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9(2005)년 9월호 Vol.5,No.56. Date of Issue 1 Oct ISSN:1599-337X 

 

 

 

 

 

 

 

 

 

 

 복권

범수

 요즘 복권에 대한 관심은 한 풀 꺾인 것 같지만, 당첨에 대한 꿈은 여전한 것 같다. 광풍처럼 우리사회를 휩쓸고 지날 때는, 대화의 중심에 "누가 얼마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심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다음 주 토요일을 기다렸을 것이다. 이런 사회현상에 복권관련 종사자는 기금 마련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겠다며 사행성과는 무관한 것처럼 선전을 하였으며, 일부 시류에 잘도 편승하는 학자들은 확률을 들 먹이며, 마치 과학실험과 같은 인상을 풍기면서 복권의 열병이 유지되는데 한몫하였다. 그런 여파 때문인지 여전히 "어디에 가면 잘 된다고 하더라, 또 어떻게 하면 잘 된다고 하더라" 며 저마다 복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여타의 사람에게 떠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럴 때면 "그렇게 잘 알면 본인이나 하지..." 하며, 냉소적인 말을 속으로 내뱉곤 한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가 제일 잘 아는 것처럼 까발리는 분류들은 대부분 그렇듯이 그럴싸한 말로 꾸며대면서 현혹시키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되짚어 보면 그 실체가 금방 탄로 나기 일쑤이다.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당첨이 되면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라는 말을 한다. 그 내용을 보면 자신보다는 우선적으로 남을 위해 쓰겠다는 말이 주를 이룬다. 정말 말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일확천금을 노려 얻은 당첨금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쓸 줄 안다면, 평상시에도 그런 마음을 가졌을 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여전히 기부문화는 요연하며, 또 반드시 걸리면 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복권과 관련해 친한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진 선례를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권에 당첨되면 행복해지는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익히 알려졌듯이 '복권에 당첨된 이후 삶이 더 불행해 졌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복권에 당첨된 뒤 그 사용처를 보면 자동차, 집, 전자 제품 등등 평소 가지고 싶어하던 물품구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인 것 같다. 세상 소문에 어두워서 인지는 몰라도 학교나, 병원등을 지어 사회에 기여했다는 소리를 못 들었으니, 평상시 무엇을 꿈꾸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복권에 당첨된 것을 두고 '복이 많아서'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복이 많아서 복권에 당첨된 것일까? 그러면 복권에 당첨되지 않으면 복이 적다는 말인가? 도대체 복과 복권은 어떤 함수관계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보니 '복(福)'이라는 글자가 같기도 하다.
 복권(福券)이란 번호나 그림 따위의 특정 표시를 기입한 표(票)로서 추첨따위를 통하여 일치하는 표에 대해서 상금이나 상품을 주는 것으로 추첨에 의한다. 그러면 복은 추첨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인가? 혹자는 또 복권에 당첨된 것을 마치 흥부가 박씨를 얻은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면 흥부는 추첨에 의해 박씨를 얻은 것일까? 이 단락에서 필자가 반복적인 의문형으로 말하는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한편으로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으니 간단히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복(福)이란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것으로 불교에서는 인과적으로 해석한다. 먼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업)를 복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복을 짓는다는 뜻에서 작복(作福)이라 한다. 그래서 얻어지는 행복을 얻는다 측면에서 득복(得福)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작복과 득복은 지음 즉 자신의 행위(業)에 따른 결과이므로 결국 다 쓰고 나면 없어지고 만다. 이것을 복진(福盡)이라 한다. 이런 관계에서 보면 복이란 지음 곧 원인에 의해서 얻어지는 결과로 무한한 것이 아니니, 지속적인 선행(善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흥부가 박씨를 얻은 것 역시 다리를 다친 제비를 정성껏 보살펴준 행위(원인)에 의해서 얻은 복으로 선인선과에 해당한다. 따라서 일확천금을 노리며 요행으로 하는 복권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일 뿐이다.

 

 

 

스웨덴에서

도난주

2005년 8월 23일 첫 발을 내디딘 스웨덴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한 스톡홀롬은 중세도시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고풍스럽고 소박한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서울을 생각하면 고층빌딩과 많은 사람들의 빠른 걸음이 수도의 상징처럼 각인되지만, 스톡홀롬은 고층 건물을 찾아 볼 수도 없을뿐더러,  여러 호수와 오래된 건물 사이로 유유히 지나가는 배와 사람들로 인해 마치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센트롬 터미널을 중심으로 동남 쪽에 자리한 시가지에는 미술관, 박물관 및 중세건물을 개조한 상점과 레스토랑이 강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북쪽의 스톡홀롬은 중세의 건물뿐만 아니라, 현대식 건축물이 공존하고 있다. 최첨단의 IT를 갖춤으로써 모든 것이 편리하고 빠른 시간내에 처리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국내 비행기는 카드나 현금결제시 직접 일렉트릭 머쉰을 통해 표를 받을 수 있고, 또 바로 짊을 맡길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모든 버스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함으로써 빠르고 편리하게 승 하차할 수 있다.

스웨덴 사람들에 대하여 가타부타 말할 수 없지만, 일주일도 동안 머물면서 느낀 것만 글로 남기려고 한다. 물론 앞으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스웨덴은  IT를 중심으로 세계의 선두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들고 있으며, 또 그것을 적극 장려하는 추세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금발에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만 있을거라고 추측한다면, 현재의 사정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일반적으로 스웨덴의 젊은 층은 세계의 여러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 말이 있지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자유분방하면서도 개인적인 성향인 것 같다.

그러나 나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 특별히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다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과 달리 친절하며, 특히 저와 같은 학생,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 같다. 도와주려고 물으면서 끝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인데, 혹시 스웨덴에 머물 기회가 생긴다면, 나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절한 금자씨

조혜숙

 사람들에게 복수의 감정이란 정말 영화나 소설 속의 얘기처럼 그렇게 극적이고 잔인하며 어이없게 이루어질까?..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 지금껏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를 보면서 그저 재미있게 잘 쓴 시니리오를 감독 방식대로 채색하여 만든 영화라고 보아야 할지, 아니면 사람의 본성 속에 이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보아야 되는지 답답했다.
 너무나 예쁘고 어린 금자씨가 유괴범이 되여 13년간 감옥살이를 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만든 백선생에 대한 복수만을 생의 유일한 동력으로 갖고 살아 간다.

 13년간 감옥살이를 하면서 금자씨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고, 그 친절은 모든 사람을 위해 살인마저도 친절(?)했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배운 제빵 기술은 너무나 놀라워, 그 달콤하고 맛있게 만든 케잌의 맛만큼이나 친절한 감옥생활을 마치고 출소한다. 오로지 금자의 구원을 고대하며 마중 나온 전도사가 내미는 두부 한 모를 그대로 밀어 내며 "너나 잘 하세요"라고 차갑게 내뱉는 금자의 첫마디부터 금자의 복수는 시작된다.

 금자씨의 복수는 화사하고 서정적이며 아름답게 그러나 폭력적으로 진행이 된다. 감옥에선 친절하고 상냥하기만 했던 금자씨가 출소 후엔 친절해 보일까봐 붉은 새도우를 짙게 바르고 꽃무늬 원피스와 높은 힐, 검은색 롱코트로 스타일이 바뀐다. 비록 유괴범의 누명을 자신의 딸을 위해 대신 썼지만 ,출소 후 금자씨는 유괴된 아이의 부모에게 간접적으로라도 범행했던 자신의  속죄를 자신의 손가락으로 대신한다.
 백선생에 의해 유괴되고 살해된 더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까지 찾아낸 금자씨는 자신이 직접 그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닌 더 길게, 더 잔인하게 복수하고자 한다. 그동안 유괴되고 살해된 아이들의 부모로 하여금 백선생에게 복수하는 길고 긴 처단식을 유도하는 진행자가된다. 하지만 더 섬뜩할 만큼 무서운 것은 분노 때문에 죽이는 그 자체가 아니라 공범자(부모들)들의 그 행동들 이후 너무나 아이러니한 욕망의 순간을 내보일 때 정말 숨이 턱 막히는것 같다. 도대체 감독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일까...?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욕망들일까...상상의 끝은 있을까..

 

 

 

 아내에게 부끄러운 남편

정재진

 아주 옛날 중국(아마도 기원전6~700여 년 전인 듯)의 낙읍(낙양)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으니, 이 자는 형편없는 가세(家勢)에도 불구하고 본처와 첩(妾)까지 두고 살았다. 그는 평소 제대로 된 생업(生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이면 날마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해가 지고 난 뒤에라야 만취된 상태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리하여 도대체 돈도 없는 사람이 매일 같이 술과 고기를 잔뜩 먹는 사실이 궁금하였던 아내들은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도대체 당신은 무슨 수단으로  술과 고기를 싫도록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대답하기를 "하는 일은 모두가 중차대하고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유명인사"라는 거였지만, 도대체가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에 아내들은 사실을 확인하고자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남편은 낙양의 그 큰 동네를 다 벗어나도록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드디어 동네를 벗어나 동쪽 성문을 벗어나니 거기서부터 죽은 이를 장사 지내는 공동묘지였는데, 남편은 그곳에 이르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장례 지내는 곳을 찾아가 술과 고기를 얻어먹었고, 모자라자 다시 주변을 돌아보면서 또 다른 장례식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내는 남편의 행위를 보고 매일같이 술과 고기를 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첩에게 "여보게. 자고로 남편이란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함이 도리인데, 현재 우리 남편의 꼴이 이 모양이니 이제부터 우리는 누굴 의지하고 존경한단 말인가"하고 서로를 부둥켜  안고 슬프게 울고 있었다. 이때 자신이 아내에게 미행당한 사실을 알지 못한 남편이 집으로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거들먹거리는지 실로 가관인 것도 모자라, 아내들을 나무라면서 말하기를  "이것들이 남편이 밖에서 들어오면 반갑게 맞을 일이지 재수 없게 울긴 왜 울어"라 하였다 한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 초엽의 유학자인 맹가(맹자)가 저술한 ‘맹자(孟子)’속에 나오는 말이며, 끝에다 맹자가 부언하기를 "이 세상에서 재물과 명예 등을 추구하는 자들의 뒷모습을 보고서 과연 울지 않을 아내가 얼마나 되겠는가"라 하였으니, 세상의 남편들이여. 반성하고 분발하심이 옳지 않겠는가?
이젠 완연한 가을이다. 사율(四律)로써 새 가을을 노래하노니,

循環節序固分明

순환하는 계절은 참으로 분명하니

陽裡陰生處暑成

양기 속에서 음기 생겨 처서가 되었네

鬱鬱三山猶火色

울창한 삼산엔 아직도 여름 빛이지만

悠悠二水已金聲

아득한 이수에는 이미 가을의 소리이며

玉簪芳馥流嬌態

옥잠화 고운 향기는 교태로움 흘리우고

促織爭鳴報善名

귀뚜라미 다투어 울며 좋은 이름 일려주네

萬里蒼穹風又瑟

끝없는 푸른 하늘에 바람 또한 소슬하니

投공探賞野人情

지팡이 끌며 구경감은 촌사람의 정취로세

주)삼산(三山): 영천을 대표하는 산. 즉 작산 유봉산.마현산
 이수(二水): 영천을 대표하는 물. 즉 조양각 앞을 흐르는 남천과 고현천과 신녕천이 합류하여 만든 북천의 두 물줄기. 이것이 바로 금호강을 이룬다. 
화색(火色): 본래는 여름인 하(夏)자를 쓰려 하였지만 대구로 추(秋)가 되기에  범제(犯題:시 제목을 침범한다는 뜻으로 율시에서는 쓰지 못함)가  되어 부득이 여름의 뜻인 남쪽의 2.7 화(火)로 한 것임
금성(金聲): 가을의 소리. 즉 금(金)은 서쪽의 4.9 금(金)이 되니 즉 가을의 뜻이 되어 ‘화색(火色)과 대구가 성립된다.
촉직(促織): 귀뚜라미의 별칭. 귀뚜라미는 봄이면 들로 나가 여름 동안 들판에서 식하며, 비로소 가을이 되면 집안으로 들어온다. 가을 밤 아낙들이 외롭게 베를 짜면 귀뚜라미가 벗이 되어 울어댐이 흡사 베 짜기를 재촉하는 듯하다 하여 이름을 촉직이라 한 것임.

 

 

 

 사찰안내

아리

 전통사찰을 가보면 외국인 한두 명을 이끌고 안내를 하는 한국인 가이드를 자주 본다. 그러면 나는 지나가는 행인인척하며 살짝 다가가서 사찰안내를 어떻게 하나 엿들어 본다. 대부분의 가이드들은 불교를 모를 뿐더러 불교미술에 관련하여 아는 바도 없이 사찰안내를 하는 것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법당에 있는데 자주 보아왔던 모습으로 한국인 청년이 외국인 부부를 안내하며 법당을 들어섰다. 영어로 안내를 제법 오랫동안 안내를 하더니 나에게 다가와서 묻기를 "왜 법당에 불상을 모셔놓았으며, 왜 저런 형상에 대고 절을 하느냐"는 거였다. 대답이야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불제자들이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께 예경할 때 어떠한 마음으로 하는지 알려주었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부처님은 돌아가시지 않았느냐"며, 왜 죽은 자에게 절을 하는지 이해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뭐라뭐라 영어로 제법 길게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며 유창하게 영어를 못하는 내가 못내 아쉬웠다.
 우리나라에 있는 박물관에 불교문화재가 얼마나 많은지 두 말 하면 잔소리이다. 가끔 궁금해지는 것은 그렇게 많은 불교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박물관의 직원 중에 불자들이 얼마나 있으며, 행여 불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불교를 얼마나 바로 알고 있을지 염려가 된다. 행여 도시나 시골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십자가처럼 박물관도 기독교인들의 천국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하며 걱정이 앞서기도 하는 것이다.
 참선 제일주의 풍토를 가진 우리나라 승가에서 불교 문화재를 바르게 알고 있고 또 누군가가 물었을 때 전문가 수준은 아닌 어느 정도라도 설명해줄 수 있는 스님들은 몇 분이나 될까? 그것마저 재가자의 몫으로 떠 넘겨 지는 것은 아닌지...
 영어라면 'Where are you from? 정도밖에 못하는 나이지만, 언젠가 우리의 불교문화재를 유창한 영어로 소개할 수 있는 날을 상상하면서 영어로 소개하는 사찰 안내문이나 문화재 관련 서적은 보이면 사놓는다.

 

 

 

 

안환선

 

 안환선 -현대인- 종이에 채색 152x112Cm   2005년 (제23회 경북미술대전 한국화부분 입선作)

 

 

 

 돈 많이 버셨어요

문옥선

 개업한 집에 가서는 너도나도 돈 많이 벌라는 얘기로 꽃을 피운다.  듣기 좋고 하기 좋은 말이다.  예전에는 이런 인사말과 함께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사업을 잘 일으키라며 성냥이라든가 거품일 듯 부를 일구라고 세제 등을 선물하곤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봉투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다.  어떻든지 돈 많이 벌어서 부자되라는 말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지만 가진 것도 힘임을 알기 때문이다.  원수 같은 돈이라면서도 그 원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속의 우리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 없이 산다는 것은 한편으론 고단한 삶을 의미한다.  일부러 그런 삶을 택하지 않고서야 즐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진심으로 돈에 무심하며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인정에는 메말라가면서도 돈에 대한 집착만은 점점 더 강해지니 말이다. 우리나라에 빈곤층이 7백만이 넘었다는 기사를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다. 흔히들 술이 술을 마신다고 한다.  돈도 그러는지 빈곤층들과는 달리 부자들은 더 크게 더 높이 부를 축적해 간다. 성실히 일해서 땀 흘린 대가로 부자가 되었다면 그런 부자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힘들다며 농담 삼아 건네는 "돈벼락이라도 맞아보고 싶다"는 우스갯소리가 우습지가 않다.  '횡재가 횡액을 낳는다' 했거늘 돈벼락도 벼락이라면 어찌 반기랴.  
 의식주에 궁핍만을 느끼지 않아도 부자 일 것 같은데 돈이 넘쳐 나야만 부자라고 한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도 못하다’는 얘기는 아마도 돈하고는 무관한 모양이다.  갑자기 돈타령을 하는 이유가 있다.  어느 날 퇴근길의 차안에서였다. 두어 번의 안면만이 있던 사람에게서 “돈 많이 벌었어요?”라는 느닷없는 질문을 받았다.  뭔 뜬금 없는 돈이란 말인가?  무슨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럴 때 누군가로부터 제지를 당한 느낌은 어이없는 황당함이다.  그게 왜 그 사람한테 궁금해야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농담할 기분은 아니었다. "내 모습 때문이었을까?"
 나는 일하기에 편한 옷을 입는다.  아무리 옷을 잘 차려 입는 것이 큰 것이라지만 말이다. 상대방이야 묻고 싶었을지 몰라도 듣는 난 어색하고 불편했다. 돈 얘기라서 그랬다. "얼마큼 벌어야 많이 번 것이 되는 걸까?"  무엇보다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돈이 좋은 화제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언제 어디서건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돈하고 상관없이 기분 좋은 날과 행복한 날들이 많다. 솔직히 많이 벌 자신도 능력도 부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절약하는 쪽으로 열심이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한 내 손으로 해결한다.  그러니 내 수족을 부리는 것 또한 내가 가진 부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에는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난 많은 돈을 벌려고 애쓰는 사람이기보다는 잘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돈을 살찌우는 사람이 아닌 내 자신을 살찌우는 사람이길 원한다. 그렇다고 돈이 싫다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나 빈 지갑을 들고서 집을 나설 용기는 없다. "많이 벌었다"고 했더라면 그 사람 표정이 어땠을까?
 고목의 시원한 그늘이 돈하고 상관있는 일일지 궁금해지는 날이다.  돈을 보았다.  돈이 보이는 세상이었다.  빙빙 도는 세상이었다.  돌아야 할 것은 돌아야 한다.  안돌면 병된다.

 

 

 

 꿈을 담은 교구

장남지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두 가지 교구를 소개할까 합니다. 아시겠지만 시각장애 학생들은 학습을 할 때나 어떤 놀이를 할 때도 촉각이나 청각을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청각이나 촉각이 일반인들에 비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죠.
 오늘 소개 드릴 '골볼'이라는 게임은 일종의 스포츠입니다. 축구를 시각장애 학생들이 사용하기 위해서 청각적인 요소를 가미했다고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경기장의 넓이나, 놀이를 할 때 착용해야 하는 도구, 사용하는 기구들이 조금 수정되어 있습니다. 공의 소리를 따라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으로 다소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실제 경기는 선수들이 얼굴보호를 위한 보호대를  착용합니다.


 저희는 '미니골볼'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서 유아들이나 처음 골볼을 경험하는 시각 학생들을 위해 작게 축소를 시켜 구성해보았습니다.
 사진1에서 두 개의 공이 있죠? 겉보기에는 달라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는 겉에 굴러갈 때 소리가 나도록 셀로판지를 붙여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고, 나머지 하나는 겉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지만 공안에 소리나는 방울을 넣어서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공을 가지고 하는 많은 게임들을 이렇게 소리가 나도록 변형이 가능하다면 시각장애 학생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사진 2와 3에서 보듯이 미니골볼의 골대는 처음 골대의 위치를 알리거나, 아직 방향 정위가 확립되지 않았거나, 골을 넣었을 때의 성취감을 위해 미니골대에 방울을 달아 놓았습니다.
 

사진4는 저시력 학생들의 환한 종이의 눈부심을 막기 위한 교구로 '타이포스코프'라는 교구입니다. 글을 읽을 때 읽는 줄의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검은색으로 처리함으로써 눈부심을 막아주고 글의 위치도 잊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줄글의 크기는 학생의 언어습득수준이나 나이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고 쉽게 제작이 가능하여 손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교구이지만, 읽기가 산만한 학생이나, 읽기가 아직 서툰 학생들에게도 동기유발도 되고 더 집중도 잘 될 것 같아 권해드리고 싶은 교구입니다.
 요즘은 매체나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서 안내견이 생소하지는 않으시죠? 곧 안내견을 주제로한 공익광고가 TV매체를 통해 소개된다고 하던데 그 광고에 나오는 안내견 주인과 안내견이 저희 학교 스타 '강토'와 유석종군입니다^^ 제가 좋은 인연에서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시지요? 작은 관심과 성원 바랄께요^^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 - 經卷第三-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喩 고客駝死喩 磨大石喩 欲食半병喩 奴守門喩 偸리牛喩 貧人能作鴛鴦鳴喩 野干爲折樹枝所打喩 小兒爭分別毛喩 醫治脊루喩 五人買婢共使作喩 伎兒作樂喩 師患脚付二弟子喩 蛇頭尾共爭在前喩 願爲王剃鬚喩 索無物喩 답長者口喩 二子分財喩 觀作甁喩 見水底金影喩 梵天弟子造物因喩 病人食雉肉喩 伎兒著戱羅刹服共相驚怖喩 人謂故屋中有惡鬼喩 五百歡喜丸喩

(五七)?長者口喩
昔有大富長者。左右之人欲取其意皆盡恭敬。長者唾時。左右侍人以脚답각。有一人愚者。不及得답。而作是言。若唾地者諸人답각。欲唾之時。我當先답。於是長者正欲咳唾。時此愚人卽便擧脚답長者口。破脣折齒。長者語愚人言。汝何以故답我脣口。愚人答言若長者唾出口落地。左右諂者已得답去。我雖欲답。每常不及。以是之故。唾欲出口擧脚先답望得汝意。凡物須時時未及到。彊設功力返得苦惱。以是之故世人當知時與非時

57. 발로 장자의 입을 친 하인
  
많은 재물을 가진 장자가 있었다. 좌우의 여러 사람들은 그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아첨을 다하였다. 심지어 장자가 가래침을 뱉을 때, 좌우의 사람들이 재빨리 밟아 흔적을 없애 버렸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가래침이 땅에 떨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재빨리 밟아 문질러 버린다. 그렇다면 나는 그가 뱉으려 할 때에 먼저 밟으리라." 그때 장자가 막 가래침을 뱉으려 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곧 다리를 들어 장자의 입을 쳐서 입술이 터지고 이가 부러져 버렸다. 장자는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왜 내 입을 쳤느냐?” 그러자 “장자의 침이 입에서 나와 땅에 덜어지기만 하면 좌우의 아첨하는 사람들이 어느새 밟아 버립니다. 나는 아무리 밟으려 하여도 늘 따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침이 막 입에서 나오려 할 때, 먼저 밟아 장자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무릇 어떤 일이거나 때가 있는 것이니, 때가 아직 이르기도 전에 억지로 애를 쓰면, 도리어 괴로움을 당한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은 마땅히 ‘때’와 ‘때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五八)二子分財喩
昔摩羅國有一刹利。得病極重。必知定死。誡칙二子。我死之後善分財物。二子隨敎於其死後分作二分。兄言弟分不平。爾時有一愚老人言敎汝分物使得平等。現所有物破作二分。云何破之。所謂衣裳中割作二分槃甁亦復中破作二分。所有분강亦破作二分。錢亦破作二分。如是一切所有財物盡皆破之而作二分。如是分物人所嗤笑。如諸外道偏修分別論。論門有四種有決定答論門。譬如人一切有皆死此是決定答論門。死者必有生是應分別答。愛盡者無生。有愛必有生。是名分別答論門。有問人爲最勝不。應反問言。汝問三惡道爲問諸天。若問三惡道人實爲最勝。若問於諸天人必爲不如。如是等義名反問答論門。若問十四難。若問世界及衆生有邊無邊有終始無終始如是等義。名置答論門。諸外道愚癡自以爲智慧。破於四種論作一分別論。喩如愚人分錢物破錢爲兩[暇-日]

58. 동전을 둘로 나눈 형제
 
마라국에 어떤 부자가 있었다. 그는 병이 매우 위중하여 곧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두 아들에게 분부하였다. “내가 죽은 뒤, 재산을 잘 나누어 가져라.” 두 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뒤, 재산을 두 몫으로 나눌 때, 형이 아우에게 말하였다. “나누는 것이 공평하지 못하다.” 그때 어떤 이가 형제에게 말했다. “공평하게 물건을 나누는 법을 가르쳐 주리라. 그러니 지금 있는 모든 물건을 부수어 두 몫으로 만들어라.” “어떻게 부숩니까?” “옷은 반으로 찢고, 밥상이나 병도 부수어 두 몫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동이나 항아리도 부수어 두 몫으로 만들고 돈도 부수어 두 몫으로 만들어라.” 이리하여 모든 재산을 두 몫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비웃었다.
 그것은 마치 저 외도들이 흑과 백으로 분별하여 닦는 것과 같다. 모든 외도들은 어리석으면서도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돈을 부수어 두 조각을 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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