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8(2004)년 10월호 Vol.4,No.45. Date of Issue 1 Oct ISSN:1599-337X 

 

 

 

 

 

 

 

 

 

 

 복(福)과 화(禍)는 둘이 아니다.

범수

 "사찰은 용광로와 같은 곳입니다."라고 필자는 즐겨 말한다. 그것은 모든 불순물을 태워 순수한 철만을 생산해 내듯, 사찰 역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든지 평등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학 다리와 오리 다리가 모두 똑 같다는 식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번뇌와 고통을 녹여 부처님의 세계 즉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곳으로서 '복을 닦고 죄를 멸하는(修福滅罪) 훌륭한 의지처(歸依處)'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신분이나 민족, 인종, 종교와 이념이나 사상에 관계 없이 법당(法堂)은 모든 중생들에게 항상 열려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인에게 열려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어떤 이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 마치 집에 보물을 두고서도 몰라 가난을 한탄하며,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보물을 보물답게 쓰는 것을 막지 않는데, 스스로 보물을 보물답게 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이 사찰을 찾는 개인의 입장이나 상황 또는 절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필자가 근래에 겪은 상반되는 경우를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멸복수죄(滅福修罪)
 필자가 거처하는 절 산에는 산 송이가 조금 난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7개면 1개읍을 합해 인구가 3만 정도밖에 안되며, 또 자연 경치도 그저 평범한 전형적인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도로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농로이고 대중 교통편도 불편하여 매우 한적한 이곳에 산에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주된 이유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산 송이 때문이라는 것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것은 산 송이가 나는 철이 아니면, 거의 방문객이 없는 걸로 봐서도 추측할 수 있는데 하여튼 필자는 산 송이를 딸 줄 모르기에 그저 산행만을 즐긴다. 그러다 도중에 사람들과 가끔 마주치기도 하는데, 한결 같이 필자를 보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바쁘다.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어린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들이 산 송이를 따기 위해 절 산에 들어오는 방법은 다양하다. 먼저 절이 아닌 다른 곳으로 해서 들어온 뒤 나가는 경우, 다른 산에서 절 산으로 들어와 목적을 이룬 뒤 다시 되돌아 가는 경우, 산에 등산이나, 산소에 간다고 말하는 경우 등인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절 소유의 산에 왠 산소가 그리도 많으며, 자주 찾는지...만약 효 사상이 잘 정립되어 있어서 그렇다면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올바르지 못한 업을 키우도록 방조하는 것 같아, 산 송이를 따는 두 곳에 산 송이를 딸 의향이 있는지 물었더니만, 두 군데 모두 의향은 있다고 하였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조건을 제시한다. 아무리 세상 물정을 잘 몰라도 그것은 아니다 싶어, 하는 수 없이 여러 가지를 종합하여 고려해본 결과, 일단 산 송이를 따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들은 안다. 이곳이 사찰이라는 것을,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한 사찰의 의미보다는 지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위해서 '복을 닦고 죄를 멸하는 곳(修福滅罪)에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복을 무너뜨리고 죄를 짓는다.(滅福修罪)'
 *수복멸죄(修福滅罪)
  평상시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이곳에 가끔은 방문객들이 올 때도 있다. 그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필자를 만나기 위해서 오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경우이다. 그 날도 혼자 차를 마시는데, 누군가 머뭇거리며 오는 이가  있었다. 행동거지가 좀 부자연스러웠지만,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때문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장모님의 건강 때문에 아이와 함께 부인은 친정에 가서 몇 달 뒤에 올 것이며, 지금은 노모와 함께 있는데, 마음도 울적하고 해서 왔다는 그와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일요일에 와서 풀을 베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보통은 유흥업소나 오락시설을 찾아 시간을 보낼텐데 말이다. 그 뒤 본인이 말 한대로 절에 와서 필자가 낫으로 베기 어려워 남겨둔 곳의 풀들을 기계로 말끔히 정리해주었다. "절에 와서 일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요구가 없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사찰에 다니는 것을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관련시키려던 씁쓸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절은 몸과 마음이 안심(安心)하는 곳이다. 사찰을 참배하는 것은 한 순간이라도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거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평안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며, 한편으로는 지치고 힘든 육체와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 법회와 기도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사찰에서 만난 것을 빌미 삼아 경제적 이익을 위한 상업적 영업행위를 하려는 것을 평범한 사람이 봤을 때 어떤 생각을 가질까?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지금하는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이 수복멸죄(修福滅罪)하는지 아니면, 멸복수죄(滅福修罪)하는지 스스로 살펴 볼 일이다.

 

 

 

 그림일기

김경연

제목: 언니들이 온 날
 작은 엄마께서 남경이 언니, 경은이 언니, 덕현이를 우리집에 데려다 놓고 바쁘시다고 금방 가셨다.
 경은이 언니와 스킨 다이빙을 배우고 와서 덕현이와 게임기도 하며 놀았다. 경은이 언니가 방학 숙제로 가족 신문 만들기로 하여 도와주었다. 같이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도 먹고 왔는데, 나는 오랜만에 언니를 보니까 너무 좋았다. 엄마는 정신이 없고, 피곤해 보였다. 왜냐하면 극성맞고 소란스럽기 때문이다. 언니들이 가고 나면 엄마는 아파 누울 것 같다.

 

제목: 덕현이와 싸운 날
 시골 할머니댁에 내려와 덕현이와 싸웠다. 남경이, 경은이 언니는 내 말도 듣지 않고 야단 쳤다. 나는 속상해서 울었다. 울 때 차 안에서 엄마가 말씀하셨다. "경연아 언니들이 있을 때 덕현이와 싸우지 말고 언니한테 말대꾸 하지마. 니가 셋을 어떻게 당해? 참는게 이기는 거란다.""알았어요 엄마" 엄마는 많이 속상한 것 같다. 하지만 덕현이는 너무 말썽 꾸러기다. 참으려고 해도 자꾸 놀린다. 언니들과 덕현이가 밉다.

 

 

 

 행복

문옥선

 두어 달 남짓 썼을까, 그새 로션이 말갛게 비워졌다.  아쉬운 마음에 손바닥에 대고 톡톡거려도 도장이 찍히듯 붉은 동그라미만 그려낼 뿐이었다.  스킨을 몇 방울 떨어뜨려 흔들어준 후에야 바닥틈새에 끼어있던 잔량들이 미끄러지듯 흘러나왔다. 마치 희귀품이라도 되는 양 미련이 남아 새끼손가락을 넣고서 빙그르르 돌리니 미처 흐르지 못한 희미한 향은 손끝으로 스며져 나왔다. 비싸서도 귀해서도 아닌데, 바른 듯 만 듯 잔잔하고 은은한 것이 내 기호에 맞아 이것만을 찾게 된다.  비록 흔하디 흔한 제품일지라도 어떤 의미를 부여했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처럼, 특별히 마음 담긴 선물이었기에 더 살뜰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이던가, 동생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었다.  뜻밖에도 조카의 장학금으로 선물을 사려고 하니 필요한 것을 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비는커녕 용돈까지 안준 것을 고사하고라도 그 선물을 어찌 받아쓸까, 그러나 철딱서니 없는 난 감동으로는 모자랐는지 기어코 필요한 것을 떠올렸다. 로션을 사려던 차에 필요한 것을 말해 달라니 얼른 떠오르는 생각이 로션이었다.  “로션”했더니, 동생은 자기가 번 돈이라도 되는 양 내 몫이라며 거금 5만원을 선뜻 송금해주었다.  결국 난 그 돈으로 로션을 사게 되었고, 매일매일 거울 속의 나를 보며 토닥거렸다. 능숙한 손놀림대신 저만치 멀어져 간 시간, 누군가의 관심과 배려만으로는 지난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일까?  어쨋거나 이럴 경우 누구라도 기특하고 대견한 느낌이 들었을 것만 같다.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건대, 그때의 은사님도 이런 느낌이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담한 체구의 은사님은 짙은 곤색 양복을 즐겨 입으셨는데, 학생이던 아들이 대회에 나가서 타온 상금으로 아버지께 선물한 것이었다.  양복을 입을 때마다 뭉클한 감동을 일으켰을 은사님의 심정을 이제 조금쯤은 헤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장미꽃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이 꿈이었다던 은사님, 장미꽃만이 장미향을 풍기는 것을 아닐것이니,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꿈과 향기가 간직된 교정에 계신 은사님은 아마도 오래 전에 이미 그 꿈을 이루셨는지도 모른다.
 하루 이틀이면 오갈 거리면서도 서로들 바쁜 탓에 전화로만 소식을 묻곤 하는데, 그 때가 생후 몇 개월이었는지, 다른 날과 달리 주먹을 발끈 쥐고서 방안을 빙빙 돈다며,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봤었는데, 벌써 중학생이 되어 진학을 앞두고 있다니, 세월이 조카라고 비켜 갈리 만무하다.  어릴 때부터 치킨을 좋아했는데 지금도 좋아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여자친구도 있는지, 이모구실을 해보려고 머리를 또르르 굴려 봐도 떠오르는 추억이라곤 없어 갑자기 염치없고 미안해진다.  
 치킨 하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긴 하다.  조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IMF 시절이었는데 하루는 “IMF 들어서 치킨을 한번도 못 먹었어요.”하더라나?. 알뜰하다 못해 허투로는 돈을 쓰는 법이 없던 동생은 웃자며 내게 들려줬으나, 결국 이 얘기가 빌미가 되어 한동안 나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었다. 생각하니 흐뭇하다. 내게 조카들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동생부부가 행복해하는 것이, 그들이 서로에게 삶의 의미인 것들이 그렇다.  이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내 몫의 행복인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받은 이 뭉클했던 감동들을 되돌려 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나에게도 올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연인

조혜숙

  <집으로 가는길>,<상하이 트라이어드>등을 만든 장예모 감독의 최근 행보는 기이하리만큼 전작들과 판이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작년에 개봉한 <영웅>에서(이 영화는 얼마 전에 동양권 최초로 美 박스 오피스 1위를 하기도 했다.) 전에 없던 스펙타클을 도입하여 관객들을 놀라게 했었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연인>. 이 영화도 기본적 스타일은 장예모가 <영웅>에서 보여주었던 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동적이면서도 정적구도가 많이 들어간 전투묘사나, 의상의 화려함(<영웅>에서 보여주는 원색의 스타일을 그대로 차용한다.)  그리고 스펙타클... 최근에 나온 두 영화는 장예모에게 좀 더 많은 관객을 가져다 주었으나, 자신을 지지하던 몇몇 관객들을 떠나게 만들었지 않았나 한다. 그것은 장예모에게 더 이상 예술가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자체가 힘들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황금기였던 당나라. 그러나 서기 859년, 당 왕조는 바야흐로 쇠퇴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무능한 왕조와 부패한 대신들로 나라 전체가 불안에 휩싸이자 반란군이 들끓는다. 그 중 가장 이름 난 반란조직이 바로 '비도문' 이다.  비밀조직인 비도문은 민중에게 관에 저항할 것을 호소하고 자유를 추구한다. 도성 근처에 위치한 팽티안 지방에 출몰하는 비도문은 민중을 혼란시키고, 관의 힘을 약하게 하여 지방 관리들에게는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비도문이 관과 싸워온지 수년이 흐르고, 우두머리가 전투에서 살해당하게 되지만, 이후에도 조직은 점점 세를 얻어간다.

 결국 팽티안 성의 관리인 리우(유덕화)와 진(금성무)은 열흘 안에 이 조직의 새로운 우두머리를 잡아오라는 명을 받는다.
레오는 인근지방 홍등가에 새로 나타나는 무희인 샤오 메이(장쯔이)를 의심하게 되는데, 실은 그녀는 죽은 비도문 두목의 딸이다. 리우는 메이를 데려다 심문을 하지만 입을 열지 않자 다른 수를 꾸민다. 진으로 하여금 '풍' 이라는 떠돌이 무사로 변장을 하게 해 메이를 감옥에서 구출한 뒤 그녀의 신임을 얻어내고 함께 '비도문'의 은신처로 떠나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들의 계획은 성공을 거둬 결국 진과 메이는 은둔처까지의 긴 여정을 함께 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는 베일에 싸인 자신의 동반자에게 점점 감정을 갖게 된다. 진 역시 메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둘은 서로의 감정을 부정하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마음은 더욱 더 서로를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진을 정말로 죽이려는 낯선 무사들이 나타나고, 비도문은 점점 실체를 드러낸다.
 이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치달으면서 반전에 반전을 시도하려 한다. 그러나 이 반전이 영화를 망치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인물들의 캐릭터는 이리저리 튀어 다니고 내용의 전개 또한 갑자기 뚝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장쯔이가 죽는 장면에서는 심각한 장면인데도 관객들이 비웃게 되는 어이없는 결과를 낳는다. 이 영화는 과연 이것이 장예모의 영화인가 할 정도로 스토리 구조가 엉망이다. 영화에서의 반전의 구조는 <영웅>에서와 별 다를 바가 없지만, 영웅에서는 특이한 내러티브와 각 이야기마다의 서로서로의 스토리를 보완해 주는게 있었다면, <연인>은 조각 낸 한가지 이야기를 맞추는데 실패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영화라는 예술적 매체를 갤러리로 만들어 버린 장예모의 독특한 미장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영화 초반부의 샤오 메이(장쯔이)의 무용 장면은 화면 미학의 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영웅>에서부터 보여줬던 인물들의 복식, 허공을 가르는 물방울 같은 디테일, 무술을 예술로 만들어버린 정소동의 무술 지도 등...
 이 영화는 이와 같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단지 아름답다는 말 밖에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영화에 새로운 리메이크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생각

이명숙

 오늘은 아버지를 보고 싶어 마냥 울었습니다. 곧 잘 T.V.를 보다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도, 좋은 곳을 구경하다가도, 문득 그리고 순간적으로 아버지를 보고 싶어집니다.
 2남3녀중 막내이지요. 어머니는 계시지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3년째 되고 있습니다. 마음이 약하셨던 분이지요. 못해드린 것을 어찌 말로 다할 수 가 있나요? 그저 마음 한 구석 쌓아 놓을 뿐입니다. 막내를 위해 무거운 농작물을 가지가지 담아 지고 오셨답니다. 힘들 때 금전적으로 도와주지 못함을 애타하셨고, 집을 사서 이사하던 날 제 손을 잡아 주시며 "수고했다. 고생했겠구나." 하시던 아버지였답니다.
 이젠 능력이 되어 보살피려 되돌아보니 아버지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시며 아버진 힘들다 하시며, 이제 손을 놓고자 했지만, 아들 딸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버티어 달라고 애원하였답니다. 그렇지만 안되는 일은 안되는 것이었나 봅니다. "임종을 집에서 하라"는 의사의 마지막 한 마디에 우린 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진짜가 봐, 아버지가 진짜로 돌아가신대 진짜로 죽는대, 아버지가 진짜로 돌아 가신대, 어떻게 해 엄마" 우리들은 넋 나간 사람들처럼 이런 말만 되풀이하며 가슴을 쥐어 뜯었습니다.
 아버지방에 도착하신 아버지는 조용히 엄마와 오빠 언니들을 옆에 두고 마지막으로 눈을 뜨셔서 우리를 보아주실 때, 큰 오빠께서 두 손을 머리에 감싸며 "아버지 잘 가세요. 엄마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잘 가세요"하셨다. 우린 그저 아버지 가지 말라고만 하였다. 아버진 눈을 감으셨고 아직까지 종종 믿지 못해 아버지를 불러 본다.
 힘든 일이 생길 때 마다 아버지가 더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돌아가신 뒤 후회하지 않으려고 엄마에게 잘하하려고 노력합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볼 수 없는 헤어짐이 제일 슬프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눈물이 자꾸만 난답니다. 이제는 눈물을 보이면,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엄마 할아버지 보고 싶어 그러세요?" 한답니다. 어디에서든 '아버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답니다. "왜 몰랐을까요? 빈 자리가 생길 때 채우려고 노력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요?", "눈물이 많으면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감정이 메말라 있지 않을 때 보고 싶음에 눈물 흘리고 기쁨에 눈물 흘리고 싶답니다. 그리고 "혹시 아버지가 나를 보고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가져 봅니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三九)見他人塗舍喩
昔有一人。往至他舍。見他屋舍墻壁塗治。其地平正淸淨甚好。便問之言。用何和塗得如是好。主人答言。用稻穀[부-夫+戈]水浸令熟和泥塗壁故得如是。愚人卽便而作念言。若純以稻[부-夫+戈]不如合稻而用作之。壁可白淨泥始平好。便用稻穀和泥用塗其壁望得平正。返更高下。壁都劈裂。虛
棄稻穀都無利益。不如惠施可得功德。凡夫之人亦復如是。聞聖人說法修行諸善。捨此身已可得生天及以解脫。便自殺身望得生天及以解脫。徒自虛喪空無所獲。如彼愚人

 39. 남의 집 담벽
 어떤 사람이 남의 집 담벽 바르는 것을 보았다. 그 벽은 편편하고 깨끗하여 보기 좋았다. 그는 물었다. “진흙에 무엇을 섞어 바르기에 이처럼 좋은가.” 주인은 “벼와 보리를 물에 푹 담가 두었다가 진흙에 섞어 바르면 이렇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어리석은 사람은 “벼와 보리를 섞어 쓰는 것보다 벼만 쓰면, 벽이 희고 깨끗할 것이며 진흙도 고루 묻을 것이다‘ 고 생각하고는 곧 벼만을 진흙에 섞어 벽에 바르고는 편편하고 고르기를 바랬다. 그러나 도리어 벽은 높고 낮은 곳 할 것 없이 모두 벌어졌다. 결국 벼만 버리고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하여, 차라리 보시하여 공덕을 쌓는 것만 못하였다. 범부도 그와 같다.
 성인이 "온갖 선을 닦아 행하면 이 몸을 버린 뒤에는 천상에 나거나 해탈을 얻는다"고 설법하는 것을 듣고, 스스로 제 몸을 죽여 천상에 나거나 해탈을 얻을 것을 기대하지만, 헛되이 제 몸만 죽이고 아무 소득이 없는 것이니,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四○)治禿喩
昔有一人。頭上無毛。冬則大寒夏則患熱。兼爲蚊맹之所삽食。晝夜受惱。甚以爲苦。有一醫師多諸方術。時彼禿人往至其所語其醫言。唯願大師爲我治之。時彼醫師亦復頭禿。卽便脫帽示之而語之言。我亦患之以爲痛苦。若令我治能得差者。應先自治以除其患。世間之人亦復如是。爲生老病死之所侵惱。欲求長生不死之處。聞有沙門婆羅門等世之良醫善療衆患。便往其所而語之言。唯願爲我除此無常生死之患。常處安樂長存不變。時婆羅門等卽便報言。我亦患此無常生老病死。種種求覓長存之處終不能得。今我若能使汝得者。我亦應先自得。令汝亦得。如彼患禿之人徒自疲勞不能得差

 40. 대머리로 고민한 의사
 어떤 사람이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매우 춥고 여름이 되면 매우 덥고, 또한 모기와 벌레가 물기 때문에 밤낮으로 시달려 심한 고통을 받았다. 그때 여러 가지 방술(方術)을 잘 아는 의사가 있었다. 대머리는 그에게. “원컨대 선생님은 내 병을 고쳐 주십시오.”라고 하였는데, 그 의사도 대머리였다. 의사는 곧 모자를 벗고 머리를 그에게 보이면서 말하였다. “나도 그 병으로 고통받는 중이오. 만일 내가 그것을 다스려 낫게 할 수 있다면, 먼저 내 병을 다스려 이 걱정을 없앨 것이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받으면서 오래 살 곳을 구하다가, 외도들의 좋은 의사가 온갖 병을 잘 고친다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 가서 말한다. “원컨대 나를 위해 이 덧없는 생사의 걱정을 덜고, 항상 안락한 곳에서 영원히 살아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때 외도들은 대답한다. “나도 그 덧없는 생로병사를 걱정해서 갖가지로 영원히 사는 곳을 찾았으나 끝내 얻지 못하였소. 만일 지금 내가 그대를 고칠 수 있다면 내가 먼저 내 병을 고친 다음에 그대 병을 고칠 것이오.” 이것은 마치 저 대머리를 걱정하는 사람이 스스로 괴로워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진
공간

 

 

편집부

 

 

 

 

  

 

 

 

절기
풍속

 

 조상단지(음력 10월 말(午) 날

편집부

  조상단지란 가신(家神)으로서 그릇에 곡식을 담아 정중히 모시는 것이다. 봄에는 봄 햇곡식을 가을에는 가을 햇곳식을 넣는데, 장독대 옆에 있는 조상단지를 '터주' 라고 하며, 가옥의 수호신은 마루에다 모시는데 '성주'라고 한다. 그리고 가신(家神)으로는 터를 지켜주는 '터주신',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 부엌의 '조왕신' 변소의 '측신. 헛간이나 장독대에는 '업왕신'을 모신다.

 

 

불교
미술

 

 염주

편집부

 만약 번뇌장과 과보의 장애를 없애려는 사람은 목환자 백 팔개를 꿰어서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할 것 없이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뜻이 흩어지지 않게 하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승가의 이름을 부르라.(...若欲滅煩惱障報障者 當貫木환子一白八 以常自隨 若行若坐若臥 恒當至心 無分散意 稱佛陀達摩僧伽名...出佛說木환子經)
염주의 종류
(1) 108과 : 백팔삼매를 증득하고 백팔번뇌가 사라지기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2)   54과 : 보살의 54지위를 상징한다.  
(3)   42과 : 보살 수행의 42지위를 나타낸다.
(4)   27과 : 근본불교의 수행 지위인 사향사과의 27지위를 나타낸다.
(5)   21과 : 십지와 십바라밀과 불과 등 21지위를 나타낸다.
(6)   14과 : 관세음보살의 열 네 가지 무외를 상징한다.
(7)1080과 : 십계에서 각각 백팔삼매를 증득하고 백팔번뇌번뇌가 사라지기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8)   36과 : 36삼매를 증득하고 36번뇌가 제거되기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9)   18과 : 18삼매를 증득하고 18번뇌가 제거되기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좋은인연

 

 

 경북 군위군 신흥암

 편집부

 

 복(福)과 화(禍)는 둘이 아니다

 범수

 

 그림일기

 김경연

 

 행복

 문옥선

 

 연인

 조혜숙

 

 아버지 생각

 이명숙

 

 백유경

 편집부

 

 사진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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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단지

 편집부

 

 염주

 편집부

 

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발행인: 범수스님
(EDITOR E-mail   savaha@nate.com)
www.savaha.or.kr



 

 나눔과 어울림을 지향하는 좋은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