으로 불러 과언이 아닐까 하옵니다.
齊桓公讀書於堂上 輪扁?輪於堂下釋椎鑿而上 問桓公曰 敢問公之所讀者 何言邪公曰 聖人之言也曰 聖人在乎 公曰 已死矣 曰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桓公曰 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 有說則可 無說則死輪扁曰 臣也 以臣之事觀之 착輪徐則甘而不固 疾則苦而不入 不徐不疾 得之於手 而應於心 口不能言 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 是以行年七十而老착輪 古之人 與其不可傳也 死矣然則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장자「天道」
  환공이 물론 턱을 끄덕였으리라 믿거니와 저 또한 설화(說話)나 문장이 어떤 것의 묘리(妙理)를 대신 하기에는 너무나 무능한 것임을 요즘 와서 점점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절 집에서는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라 하겠지요. 부처님이 애타게 전해주시고 싶으셨던 그것은 경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있답니다.

着語…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不立文字의 진지함이 저의 산만한 농담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분개 같은 것입니다.
着語2… 풍경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것이 뿜어내는 그 엄청난 박력은 카메라보다는 가슴으로 지긋이 견디어 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이렇게 가슴으로 전합니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八七)劫盜分財喩
昔有群賊共行劫盜。多取財物卽共分之等以爲分。唯有鹿野欽婆羅色不純好。以爲下分與最劣者。下劣者得之에恨。謂呼大失。至城賣之。諸貴長者多與其價。一人所得倍於衆伴。方乃歡喜踊悅無量。猶如世人不知布施有報無報。而行少施得生天上。受無量樂方更悔恨悔不廣施。如欽婆羅後得大價。乃生歡喜施亦如是。少作多得。爾乃自慶恨不益爲

87. 도둑이 훔친 재물
 
도적 떼가 도적질을 해 많은 재물을 훔쳤다. 그들은 훔친 재물을 서로 똑같이 나누려 했다. 그러나 빛깔이 좋지 못한 보물 하나가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제일 나쁜 것으로 생각해 제일 못났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받은 사람이 몹시 화를 내었다. “큰 손해다.” 그리고는 그 보석을 가지고 성안에 들어가 팔았다. 마침 성안의 부귀한 장자가 비싼 값에 그것을 샀다. 결국 그 사람이 얻은 것은 여러 사람들이 얻은 것의 배나 되었다. 그제서야 그는 한없이 기뻐하며 날뛰었다.
  그것은 마치 세상 사람들이 보시의 공덕을 알지 못해 작은 보시를 행했다가 천상에 나서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널리 보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이 많은 값을 받고서야 비로소 기뻐하는 것처럼 보시도 그와 같아서, 조금 행하고 많이 얻고서야 비로소 기뻐하며 더 많이 하지 않은 것을 한탄한다.

 

(八八)미후把豆喩
昔有一미후。持一把豆。誤落一豆在地。便捨手中豆欲覓其一。未得一豆先所捨者계鴨食盡。凡夫出家亦復如是。初毁一戒而不能悔。以不悔故放逸滋蔓一切都捨。如彼미후失其一豆一切都棄

88. 한 개의 콩 때문에 많은 콩을 잃은 원숭이
  원숭이 한 마리가 콩 한 줌을 들고 있다가 잘못하여 한 개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는 곧 손에 쥐었던 콩을 버리고 땅에 떨어진 한 개를 되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 한 개도 찾지 못하고 먼저 버린 콩은 닭과 오리가 모두 먹어 버리고 말았다.
 집을 떠난 범부도 그와 같다. 처음에는 한 가지 계율을 범하고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기 때문에 방일은 더욱 더 뻗어 나가서 모든 것을 버리게 된다. 그것은 마치 원숭이가 콩 한 개 때문에 콩 모두를 버리는 것과 같다.

 

 * 3월 26일(음 2월8일)은 불교의 사대명절인 출가재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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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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