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50(2006)년 7월호 Vol.6,No.66. Date of Issue 1 Jul ISSN:1599-337X 

 

 

 

 

 

 

 

 

 보험

범수

 얼마 전  벽이 없는 건물 하나를 지었다. 흔히 말하는 누각 형태로써 다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도량에 돌아 다니는 잡동사니를 모두 한 곳에 모아 놓고도 자리가 남아 맞은 편에 책상을 뒀다. 책을 읽기도 하지만 앉아 있기도 한다. 그 날도 비가 많이 왔는데 쌓아둔 짐에서 뭔가를 찾으려다 새의 보금자리를 발견했다. 푸른 빛을 띤 두 개의 알이었는데 "잊혀진 것인가" 하고 치우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릇에 담아 제 자리에 뒀다. 며칠 뒤 다시 보니 새알이 다섯 개로 불어나 있었다. "철이 철인만큼 비를 피해 짓다 보니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구나" 하면서 무사히 부화되기를 바라며 가능한 그곳을 피해 다닌다. 그러나 동선 때문에 그곳을 지나칠 때면 어미 새가 화들짝 놀라 달아나기도 하고 몸을 웅크린 채 고개만 살짝 내밀며 맑은 눈동자로 동정을 살피기도 한다. 필자는 애써 못 본채하지만 어미 새가 느낄 불안과 초조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만 하다. 그렇게 지내면서 어느 날 "새 생명의 탄생을 축원해주려는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 문뜩 봉황(붕새)과 까마귀에 얽힌 고사가 떠올랐다.
 까마귀가 죽은 쥐를 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자 무슨 일인가 하고 위를 쳐다보니 봉황이 날고 있었다. 이 때 까마귀는 불안과 화가 동시에 치밀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뺏으려는 것은 아닌지, 혹시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미치자 까마귀는 봉황을 보고 까악거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상황이지만 새알을 어떻게 하려는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순리대로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런 고사와 비슷한 상황을 현실에서 가끔 겪을 때가 있다. 그러나 딱히 예를 들어 말하기 곤란한 것은 필자가 글을 쓰면서 피하려는 것으로 '不得揚於家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불득양어가추'는 쉽게 말해 '누워서 침 뱉기' 같은 것으로 굳이 이야기하자면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생각지도 않는 것을 상대는 "상대가 이러면 어쩌나 저러면 어쩌나" 하며 불안해 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호랑이와 여우가 다르듯이 마음 씀씀이가 다르다. 그런데도 다람쥐는 코끼리에게 도토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한다. 이런 상황은 대체적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예부터 '의심 병'이라고도 한다. 이 병은 불안과 초조함 그리고 성냄 등의 복합증세를 보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자기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부족하다보니 당연히 모든 것을 불신하는 형태로 병세가 악화되기 일쑤다. 그래서 과다한 욕심을 부리든지 다발적인 다툼으로 이어지는 등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심신이 피폐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자기와 똑같은 자기를 하나 더 만들어 놓더라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러나 침 발린 아이의 눈깔 사탕에 욕심 내는 어른은 없다. 다르게 말하면 꽃은 피고 나비는 날뿐이다. 설사 썩은 생선 위에 파리가 까맣게 모여있더라도 말이다.
 의심 병에 걸리면 자신에 대한 믿음과 남에 대한 사랑을 회복시켜야 하는데 먼저 남의 몸은 똥 덩어리고 나의 몸은 금 덩어리다는 식의 증상부터 다스려야 한다. 가장 좋은 약은 아무래도 믿음과 사랑이겠지만, 기가 허하므로 보시, 봉사, 참회, 발원 등으로 기를 북돋아야 한다. 이것은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체력을 보강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허물을 살피고 남에게 봉사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런 다음 자비로 병을 다스리는데 공덕을 짓는 것으로 완치가 가능하다. 공덕은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지 않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드는 보험은 만기가 있다.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마치 병의 겉 부분만을 치료하는 것과 같고, 공덕을 짓는 것은 병을 송두리째 다스리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을 주 보험으로 드시겠습니까.

 

 

 

 인도기행

진선

 탑(스투파)은 원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것만을 일컫는 말이다. 고대 인도 마우리아왕조 제3대 왕(BC 268?∼BC 232?). 즉 기원전 3C 경 아쇼카 왕에 의해 세우진 대탑(Great Stupa) 또는 제 1탑 이라고 하는 산치대탑(스투파)은 현재 중인도 마디야프라데쉬 주의 주도인 보팔에서 북쪽으로 46킬로미터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산치대탑은 직경 36m 높이17m 규모의 규모로 고대 인도 스투파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탑은 원통형의 기단 위에 반구형의 탑신, 탑신 꼭대기에 산개(傘蓋)·일산(日傘), 평두(平頭)라 불리는 각형의 울타리가 산개·일산을 감싼 형태다. 기단 주위나 기단과 탑신이 접하는 중턱부분에 요도가 있는데, 이 길을 돌며 예배한다. 탑에는 원형의 울타리(난간)가 둘러져 있고,동서남북 사방에는 탑문(토라나)이 있다.
 탑문마다 양쪽 기둥을 연결하는 3개의 횡량(橫樑. 가로 대들보)이 있으며, 탑문 기둥과 횡량 표면에는 부처님 전생이야기·새·꽃 등이 여백이 없을 만큼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부처님이 있어야 될 자리엔 보리수나 법륜(法輪) 등이 조각돼있는데, 특이한 것은 약시(여성) 약샤(남성) 신상(神像)이다. 특히 동문에 조각된 약시여신의 육감적 모습은 인도 조각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상은 학문적으로 탑을 보는 견해라서 불자들이 바라보는 것과 차이가 난다. 탑(凡有佛陀舍利者, 稱爲塔 ; 無佛陀舍利者, 稱爲支提)이란 지극한 예배의 대상으로서 성보이기 때문이다.

 

 

 

 구타유발자

조혜숙

 영화가 끝난 후엔 그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얘기가 있게 마련이다. 헌데 막내와 난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서로 약속한 듯이 집에 오면서도, 집에 와서도 우린 이 영화에 대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삶 자체가 비루해지구  너무 지겨워지게 하는 무력감과 무서움이 그 이유가 아니었었나 생각이 든다. 손가락 움직이는것 조차도 귀찮아지게 하였다. 이 영화를 만든 이의 의도가 관객으로 하여금 그런 기분을 들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참 잘 만든 영화인거 같다. 관객을 끝끝내 몰아 부쳐  불편함에 숨을 막히게 한다. 2004년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작 <구타유발자들>은 ‘시나리오의 높은 완성도’와 더불어 ‘독특한 소재와 밀도 높은 구성’으로 많은 영화인들에게 주목을 받아온 기대작으로 전해졌다. 구타유발자들은 그저 사소한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상황에 늪처럼 빠져 들게 된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가 또한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거듭 전환되면서 내내  잔혹함과 긴장감에 숨을 몰아 쉬게 된다.

 이 영화의 메인카피는 '인적 드문 교외에선,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라며 잔혹코메디로 쟝르를 달아 놓고 있다. 그저 한적한 시골동네 양아치들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웃기는 하지만 무서운, 무섭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관객들을 참 불편하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있다. 폭력은 폭력으로서만 되갚아 주어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어처구니없고 바보같아  더 무서운  살벌함 뒤에 저렇게 될 수밖에 없을거라는 충격적이지만 너무나 당연한 반전이 있다.

 인적이 전혀 없는 어느 늦은 가을 한낮  바람없는 강가를 배경으로 벌어진 ‘5시간 동안의 사건’을 다룬 <구타유발자들>은 강원도 문막에서 거의 모든 촬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감독이 실제 겪었던 살벌한 경험이 영화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해서일까?  언뜻 보면 순박하고 친절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의 낯선 만남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듯 너무나 적나라하게 연출하였다. 우리는 그 낯선 만남이 좋은인연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꿈꾼다. 하지만 낯선 만남에서 인생의 불편함과 불친절을 어처구니없게 당할 수 있다는것 역시 안다.
 구타유발자들에서는 특히나 한석규, 이문식, 오달수등 어느 배역이든지 능수능란하게 옷을 바꿔 입을 줄 아는 유능한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으로 하여금 더 많이 불편하게 만드는데 일등공신이 아니었나 싶다.

 

 

 

 연꽃

장남지

 미소 머금은 네 마음에 향내음이 난다
네 마음이 한 잎 두 잎
네 인연이 한 송이 두 송이
부처님 미소로 바람에 하늘한다

단아한 네 눈에 물빛이 피어난다
물밑에 달빛이 한 발 두 발
하늘에 비치는 연빛이 고즈넉히

부처님 발아래
다소곳이

합장이라도 하듯이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卷第四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口誦乘船法而不解用喩 夫婦食병共爲要喩 共相怨害喩 效其祖先急速食喩 嘗菴婆羅果喩 爲二婦故喪其兩目喩 唵米決口喩 詐言馬死喩 出家凡夫貪利養喩 駝瓮俱失喩 田夫思王女喩 구驢乳喩 與兒期早行喩 爲王負机喩 倒灌喩 爲熊所齧喩 比種田喩 미후喩 月蝕打狗喩 婦女患眼痛喩 父取兒耳?喩 劫盜分財喩 미후把豆喩 得金鼠狼喩 地得金錢喩 貧兒欲與富等財物喩小兒得歡喜丸喩 老母捉熊喩 摩尼水竇喩 二합喩 詐稱眼盲喩 爲惡賊所劫失疊喩 小兒得大龜喩

(七三)詐言馬死喩
昔有一人騎一黑馬入陣擊賊。以其怖故不能戰?。便以血汚塗其面目。詐現死相臥死人中。其所乘馬爲他所奪。軍衆旣去便欲還家。卽截他人白馬尾來。旣到舍已有人問言。汝所乘馬今爲所在何以不乘。答言。我馬已死遂持尾來。傍人語言。汝馬本黑尾。何以白。?然無對。爲人所笑。世間之人亦復如是。自言善好修行慈心不食酒肉。然殺害衆生加諸楚毒。妄自稱善無惡不造。如彼愚人詐言馬死

 73. 거짓말의 결과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갔지만 적군이 무서워 감히 싸우지 못했다. 그래서 얼굴에 피를 바르고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가 탔던 말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리고 군사들도 모두 떠나자, 그는 흰 말의 꼬리를 베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사람들이 “네가 탔던 말은 지금 어디에 있기에 걸어오는가.” 하고 묻자 전쟁터에서 죽었다며 그 꼬리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네 말은 본래 검은 말인데 왜 흰 꼬리인가?”라고 하자 그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스스로 인자한 마음을 잘 닦아 행하므로 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생을 살해하고 온갖 고통을 주면서 망령되이 착하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말이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것과 같다.

 

(七四)出家凡夫貪利養喩
昔有國王設於敎法諸有婆羅門等。在我國內制抑洗淨不洗淨者。驅令策使種種苦役。有婆羅門空捉?灌。詐言。洗淨人爲其著水卽便瀉棄。便作是言我不洗淨王自洗之。爲王意故用避王役。妄言洗淨實不洗之。出家凡夫亦復如是。剃頭染衣內實毁禁。詐現持戒望求利養。復避王役。外似沙門。內實虛欺。如捉空甁但有外相

74. 거짓으로 목욕한 브라만
 어떤 국왕이 “어떤 브라만도 이 나라 안에서는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만일 깨끗이 씻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갖가지 괴로운 일을 하게 하리라.”며 법을 새롭게 제정했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빈 물통을 들고는 ‘깨끗이 씻었다’고 거짓으로 말했다. 옆 사람이 그 물통에 물을 부어 주자 그는 그것을 쏟아 버리면서 “나는 깨끗이 씻지 않아도 좋습니다. 왕이나 깨끗이 씻으소서.”라고 했다. 결국 깨끗이 씻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씻지 않았던 것이다.
 집을 떠난 범부도 그와 같다.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속으로는 계율을 범하면서도 겉으로는 계율을 잘 지키는 체 꾸미는 것은, 자기의 이익을 바라고 또 왕의 노역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겉으로 슈라마나와 같지만 속으로는 속이는 것이니 마치 빈 병을 들고 겉 모양만 꾸미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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