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9(2005)년 8월호 Vol.5,No.55. Date of Issue 1 Aug ISSN:1599-337X 

 

 

 

 

 

 

 

 

 가족법회

범수

 경북 지역의 명산인 팔공산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는 두 평 남짓한 법당이 자리한 도봉산(到鳳山) 신흥암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창건하셨다고 전해오는 천년고찰이다. 지금의 대웅전은 원 사찰 터에서 대략500m 정도 내려와 자리하였지만, 그래도 안대(전망)가 좋은 편이다. 신도는 대략 서른 가구정도이며, 대부분 농사를 짓는데 일 년 중 정초, 부처님 오신 날, 칠석, 동지 때만 절에 오신다. 이분들 가운데 젊으신 분이 육십중반이라는 사실이 고령화 지역을 실감나게 하는데, 이런 사정 때문인지 평상시 사찰을 찾는 분은 전무하지만, 명절 때 고향을 찾았다가 참배하는 경우는 더러 있다. 그럴 때면 평상시 가족법회를 유도하는 필자인지라, 일부러 시간을 내어 함께 차를 마시기도 한다. 아마 정초 때인가? 가족이 함께 절에 들려서 기도에 동참하고 싶다며, 축원문을 작성할 때였다. 가족들의 이름을 쓰고 난 다음 자녀에게 물어 보았다. "종교가 있냐?"고. 그러자 그와 그의 부모님은 서로 궁금한 듯 마주쳐다 보았다. 그래서 "조상 대대로 여기 절에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였으며, 또한 지금 가족을 위해 기도하려고 하니 궁금해서 물어 보는 것"이라고. 그러자 "사실은 종교가 없습니다."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뒤로 하고, 필자가 벌여 놓은 일이기에 마무리 짓기 위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종교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그리고 불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지? 또 현재 자신의 삶에서 지침이나 귀감으로 삼는 것이 있는지?' 등이었다. '특별히 종교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불교나 다른 종교가 다같이 신관(神觀)에 입각한 것이기에 굳이 구분 지어 선택할 이유가 있나?'는 식이었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도 특별한 지침이나 귀감으로 삼는 것은 없고, 그냥 흔히 하는 발로 나쁜 짓 하지 않고 잘되면 되는 것 아니냐?' 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필자가 예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부모의 종교적 행위가 자녀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종교적 행위에 따른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성을 이해하기 보다는 단지 부모의 삶 가운데 한 부분 정도로 인식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육체적, 경제적 자립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다니지만, 전혀 감화나 감동을 못 받음으로써 가족을 위한 기도에서도 자신과는 무관한 부모만의 일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럼 상반되는 다음 두 가지 경우를 보자.
 어느 신도분이 있었다. 그 집의 자녀는 어릴 적부터 사찰의 여러 행사에 부모와 함께 참석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귀여움을 받았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된 후 종교가 바뀌어 있었다. 또 어느 신도분은 자신이 한글을 막 깨쳤을 때, 어머니께서 불교의 경전을 내 주며 "어미가 글이 잘 안보여 그러니 읽어 달라"고, 그렇게 아이가 또박또박 경전을 읽고 나면, 어머니는 합장을 하며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이 두 가지를 떠 올릴 때면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感動), 좋은 영향을 받아 생각이나 감정이 바람직하게 변화하는 감화(感化), 남의 인격, 사상, 행위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는 존경(尊敬)', 등을 떠올려 본다. 이것은 주위 깊게 살펴 볼 부분으로써 우리들은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산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살든지 정작 그에 걸 맞는 행위로 상대에게 감화를 주며,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감화를 받는가?에 대하여 헤아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이야기의 원점으로 되돌아 와서, 그 학생이 '불교가 신을 섬기는 종교이다'고 하는 부분은 간단히 줄여서 말하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불교는 관념의 우상인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을 성취하며, 단순히 착하게 산다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중생구제에 그 특성을 둔다. 따라서 불교에 대한 그의 생각은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대로 판단하고, 개념지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여태까지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사실인냥 착각하고 있었다는 점이 분명해짐에 따라, 그 학생의 말 수는 줄어 들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그 학생이 모르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고 인정하기 보다는,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 모른다고 인정하기 싫어서 그저 침묵하는 것이 아니길 바라면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불교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행위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의 정화와 노력을 통하여 우리에게 원래 갖추어져 있는 능력을 드러내는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격적 완성도를 높여가며, 이웃에게 이로움을 펴 함께 행복해지 것에 목적(上求普提 下化衆生)을 두지만, 한편으로는 공경할 만한 상대의 행위에 대하여 감화내지 감동을 받아 들여 자신을 정화시키는지, 또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감화나 감동을 주어 상대의 발전을 도모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 행위가 혼자만의 안위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까닭인데, 특히 자녀들을 둔 분이라면, 자신의 종교적 행위에 대하여 자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내가 믿으니, 너희도 믿으라'든지 또는 '너를 위해 기도하는 것 알지?' 보다는 신행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을 통해 자발적인 동참과 이해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기뻐하며 축하 할 일이 생겼을 때 상대를 위해 기도하며, 또 그것을 같이 나누고, 걱정과 참회를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도 역시 종교적 행위를 함께 함으로써, 스스로의 고통이나 잘못에 대하여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서 축하나 기념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종교적 행위를 같이 하여,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사랑과 정성을 쏟는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또한 잘못을 하였을 때도 단순히 훈계나, 야단에 그치지 않고 함께 참회를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며, 참회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의 종교적 행위가 한 단계 성숙해질 뿐만 아니라, 가족이 신행활동을 함께 하는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꿈을 담은 교구(敎具)

장남지

이번에 소개해 드릴 것은 지문자를 익히기 위한 교구입니다.  청각장애인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름다운 손 말, 수화를 모두 아시지요? 수화는 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고 그 손으로 하는 말이 아름다워 학교나 단체에도 여러 수화동아리가 있을 정도이죠. 하지만 지문자는 수화와는 조금 다릅니다. 수화는 손짓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지문자는 형만 가지고 있을 뿐 의미를 없습니다. ‘개나리’ 라는 단어는 의미가 있지만 ‘ㄴ’자체에는 의미가 없지요? 그렇듯 지문자는 수화로 제정되지 않은 특정 글자나, 대명사와 같은 말을 할 때 쓰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청각장애 학생들이 잔존청력과 독화(입모양을 보고 말을 이해하는 것)로 대화할 때 입모양으로는 구분이 어려운 음소의 경우(‘ㅂ’와 ‘ㅍ'와 같은 경우)에 지문자를 뺨에 표시하여 이해를 도울 때에 함께 사용하기도 한답니다.

지문자는 우리 한글의 자음, 모음(이중모음포함), 숫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글자의 모양을 따서 손의 모양과 방향을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 글자와 모양을 대응시켜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하지만 지문자는 사용하는 것 보다 지문자를 사용하는 사람의 손을 보고 읽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두 번, 세 번의 손모양을 거쳐야 되기 때문에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주 빠른 속도로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모든 지문자를 소개해 드리지 못해 아쉽지만 글자를 보고 지문자를 하나하나 자세히 보시면 모양이 비슷한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소개해 드리지 못하는 다른 것도 보기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봉’자를 보고 밑의 세가지 손 모양을 보세요. ‘ㅂ’은 손가락 네 개를 펼쳐보이고, ‘ㅗ’는 검지 손가락을 쥔 모양을 자신을 보도록 하고 ‘ㅇ’은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동그란 모양을 보이면 됩니다. 단, 모음 ‘ㅗ’의 경우 쥔 모양이 상대방에게 보이도록 하시면 ‘ㅏ’가 되기 때문에 주위하셔야 합니다.^^ 어렵지 않으시죠?

지금 보시는 지문자는 숫자입니다. 벌써 아시겠죠? 역시 하나를 알면 열을 아시는걸요? 왼쪽부터, 1, 2, 3, 5입니다.
청각장애, 하면 전혀 듣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은 조금이지만 잔존청력을 가진 경우가 더욱 많습니다.

(사진 128) 그리고 요즘에는 직접 음성신호를 청신경에 연결하는 수술이 많이 발달해서 실질적으로 소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법, 그리고 말하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더욱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tip> 알아맞춰 보세요^^ 정답> ㅈ ㅗ ㅎ ㅇ ㅡㄴ ㅇ ㅣ ㄴ ㅇ ㅕ ㄴ

 

 

 

 나에겐...

아리

나에겐 수호신장들이 이 모래 알보다도 더 많이 있다.
그들은 위험 속에서 나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타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에게 행복을 주며,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이를 위해 기도를 해주며,
타인의 아픔을 같이하는 이를 위해 옆에 있어주고,
타인의 기쁨을 함께 하는 이를 보고 기뻐해준다.

그들은 한줌 햇볕 속에도 있고,
한줄기 빗속에도 있으며,
내 볼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도 있고,
내 가족의 눈빛 속에서도 있으며,
내 이웃의 따스한 손길에도 있다.

때론 나뭇잎 뒤에 있다가 나에게 들키기도 하지만,
난 못본 척 해준다.
울 집 항아리 수련 잎사귀 밑에 숨어 있지만 난 모른 척 한다.
행여 내가 수렁에 빠질까 언뜻언뜻 내 주위를 맴돌기도 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수렁을 비껴갈 수 있음을 안다.

어떤 때는 책 속에 숨어 있다가 후다닥 달아나지만
난 쫓아가 붙잡지 않는다.
그들은 나 모르게 있고자 하지만,
난 그들이 어디에 어떻게 숨어있어도 알아챈다.

 

 

 

 

안환선

 

 안환선 -허상- 종이에 채색 152x112Cm   2005년 (제25회 대구미술 및 공예대전 한국화부분 입선作)

 

 

 

 밤비소리

문옥선

 장마비가 세차다.  컴컴한 밤이라고 다르지 않다. 수없는 세월동안 내렸음이다. 잠시 쉬어가던 바람이 다시 거세다. 바람불면 비 오고, 비 오면 바람 부는 것이, 바늘 가는데 실 가고 실 가는데 바늘 가기다. 덜컹 거리는 소리에 베란다로 나갔더니, 굵은 빗발이 보란 듯이 유리창에 내리 꽂힌다. 곧기만 한 것을 휘게 한 것은 순전히 바람 탓이다. 열어두었던 창문을 서둘러 닫았다. 빗물은 이미 안으로 흥건히 스며들었다. 이곳은 마치 바닷가처럼 바람이 분다. 산이 막고 있는데도 유난스럽다. 이사 온 첫해에는 비바람 치는 날에는 잠을 설쳤다. 그러나 이제는 비바람이 치는 날이라고 해서 못자는 것도 아니다.  무뎌진 건지 적응이 된 건지 세월 덕이다. 그러나 가끔은 빗소리를 듣기 위해서 일부러 잠을 설친다.
 낮 비 는 낮, 비대로, 밤비는 밤비대로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으니 좋다. 엊그제는 비가 내리던 와중에도 반짝하던 날이었다. 날이 맑으면, 시골사람들은 어디부터 가야할지를 모른다. 밭으로 가랴, 논으로 가랴, 산으로 가랴, 고추밭, 콩밭, 과실 밭,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온통 사람손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날은 햇빛갈래만큼 부산한 날이 되고 만다. 그 날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던 아낙이 찾아왔었다. 몸집마저도 당글당글했다.  그 땡볕 더위에 콩밭에 가야한다고 했다.  “일하기 좋도록 비가 왔으면 좋겠지요?”  비라도 맞아가며 일을 한다면 더위는 피할 것 같아서 건넨 말이었는데 “아뇨, 덥더라도 차라리 맑은 날이었음 좋겠어요.”하고 만다.  장마철의 햇살은 누구라도 반갑다.
 한밤 비의 향연을 지켜보다가 문득 뜬금 없는 생각을 했다. 내일아침이 나에게서 떠난 경우를 떠올렸다. 준비를 전혀 해놓지 않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남은 사람을 위해서 최소한 무슨 말이라도 해둠이 옳을 것만 같은데 말이다. 무엇부터 준비를 해야 할까?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미리 써둘까?  그렇다고 사진을 미리 찍어 두지는 않겠다. 사진은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그다지 마음 내키는 일이 아니다.  연필로 내 얼굴을 직접 그리고 싶다. 처음부터 잘 그릴 수 없을 테니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연필이 제격일 것이다. 젊은 날 유행하던 ‘얼굴’이란 노래를 부를 때처럼 처음에는 동그라미로 시작하면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은 말들을 차근차근 적어두어야겠다. 갑자기 바빠지는 것 같다. 언감생심 "모월모시에 가노마"라고 알려줄 수 없음은 자명할 테니 말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뭔가를 이루어 놓고 가야했다면, 난 무엇을 이루려고 했을까? 솔직히 아직까지 이루어놓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뭘 이루려고 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다. 겨우 무식만을 면해보려고 애를 썼다지만, 그건 그저 무식에 대한 것일 뿐 유식이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무지의 바다를 헤맨 나날들이 그 얼마인지를 모르겠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미안하거나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 길을 누가 막은 것도 아닌데, 난 내 자신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리는 비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뜬금없는 생각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말았다.  이 또한 내 탓일 뿐, 네 탓이 아님을 너는 알리라.  아무래도 저 비가 오늘 밤을 또 새고 갈 모양이다.

 

 

 

 캄보디아/베트남 여행기

도난주

*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4월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여러 사원주위에는 크고 작은 장들이 있습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해서인지 주로 음식과 옷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음식은 개구리를 시작으로 다양한 동물들이 통채로 진열되어 있습니다. 사원군 안에 포함되어 있는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왔던 우리들은 그 통구이에 정신이 팔려 모든 것을 잊어 버릴 정도였습니다. 목과 발이 그대로 달려있는 닭 통구이와 개구리 통구이를 시도해 보았지요. 시큼한 맛을 내는 특이한 과일과 함께 몸에 좋을 것 같다는 핑계로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워 버렸죠. 순간 정말 동물같이 느껴졌습니다.
 앙코르 사원 앞에는 다양한 앙코르 와트 군들의 사진과, 캄보디아 사진을 모아놓은 엽서 그리고 지도를 파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경우에 바가지를 쓰거나, 믿을 수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 시도하지 않지만, 지나고 나서 많이 후회하게 됩니다. 그것은 공항면세점에서 5배정도 비싼 가격으로 같은 물건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념을 하시고 싶은 분들은 꼭 이곳에서 구입하세요~ 특히 이곳에서는 많은 종류의 물건들과 순박한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영화 툼레이도를 찍었던 사원 앞에는 천연염색을 한 많은 옷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가격은 정말 저렴하여 2000원 정도이면 바지 한 벌을 살수 있으며,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이곳만의 특산품이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옷은 흥정을 잘하면 좀더 싸게도 살수 있지요^^

 

 

 

 어느 부모의 단상

이분향

 나는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났다. 죄 많은 여자라서, 딸 가진 죄인이라서 등등,,, 여자라서 받는 차별은 족히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 그래서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약자가 되고, 죄인이 되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죄 많던 시절이나, 다소 목소리가 날카로워진 지금이나 변함없이 누리는 특권이 있다면, 병역의 의무만은 면제 받았다는 것이다.
 요즘 이 땅 한쪽에서는 국적법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로 들썩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전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일로 그들의 부모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피눈물을 쏟고, 많은 사람들은 그로 인하여 분노하고 있다.
 누구는 비록 욕을 먹더라도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온갖 기회를 엿보면서도 오히려 당당하고, 또 누구는 뿌리니, 애국이니 따져볼 겨를도 없이, 그저 시절 인연이라 거부할 생각도, 이유도 없는 채 자연스레 보낸 아들들의 죽음으로  아비지옥의 고통을 참으며, 죄인으로 살아야 하니, 이 세상 이 땅에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에게 돌을 던지고 누구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지 헷갈리게 된다. 왜냐하면, 자식 앞에 부모는 중도의 경계를 지키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돌을 맞는 쪽이든, 박수를 받는 쪽이든 지금까지의 삶이 버겁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인가? 아무도, 그 어디에도 해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내 양심의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뿐.......
 당당하던 그도 부처요, 슬픔에 오열하던 너도 부처요,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못하는 나도 부처이니, 우리 모두 마음속 불성의 씨앗을 찾아 정성껏 가꾸는 수밖에,  그러면 훗날 우리의 자식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와 고마움에 박수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 - 經卷第三-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喩 고客駝死喩 磨大石喩 欲食半병喩 奴守門喩 偸리牛喩 貧人能作鴛鴦鳴喩 野干爲折樹枝所打喩 小兒爭分別毛喩 醫治脊루喩 五人買婢共使作喩 伎兒作樂喩 師患脚付二弟子喩 蛇頭尾共爭在前喩 願爲王剃鬚喩 索無物喩 답長者口喩 二子分財喩 觀作甁喩 見水底金影喩 梵天弟子造物因喩 病人食雉肉喩 伎兒著戱羅刹服共相驚怖喩 人謂故屋中有惡鬼喩 五百歡喜丸喩

(五五)願爲王剃鬚喩
昔者有王有一親信。於軍陣中沒命救王使得安全。王大歡喜與其所願。卽便問言。汝何所求恣汝所欲。臣便答言王剃鬚時願聽我剃。王言。此事若適汝意聽汝所願。如此愚人世人所笑。半國之治大臣輔相悉皆可得乃求賤業。愚人亦爾。諸佛於無量劫。難行苦行自致成佛。若得遇佛及値遺法人身難得。譬如盲龜値浮木孔。此二難値今已遭遇。然其意劣奉持少戒便以爲足。不求涅槃勝妙法也。無心進求自行邪事
便以爲足

55. 왕의 수염 깎기를 택한 사람
 
어떤 왕이 믿을 만한 신하를 두었다. 그는 전장에서 목숨을 돌보지 않고 왕을 안전하게 구하였다. 왕은 매우 기뻐 그에게 소원을 물었다. “너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 신하는 “왕께서 수염을 깎으실 때 저를 시켜 주소서.”라고 하자 왕은 “그것이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원대로 들어주리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를 비웃으면서 말했다. “대신이나 재상 자리도 얻을 수 있는데, 구태여 그런 일을 구하다니.” 어리석은 사람들도 이와 같다. 모든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세월 동안 어려운 행과 괴로움 행을 겪은 뒤,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혹 부처님을 만나거나 부처님이 남긴 법을 만날 수 있더라도 사람의 몸을 얻기란 매우 어렵다. 그것은 마치 눈 먼 거북이가 떠도는 나무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 이 만나기 어려운 두 가지를 이제 우리가 만났지만, 그 뜻이 용렬하여 조그만 계율을 받들어 곧 족하다 생각하고는, 열반의 훌륭하고 묘한 법을 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더 나아가 구할 마음이 없이 스스로 삿된 일을 행하면서도 곧 만족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五六)索無物喩
昔有二人道中共行。見有一人將胡麻車在험路中不能得前。時將車者語彼二人。佐我推車出此험路。二人答言與我何物。將車者言。無物與汝。時此二人卽佐推車至於平地。語將車人言與我物來。答言無物。又復語言。與我無物。二人之中其一人者含笑而言。彼不肯與何足爲愁。其人答言。與我無物必應有無物。其一人言無物者二字共合是爲假名。世俗凡夫若無物者便生無所有處。第二人言無物者卽是無相無願無作

56. 없는 물건을 청한 사람
  어떤 사람이 깨를 실은 수레를 끌고 험한 길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 수레꾼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저를 도와 수레를 밀어 주시오.” 그들은 대답하였다. “우리에게 무엇을 주겠소” 그러자 수레꾼은 “없는 물건을 그대들에게 주리라.” 라 하였다. 두 사람은 그를 도와 수레를 밀고 평지에 나와 수레꾼에게 말하였다. “약속대로 물건을 주시오.” 그러자 수레꾼은 대답하였다. “물건이 없다.”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그 없는 물건을 가져 오라.” 다른 한 사람이 웃음을 머금고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은 수레꾼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없는 물건을 가져 오라. 반드시 없는 물건이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없는 물건(無物)이라는 이 두 글자를 한 데 모으면 그것은 거짓 이름(假名)이다. 세속의 범부들은 만일 ‘없는 물건’이라 하면 곧 ‘아무것도 없는 것(無所有處)’이라고 안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없는 물건이란 바로 없는 모양(無相), 없는 원(無願), 없는 지음(無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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