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8(2004)년 6월호 Vol.4,No.41. Date of Issue 1 Jun ISSN:1599-337X 

 

 

 

 

 

 

 

 

 

 

 보시(布施)

범수

  "작년에 밭에 심어 놓은 것 가져 갈게요, 그리고 옹기도 저희들이 가져다 놓은 것인데 가져 갈게요.", "예 그러세요" 글 내용으로 봐서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시주, 적선, 공양, 불사동참, 화주 등등 이름은 달리하지만, 수행자 개인이나, 사찰에 직간접적인 희사(보시布施 이하 보시)가 행해지고 있다. 이처럼 수행자 개인이나, 사찰에 보시가 이루어진 것은 고타마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던 일로 인도사회에서는 여러 종교의 수행자들에게 자발적인 보시가 행해졌다, 그 결과 수행자들은 지속적인 삶이 가능하였으며, 이들의 수행은 가르침(敎)이나, 귀감, 희망, 의지처 등으로, 사회의 사표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보시의 당사자나, 보시의 물건, 그리고 보시 받는 쪽 모두 도덕적 청정성이 요구된다. 그리고 보시의 행위에서도 '무엇인가를 줬으니까,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겠다'는 식의 거래적 개념과, 보시한 것에 대한 강한 집착을 경계하고 있다. 즉 조건 없는 자발적인 보시와, 보시한 다음 그에 대한 일련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올바른 보시임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자발적인 보시는 부연 설명이 없더라도 쉽게 이해가 되겠지만, 보시한 다음의 행동에 대해서는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화엄경>에 "보시하되, 그 마음은 한결 같아 후회하거나, 인색함이 없어야 하며, 과보나 명성을 구하지 않으며, 이득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하여, 보시하는 마음과 보시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마음 자세를 밝히고 있다. 한편 보시 받는 쪽 역시 청정성이 요구되는데, 사찰의 공유물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다든지, 불상 등을 조성한다고 받은 보시금으로 다른 곳에 유용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보시를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 없으며, 거짓으로 보시금을 유도할 수도 없다. 또한 다른 이의 (공양)물품을 가로챈다든지, 여러 스님들에게 나눠줘야 할 것을 혼자 독차지하는 등의 짓을 해서도 안된다. 이를 어기는 것을 불교에서는 호용죄*라고 하며, 그에 따른 과보의 일화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날 한 스님 앞에, 큰 구렁이가 나타나서 고통스러워 하므로 자세히 관찰하였더니, 돌아가신 스님이었다. 그래서 왜 그런가 하고 보니, 전생에 신도들로부터 보시금을 받아 혼자 몰래 사용하고 은닉하였던 죄로 구렁이가 되었고, 시주를 하였던 신도들은 전생의 빗을 받아내기 위해 그 구렁이의 기생충이 되어 살을 뜯어 먹고 있었다."고 한다. 하여튼 보시되는 모든 것은 처음 계획했던 목적대로 합당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시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떠한지 알아보자.
 보시(布施)란 자비로운 마음으로 즐거움과 이로움(福利)을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으로, 그 기본적 의미는 의식(衣食) 등의 물건을 수행자나 빈궁자들에게 시여(施與)하는 것이다.
(卽以慈悲心而施福利與人之義. 蓋布施原爲佛陀勸導優婆塞等之行法, 其本義乃以衣·食等物施與大德及貧窮者) 또한 "베푸는 사람, 받는 사람, 베푸는 물질의 세가지는 본질적으로 인연을 따르는 것이므로 어떻게 집착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세가지는 모두 청정하여야 한다." 며 이를 일러 삼륜청정(三輪淸淨 베푸는자, 물품, 받는자 모두 청정하여야 한다.三輪體空)이라 한다. (出 中阿含 卷三十 福田經: 又施者·受者·施物三者本質爲空, 不存任何執著, 稱爲三輪體空 三輪淸淨) 이와 같은 보시의 정의에 따라 앞에서 인용한 "옹기도 저희들이 가져다 놓은 것인데 가져 갈게요"라는 부분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조계종 소유의 소속사찰은 공동의 사찰이다. 따라서 절을 사고 파는 식의 매매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찰의 주지소임은 4년 임기로 당해 사찰을 가꾸고 포교하며, 수행에 힘써야 한다. 그러다 임기가 다하면, 재임 또는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는데, 혹 떠날 때,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이 아닌 이상, 대부분 신도들로부터 시주 받았든지 또는 시주금으로 구입한 것이기에 그대로 사찰에 남겨둔다. 따라서 사찰에 쓰이는 다양한 물건들은 사찰에 남아, 누구의 것이 아닌, 사찰의 일부분이 된다. 즉 정당한 절차에 의한 임대차나, 주고받는 것이 아닌 이상, 보시한 다음부터는, 사찰의 공유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보시한 다음 마음이 바뀌었다고, 또는 스님이 바뀌었다고, 앞 전에 보시한 것을 다시 돌려 달라는 것은 굳이 보시의 정의에 비추어보지 않더라도, 사회 통념과도 어긋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필자에게 일어 났었다. 그 문제의 옹기가 어떻게 필자가 거처하던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좀 당혹스러웠는데, 혹 필자가 거처하던 곳에 다니는 신도가 단 한명이라도 있었더라면, 그에 대하여 물어 볼 수도 있었겠지만, 비어져 있는 상태에서 갔었기 때문에 그간의 상황에 대하여 알 수가 없었다. 참고로 그곳은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때는 방 한 칸짜리 집으로 법당이나, 불상, 그리고 신도가 없던 곳이었다. 흔히 말하는 토굴로써 그곳에 거처하기 이전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그가 누구였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런 말을 듣는 순간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답은 "예" 였다. 그 이유는 보시라는 고귀한 행위를 시비로 퇴색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 보시에 따른 네 가지의 과보
◆시주 물은 많으나 복이 적은 보시: 음주 가무등은 비용은 많이 드나 복은 없음.
◆시주 물은 적으나 복이 많은 보시: 덕 높은 이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하여 그로 하여금 도를 배우고 익히는데 정진하게 하는 것은 비록 시주 물은 적으나 복은 많음
◆시주 물도 적고 복도 적은 보시: 도모하는 마음이나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삿된 무리들에게 보시하는 것은 시주 물도 적지만, 복도 적음.
◆시주 물도 많고 복도 많은 보시: 세상의 무상함을 깨달아 재물에 욕심을 버린 뒤, 삼보(부처님, 가르침, 스님)께 보시(供養)하고 탑과 사찰을 건립하는 것은 시주 물도 많고 복도 많음.
(布施四福報: 據諸經要集卷十載, 以布施情形之不同, 所得之福報亦有四種差別, 卽 :(一)施多得福少, 謂以飮酒·歌舞等事施人, 則費用極多而無福報.(二)施少得福多, 謂以慈心供奉道德之人, 使其精進學道, 施物雖少, 其福彌大.(三)施少得福少, 謂以간貪惡意施於邪見外道, 施物旣少, 得福亦少.(四)施多得福多, 謂若能了悟世間無常而發心捨財, 造立塔寺, 供養三寶, 則所獲福報如항河流沙, 施物旣多, 其福亦多.)
 *보시: 如菩薩法。受行無厭。心常愛樂布施功德。一切周給。心無有悔。審觀諸法。從緣無體。不貪施業。及業果報。隨所會遇。平等施與。佛子。菩薩摩訶薩。(出<大方廣佛華嚴經>卷第二十七, 十회向品第二十五之五 대장전 권10, p046.)
 *호용죄(互用罪): 指濫用佛法僧三寶之物. 罪分四種, 卽:(一)三寶互用, 以佛物作法物僧物, 或以法物作佛物僧物, 或以僧物作佛物法物. (二)當分互用, 例如檀越(施主)捐金欲造釋迦像, 각將之用於造彌陀像;又如某物本決定贈豫甲寺之僧, 각將之贈豫其餘他寺之僧. (三)像寶互用, 例如用供養五分法身之物供養形像, 又如用供養第一義諦僧之物供養剃髮染衣之僧. (四)一一互用, 以堂宇等各受用物?田園等各係屬物香燈等各供養物飮食等各獻納物, 一一相互濫用. (出四分律行事초資持記卷中一之四)

 

 

 

 사군자

구선화

 

 

 

 

 

 그림일기

김경연

제목: 빨간 코트
 엄마가 오늘 빨간 코트를 만들어주셨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엄마, 내일 이 옷 학교에 입고 가도 되요.?" "그래 내일 학교에 입고 가라." "네" 나는 내일 엄마가 만들어 주신 코트를 입고 학교에 가기로 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1번 코트를 입어 봤는데 엄마께서 예쁘다고 하셨다. 나도 내가 이쁜 것 같다. 우리 엄만 옷을 잘 만드시지만 13층에 사는 희지네 엄마는 색종이를 잘 접으신다. 나도 희지가 부러웠는데 희지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제목:선생님께
 선생님 저 고백할게 있는데요. 경호의 책가방 제가 숨겼어요. 왜냐하면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경호가 놀리고 때렸어요. 죄송해요. 교실에서는 무서워서 손도 안들고, 말도 못했어요. 저 때문에 친구들이 공부도 못하고 벌만 받고 있었어요.
 저는 선생님이 절 부를 때 혼내시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웠어요. 지금 부턴 안그럴게요. 저는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그만... 저도 찾아 줄려고 했는데 그만 까먹었어요. 앞으로는 절대 안그럴게요. 선생님 말 잘 듣는 경연이가 될께요.

 

 

 

 샘물

문옥선

 햇빛 맑아 좋은 봄날이라지만 무덤덤한 일상이었는데, 우연히 울릉도와 독도의 문화탐방에 관한 자막을 보게 되었다. 기회가 닿으면 가봐야지 했었는데, 생각만으로도 흐뭇했고 활력을 찾게 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산과 바다만이 공존할 뿐인가 보다"는 핀잔을 뒤로 한 채 2주후 일행들과 합류하기 위해서 광주로 갔다. 그곳에서 밤차를 타고 포항으로 간 다음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보는 1박 3일의 코스였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버스에서 1박을 하니 2박 3일 이었고, 사는 곳이 달라 찜질 방에서 1박을 해야 했던 나에게는 결국 3박 4일의 일정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합류를 위해 만나본 일행들은 놀랍게도 은발의 노부부들이거나 그 연배의 어르신들이었다.  난 갑자기 벗어나고픈 현실에서 오히려 외면할 수 없는 나의 노후를 맞닥뜨린 기분을 맛봐야 했는데, 여행가는 것이 아니라, 잔치에 참석하러 가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장성한 자녀들이 어버이날을 즈음해서 효도여행을 보내드렸거나, 이제야 모든 면에서 홀가분해진 분들이 누리는 행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만큼 손꼽아 기다렸는지, 단 한 사람도 늦거나 안 나온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버스에 올라타던 민첩함이었는데 그들은 결코 은발의 신사숙녀가 아니었다. 나이와는 무관한 일이었기에 나는 감히 끼어들 엄두를 못 냈다. 이런 진풍경은 여행하는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그 컴컴한 밤에 밖인들 제대로 보일까마는 나 역시 갑갑하게 막혀있는 것은 못 견뎌하기에 시야를 가리지 않는 앞 자리에 앉고 싶었다. 그래서 서둘렀는데 기다리던 순서는 아무런 소용없었다. 결국 부부끼리 일행끼리 다박다박 자리들을 채우고 난 후에야 올라탈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차안은 정적이 감돌았고 그 밤을 그렇게 쉼 없이 달리던 버스는 새벽녘 포항근처의 사우나에 우릴 내려주었다. 그곳에서 잠깐의 휴식으로 생기를 찾은 우리들은 선착장 근처의 식당에서 아침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울릉도는 포항에서 뱃길로 약 3시간 남짓 거리인데 날씨에 따라 많은 변동이 있는 곳이다. 그런 까닭에 "여간한 인연으로 갈수 없다."는 말로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대신하는데, 실제로 포항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은 파도가 심했다고 하나, 우리들은 잔잔해진 바다 위를 건너갈 수 있었다.
 울릉도에는 초행이었으나, 그렇다고 특별한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섬에서 자란 탓인지 섬은 나에게 고향 같을 뿐, 섬 어딜 간다고 한들 그 느낌은 다를 것 같지 않다. 울릉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도 잠시 집 떠났다가 돌아온 느낌 같은 그런 편안함만이 다가올 뿐이었다.
 간간한 바람, 비릿한 냄새, 바위틈의 자잘한 나무들, 모든 것들이 그저 내 눈에 익숙한 것들이었다. 단지 초록의 싱그러움과는 달리 바위틈의 고목 같은 향나무만이 해풍이 몰아치고 모진 강바람이 부는 이곳은 울릉도라는 섬으로 기억되게 할 뿐이었다. 이곳에 사는 나무들, 특히나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의 수분섭취가 궁금했는데 그럴 수 있음은, 아침이슬을 머금고 안개를 품으며, 일년 중 삼백여일이 흐린 탓이었다.  이런 기후의 영향인지 이곳 특산물인 ‘부지깽이’ 나물은 부드럽고 맛이 아주 담백했었다.
 유람선을 타고서 둘러본 울릉도의 3대 절경(공암과 삼선암, 관음도)중에서 관음도의 절경이 가장 빼어난 것 같았는데, 바위가 갈라진 틈새를 올려다보니 가히 장관이었다. 또한 향나무, 바람, 미인, 돌, 물을 5다(多)로 꼽는다는데,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물 맛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내 입맛에 각인된 우물가의 두레박에 담겼던 바로 그 샘물 맛이었다. 아마도 울릉도하면, 호박엿이 아니라 물 맛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독도는 가기는 했다지만, 접안 시설이 안됐던 관계로 내릴 수는 없었고, 근처에서 봐야만 했다. 그나마 먹었던 멀미약 때문에 쏟아지는 잠과 씨름하느라, 독도전경들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포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얼마간의 동행으로 친밀해진 여행객들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느라, 배가 항구에 도착한 것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둠을 타고 떠난 버스는 해질녘의 을씨년스러움을 가득 실은 채, 길 따라 그렇게 돌아와 주었다.

 

 

 

 트로이

조혜숙

 반지의 제왕 이후 헐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의 시선은 많은 부분이 과거로 넘어갔다. 예전에 나왔던 `벤허`나 `클레오파트라`같은 영화와는 달리 엄청난 양의 제작비와 전과는 비교도 안될 테크놀로지로 승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 트로이도 이 헐리우드 과거형 추세의 연장선상에 있다.

 기원전 1200년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그리스 세계 통합을 꾀하는 동안 동생인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와 강화를 맺는다. 형 헥토르(에릭 바나)를 따라 트로이의 사절로 스파르타 궁을 방문한 왕자 파리스(올란도 볼륨)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나(다이앤 크루거)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트로이까지 데리고 오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을 소집하고 무적이라고 불리는 아킬레스(브래드 피트)는 왕을 경멸하면서도 사랑하는 사촌 파트로클로스와 함께 출전하여 트로이 전쟁에 막이 오른다.

 영화의 감독 볼프강 페터슨은 `일리아드`에선 영감만 얻었다고 말한다. 원작이 전쟁묘사에 충실했다면 이 영화는 좀 더 인물묘사가 중심적일 것이다. 이 영화는 일단 원작에 있는 `신`이라는 존재를 최대한 부인하면서 전투에 대한 밀도 보다는 인물에게 그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이 영화의 무게는 스펙타클한 대규모 전투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1:1결투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  작품의 특성상 여태껏 봐왔던 보여주기식 전쟁영화와는 달리 트로이는 좀 더 휴먼드라마적인 영화다.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로 가기엔 좀 짜임새가 빈약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1억80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에 비해 스케일이 집중이 좀 약한것도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을 시대에 맞게 좀 더 현실적인 모습으로 재구성 한 점이나,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어 봄직한 전쟁영웅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점은 눈여겨 볼 만한 일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헥토르와 아킬레스의 대결은 가장 큰 볼거리중의 하나인데, 결투가 끝나고 난 뒤의 아킬레스, 트로이의 왕과 헥토르의 아내 등의 행동은 감정이입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배우 모두 훌륭한 연기를 하였으나 아킬레스로 나오는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그의 전작인 `오션스 일레븐`이나 `파이트 클럽`에서보다 좀 더 세련되지면서 선이 굵어진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러닝타임이 163분이나 되는 영화 트로이. 이 163분의 체감길이는 이 영화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보느냐에 따라 달려 있을 것이다.

 

 

 

 합창단

손진숙

 사람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뭘까? 신을 경배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찬양의 노래가 아닐런지...우리나라 사람으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신영옥의 찬송가를 들으면, 그 부드럽고 맑은 음색에 천상의 선율처럼 여겨진다.
 은해사 합창단에서 찬불가를 부를 때 마음만은 신영옥 이상의 목소리로 부처님의 세계에 다가가고자 하는 프리마돈나가 된다. 얼마 전 찬불가 경연대회에 참가하기로 하고 연습에 몰입했다. 예상했던 데로 음 하나에 목숨을 거는(?) 지휘자 선생님의 예술가적 까탈이 시작됐다. 그 순간은 나이들은 누구의 엄마가 아니고, 무서운 선생님께 쫄아 있는 학생일 뿐이었다.
 선생님이 원하는 음이 나오지 않으면, 앉는 차례대로 세네명씩만 부르는 공포의 노래검사 시간이 시작된다. ‘지휘자 선생님의 명령에 가까운 지시’, “음이 올라가지 않는 보살님은 앞 자리로 옮기세요.” 큰일이다. 목소리가 더 작아진다. 어물쩍 넘어 갈려고 했는데, 결국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 높은 음 안 올라가는 데요” 짐 챙겨서 앞 자리로 옮겼다. 민망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 후, 음이 틀리면 어김없이 고개를 흔드시고 가끔은 원하시는 소리가 나오면 감사의 합장을 보내주시는 선생님의 사인에 단원들의 기가 죽고 살고가 교차되며, 음 하나 하나를 이해하고 맞추어 나갔다. 대회 결과에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바늘구멍이라도 생기면 안 되는 정확한 규칙을 따를 때와 수레 하나가 왔다 갔다.
 해도 되는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사람살이임을 이해하면서, 그 연습기간 동안 어떤 프리마돈나도 부럽지 않았다. 찬불가를 통해서 자신을 정화시킬 수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인 것 같다.
 찬불가는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법문으로 이루어져 마음속에 맴돌다가 저절로 튀어 나온다. 특히 '거울 마음 닮을까'는 더욱 그렇다.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얼마나 미워해야 마음이 열릴까~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

 

 

 

 할머니의 감주

김지민

 할머니 보세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둘째 손녀 지민이에요. 언제나 저의 집 근처 밭에 일하시러 올라오시는데, 늘 건성으로 인사 드려 죄송해요. 학교 갔다 오면 힘든다고 일도 잘 안도와 드리는데, 할머니께서는 저희들에게 용돈도 자주 주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 주셨지요. 그 때만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평소에 말동무도 못 되 드리고 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린 적이 없었어요.
 저는 마음 찡하게 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전해 들었어요. 할머니께서 밭을 매시다가 잠시 쉬고 계실 때, 저는 감주를 만들어 달라고 했지요. 저녁 때 일을 다 끝내시고 집으로 돌아가셔서 감주를 만드시다가 감주에 설탕을 넣어야 되는데, 힘도 없고 눈도 침침하셔서 설탕대신 맛소금을 넣으셨다면서요? 할머니께서는 그 감주를 저희에게는 줄 수 없고, 아깝다고 버리지도 못하셔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드시려고 놔두시고 밤새 다시 만드셔서 아침에 저희에게 가져다 주신 이야기 말이에요.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그 감주는 이 때까지 먹어본 감주 중에서 제일 달고 맛있었어요. 힘드시는 할머니 일을 돕지도,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도 못한 저에게 그토록 몸이 녹초가 되시면서도 우리 얘기는 다 들어주시지요. 늘 받기만 하는 그 사랑을 이제는 깨닫고 제 사랑으로 할머니께 행복을 드리고 싶어요.
 할머니! 힘든 일 좀 적게 하시고 건강하게 웃으시면서 놀러도 자주 다니시고 사셨으면 좋겠어요. 할머니 사랑해요, 사랑해요.

 2004년 5월 23일 일요일 - 할머니의 친구가 되고 싶은 손녀 딸 지민 올림 -

 

 

 

 

장남지

 저는 볼 수 없습니다.
...
그래서 불편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
...
하지만 할 수 있습니다.
...
...
...,
그러니,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

 

 

 

 차를 넣는 법(投茶)

진선

 -投 茶-
投茶行序 母失其宜
先茶湯後 曰下投
湯半下茶 復以湯滿 曰中投
先湯後茶 曰上投
春秋 中投  夏上投  冬下投
<草衣禪師 茶神傳>

  -차를 넣는 법-
차를 넣는 데도 차례가 있으니, 적절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차관에 먼저 차를 넣고 그 다음에 끓인 물을 붓는 것을 하투라 한다.
차관에 끓인 물을 반쯤 붓고 차를 넣은 뒤
다시 끓인 물을 가득히 붓는 것을 중투라 하며
 먼저 끓인 물을 붓고 다음에 차를 넣는 것을 상투라 한다.
 봄 가을에는 중투, 여름은 상투, 겨울은 하투로 한다.

 이상은 초의스님의 <다신전>에 전하는 내용으로 차를 마실 때 한 번쯤 따라해 봄으로써 세월의 무게와 함께 초의 스님의 자상함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卷第二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三一)雇借瓦師喩
昔有婆羅門師。欲作大會語弟子言。我須瓦器以供會用。汝可爲我雇借瓦師詣市覓之。時彼弟子往瓦師家。時有一人。驢負瓦器至市欲賣。須臾之間驢盡破之。還來家中啼哭懊惱。弟子見已而問之言。何以悲歎懊惱如是。其人答言。我爲方便勤苦積年始得成器。詣市欲賣。此弊惡驢。須臾之頃盡破我器。是故懊惱。爾時弟子見聞是已歡喜而言。此驢乃是佳物。久時所作須臾能破。我今當買此驢。瓦師歡喜卽便賣與。乘來歸家。師問之言。汝何以不得瓦師將來。用是驢爲。弟子答言。此驢勝於瓦師。瓦師久時所作瓦器少時能破。時師語言。汝大愚癡無有智慧。此驢今者適可能破。假使百年不能成一。世間之人亦復如是。雖千百年受人供養都無報償。常爲損害。終不爲益。背恩之人亦復如是

 31. 옹기장이 대신 나귀를 사 온 제자
스승이 큰 잔치를 베풀기 위해 제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질그릇을 구해 잔치에 쓰려고 한다. 지금 시장에 나가 옹기장이 한 사람을 품으로 사 오너라.” 제자는 옹기장이 집으로 갔다. 그때 옹기장이는 질그릇을 나귀에 싣고 시장에 팔러 가던 중 그만 나귀가 질그릇을 모두 부숴버리고 말았다. 그는 집에 돌아와 슬피 울면서 괴로워하였다. 제자가 그것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왜 그리 슬퍼하고 괴로워하십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온갖 방법으로 여러 해 동안 고생한 끝에, 비로소 그릇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나쁜 나귀가 잠깐 사이에 모두 부숴 버렸습니다. 그래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때 제자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 나귀야말로 참으로 훌륭합니다. 오랫동안 만든 것을 잠깐 사이에 모두 부숴 버리다니, 제가 이 나귀를 사겠습니다.” 옹기장이는 기뻐하면서 나귀를 팔았다. 제자는 그 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스승은 물었다. “너는 옹기장이는 데려오지 않고 나귀만 데리고 와 무엇에 쓰려는가?” 제자는 대답하였다. “이 나귀는 그 옹기장이보다 훌륭합니다. 옹기장이가 오랫동안 만든 질그릇을 이 나귀는 잠깐 사이에 모두 부숴 버렸습니다.” 그 때 스승은 말하였다. “너는 참으로 미련하여 아무 지혜도 없구나. 지금 이 나귀는 부수는 데는 뛰어나지만, 백 년을 두어도 그릇 하나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오랫동안 남의 공양을 받고도 조금도 그것을 갚을 줄 모르면서 항상 손해만 끼치고 끝내 이익됨이 없다.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도 그와 같다.

 

 (三二)고客偸金喩
昔有二고客。共行商賈。一賣眞金。其第二者賣兜羅綿。有他買眞金者燒而試之。第二고客卽便偸他被燒之金。用兜羅綿과。時金熱故燒綿都盡。情事旣露二事俱失。如彼外道偸取佛法著己法中。妄稱己有。非是佛法。由是之故燒滅外典不行於世。如彼偸金事情都現。亦復如是

 32. 금을 훔친 장사꾼
두 사람의 장사꾼이 함께 장사하러 갔다. 한 사람은 순금을 팔고, 다른 사람은 솜을 팔았다. 금을 사려는 사람이 시험하기 위해 금을 불에 태웠다.  이 때 다른 장사꾼이 불에 달궈진 금을 훔쳐 솜 속에 숨겼다. 금이 뜨거웠기 때문에 솜은 모두 타 버리고 그 바람에 금을 훔친 사실마저 탄로 나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외도들이 부처님 법을 훔쳐다가 자기들의 가르침인 마냥 하며, 부처님 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다.
 외전(外典)이 모두 타 버려 세상에 유행하지 않는 것은, 금을 훔쳤다가 사실이 모두 탄로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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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탁(木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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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사용한다. 이를 크게 의식법구(儀式法具)와 생활용구(修行儀式用具)로 나눌 수 있다.

 의식법구란 부처님께 예경을 드리거나 각종 의식 때 사용되는 도구들로 대표적으로는 불교의 사물(四物)인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이며, 석장(錫杖), 염주(念珠), 불자(佛子), 발우(鉢), 경권(經卷), 경책(經冊), 정병(淨甁),  금강령(金剛鈴), 금강저(金剛杵) 등이 있다. 그리고 생활용구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대표적으로는 다기(茶器)를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도구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자잡지 월간 좋은인연에서는 매호마다 의식법구를 한 가지씩 소개하고자 한다.

   목탁은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의식법구로서 보통 살구나무, 대추나무, 박달나무 등으로 만든다.  목탁의 기능으로서는 아침, 저녁 예불뿐 아니라 여러 의식에서 대중들을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널리 사용된다. 목탁은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다음과 유래가 전해온다.
  어떤 스님이 죽어서 물고기가 되는 과보를 받게 되었으며, 또한 등에 나무까지 났었다고 한다. 어느 스님께서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날 때,  그 물고기가 나타나서는 전생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등에 난 나무를 없애 줄 것을 애원하므로, 스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물고기의 등에 난 나무로서 고기의 모양을 만들어 치면서, 부지런히 수행할 것을 염원하였다고 한다. 또 고기는 밤 낯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고기 모양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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