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50(2006)년 4월호 Vol.6,No.63. Date of Issue 1 Apr ISSN:1599-337X 

 

 

 

 

 

 

 

 

 땡 감도 떨어집니다

범수

 출가를 하려면 사찰을 찾게 되고 ‘행자(行者)’라는 일정기간을 거쳐 사미,니 십계(열 가지의 생활규범)를 받게 된다. 이때부터 ‘스님’이라고 부르지만 신분상으로는 예비승려이다. 따라서 정식으로 승가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구족계(비구계, 비구니계)를 받아야 하는데 승가 기본교육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경전과 승가 고유의 규범을 익히는 강원(승가대학)이나 선원 등의 과정이 있다. 그중의 하나인 강원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승가의 구성원인 스님은 본인의 자발적인 결정에 따라 출가하기 때문에 같은 년도에 득도했다 하더라도 나이 차가 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한 순서대로 앉다보면 외형상 들죽날죽하다. 얼핏보면 모두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었기 때문에 비슷하게 보이지만, 출가득도한 시점을 기준으로 새로운 나이 즉 승납(僧臘)이 매겨짐으로써 그 순서대로 앉다보면 세속적인 나이가 적더라도 앞에 앉는 경우가 있다. 보통 나이가 들어서 출가하는 것은 ‘늦깎이’라 하고, 10살 전후로 출가하는 것은 동진(童眞)이라 한다. 그리고 20살 전후로 출가하는 것은 올깎이라 하는데, 그 무엇이든 당사자한테 직접 그런 식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강원에서는 4학견 격인 화엄반만 따로 건물을 쓰고 보통 1,2,3학년들은 큰 방이라는 곳에서 함께 생활한다. 3학년격인 사집반 때다. 1,2학년 스님들은 간경(看經)이라고 불리는 경전 공부시간에 경상(經床)이라는 작은 책상을 들고 다녔다. 스님들의 일상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여러 행사들이 큰 방에서 이루어지므로 모든 학년들의 경상을 두기에는 좁기 때문이다. 그중에 2학견 격인 치문반 가운데 세속나이가 많으신 분이 계셨다. 가끔은 아무런 생각 없이 한 곳을 응시하는 버릇이 있는데 마침 그 날은 그 스님이 계신 곳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쪽지를 전해 오기에 펼쳐보니 "스님 땡 감도 떨어집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웃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의 낙처(의미)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혼자만의 생각일런지 몰라도 하여튼 '땡감'이란 '젊다'는 뜻일게다. 그러나 알다시피 모두 홍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태반은 떨어지고 만다. 다만 모진 여건을 견뎌 영근 것만이 달콤한 홍시가 된다. 그러니 젊다고 좋아할 것도 없으며 나이 먹었다고 움추려 들 것도 없다. 출가에는 선후가 있으나 깨닫는데는 선후가 없다(出家有先後 悟心無先後)는 말처럼 깨달음이란 승속(僧俗)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 등의 차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심과 정진으로써 체득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런 이야기를 감에 비유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잊어버렸는데, 얼마 전 '땡 감' 말씀을 하셨던 스님과 같이 차담을 들다가 그 날이 그 스님의 환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회에서 환갑이라면 가족이나 친지 또는 이웃이나 지인들과 기념을 할텐데, 단지 차 한잔으로 자신의 환갑을 보내는 스님을 보면서 필자는 '홍시'을 떠올렸다.
 참고로 스님은 자신의 생일이 되어도 '생일'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정성스럽게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며 또 대중들에게도 공양을 낸다.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은 축하의식이 없으니 선물을 주고 받는 것도 없다.

 

 

 

 인도기행

진선

 우리는 고타마 부처님을 깨달으신 분이라고 하는데, 그 깨달으신 법이란 교학적으로 연기법으로써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로 간단히 나타낸다.

 

 

 

 

장남지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같은 노래가 흐르는 벗이 있다

벗의 노래는 내게로 와 세상의 이야기가 되고
벗의 웃음만이 넘어진 내 무릎을 어루만진다


보지 않아도
마음속에 같은 그림을 그리는 벗이 있다

벗의 눈이 내가 세상을 그리는 선이 되고
벗의 마음은 연홍 꽃잎으로
내게로 와
앉았다

 

 

 

 브로크백 마운틴

조혜숙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그랬듯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이 남녀간의 사랑이든 혹은 동성끼리의 사랑이든 말이다. 하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비교적 많이 개방되었다는 현대에서도 아직 많은 화두를 제시하며 편견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도 그들 또한 사랑이다.

 이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브로크백 마운틴>은 흔히 말하는 퀴어 영화(동성애를 소재로 다룬 영화)다. <쉬핑 뉴스>의 퓰리쳐상 수상 작가 E. 애니 프롬스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최우수 작품상(황금사자상), LA 비평가 협회 최우수 작품상, 뉴욕 비평가 협회 최우수 작품상 등을 휩쓸었고 이안감독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주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쯤 되면 비평가들에게나 사랑받는 소위 말해 ‘예술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달랐다. 미국 개봉에선 개봉 2주차에, 5개 극장에서 69개 극장으로 극장 수를 늘리면서 주말 3일동안 극장당 3만 6,355불의 파격적 흥행성적을 올리며(같은 주말 1위 개봉작인 <킹콩>의 경우는 극장당 1만 4,050불이다) 총 251만불의 수입을 기록, 주말 박스오피스 8위로 껑충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니 이 영화에 일반 관객들도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잔잔한 영화에 과연 어떤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1963년의 여름. 와이오밍 주에 있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을 방목하는 아르바이트 일로 만단 두 사람, 잭 트위스트와 에니스 델마는 서로에게 끌림을 느낀다. 수백마리의 양떼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달콤한 사랑을 나눈 이들은 여름이 끝나면서 아르바이트 일도 끝나고 헤어지게 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헤어진 이후로, 와이오밍에 남은 에니스는 알마와 결혼하여 두딸을 낳고, 텍사스 주로 간 잭은 루리 뉴섬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장인의 사업을 도우며 살아간다. 4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날 제이크가 와이오밍 주를 찾아오고, 다시 재회한 에니스와 제이크는 서로를 그리워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이후, 이들은 1, 2년에 한번씩 만나면서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이어가게 된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힘은 세련된 시나리오와 두 배우 ‘히스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의 호연에서 비롯되는게 아닌가 싶다. 보통의 퀴어영화들은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중점을 맞추고 좀 더 화려한 이미지나 세상에서 동떨어진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이 영화는 그런 영화들과 사뭇 틀린 느낌을 관객에게 전한다. 잭과 애니스의 사랑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남녀간의 사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한쪽은 현실을 두려워하고 한쪽은 두려운 현실이지만 해보자고 제안한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질투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지만 그것이 우리들의 사랑보다 결코 특별하거나 이질적인 것이 아니기에 관객은 그것에 충분히 공감하고 슬퍼한다. 그것은 여지껏 우리가 느껴왔던 관객 입장에서의 동성애자에 대한 관조가 아니라 그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그들과 우리를 동일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의 장점도 배우들의 호연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각자의 캐릭터를 아주 정확히 소화하여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 특히 히스레저의 절제된 감정 연기는 여지껏 그가 했던 작품들을 잊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번쯤 꼭 가보고 싶어지는 브로크백 마운틴. 카메라를 조금만 기울여도 대자연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고 하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보여지듯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곳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경관도 풀하나하나 구름하나하나에 영화의 감정이 배어있기 때문에 그토록 아름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연출력을 보여준 이안 감독과 수려한 경관에 인물의 감정을 차곡차곡 재어놓은 로드리고 프리에토 촬영감독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해양박물관

도난주

 해양박물관은 칼스크로나의 가장 남쪽 바닷가의 작은 섬에 위치해 있어 다리를 거쳐야 한다. 해양박물관이 있는 이 섬에는 배를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주는 교육공간과 레스토랑이 포함된 해양박물관, 야외공연을 할 수 있는 작은 공원이 있다. 모든 면에서 바다를 볼 수 있으며, 사계절별로 다른 매력을 가진 곳이다.

 해양박물관은 무료로 운영된다. 해양박물관의 일층은 모두 유리로 투명하게 되어 있어 바다 한가운데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 건물은 지하, 1층, 2층으로 지하는 한국 코엑스의 아쿠리아처럼 투명 유리 밖으로 물고기들은 볼 수 있다. 이곳은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지하까지 만들어 유리를 설치하였기 때문에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물고기들을 직접 볼 수 있다.
 1층은 레스토랑, 기념품 판매점 그리고 본격적인 해양박물관이 시작되는 문이 있다. 오래전에 어떻게 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발전과정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사용했던 물건들과 공간을 재현함으로써 방문객들에게 빠른 이해를 돕는다. 또한 곳곳에 배 모형, 이곳을 배경으로 그려진 중세의 그림들이 빽빽하게 있다.
 2층은 잠수함의 모형을 만들어서 체험할 수 있으며, 망원경을 설치하여 건물 밖의 풍경을 우리가 잠수함에서 보는 것처럼 느끼면서 볼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또한 작은 극장분위기의 공간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영상으로 제공한다. 또 다른 공간으로 세미나실을 만들어 주민들이 필요할 때는 예약만 간단히 하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건물의 마지막 부분에는 1층과 2층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지붕을 높게하여 개방감을 주었으며 관련 많은 조각품들과 피아노를 두어 주말마다 음악회등이 열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한다. 야외 공간에는 빵페스티발, 야외음악회 등등 겨울을 제외하고 많은 행사가 열린다. 외관으로는 다른 박물관과 다른 점을 알 수 없지만 지하의 아쿠아리움, 층마다 많은 수의 중세그림, 조각품, 다양한 소장품들이 테마별로 나누어져 체험할 수 있는 공간까지 더해서 자칫 지겨워 질 수 있는 전문 박물관이 재밌게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마지막 박물관을 끝내는 공간인 기념품 숍에서는 칼스크로나를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관광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많는 곳이다.

 

 

 

 천인합일론(자연과 인간은 하나)

정재진

 중국(또는 동양인. 즉 중국. 한국. 일본의 한문문화권 전체를 지칭)인의 깊은 사유의 3대 중심과제는 곧 자연. 인간. 그리고 인간의 문화적인 성취. 즉 역사이다. 옛 말의 ‘하늘’(天)은 현대어의 ‘자연’과 동일한 개념이다. 또한 어떤 이는 말하기를, “天이라는 것은 道의 또 다른 이름이며, 인생의 대 근원이 된다. 사람과 사람이 생겨난 근원은 둘이 아님은 예컨대 물거품과 그것이 생겨난 큰 바닷물을 둘로 나눌 수 가 없음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말은 곧 하늘(자연)과 사람은 본질적으로 나눌 수가 없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여기서의 天 즉 하늘은 대자연을 의미)이 곧 사람이 생겨난 근원이 된다면, 사람은 과연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동양에서 말하는 사람이란 생명(살아 숨쉬며 약동함)을 근본으로 한다.  생명이야말로 하늘과 사람을 하나로 묶는 유대 적인 본질이니, 생명이 없다면 사람의 존재기반은 상실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란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한다면, 광범위한 보편생명의 유로(流露:참 모습이 나타남)이며, 그 내재적인 생명가치를 실현하는 마당일 뿐 이다. 또한 생명의 특질은 변화. 즉 약동을 의미하며, 이러한 변화야말로 우리의 무한한 연속성을 말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생명을 가진 인간은 무한히 넓고 크며 모든 것을 갖추고, 낳고 낳음을 쉼이 없는 대 우주와 혼연히 일치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주역 10익(주역의 본경을 설명한 주해서.곧 계사상.하전,단사 상.하전, 상사 상.하전, 문언, 설괘, 서괘, 잡괘의 10가지)가운데 문언(文言:말을 꾸민다는 뜻이며, 주역64괘 중 제1번 건과 제2번 곤괘의 뜻을 푼 것)의 말 가운데, 대인(大人:큰 사람.성인)이란 하늘과 땅과 더불어 그 덕성스러움을 같이 하며, 해와 달과 더불어 그 밝음을 같이하며, 사계절(즉 봄.여름.가을.겨울로서 이 들의 운행질서가 질서 정연함을 비유)과 더불어 그 질서를 같이하며, 귀신(여기서는 무속적 의미의 귀신이 아니라, 오히려 빅-뱅 이론에 가까운 우주의 팽창과 수축을 의미하거나, 신묘함을 의미)과 더불어 그 좋고 나쁨을(즉 미래에 대한 예지 능력) 같이 한다. 여기서의 대인이란, 생명의 특성을 맘껏 발휘한 사람을 의미하며, 천지란 곧 자연을 의미하며, 해와 달. 사계절. 귀와 신이란, 모든 자연의 현저한 현상이며 질서를 의미한다. 대인이란 말을 자세히 설명하면, 자기 존재에 내재하는 생명의 특질을 완전하게 발휘하여 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여 운행하며, 자연과 더불어 그 내재적인 덕성스러움을 함께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사람은 우주와 더불어 화해(화목하게 지냄)하는 지고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며, 바로 하늘과 동일하므로, 결국 이 말은 주역이 추구하는 뜻이 되는 것이다. 주역 중 역전(易傳:주역의 본경을 말함이 아니라 10익. 즉 주해서를 말함. 본경의 생성 년대는 대강 청동기 초기 즉 기원전20세기 정도로까지 소급되지만, 10익의 경우는 춘추. 전국시대부터 한 대에 이르기까지의 후대에 성립되었다는 설이 정설임)의 사상은 天道와 人道를 조화시키려는 사상운동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은 곧 모든 중국사상의 근원이며 전형이다.
 天道를 중국사상의 이상주의적 전통을 말하는 것이라면, 人道는 현실주의적인 전통을 의미하며, 이 두 개의 길을 연결시킴은, 곧 성인과 속인의 융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주역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선진(先秦:중국 고대 문명을 총칭하는 말. 즉 중국문명은 진나라(기원전221년)가 육국을 통일한 후 비로서 봉건제에서 군현제로, 분권에서 중앙 집권으로,문자와 도량형의 통일 등으로 중국 내 최초의 제국문명을 일으켰다. 즉 진나라 이전을 의미하는 말로 쓰임)시대의 많은 경전 중에서 허다히 발견된다. 중용(中庸:예기의 한 편 명으로 공자의 손자 자사의 저작이라 함)의 구절을 살펴보면,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어야 능히 그 본성을 다 할 수 있으며, 능히 그 성품을 온전히 하여야 능히 사람의 성품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능히 사람의 성품을 다 하여야 만이 능히 만물의 성품을 다 할 것이며, 능히 만물의 성품을 다 하여야 만이 가히 하늘과 땅의 변화하고 기름을 도울 수 있다. 가히 하늘과 땅의 변화하고 기름을 도울 수 있어야 만이 가히 하늘과 땅과 더불어 셋(또는 참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끝의 말 가운데 ‘가히 하늘과 땅과 더불어 셋(또는 참여)이 된다’의 參이란, 셋 또는 참여의 뜻을 의미한다. 즉 이 말은 ‘하늘’ ‘땅’ 과 더불어 셋. 즉 인간이 대 우주의 끊임없는 창조과정에 동참하는 위대한 존재로 승화되고 있는데, 이것이 소위 삼위일체론이다.
 주역은 64괘로써 우주의 운행이치를 설명한 책인데, 하나의 괘가 여섯 개의 효로서 이루어져 있는데, 이 6효는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간다. 제1효와 제2효는 땅의 길을 나타내며, 제3효와 제4효는 사람의 길을, 제5효와 제6효는 하늘의 길을 나타내므로 이러한 괘의 구조는 고대 중국인들의 우주관을 단적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땅은 밑에서 떠받치고, 하늘은 위에서 덮으며, 사람은 그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의 3대 요소를 주역은 3재(三才:하늘. 땅. 인간)라고 부르며, 이 3재는 셋이면서 또한 하나가 된다. 이 3재 사상은 중국 삼위일체사상의 전형이며, 천인합일론의 근원이 되며, 미신적이지 않는 종교정신의 전형적인 모습이 된다.
계사전(繫辭傳:주역10익 중 하나)에 이르기를, 「한번은 음이 되고 한번은 양이 되니, 이를 道라 이르고, 그것을 잘 이음이 善이며, 그것을 이루는 것이 성품이다」 여기서의 길(道)은 만물이 걸어가야 할 길(규율. 규정 등)이며, 그러한 만물의 걸어감. 즉 운행은 음(陰:만물의 속성중 어두운 성질)적인 힘과, 양(陽:만물의 밝은 속성)적인 힘의 상호작용으로써 설명하고 있다. 한번은 음이 되고 한번은 양이 된다는 우주의 운행은, 바로 계사상전에서 말하는 하늘과 땅의 크나큰 덕을 낳음이라 말 한다라는 뜻이 된다. 창조라는 덕성이 하늘과 땅을 벗어난 어떤 허구적인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과 땅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낳고 낳음을 易이라 말 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하늘의 길이 가지는 끊임없이 창조하고 또 창조하는 덕성이야말로,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즉 낳고 낳음이 쉼이 없음) 그 자체이며, 그것을 易이라는 포괄적인 단어로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주희(중국 남송시대의 유학자.송대리학의 완성자.1130~1200)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나의 본성과 타인의 본성과 사물 그것을 잘 잇는다는 것은 이것은 하늘의 길이 유행하면서 부여하는 것이니, 이른바 命(명령)이라 한다. 그것을 이룸이 성품이다 라는 것은, 이것은 사람과 만물이 (하늘로부터)품부 받아 바탕을 이루니, 이른바 성품이라 이른다. 대저 하늘과 땅은 만물을 묶어 이름 한 것이다의 본성이, 결국 온갖 사물의 본성으로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길(道)을 닦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에 내재하는 본성의 덕성을 함양하고 발휘해야 하며, 그러함으로써 만물의 본성과 그 덕성을 합치시킨다. 그렇게 되면 곧 인간이 하늘과 동격이 되는 것이니, 이 말이 바로 맹자(孟子:기원전4세기 말엽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부용국인 추라는 곳에서 태어난 학자가 지은 책이름. 총7권으로 구성되어 정치. 사상. 사회제도 및 경제에 관하여 언급한 귀중한 자료) 진심장(盡心章:맹자의 편명. 맹자는 맨 앞의 글자를 본떠 편명을 삼음)의 말 가운데 그 마음을 다 하는 사람은 그 성품을 아는 것이며, 그 성품을 아는 사람은 곧 사람을 안다와 논어(論語:중국 주나라 춘추시대의 인물 공구가 지은 책. 공자가 죽은 후 그의 몇몇 문인들에 의하여 그의 언행을 기록한 책)의  나는 나이50에 하늘이 명령한 것을 알았다와는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자연이란 창조의 끊임없는 과정이며, 인간은 이 자연의 영역 속에 있어서의 동일한 창조자의 하나이다. 자연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은 둘이면서 하나이며, 이것이야말로 포섭적 화해의 전형을 이룬다. 포섭적화해라는 것은 화해가 인간개체 내부 속에 생성하는 부분들 간의 화해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간개체와 개체를 둘러싼 환경사이의 화해까지도 포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원천적인 통일성 속에서는, 외면적으로는 다양하고 적대적이며 모순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보이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연결되어있어, 만물은 생명을 찬미하고 사랑의 찬가의 협주곡 모든 부분을 담당하여, 필경은 조화로운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찬양하여 이르노니,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됨은 무엇일까?
천지는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는 것.
하늘은 위 에 있어 하늘의 길 이루고
땅은 아래에 있어 땅의 길 이루네.
사람은 오직 가운데 위치하여
덕을 닦고 함양하여 사람의 길 이뤄야지.
만일 사람이 천지와 같다면
품성을 다스리고 닦아 성인의 지혜를 구해보세.

 天人合一論 辛巳
於中華人(東洋人)深思之三大中心問題者,則自然.人間.人間之文化的成就.卽歷史也.古言之「天」字,現語之與「自然」者,爲同一槪念矣.又或者之謂,『天者,爲道之異名,而又爲人之大根源也.人與人之生之根源,不貳也.以例言之,則水泡與其之生於大海水,不可分者,與同義也.』玆若之言,則天與人,可以說乎本質的不可分者.夫天者(是天,言以大自然,無關於宗敎的神),卽爲人生之大根源,然而人者何以爲定乎?東洋之謂人者,以「生命」爲根本.是「生命」者,則一以接續,而爲紐帶的本質乎天與人.若無「生命」,必以喪失於人生之存在基盤矣.故「天」者,言以人人關係,爲廣範之普遍生命之流露也,但以爲實現之場乎其內在的生命價値而已.且生命之特質,言以變化,是變化者,他言以無限宇宙之連續性.故保持乎生命之人間,爲渾然一體與廣大悉備生生不息之大宇宙也.周易十翼文言曰,『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是大人者,無有遺憾發揮於生命之特質之人,天者.卽自然也.日.月.四季.鬼神者,皆爲自然之現象與秩序矣.詳述於大人者,以完全發揮乎自己存在內在之生命特質,而順運乎自然秩序,與自然同行乎其內在的德性者也.玆若之人,與宇宙和諧,而到達乎至高境地,與天同一之人,畢竟是言爲周易之宗知也.周易之易傳思想,生於欲調和乎天道與人道之思想運動,故是則盡爲中華思想之根源及典型也.夫天道者,言以中國思想之理想主義的傳統,人道者,意味乎現實主義的傳統矣.是兩者之接合,則聖與俗之融合也.然是之思想,非但唯限於易傳,許多發見於先秦之經也.察之乎中庸,『唯天下至誠,爲能盡其性.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有終言之中,「可以參矣」夫參字,內包乎三又參與之義.則是言義,「與天地爲三」又曰「與天地參與」矣,是則於人賦與乎共創者之雄大之地位也,又曰於人之存在,以參與於大宇宙之綿綿不絶創造之過程之位爲升化,所謂三位一體論是也.夫周易者,以六十四卦,爲說乎宇宙運行理致,一卦(大成卦),以六爻爲成,以是六爻,自下以上,第一爻第二爻,見乎地道,第三爻第四爻,見乎人道,第五爻第六爻,見乎天自者,故是卦之構造,斷的象徵乎古代中國人之宇宙觀.地也者,自下以撑,天也者,自上以覆,人也者,位乎其中.夫易者,是爲宇宙之三要素,以三才爲言,則三才者,爲三又爲一.是以三才思想,爲中國三位一體思想之原形,爲天人合一論之根源,爲非迷信的宗敎精神之典範也.繫辭上傳曰,『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性也』,於是謂之道者,爲萬物遂行之道(規律.規程)也,其萬物遂行之道者,亦爲運行,是運行者,則以陰與陽力之相互作用爲說矣.言宇宙之以一陰一陽爲運行,若言乎繫辭上傳,卽爲「天地大德曰生」之義也.夫創造者,非但德性之所有於脫乎天地之虛構的存在,而在乎天地自體.故謂之以「生生不息之易」,是則爲天之所持乎不絶創造又創造之德性,而爲萬象之生生不已其自體,是之謂易,以包括的單語爲表現也.於是朱熹下記如解釋云,『繼之者善,是天道之流行賦與,所謂命也.成之者性,是人物之稟受成質,所謂性也.夫天地者,萬物之總名也』,予之性與人之性及物之性者,畢竟意味乎以萬物之本性爲統合也.夫修道也者,于先涵養發揮乎自己內在之性之德,是以與萬物之性,其德合矣.然以其人與天同也.又曰是言也,則與孟子盡心上編云,『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人矣』及於論語云,『五十而知天命』爲一脈相通也.或者之謂,『夫自然者,爲創造之不斷過程,人也者,於自然之內,爲共創者,則人性與自然之性者,爲二而一,是則成乎包攝的和諧之典型也.包攝的和諧者何義也?其因於非但人間個體內部之生成部分間和諧,包括於與人間個體,環圍乎個體之環境間和諧.於是形之原初的統一性內,一見見乎以多樣敵對矛盾的相,然結乎本質,萬物者以全體擔當,讚乎生命,歌乎愛戀之協奏曲,而竟爲成乎調和之音也.讚曰,天人合一何義哉,天地與人爲一體,天在上天成乾道,地在下地就坤道,人者猶有位中土,涵養修德遂中道,若思人道等天地,稟性治修要聖智.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卷第四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口誦乘船法而不解用喩 夫婦食병共爲要喩 共相怨害喩 效其祖先急速食喩 嘗菴婆羅果喩 爲二婦故喪其兩目喩 唵米決口喩 詐言馬死喩 出家凡夫貪利養喩 駝瓮俱失喩 田夫思王女喩 구驢乳喩 與兒期早行喩 爲王負机喩 倒灌喩 爲熊所齧喩 比種田喩 미후喩 月蝕打狗喩 婦女患眼痛喩 父取兒耳?喩 劫盜分財喩 미후把豆喩 得金鼠狼喩 地得金錢喩 貧兒欲與富等財物喩小兒得歡喜丸喩 老母捉熊喩 摩尼水竇喩 二합喩 詐稱眼盲喩 爲惡賊所劫失疊喩 小兒得大龜喩

(六九)效其祖先急速食喩
昔有一人從北天竺至南天竺。住止旣久卽聘其女共爲夫婦。時婦爲夫造設飮食。夫得急呑不避其熱。婦時怪之語其夫言。此中無賊劫奪人者。有何急事??乃爾不安徐食。夫答婦言有好密事不得語汝。婦聞其言謂有異法慇懃問之。良久乃答。我祖父已來法常速食。我今效之。是故疾耳。世間凡夫亦復如是。不達正理不知善惡。作諸邪行不以爲恥。而云我祖父已來作如是法。至死受行。終不捨離。如彼愚人習其速食以爲好法

69. 음식을 급히 먹는 남편
 
어떤 사람이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사는 동안 그곳의 여자를 맞이하여 부부가 되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음식을 차리자 남편은 급히 먹느라고 뜨거운 것도 생각지 않았다. 아내는 이상히 여겨 남편에게 물었다. “누가 뺏어 먹을 사람도 없는데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바쁘게 드십니까?” 그러자 남편이 “비밀이라서 당신에게는 말할 수 없소.”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궁금하여 더욱 간절하게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한참 만에야 대답하였다. “우리 조부 때부터 항상 음식을 발리 먹는 법을 지켜 왔소. 나도 지금 그것을 본받기 위해 빨리 먹는 것이오”
 세상의 범부들도 이와 같다. 바른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여 선과 악을 알지 못하고 온갖 그릇된 일을 행하면서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조부 때부터 이런 법을 행했다’고 하면서 죽을 때까지 끝내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빨리 먹는 습관을 좋은 법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七○)嘗菴婆羅果喩
昔有一長者。遣人持錢至他園中。買菴婆羅果而欲食之。而?之言好甛美者汝當買來。卽便持錢往買其果。果主言我此樹果悉皆美好無一惡者。汝嘗一果足以知之。買果者言。我今當一一嘗之然後當取。若但嘗一何以可知。尋卽取果一一皆嘗持來歸家。長者見已惡而不食。便一切都棄。世間之人亦復如是。聞持戒施得大富樂。身常安隱無有諸患。不肯信之。便作是言。布施得福。我自得時然後可信。目睹現世貴賤貧窮皆是先業所獲果報。不知推一以求因果。方懷不信。須己自經。一旦命終。財物喪失。如彼嘗果一切都棄

70. 과일을 일일이 맛보고 사는 사람
 하인에게 돈을 주며 달고 맛난 암바라 열매를 사오라고 하였다. 하인이 돈을 가지고서 과일을 사려고 하자 과일주인이 말했다. “우리 집의 과일은 모두 맛나고 좋아서 하나도 나쁜 것이 없다. 네가 하나 맛보면 알 것이다.” 그러자 하인은 맛을 본 뒤에 사기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과일주인에게 “여러개의 과일을 하나만 맛보고 어떻게 알겠소. 그러므로 하나하나 맛본 뒤에 사겠소.” 하고는 곧 과일을 가져다 하나하나 맛본 뒤에 그것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것을 본 장자는 과일을 모두 버려 버렸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계율을 지니고 보시를 행하면 부유해지고, 몸은 항상 안락하여 어떤 병도 없다‘는 말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보시로 복을 얻는다 하지만 내가 얻은 뒤에라야 믿을 수 있다“고 하니, 현세의 귀천과 빈궁이 모두 전생에 지은 업의 결과임을 직접 보고도 그 하나를 미루어 인과를 구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마치 뭐든지 믿지 못해 스스로 겪어 봐야 한다고 하다가, 하루아침에 목숨을 마치면 모두 잃어 버리는 것이니 그것은 하나씩 맛보고 산 과일을 모두 버리게 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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