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8(2004)년 8월호 Vol.4,No.43. Date of Issue 1 Aug ISSN:1599-337X 

 

 

 

 

 

 

 

 

 

 중생은 업력(業力)으로 힘을 삼는다

범수

 사회 일반에서 벌어지는 성명서, 탄원서, 호소문 등과 같은 격의 글을 살펴보면, 타당한 명분과 함께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들이 많다. 이와 같은 사회의 여러 현상이나,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에 대하여서는 보통 선악의 구분을 옳고 그름으로 대략 분명하게 구분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직접적인 일에 대하여서는 선악의 구별을 옳고 그름이 아닌, 이익과 손해로 기준을 삼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한 두어 번 뵌 분께서 찾아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이익과 손해'에 대한 것 같은데, 일의 전말을 밝히지 않으니 그 속 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간단 명료하게 "보통 우리들은 선악의 구별을 옳고 그름이 아닌 이익과 손해로 따지게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사코 '옳고, 그름'이라고 대답하였다. 하여튼 "그러면 삼일 동안 만이라도 아무런 생각없이 하루에 백 팔 배씩 절을 해보세요. 그러면 아마 저절로 그 문제에 대하여 아시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하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가 떠난 뒤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말을 너무 직설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며, 모르긴 몰라도 흔히 하는 말로 "남들처럼 살고 싶어...."라는 심정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살림에 보탬이 될까?"하고 갈등했을텐데..., 어쩌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정확히 알면서도 필자와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함으로써 본인 스스로 마음에 면죄부를 얻으려고 왔을텐데....그렇다고 그가 원하는 말만 듣기 좋게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필자는 즐겨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할 때라도, 그게 잘못된 것인 줄 알고서 하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으며, 또 돌이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일에 직면하였을 때는 먼저 반대되는 상황즉 양면을 바르게 인식하여야 한다. 특히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하여서는 모든 부분을 미화하고 관대해지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않았을 시에는 평상시 닦은 업력(습관)대로 끌려 다니며, 욕망의 부림을 당함으로써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부처님은 위신력(威神力)으로 힘을 삼고, 보살은 원력(願力, 願行)으로 힘을 삼지만, 보통 우리들은 업력(業力)으로 힘을 삼아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설사 보배가 태산만하더라도 한 사람의 욕심을 채우기 어렵다."고 하듯 중생들의 욕망은 마치 쇠에서 난 녹이 쇠를 먹어 치우듯 우리에게서 나 우리를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할 때에는 지옥에 떨어져서도 반성하지 않고, 욕망을 버리지 못해 고스란히 고통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욕망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말이다.
 욕망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항상 지금의 자신을 스스로 살펴 보아야 한다. 무슨 행동(身)을 하는지, 무슨 말(口)을 하는지, 무엇을 생각(意)을 하는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태어남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업(습관)으로 힘을 삼아, 끝 없는 고통이 반복되는 윤회의 바다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게 된다.

 

 

 

 구함

유승(幼僧)

 어떤 이가 말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람 사이에 그릇이 깨지지 않게 조심하는 것은 깨진 그릇을 다시 쓸 수 없으니까, 깨진 그릇 다시 맞추기 힘들고 힘드니까," 그 때문이라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하기를 "왜 그릇을 만들까? 그릇이란 어차피 깨지기 마련인 것을, 차라리 그릇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아닌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보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만나면서 본인도 모르게 그릇을 만들고 그 그릇이 깨질까 노심초사 조심한다는 것을
 도공이 수없이 많은 도자기를 미련 없이 깨뜨리는 것은 가장 진귀한 도자기 하나를 구함일 것이요. 만일 진귀함을 구하지 않고서 그저 부수기만 한다면, 백 날 천 날이 지난다. 한들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리요.

 

 

 

 

 중생(衆生)

진선

 迷本圓明하야 是生虛妄이니 妄性無體라 非有所依니라. 將欲復眞이면 欲眞이 已非眞眞如性이어늘 非眞求復이면 宛成非相하야 非生非住와 非心非法이 展轉發生하고 生力發明하야는 熏以成業하고 同業相感하며 因有感業하야 相滅相生하나니 由是故有衆生顚倒니라.(出楞嚴經)
우리는 원래 참다운 성품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잘 모르는 관계로 허망한 생각들을 일으키나, 이렇게 생긴 허망한 것은 본래 있던 것도 아니며, 또 그것에 의지할 바도 못된다.
 장차 참됨을 회복하여 참다움으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참다움에 돌아가고자 하는 그것은 이미 참다움이 아니다. 왜냐하면 참다움이란 생멸변화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취사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니,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참다움에 돌아가고자 한다면, 전연 옳지 못한 것이 되어, 옳지 못한 삶, 옳지 못한 머무름, 옳지 못한 마음, 옳지 못한 법이 점차적으로 발생하고, 발생하는 힘이 더욱 커져서는, 그것이 훈습(자주 반복)하여 업(생각, 습관)을 이루어, 같은 종류의 업(생각, 습관)들이 서로 감응(관계)하며, 이와 같이 감응(관계)하는 업(생각, 습관)들이 쌓여서는, 서로 번갈아 나고  없어지니 이를 말미암은 까닭으로 중생들이 그릇된 견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편집자주-

 

 

 

 그림일기

김경연

제목: 참 나쁘다.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누군가가 제 친구들과 내 친구까지 끌어서 나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자고 했다. 나는 너무 놀랬다. 그가 좋은 친구인줄 알았는데 뒤에서 나도 모르게 그런 나쁜 짓을 하다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른들이 시킨건지, 그의 생각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그가 무섭다. 좋은 머리를 왜 나쁜데 쓰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엔 그가 비겁한 것 같다. 자기 혼자만 싫어하면 되는데 뒤에서 애들을 조종한다. 더구나 내 친한 친구까지도. 나는 정말 그가 그런 일을 꾸밀 줄 몰랐다. 너무 무서운 애다.

제목: 水영장
소영이와 수영장에 갔다. 소영이가 그러는데 자기는 水영을 잘 못한다고 했다. 나는 소영이에게 말했다. "소영아 자유수영은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니고 물 속에서 노는 거야. 알았지?" 나는 수영장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소영이와 나는 물속에서 끌어주기, 물 뿌리기를 했다. 또 소영이와 샤워실에 있는 온탕에서 놀기도 했다. 샤워실은 수영장의 물이 소독이 됐고 소금물이기 때문에 머리도 감고 샤워를 하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영이와 참 재미있게 놀았다.

 

 

 

 아는 여자

조혜숙

 이 영화의 제목에서 풍겨지는 뉘앙스처럼 그저 아는 사람을 만나듯, 아무 기대를 갖지 않고 정말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저 집어 먹었던 과자가 의외로 "아! 참 맛있네."하는 느낌을 준 것 같은 영화였습니다.

 한때 잘나가던 투수 동치성(정재영)은 현재 프로야구 2군의 별 볼일 없는 외야수입니다. 애인에게 예고없던 이별을 당하던 날도 예외없이 터진 잦은 코피가 3개월 시한부의 인생을 선고받는 폐암의 증후로 알게 됩니다. 그날 저녁 선배의 바로 찾아가 술 석 잔에 정신을 잃고 바텐더 여인 한이연(이나영)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이 영화의 로맨틱 코메디는 시작됩니다.
악성종양의 시한부 인생 동치성은 그 인생을 멋지게 마감하기 위해 마라톤에 참가하지만, 죽기는커녕 김치냉장고를 받아올 만큼 혈기왕성한 운동선수입니다. 바텐더 여인

 한이연은 이미 10여년전 동치성과 이웃사촌이 되던 날부터 동치성을 짝사랑 해오던 여자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내년이 없고, 첫사랑이 없으며, 아무리 술에 취해도 주사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치성에게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한이연이 그저 아는 여자일 뿐입니다. 치성의 이연에 대한 태도는 매사가 그저 그렇게 불분명하여도 이연은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저 치성을 위하고 걱정하는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치성의 악성종양이 잘못된 오진으로 잦은 코피가 그저 코후비기 부작용으로 인한 결과임을 알고, 치성의 만취가 주사로 이어졌어도, 이연의 치성에 대한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치성에게 사랑이란 대단하게 다가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저 아는 사람과 그냥 알고 지내다보니 사실은 그게 사랑이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장진감독은 아는 여자를 참 재미있고, 신선한 유머를 가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배우 정재영과 이나영의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언밸런스한 느낌이 능력있는 감독의 적당한 조율로 도리어 더 잘 어울리는 커플로 만들어 놓은듯 했습니다. 이 영화를 모두 보고 난 후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착해졌습니다. 혹시 내 주위에도  내가 아무리 미운 짓을 하여도 착한 눈으로 바라보아주는 그런 사람이 그저 아는 사람으로만 있지는 않은가 둘러 보아야겠습니다. 내가 마음에 욕심과 허영이 그득하여 못나고, 눈에 띄지 않고 아니 추레해 보인다고 아예 무시해 버린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여행

문옥선

 7월 중순경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바탐 섬을 4박5일간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세 나라지만 싱가포르에서 버스로 40여분 만에 말레이시아로 배로 한 시간정도면 인도네시아 바탐 섬으로 갈 수 있는 일일생활권이 가능한 인접국들이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말레이반도 끝 자락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데, 전체면적이 서울과 비슷한 도시형 국가로 중국과 인도, 말레이시아 등 여러 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깨끗한 곳이었다.  도심곳곳의 열대림은 현대식 고층빌딩과 잘 어우러져 풍요로운 인상을 주었다.
 후덥지근하고 습한 날씨는 화장수를 바른 것처럼 민들 거리게 했는데, 이런 기후 탓인지 곳곳마다 완벽한 냉방시설이 되어있었다. 비가 자주 내리는 탓에 건물의 일층에는 누구나 비를 피해갈 수 있도록 긴 통로를 만든 것이 인상적이었다.  관광과 무역항에서 벌어들이는 수입만으로도 예산이 짜여진다는 나라답게 곳곳마다 관광 상품이었는데 심지어 고가도로의 양 옆이라든지 육교나 계단의 틈새까지도 꽃 화분을 놓아두어 도시의 미관을 살리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추억으로는 디너크루즈를 꼽아야겠다.  밤 배를 타본 경험이 없었는데 배위에서 보던 석양의 모습과 야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일정상 그다지 오래 머물지 못했는데, 이 나라에서는 무덤가의 집들이 명당이라고 했다.  명당을 찾는 것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아무리 명당이더라도 묘지 옆에 선뜻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드문 우리현실과는 대조를 보였다.
 회교사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원주민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민속악기인 앙크렁(Angklung)에 맞춰 추던 민속춤 다리안 아슬리(Tarian Asli)를 관람했다.
 인도네시아 바탐섬에서는 이틀을 묵었다.  피서지에 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섬이었다.  싱가포르가 잘 다듬어지고 잘 가꾸어진 관광지였다면, 인도네시아 바탐섬은 꾸밈없이 순수한 오히려 원시림에 가깝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가공하지 않은 천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화를 낼 줄 모를 것 같은 얼굴에 미소와 친절이 넘쳐 나는 순박한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바탐섬으로 들어가던 날 배 안에서 한 가족을 만났는데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이었다. 마침 가방에 있던 작은 태극문양의 부채를 부인한테 선물했는데, 무척이나 기뻐했다. 아이들에게도 뭔가를 주고 싶었는데 줄게 없었다. 자그마한 선물들을 미리 준비해갔어야 했는데, 아직껏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이곳에서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곳인데 능력에 따라 네 명의 아내까지 둘 수 있었다.  그 집의 출입문 수가 곧 아내의 수를 말해주고 있었는데, 실제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니 한 집에 똑 같은 크기와 모양의 현관 문이 두개 혹은 세 개인 집들이 눈에 띄었다.  
 낯선 곳 그러나 정든 곳, 잠에서 깨어 간밤의 소낙비로 더 말끔해진 야자수와 이름 모를 열대의 초목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었다.  전생의 무슨 인연으로 이곳에 와서 이런 호사를 누리는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잔한 바다는 말이 없었다.
 

 

 

 

 바람 좋은 날 그리고 사람과 사람

손진숙

 늦봄, 산의 바람결은 시원함 속에 들어 있는 부드러움이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하도 좋아 팔을 뻗어 바람을 향해 손바닥을 펴본다. 그 느낌에 표정마저 시원하고 부드럽게 바람을 닮아간다. 산을 마주하고 있는 보화루에 앉아 나무들이 바람을 타는 모습을 보면, 온몸으로 자유로움을 휘감은 듯한 초록의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매서운 칼을 다 빼버린 봄의 바람은 사람과 만나 나무와 만나 정말 바람 좋은 날이 되어준다. 사람과의 관계도 이 봄의 바람과 나무 같을 수 없을까.

(하나), 사람 이야기
 초등학교 수업이 마칠 무렵 아이를 데리러 늘 학교 운동장에 서 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재잘되며 몸짓하며, 나오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어서 쳐다보게 된다. 심술스럽게 생긴 아이는 친구를 때려가면서 놀고, 장난스럽게 생긴 아이는 장난치며 논다. 어쩌면! 얼굴의 모습대로 노는지. 생김새의 법칙이 딱 맞게 적용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의 모습대로 자기의 마음을 만들고 자기의 마음으로 자기의 우주를 만든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자기만을 내세우는지 자기도 모르게 "내가, 내가"를 발동해서 제일 근사한 자리, 기준을 정하는 분별의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뒤늦게야 알고 놀란다. 모두의 불성 자리만 보기로 새겨두었는데 또 잊어 버렸구나. 그래도 누구에게 들키지 않음에 안도하지만, 길이 멀게 남아있음을 스스로는 알기에 부끄럽고 아득함에 마음 쓰리다.
 내가, 내가 하얗게 바래질 때까지 얼마나 분별과 놓음에 갈등의 실랑이를 벌어야 하나? 놓음이 성공하면, 그 날은 대하는 사람마다 순조롭다. 반대로 분별이 이겨버리면, 그 날의 인간 관계사는 까탈과 불화의 날이다.

(둘), 나무 이야기
 겨울 나무는 매서운 겨울 칼 바람을 맞고도, 묵묵히 견뎌 내었기에 봄바람을 만날 수 있고, 지금의 아름다운 초록으로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무에게 서 배운다.
 까탈과 불화 같은 사람 사이도 내 속에서 받아들이고 익히면, 한철이 바뀌어 봄바람과 나무같은 사이로 서로에게 생기를 더 해 주며 살 수 있겠지. 살아가면서 마음에 꼭 닿아 오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정말 공짜가 없듯 내 마음 한번 삐뚤어지면, 그 만큼 내 일상이 어긋나는 일을 한 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람과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과의 사이가 봄바람과 나무처럼 자유롭게 함께 흐르고 싶은데, 그 비결은 뭘까?
“사람을 건성으로 대하는 순간 내가 먼저 걸려서 넘어지므로 정성을 다해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진리이지만 공짜 없는 사람살이의 관계 같다.
 공을 들이는 엄마의 얕은 이야기.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아이에게 “엄마는 네 말 잘 들어 주었으니 너도 엄마 말 잘 듣는 아들 맞지? 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三五)寶협鏡喩
昔有一人。貧窮困乏。多負人債無以可償。卽便逃避至空曠處。値협滿中珍寶。有一明鏡著珍寶上以蓋覆之。貧人見已。心大歡喜。卽便發之見鏡中人。便生驚怖。叉手語言。我謂空협都無所有。不知有君在此협中。莫見瞋也。凡夫之人亦復如是。爲無量煩惱之所窮困。而爲生死魔王債主之所纏著。欲避生死入佛法中修行善法
作諸功德。如値寶협。爲身見鏡之所惑亂。妄見有我。卽便封著。謂是眞實。於是墮落失諸功德禪定道品無漏諸善三乘道果一切都失。如彼愚人棄於寶협。著我見者亦復如是

35. 거울 속의 자기(自己)
 
어떤 사람이 몹시 곤궁하여 많은 빚을 졌으나, 갚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곳을 피하여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그는 보물이 가득찬 상자를 발견하였다. 그 보물 상자 위에는 거울이 보물을 덮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그것을 열려고 하던 중 그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의 모습이 보고는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여 손을 모으며 말하였다. “나는 상자의 주인이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대가 여기에 있는 줄은 몰랐다. 성내지 말라.”
 어리석은 범부들도 또한 이와 같다. 태어나고 죽는 마왕(魔王)으로부터 온갖 번뇌의 시달림을 받고서는,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부처님 법안에 들어와 선한 법을 행하고 온갖 공덕을 지으려 한다. 그러나 보물 상자를 보고 거울 속의 제 얼굴에 미혹된 어리석은 사람처럼 망령되어 ‘나’가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곧 집착하여, 그것을 진실로 여긴다.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보물 상자를 버리는 것처럼, ‘나’라는 소견에 집착하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다.

 

(三六)破五通仙眼喩
昔有一人。入山學道得五通仙。天眼徹視能見地中一切伏藏種種珍寶。國王聞之。心大歡喜便語臣言。云何得使此人常在我國不餘處去。使我藏中得多珍寶。有一愚臣輒便往至。挑仙人雙眼持來白王。臣以挑眼更不得去常住是國。王語臣言。所以貪得仙人住者。能見地中一切伏藏。汝今毁眼何所復任。世間之人亦復如是。見他頭陀苦行山林曠野塚間樹下。修四意止及不淨觀。便强將來於其家中種種供養。毁他善法使道果不成。喪其道眼已失其利空無所獲。如彼愚臣唐毁他目也

36. 도인의 눈을 뽑아 온 대신
 어떤 사람이 도를 배우고 다섯 가지 신통을 얻었다. 그래서 천안(天眼)으로 땅 속에 묻혀 있는 온갖 것과 갖가지 보배를 환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나라의 국왕은 그 소문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대신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항상 우리 나라에 머물면서 내 창고에 많은 보물들을 쌓아 두게 할 수 있을까.” 어떤 어리석은 대신이 그 말을 듣고서는 그 사람의 두 눈을 뽑아 왔다. 그리고는 왕에게 아뢰었다. “신(臣)이 그의 눈을 뽑아 왔습니다. 그는 절대 어디로 가지 못하고 항상 이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왕은 그 대신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을 여기 있게 하려는 까닭은 땅 속에 묻혀 있는 모든 것을 보려고 한 것인데, 네가 지금 그의 눈을 뽑아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그가 볼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다른 이가 수행(頭陀)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에서 네 가지 바른 끊음
*과 부정관(不淨觀)*을 닦는 것을 보고 억지로 그 집에 데리고 가서 갖가지로 공양하며 그의 선법을 헐어 버리면, 깨달음의 결과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저 어리석은 대신이 남의 눈을 뽑은 것과 같다.

* 네 가지 바른 끊음(상四意止 四念處): 몸(身), 감각(受), 마음(心), 앞의 셋을 제외한 일체(法)의 네 가지에 대하여 각각을 부정하여 실상을 알아차리는 법이다. 먼저 몸이란(身染處) 육신에 강한 집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부정(不淨)으로 부정(不定)하는 법. 감각이란(受染處)는 우리의 감각기관(六根)을 통해서 느끼고 받아 들이는 것은 알고 보면 고통이라고 하여 쾌락을 다스리는 법. 마음이란(心染處)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수시로 변화(無常)하기 때문에 마음에 사로잡히거나 집착하는 것을 다스리는 법. 앞의 세 가지 외의 일체(法染處)란 세상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연이 다하면 저절로 흩어지듯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실제로는 없으며 '나의 것'이라도 여길 만한 것도 없다는 무아(無我)의 일치를 가르치는 법.(四念住)

*부정관(不淨觀): 육체의 허망한 사실을 인지하고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련의 탐욕(五欲 재물욕財, 성욕色, 식욕食, 명예욕名, 수면욕睡) 등을 다스리는 수행방법.

 

 

 

사진
공간

 

 

편집부

 

 

 

절기
풍속

 

 우란분절(盂蘭盆節)

편집부

 불기 2548(2004)년 우란분절(盂蘭盆節) 또는 백중(百中)은 8월 30일(음력 7월 15)입니다.
 이 날은 불교의 하안거 해제일(음력 4월15일부터 7월 15일까지 3개월 동안)이기도 하는데, 우란분경에 따르면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께서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지옥(餓鬼道)에서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7월 15일(安居自恣日) 여러 가지 음식, 과일, 공양물 등을 갖춰 여러 수행자들에게 희사한 것에 따라 현세의 부모와 7대의 부모를 위해 올리게 되었는데, 이 날을 우란분회 또는 우란분절이라고 한다.

 

 

불교
미술

 

 죽비

편집부

 

 죽비는 사찰의 법회, 예불, 공양(식사) 때 등 사용되는 법구로 여러 사람을 인솔하는 신호용으로 사용된다. 그 재료는 보통 대나무인데, 이를 반으로 쪼개어 두 가닥으로 만든 뒤 손바닥에 쳐 소리를 낸다.

 



좋은인연

 

 

 경남 양산시 靈鷲山 통도사 奉鉢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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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은 업력(業力)으로 힘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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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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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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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란분절(盂蘭盆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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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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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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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E-mail   savah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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