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8(2004)년 9월호 Vol.4,No.44. Date of Issue 1 Sept ISSN:1599-337X 

 

 

 

 

 

 

 

 

 시(示)

범수

 길을 가다보면 예쁜 꽃에 정신을 팔려 길가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으며, 흙탕물에 발을 헛디딜 수도 있으며, 이런 저런 이유로 머뭇거릴 수도 있으며,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헤맬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는 길의 목적지와 방법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남이 시켜서 억지로 가는 것도 아니며, 원하지 않는 것을 마지 못해 가는 것도 아니며, 모르면서 가는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길은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러므로 이 길은 고뇌와 깊은 사고를 바탕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가야 한다. 누구든지 이 길에 들어선 이들은 서로에게 조건 없는 믿음을 보내며,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굳건한 사명감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의 목적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이익관계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조건없이 베풀어주는 무한한 믿음을 져 버린 채, 가는척 마는척하며, 생활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발을 헛디뎠다고 원래 가던 길을 멈추기 보다는 참회가 어떨른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딴 마음을 품은 채 어영 부영하며 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욕망만을 채우는 것으로 사명감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길을 바꾸기 보다는 참회가 어떨른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가지도 오지도 않으며, 같은 길을 가는 이들에 대한 믿음도, 가는 동안의 자신에 대한 사명감도 없으며,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마치 목적지를 아는 것처럼 확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마저 혼란에 빠뜨리기 보다는 참회가 어떨른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是罪亦忘 罪忘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
 이 길 가운데 앞서 간 이들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마다, 사천 가지를 생각했으며, 한 말 한 말 할 때마다 지옥의 문을 느꼈고, 한 생각 한 생각 일으킬 때마다 윤회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육체적인 삶을 위해서 취하는 음식마저도 일미칠근이라 하여 무게를 두어 욕망을 다스렸으며, 화려한 옷은 먹물로 교만과 사치를 막았다.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는 좌복 하나로 대신하며 나태함을 다스렸다. 왜?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왜 그러지 않으면 안될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잘 먹기 위해서라면 굳이 밥 그릇 하나에 밥상도 없이 하루 한 끼를 먹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잘 입기 위해서라면, 치수와 모양, 문양과 옷감의 질을 모두 하나의 색으로 가려 버리는 불만을 감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편리한 곳에서 거주하고 싶다면, 굳이 옷도 못 벋은 채 작은 방석위에서 잠을 자야 하는 불편을 참아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길에 선 사람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오히려 행복한 모습으로 온 젊음을 받치고 있다. 왜?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왜 그러지 않으면 안될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만약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단점을 수긍하지 못한 채 오기를 부린다면, 다음의 글을 보게나.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가고자 하는가? 같은 길에 선 이들에 대한 믿음은 있는가? 그 길에 선 자기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사명감을 가지는가? 그 길의 목적지에 대한 확신은 분명한가? 그렇다면,


 매일 자기 머리를 스스로 세 번 정도 쓰다듬으며 지금의 위치와 모습을 보게나.


 항상 자신이 하는 행위를 되돌아다 보게나.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마저도 뒤돌아 서서 들킬 것과 숨길 것이 없도록 진실해지게나, 
 
 그런 연휴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이 길을 보여주신 분들께서 잘 시설해 놓으셨으니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게나, 확신과, 사명 그리고 믿음으로 길을 가면 된다네, 그러므로 같은 길에 선 이유 하나만으로도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네. 그렇다고 팔이 안으로 굽듯이, 무조건 인연의 끈에 얽매여 지옥구덩이로 끌려 들어가는 어리석은 짓은 사양하겠네. 이 길은 복덕과 지혜로써 모든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 온갖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해탈(離苦得樂)의 길이기에. 차라리 그 길을 같이 가기를 바란다네.

 

 

 

 그림일기

김경연

제목: 하모니카 배우기.

 요즘 피아노에서 목요일만 방학특강으로 하모니카를 배운다. 나는 하모니카를 잘 불지는 못한다. 나는 하모니카로 봄 나들이, 강아지, 작은 별을 불 수 있다. 하모니카 소리는 슬픈 것 같다. 그래서 가끔씩 눈물이 난다. 매일하고 싶지만, 목요일만 하니까 잘 할 수가 없다. 오늘 집에서 하모니카를 불었는데, 엄마가 잘 분다고 칭찬하셨다 기분이 좋았다. 더 열심히 해서 엄마께 또 칭찬을 받아야겠다.

 

제목: 스킨 다이방

 오늘 스킨 다이빙을 배웠다. 친척인 경은이 언니를 포함해서 모두 다섯 명이 배웠다. 처음엔 물이 깊어서 무서웠는데 가르쳐주신대로 하니까 재미있다. 그곳에서 스킨 다이빙, 마스크 물 빼기, 숨대롱 물빼기를 배웠다. 오리발을 처음 착용해서 힘들었지만, 열심히하고, 연습을 많이 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스킨 다이빙 끝나고 집에 와서 피자를 시켜 엄마, 나, 경은이 언니, 작은 엄마와 함께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먹고 언니와 게임을 하다가 언니는 집에 갔다. 오늘 하루는 정말 좋았다.

 

 

 

 단비처럼

문옥선

 올 여름은 길고도 지루했던 것 같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무더위 때문에 시들은 육신은 가을을 재촉했는데, 태풍이 피해간 이런 날씨가 오히려 농작물과 과실농사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니 한편으로 다행스럽다. 가끔은 더위 때문에 정신이 몽롱한 채 긴장이 풀리곤 했기에 소리 없이 다가와준 가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시절인연이 닿은 탓인지 여태껏 내 몸의 변화에는 어둔 채 초목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서야 계절의 시작임을 알아차리곤 했는데, 올 가을에는 몸으로 먼저 가을을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내 몸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비로소 자각한 느낌이었다. 마치 내 스스로 어떤 장엄한 의식을 치른 것 마냥 삶에 대해서는 더한층 진지해지는 것 같다.  비록 흐르는 세월 따라서 육신이 점점 자연에 다가간다는 의미이겠지만, 또 한편으론 내 자신을 조금씩 더 깊이 알아가며 철들어간다는 사실이기도 할 것이다. 이미 가을을 느끼고 나니 더 이상 못 견딜 여름날은 아니었다.  떠나가는 여름을 아쉬워 해서일까, 매미울음소리 자지러지면 가을이 오듯 더운 여름날들 뒤로는 언제고 시원한 가을 날이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던 길목에는 이미 여름부터 가을 꽃을 피우기 위해 코스모스가 자리했고, 조용히 귀 기울이면,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더위를 견디다 못해 내년에는 좀 시원하게 보낼 궁리를 했었는데, 가을이 오고 나니 다시 간사스럽게 변하고 만다.
 "있을 것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옳다고 여기면서도,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없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고집이었는데, 앞으로는 환경에 맞춰 갖출 것은 갖춰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약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니 절제를 하되 무리하게 힘들고 어렵게 그리고 불편하게 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수행 삼아 편한 길을 놔 두고 일부러 험한 길을 찾아 돌아 갈수는 있다지만, 체력과 인내력만으론 내 몸에 무리가 따랐다. 생각하니 몸이 지쳐 쓰러지면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복이 닿아 누군가의 손에 의지해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남은 생을 보내며 사는 삶이나, 내 스스로 어쩌지 못한 내 질긴 삶을 원망하며 보내게 되는 삶이나, 나는 행복한 삶이 아닐 것 같다. 가능하면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뭐든 내손으로 하고 싶은 것도 나를 단련시키고자 하는 마음이었기에 가끔은 몸을 지치게도 만들었었다. 생활에서나 음악에서나 리듬이 중요하듯 사람에게 있어서 삶의 리듬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아마도 그렇게 산다면 무난하게 그다지 큰 낭패는 안보며 살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 스스로 안돼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안돼는 일을 끝까지 붙들기보다는 차선책을 붙잡아 정열을 쏟았던 것이 훗날 자신에게 큰 영광을 안겨다 주는 계기가 되었음을 들려주던 성공한 이들의 얘기도 어쩌면 삶의 리듬을 잘 이용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에도 진저리 칠 때 쯤 시원한 소낙비가 쏴~악 쏟아져 열기를 식혀주었듯이, 고단하고 지친 삶에도 선선한 한줄기 희망의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를 이 가을 날에 바래보고 싶다.

 

 

 

 풀꽃 이야기

손진숙

 무심코 지나가는 산길에는 풀꽃들의 모습이 숲길으로만 보인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처럼 작은 풀꽃들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들여다보는 그 순간 자기의 존재를 활짝 드러내고 꽃피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풀꽃들은 대체로 작아서 스치듯 보면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알갱이 같은 작은 풀꽃들에게 하나하나 눈길을 주면 제각각 빼어난 개성이 있고, 소박하고 고운 자태에 반하게 된다. 바쁜 세상살이에 발걸음 휙휙 지나버리면, 그 신비한 아름다움에 빠지는 행복감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삶이 순간 순간을 사는 것이라면 그 한 순간을 온전하게 걱정 없이 누린다면, 품성의 꽃도 활짝 피어날 수 있겠지.  다음 순간에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두려움을 미리 당겨서 찌들지 말았으면...
 다음 순간의 몫은 다음의 것으로 남겨두어 버리고, 마음의 옹이를 빼버리고, 작고 드러나지 않는 풀꽃을 보면서도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림픽

김지민

아테네 경기장엔
 사람들의 함성과
 뜨거운 열기가
 가득 차 있고,

각 나라의 집집엔
선수에 대한 응원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있다.

대표로 뽑혀 경기를
하는 사람은 모든
국민의 희망을
가슴속에 담고
혼신의 힘을 쏟는다.

자신을 바쳐서
흘리는 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라.

 

 

 

 

조혜숙

 6년전 여름 ‘여고괴담’의 성공 이후 해마다 여름이 오면, 한국산 공포영화들이 몇 편씩 꼭 극장에 걸리곤 한다. 제작 편수가 많아지면서, 한국 공포영화는 미국이나 일본 공포영화처럼 나름대로의 어떤 스타일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지만, 점점 뻔한 스토리, 뻔한 연출 방식으로만 일관하는 영화들이 많아졌고, 올해 개봉한 국산 공포 영화들 역시 모두 타성에 젖은 방식만을 고수해 관객과 평단의 외면을 받고 말았다. 하지만 막바지에 이르러 개봉한 ‘알포인트’는 한국 공포영화가 지닌 타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수작이라고 하겠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독특한 소재와 세련된 연출로 잘 알려져 있는 ‘접속’, ‘ 텔미 썸딩’의 장윤현 감독. 감독인 공수창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하얀 전쟁’, ‘텔미 썸딩’, ‘링’의 각본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두 사람의 영화 성향처럼  ‘알포인트’는 전쟁 공포라는 한국 영화에선 생소한 소재를 탄탄한 시나리오와 긴장감 있는 연출로 풀어 나가고 있다.

 베트남전이 거의 끝나가던 1972년, 사단 본부의 통신대에 계속해서 이상한 무전이 수신된다. 6개월 전 작전 지역명 ‘로미오 포인트’에서 임무 수행 중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8명의 수색 대원들에게서 구조 요청이 오고 있는 것이었다. 부대장은 이들의 수색을 위해 최태인 중위(감우성)와 지원자들로 구성된 병사들을 파견한다.
 7일간의 수색 명령을 받고 로미오 포인트에 도착한 이들은 입구에서 ‘손에 피 묻은자 돌아갈 수 없다’라는 기분 나쁜 비문을 발견하고 낮에는 짙은 안개, 밤에는 어둠으로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밀림 속에서 수색을 하는 도중 점점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알포인트’의 공포는 사람을 순간 놀래키는 자극적인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무섭지 않을 수도 있고 공포영화가 아닌 듯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천천히 스며오는 공포야 말로 알포인트가 지닌 미덕이다.  우리 가운데 끼여 있는 낯선 존재, 보이는 공포가 아닌 보이지 않는 공포. 그것이야 말로 사람을 정말로 긴장하게 만드는 스릴이 아닐까 한다. 최중위 역을 맡은 강우성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는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고, 진중사 역의 손병호 역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실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실제론 전쟁중에 떠돌던 괴담에서 영감을 얻어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사실과 허구를 혼동하게 만드는 이런 스타일의 마케팅은 예전에 ‘블래어위치’란 영화가 사용해서 큰 효과를 본적이 있다.
 영화를 찍은 장소가 베트남이 아니라 캄보디아라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베트남은 이미 너무 발전하여 베트남전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만한 곳이 전혀 없어서 아직까지 밀림이 울창한 캄보디아에서 촬영을 하였다고 한다.

 

 

 

 선정을 위한 여섯 가지 필요 요건

진선

 "첫째는 조용한 장소가 있어야 하며, 둘째는 욕심이 없어야 하며, 셋째는 만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넷째는 계율(절제된 생활)을 잘 지켜야 하며, 다섯째는 의미 없는 일들을 버려야 하며, 여섯째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 깨우치겠다고 발원하고도 선정(몸과 마음이 지극히 고용하고 안락한 상태- 편집자 주)에 들기를 게을리 한다면, 깨달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선정은 곧 깨달음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초펠스님 편역 <보리도 차제>중에서 -
 
"달빛이 밝으면 밤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믿음이 깊으면 스승의 결점을 보는 마음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스승' 현재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많은 분들을 만나겠지요. 살면서 여러 스승을 만나고 또 만나겠지만 가까이 계신 스승에 대하여 어떤 마음가짐인지 살펴보아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제자에 대한 인내와 인자함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채, 그새 다른 곳에서 주워 들은 말로, 비교하고 따지며, 시비를 논하고, 마음을 아프게 한 모습 때문에 불현듯 고개를 떨구게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완벽한 스승을 찾겠다는 생각은 게으름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 이전에 내가 스스로 이미 가지고 있는 자질과  연결된 내적 스승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텐진빠모 스님의 <마음공부에서>)
 게을러진 나를 잘 포장하여,  혼란스럽고 사상 정립이 안된다며, 이유를 남에게 돌리며 흘려 보낸 시간들을 되돌아 봅니다.

 

 

 

 나의 눈 높이는

 이명숙

  "선생님, 선생님" 다급하게 아이들이 불렀다. 순간 일을 멈추고 얼른 아이들 쪽으로 달려가 보니, 한 아이의 코에선 시뻘건 코피가 흐르고, 담임선생님께선 놀란 표정으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문제가 일어난 교실은 7세들의 반이었다. 사건이 어느 정도 수습된 뒤, 문제가 일어 난 이유를 듣고서는, 어느 한 쪽만을 탓할 수 없었다.
 파란색을 주제로 하여 자유 그림을 그리는 미술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여름이라 모두 바다를 생각하지 않을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반 아이들 가운데 두 명만은 그림 때문에 서로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아이는 바다를 그리고, 그 아이의 짝꿍은 자기 집 화장실 변기통을 그렸다. 변기통을 그린 아이는, 자기 집 변기통 물 색깔이 항상 파란색이었기에, 순간 생각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고, 파란색이라면, 당연히 바다나 하늘이라고 생각하던 아이는 변기통을 그리는 짝꿍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변기통 속의 물이 왠 말이냐"는 식으로, 놀렸다.
친구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와, 자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놀리는 것에 마음이 상한 아이들은 서로에게 미운 감정을 품은 채 실랑이를 벌이다, 그만 상대의 그림에 줄을 그어가며 낙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결국 양쪽 스케치북 속 그림은 엉망이 되었고, 이 때문에 속상한 두 아이는 결투까지 벌였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혼을 내야 할까?" 만약 생각을 맞춘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그래서 한 아이에게 "변기통에 물을 소독하는 약품을 넣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고 설명을 해주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 여전히 상대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내기에. 결국 변기통속에 넣는 약품을 가져와서는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게 해주었다. 그 결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제서야 모두들 웃을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느끼는 것은 아이들에겐 계산이 없다는 사실이다. 비롯 다툼이 있은 뒤라도 앙금이 남지 않으니 말이다.

 

 

 

 감자

김기태

울퉁불퉁 못난 감자
지하 속 세상에서
세상 밖으로 구경 나갔네.

못난 감자 모두 모여
시장구경 나가보니
너도 나도 집어가네.

들쑥 날쑥 못난 감자
더러운 흙 긁어내니
새하얀 속살 보이네.

보글보글 음식 속으로
풍덩 몸 담그니
그 맛이 일품일세.

못난 감자 갂으니
미남으로 바꿔지네
감자는 두 얼굴쟁이.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三七)殺群牛喩
昔有一人。有二百五十頭牛。常驅逐水草隨時위食。時有一虎담食一牛。爾時牛主卽作念言。已失一牛俱不全足。用是牛爲。卽便驅至深坑高岸。排著坑底盡皆殺之。凡夫愚人亦復如是。受持如來具足之戒。若犯一戒不生참愧淸淨懺悔。便作念言。我已破一戒。旣不具足。何用持爲。一切都破無一在者。如彼愚人盡殺群牛無一在者

37. 소 떼를 죽여 버린 사람
 
어떤 사람이 250마리의 소를 갖고 있었다. 그는 항상 풀 있는 곳으로 소를 몰고 가 때를 맞춰 먹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가 소 한 마리를 잡아먹어 버렸다. 그러자 그는 "이미 한 마리를 잃어 버렸으니, 이제 완전한 것이 못 된다. 나머지 소를 어디다 쓰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깊은 구덩이로 소를 몰고 가서 모두 묻어버렸다.
 어리석은 범부들도 이와 같다. 부처님의 계율을 받들어 지니다가 혹 한 가지 계율을 범하면, 부끄러워하거나 참회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한 가지 계율을 범했으니, 완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계율을 지켜서 무엇하겠는가.”그것은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소 떼를 모두 죽여 한 마리도 남기지 않는 것과 같다.
 

 

(三八)飮木용水喩
昔有一人。行來渴乏見木용中有淸淨流水。就而飮之。飮水已足卽便擧手語木용言。我已飮竟。水莫復來。雖作是語水流如故。便瞋애言我已飮竟。語汝莫來。何以故來。有人見之言。汝大愚癡無有智慧。汝何以不去。語言莫來卽爲挽각牽餘處去。世間之人亦復如是。爲生死渴愛。飮五欲鹹水。旣爲五欲之所疲厭。如彼飮足。便作是言。汝色聲香味莫復更來使我見也。然此五欲相續不斷。旣見之已便復瞋애。語汝速滅莫復更生。何以故來使我見之。時有智人而語之言。汝欲得離者當攝汝六情閉其心意。妄想不生便得解脫。何必不見欲使不生如彼飮水愚人等無有異

38. 나무통에 화낸 어리석은 사람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목이 말라 나무 통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는 그 물을 실컷 마셨다. 그런 뒤 손을 들어 나무 통에게 “이제 나는 물을 실컷 마셨으니, 더 이상 물이 나오지 말아라.”고 말하였으나 물은 여전히 흘러나왔다. 그는 화를 내며 다시 말하였다. “이제 싫도록 마셨으니, 다시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여전히 나오는가.” 이를 본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어 지혜가 없구나. 왜 네가 떠나지 않고 물을 나오지 말라고 하느냐.”그리고는 곧 그를 다른 곳으로 끌어다 놓고 떠나 버렸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생사의 애욕 때문에 다섯 가지 쾌락
*의 짠물을 마시다가, 이미 다섯 가지 쾌락에 염증이 생기면, 저 나무통에 화를 내는 사람처럼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형체, 달콤한 소리, 향긋한 냄새, 감미로운 음식, 부드러운 감촉은 다시 필요 없다.”  그러나 그 다섯 가지 쾌락은 계속해서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 또 그는 그것을 보고 화를 내면서 “너는 빨리 사라져 다시 생기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와서 내가 보게 하느냐.”고 한다. 이 때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네가 그것을 떠나려고 하거든 마땅히 너의 여섯 가지 정(情)
*을 거두고, 그 마음을 닦아 망상을 내지 않으면 곧 해탈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구태여 그것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써 그것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 하는가.” 그것은 마치 물을 마신 어리석은 사람과 다름이 없다.

* 다섯 가지 쾌락: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감각기관(五根)이 각각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의 다섯 감각대상(五境)에 집착해서 발생되는 다섯 종류의 욕망이다.
* 육정(六精, 六根): 육정은 육근으로 인식(六識)능력이 그 대상(六境)을 식별하는 경우, 인식작용을 일으키는 감각기관 즉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이라는 여섯 가지 감관 기관을 말한다.

 

 

 

사진
공간

 

 

편집부

 

 

 

절기
풍속

 

 한가위

편집부

 * 불기 2548(2004)년 9월 28일은 한가위입니다.(음력 8월 15일)
 
이 날은 가베일, 가위, 중추절, 한가위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큰 명절이다. 멀리 고향을 떠나 지내는 이들은 온 가족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나, 친지들을 찾아 뵙고, 또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지낸다. 자신을 있게 해주신 조상님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은 인간의 정이며, 당연한 도리이다. 한편 이 날 사찰에서도 불교식 제사를 지내는 신도분들을 위해서 추석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불교
미술

 

 향로(香爐)

편집부

 향로(香爐)는 향을 피우는 그릇으로 금속이나, 도자기 등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지며, 모양도 다양하다. 형태에 따라 거향로(居香爐), 병향로(柄香爐), 현향로(懸香爐)로 나뉜다.
 
거향로(居香爐)란 지정된 장소에 배치하여 향을 공양하거나 쐬는 데 쓰이는데,  예배용인 거향로를 향완(香浣)이라도 한다.
현향로(懸香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걸어두도록 밑이 둥글고 고리가 달렸다.
병향로(柄香爐)는 주로 의식행렬용으로 쓰이는데,  손으로 들 수 있도록 손잡이가 달려 있다.



좋은인연

 

 

 경북 영천 팔공산 백흥암 영산전

 편집부

 

 보게나

 범수

 

 그림일기

 김경연

 

 단비처럼

 문옥선

 

 풀꽃 이야기

 손진숙

 

 올림픽

 김지민

 

 알포인트

 조혜숙

 

 선정을 위한 여섯가지 필요 조건

 진선

 

 나의 눈 높이는

 이명숙

 

 감자

 김기태

 

 백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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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발행인: 범수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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