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50(2006)년 9월호 Vol.6,No.68. Date of Issue 1 Sept ISSN:1599-337X 

 

 

 

 

 

 

 

 

 해우소

범수

 삼쾌(三快)라는 말이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는 뜻으로 이 세 가지가 원만하면 건강을 보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절에서 먹는 음식이란 다들 주지하다시피 푸성귀가 주이기 때문에 '잘 먹는다'는 것은 음식 종류 보다는 소화를 뜻하며, '잘 잔다'는 것 역시 하루 여섯시간이 공식 수면시간이기 때문에 숙면을 가르킨다. 그리고 '잘 싼다.'는 것은 굳이 말을 안해도 알 것이다. 오늘 이야기는 '잘 싼다'와 관련된 것으로 절의 화장실을 '정랑', 해우소 등으로 부르는데 사찰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푸는 곳)라는 푯말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정랑(淨廊)'이란 '깨끗한 복도'라는 의미로 옛날에는 회랑(回廊 담과 나란히 비를 필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건축물) 끝에 화장실을 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칠당가람(七堂伽藍)이라는 규정에 보면 사찰에 구비되어야 하는 일곱가지 건축물(因時代或宗派之異而有所不同)로 불전, 법당(佛殿,法堂:又稱說法堂. 相當於講堂, 位於佛殿後方), 승당(僧堂:或作禪堂,雲堂,選佛場. 僧衆坐禪或起居之所, 中央安置文殊菩薩像), 고방(庫房:又作庫院, 爲調配食物之所), 산문(山門:又作三門. 卽具有三扇門之樓門, 表示空,無相,無願等三解脫門), 서정(西淨:又作東司淨房, 指?所), 화욕실(和浴室:又作溫室, 爲溫浴之室) 其中以僧堂,西淨,浴室爲禁語之所, 故總稱三?堂. <大毘婆沙論>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는 해우소를 서정 또는 동사라고 하며 사찰이 갖추어야 건물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하기 때문인데 사실 별로 가고 싶은 곳은 아니겠지만 하루라도 거르면 당장 건강에 지장이 생기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절에서는 그냥 생리적인 현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입측오주(入厠五呪)'라 하여 수행과 연관시킨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입측(入厠)진언 -화장실에 들어가서 -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탐진치 어둔 마음 이같이 버려. 한 조각 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 지으리 - '옴 하로다야 사바하'
세정(洗淨)진언 -뒷물하면서 - 비워서 청정함은 최상의 행복. 꿈같은 세상살이 바로 보는 길. 온 세상 사랑하는 나의 이웃들. 청정한 저 국토에 어서 갑시다. - '옴 하나마리제 사바하'
세수(洗手)진언 - 손을 씻으며 - 활활활 타는 불길 물로 꺼진다. 타는 눈 타는 경계 타는 이 마음. 맑고도 시원스런 부처님 감로. 화택을 건너뛰는 오직 한 방편 . - '옴 주가라야 사바하'
거예(去穢)진언 - 더러움을 버리고 - 더러움 씻어내듯 번뇌도 씻자. 이 마음 맑아지니 평화로움뿐. 한 티끌 더러움도 없는 세상이. 이생을 살아가는 한가지 소원 - '옴 시리예바혜 사바하'
정신(淨身)진언 - 몸이 깨끗해지고 - 한 송이 피어나는 연꽃이런가. 해 뜨는 푸른 바다 숨결을 본다. 내 몸을 씻고 씻어 이 물마저도. 유리계 푸른 물결 청정수 되리. '옴 바아라뇌가닥 사바하'
 위에서 보듯이 불교에서는 화장실 사용도 의례화 시켜 놓았는데, 세정 즉 뒷물과 관련된 고사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스님께서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그때 누가 달려오더니 일으켜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쳐다보니 갑옷을 입은 건장한 사람이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예 저는 북방 비사문천왕의 아들 장경이옵니다." "그대가 어쩐 일인가" "스님의 계행이 청정하고 마음이 바로 불심과 통하기 때문에, 늘 스님 뒤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 날 모신다면 넘어지기 전에 붙들어야지, 넘어지고 나서 일으키는가" "제 마음 같아서는 항상 스님을 곁에서 부축하고 싶지만, 스님 몸에서 구린내가 나기 때문에 30보쯤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넘어지시는 걸 보고 얼른 쫓아왔지만 좀 늦었습니다." "내 몸에서 구린내가 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내 몸에 똥이라도 묻었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스님께서는 뒷물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몸에서 구린내가 납니다." 대변을 본 뒤에는 뒷물을 하고 입측오주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아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허허, 참 그런 허물이 나에게 있었구나."
 여기서 보듯 절에서는 용변 뒤 반드시 뒷물을 하는데, 대중이 사는 곳에서는 '
정통'이라는 소임을 둬 화장실 청소를 담당케 한다. 그 가운데 뒷물용 물을 떠다 놓는 것도 소임에 포함된다. 참고로 한 마디 더 덧붙이면 개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칸칸마다 물을 담은 용기를 두는데 손잡이가 있는 간장병 등이 선호된다. 요즘은 '비데'가 널리 사용됨으로써 한 층 위생적이지만, 사찰 화장실은 여전히 전통방식 그대로인 곳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회에 널리 알려진 유명사찰의 유명 해우소 이야기도 더러 있다. 예를 들면 '오늘 들어가서 일 보면 내일 쿵 하고 소리날 만큼 깊다'든지,  '화장실 고수 이야기' 같은 것이다. 한편 해우소 밑바닥에 동판을 설치하여 발효와 탈취를 돕도록 한 곳도 있으며, 남자 화장실에는 간단한 글귀로 심오한 상태를 유발하도록 한 곳도 있다. 언제가 대웅전이 목조로 108평이나 되는 절을 찾았더니만 그곳의 제일 작은 건물이 해우소였는데 필자가 있는 절의 제일 큰 건물보다 컸었다. 이야기가 너무 길었나...백양사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 스님은 해우소에 갈 때마다 소주 대병을 들고 다녔다. 그런데 이 스님의 체격이 호리호리했기 때문에 좀 약해 보인다. 얼른 억측하면 손에 소주 대병을 들었기 때문에 마치 곡차를 잡수고 비틀거리면서 걷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뒷물용이지만, 이것을 모르는 참배객이나 관광객들은 벌건 대 낫에 소주 대병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스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 어떤 스님께서는 탱화 점안식을 한다고 여럿스님과 신도를 초청했다. 그러자 그 절의 신심있는 불자께서 행사에 쓰려고 참기름을 직접 짜서 소주병에 담아 공양 올리고는 스님 방에 뒀다. 행사 당일 한쪽에 점잖게 놓여 있는 병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린 분은 안 계실까.. 참기름을 담았으니 필시 참기름병이지만, 겉모습은 소주병이었으니 말이다. 범어사에는 장군수라는 물이 있다. 스님들 가운데 몇몇은 손에 양주병 하나씩 들고 그 물을 뜨러 가곤 한다. 마치 밤새 마시고 빈 병만 들고 산을 내려 가는 것 같이 말이다. 또한 배가 아프거나 냉할 때 양주병에다 더운 물을 넣고 문지르기도 한다.
 지금 필자가 있는 절 냉장고에도 소주병이 세 개나 들어 있다. 그리고 분리 수거통에도 몇 개 더 들어 있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 할 수도 있지만, 해우소에서 비울 때 편견이나 억측, 망상마저 아낌 없이 버렸으면 하는 마음에 함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해우소에 비울 것은 비단 이것뿐만 아닐 것이다. 그게 뭔지 알고자 한다면 '입측오주'를 참고 하기 바란다.

탑(塔: 安置佛舍利), 금당(金堂: 又稱佛殿, 安置本尊佛. 與塔共爲伽藍之中心建築), 강당(講堂: 講經之堂屋), 종루(鐘樓: 俗稱鐘撞堂, 爲懸掛洪鐘之所在), 장경루(藏經樓: 一作經堂, 爲藏納一切經之堂), 승방(僧房:又作僧坊, 卽僧衆起居之所在. 分布於講堂東西北三方, 卽三面僧房), 화식당(和食堂:又稱齋堂)等.

 

 

 

 여행하는 날

장남지

자동차 공장 안 조화덩굴에
물주는

자동차는 신나게 뒤로 달리고
시골 길만 쉬지 않는

머리는 시냇가에 발 담그고
눈으로는 구름 만져보는

꽃 잎 하나 세상 따라 나풀대는

나뭇잎은
노란 옷 갈아입고,
달팽이 우산되어 주는

그리고
나는
콧노래로 편지 쓰는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조혜숙

 어느 날 서쪽바다 끝에 살고 있는 용 두 마리가 나타나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목격된 후, 인간 세계의 생명들은 원인불명의 병으로 죽어가고 마법사들은 마법을 잃어버리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역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던 아렌왕자도 국왕을 죽이고 검을 훔친 채 도망친다. 마법사 하이타카(게드)는 우연히 사막 한가운데서 곤경에 처한 아렌을 구해주면서  두 사람의 동행은 시작된다.

 하이타카는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악의 근원을 찾아 여행 중이었다. 이 둘은 세상을 구하고자 함께 모험을 떠나고 어둠의 마을 호크타운에 다다른다.호트타운은 인신매매와 마약거래가 일상이 되어버린 악의 도시이다. 이곳에서 아렌 왕자는 위험에 처한 소녀 테루를 구한다. 한편 하이타카와 아렌은 암흑의 문을 연 장본인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거미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들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용과 인간과 마법사가 공존하는 환상의 세계 어스시(earthsea). 어스시의 세계에서 '이름'은 곧 '정체성'과 같은 뜻이다. 어스시를 배경으로 아렌의 발자취를 따르는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은 아렌과 테루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스시의 마법사]는[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힌다.
[어스시의 마법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는 꿈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숙원의 꿈이었다. 하지만 원작자 어슐러 K. 르 귄의 승낙을 얻지못해 애쓰던중 3년전 어렵게 원작자의 승낙은 얻어 냈지만 그당시 하야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작업중에 있어 이 영화를 만드는데 엄두를 내지 못하던 중 하야오의 장남인 미야자키 고로로 하여금 영화로 만들게 하였다.하지만 옛말에 (형만한 동생 없다고 했던가 ) 워낙에 큰 고목인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해 세인들에게 많은 비교는 당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만든 영화라 생각된다.
 영화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메인 테마는 세계 최고의 백 파이프 연주자 중 한명인 ‘칼로스 누네스’가 직접 연주하여 이 영화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일본, 아시아, 그리고 중동이라는 에스닉한 향기가 감도는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영화 음악에 흥미를 느껴 참여하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힌 천재음악가 ‘칼로스 누네스’의 백 파이프 연주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끝난 후에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향기가  있었다. 과연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그의 음악을 ‘바람의 향기이며, 땅의 내음이고, 사람의 훈기와 같은 음색’이라며 그의 음악이 영화 [ 어스시의 전설]에 향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무엇보다도 지브리의 작품들 중 가장 환상적인 것은 하늘의 표현이다. 새벽 여명이 틀 때부터 그 하늘이 다시 어두워져 별이 솟아나도록 그려지는 시시각각의 섬세한 묘사는 가짜이기 때문에 더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면 감성에 호소해서 일까.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라든지 ' 목숨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든가, '어둠과 빛은 함께 있어야 해'등등 철학적인 대사가 영화를 쉽게 보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철저한 사전준비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이어서 가장 순수한 내면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꿈꿀 수 있게 되기에, 드라마틱한 하늘과 테루의 노랫소리에 감동하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卷第四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口誦乘船法而不解用喩 夫婦食병共爲要喩 共相怨害喩 效其祖先急速食喩 嘗菴婆羅果喩 爲二婦故喪其兩目喩 唵米決口喩 詐言馬死喩 出家凡夫貪利養喩 駝瓮俱失喩 田夫思王女喩 구驢乳喩 與兒期早行喩 爲王負机喩 倒灌喩 爲熊所齧喩 比種田喩 미후喩 月蝕打狗喩 婦女患眼痛喩 父取兒耳당喩 劫盜分財喩 미후把豆喩 得金鼠狼喩 地得金錢喩 貧兒欲與富等財物喩小兒得歡喜丸喩 老母捉熊喩 摩尼水竇喩 二합喩 詐稱眼盲喩 爲惡賊所劫失疊喩 小兒得大龜喩

(七七)?驢乳喩
昔邊國人不識於驢。聞他說言驢乳甚美都無識者。爾時諸人得一父驢。欲?其乳。諍共捉之。其中有捉頭者有捉耳者。有捉尾者有捉脚者。復有捉器者各欲先得於前飮之。中捉驢根謂呼是乳。卽便?之望得其乳。衆人疲厭都無所得。徒自勞苦空無所獲。爲一切世人之所嗤笑。外道凡夫亦復如是。聞說於道不應求處。妄生想念。起種種邪見裸形自餓投巖赴火以是邪見墮於惡道。如彼愚人妄求於乳

77. 나귀의 젖을 짜 마신 사람들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나귀는 보지도 못한 채 ‘나귀의 젖은 맛있다’라는 말만 들었다. 그 때 그들은 수나귀 한 마리를 얻어 그 젖을 짜려고 서로 붙잡았다. 그 중에 어떤 이는 머리를 붙잡고 어떤 이는 귀를 붙잡고 어떤 이는 꼬리를 붙잡고 어떤 이는 다리를 붙잡았다. 또 어떤 이는 그릇을 들고 젖을 짜 마시려 하였다. 그 중에 어떤 이가 나귀의 생식기를 붙잡고 “이것이 젖이다”고 외쳤다. 그들은 그것을 짜면서 젖을 얻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들은 지치기만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되었다.
 외도의 범부들도 그와 같다. 도(道)라는 말을 듣고는 구할 곳에서 구하지 않고, 망령되이 잡 생각을 내고 갖가지 삿된 소견을 일으켜 발가벗기도 하고, 스스로 굶기도 하며, 혹은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거나, 불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삿된 소견으로 나쁜 길에 떨어지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망령되이 나귀 젖을 구하려는 것과 같다.

 

(七八)與兒期早行喩
昔有一人。夜語兒言。明當共汝至彼聚落有所取索。兒聞語已至明旦竟不問父獨往詣彼。旣至彼已。身體疲極空無所獲。又不得食飢渴欲死。尋復?來來見其父。父見子來深責之言。汝大愚癡無有智慧。何不待我空自往來。徒受其苦。爲一切世人之所嗤笑。凡夫之人亦復如是。設得出家卽剃鬚髮服三法衣。不求明師諮受道法。失諸禪定道品功德。沙門妙果一切都失。如彼愚人虛作往返徒自疲勞。形似沙門實無所得

78. 아버지와 아들의 약속
어떤 사람이 아들에게 말하였다. “내일 아침에 함께 저 마을에 가서 거기 있는 것을 가져오자.”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다음 날 아침 아버지에게 묻지도 않고 혼자 그 마을로 갔다. 먼 곳을 갔기 때문에 몸이 극히 피곤하였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다. 또 밥을 먹지 못해 주리고 목말라 거의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매우 나무랐다. “이 미련하고 무지한 것아, 왜 나를 기다리지 않고 공연히 갔다 왔다 하여 한갓 수고만 더하고,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느냐”
 범부들도 그와 같다. 비록 집을 떠나 머리와 수염을 깎고 법복을 입더라도 밝은 스승을 찾아 배우지 않고, 온갖 선정과 도품의 공덕을 잃고 수행의 묘한 결과마저 잃어 버린다.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헛되이 갔다 왔다 하면서 스스로 지치기만 하는 것처럼, 형상은 비록 수행자 같지만 실은 아무 소득이 없다.

 



좋은인연

 

 

 충남 논산 관촉사 미륵불

 편집부

 

 해우소

 범수

 

 여행하는 날

 장남지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조혜숙

 

 백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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