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8(2004)년 5월호 Vol.4,No.40. Date of Issue 1 May ISSN:1599-337X 

 

 

 

 

 

 

 

 

 

 

 소유

범수

 기업을 크게 기술중심과 상품중심으로 나눌 수 있듯이, 사람도 내면우선과 외면우선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부분과 전체가 원만한 조화를 이룰 때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그래서 물건이나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직 간접적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에는, 그에 걸 맞는 기능이나 품격을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은 생필품이 되어버린 휴대폰이 귀하던 시절, 부산 백화점내 고속버스 터미널 화장실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x들 고급 차 끌고 다니는데, 무슨 돈으로 타고 다는지 모르겠다. 그래 x들 카폰까지 달고 다니더라." 본의 아니게 남의 이야기를 엿듣게 된 필자는 순간 당황스러웠는데,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x들이 바로 필자의 신분인 승려를 가리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주치면 서로 곤란해질 수도 있기에, 그냥 그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좀더 듣기로 하였다.
 대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무소유로 대표되는 승가가 오히려 세속적 부유층 삶을 모방한 형태로 나아감에 대한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이었다. 한 동안 그들은 비난 섞인 거친 말을 배설하듯 내뱉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 사이 손에는 시간이 지나버린 차표와 휴대폰이 속절 없이 들려져 있었다.
 한갓 일회성 분풀이 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이야기는 잠깐이나마 필자에게 소유에 대한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승가에 대한 세인들의 믿음이나 바램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게 더 적절할 것이다. 하여튼 그 후 필자는 비록 필요에 의해 뭔가를 소유하게 되더라도, 화장실에서 들은 반 질타성, 반 비난성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의 또 다른 그들을 가정해 보곤한다.
 승가에도 소유에 대한 규정이 있다.
비구 6물*이라하여 개인의 소유에 대한 외형적이고도 구체적인 제한과 더불어, 사물의 속성인 무상을 밝힘으로써 바른 가치관에 바탕한 인식과 생활을 제시하고 있다. 즉 소유의 한 축인 사물의 본질을 밝혀, 강제적인 제약보다는 각자 스스로가 소유나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하게끔 하며, 그 본질은 만족(知足)*할 줄 아는 삶에 두고 있다.
 필자는 지금 현실에서 소유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단순소유의 개념보다는 사용에다 초점을 두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즉 "무엇을 소유하는가? 보다는 왜,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는가?"인데, 개인적으로 이를 '승화'라고 즐겨 표현한다. 여기서 승화란 단순 소유가 아니라, 널리 이로움을 줄 수 있도록 사용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는 물론이고, 사용자까지 모두 한 단계 승화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율에 정해진 조목을 임의대로 해석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에서 재해석을 한 것에 불과하니, 공연히 시비 논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의 갑론을박에 갑을이가 안되기를 바라면서, 요즈음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자는 지금 소임을 보고있는 사찰내에서 50cc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일명 '뽈뽈이(뽀르르하는 엔진 소리에 때문에 붙어진 이름)인데, 작년 10월 50만원을 주고 중고를 샀다. 그런데 벌써 약 2천km를 탔으니, 정말 뽈뽈거리며, 많이 다니는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겨울 땔감으로 사용할 만한 나무를 오토바이 뒤에다 묶어서 지게처럼 부지런히 날랐으니 말이다.
 뽈뽈이를 타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매일 같은 길을 반복적으로 왔다 가야 하는데, 걷기에는 너무 먼 것 같고..., 기름 값도 저렴하고, 면소재지 중학교에서 열리는 조기축구에도 가야하고 등등이다. 그래서 주위의 걱정 섞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과 면과 주변상황을 고려하여 뽈뽈이를 사게 되었다. 그런데 뽈뽈이를 타고 다니는 필자를 사람들은 두 번 쳐다 본다. 오토바이가 지나 가니 언뜻 한 번 쳐다 봤다가, 스님이 타고 가니까 다시 한 번 더 쳐다 보는 것이다. 덕분에 동네에서 꽤 유명해졌다. 그리고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처음 본다.", "배달원 같다.", "멋있다." 등인데, 필자는 그런 그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자의 삶이 보여주고 평가 받기 위한 것도 아니며, 체면 때문에 허세를 부릴만큼 모험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뽈뽈이를 타던 메르세데스를 타던 '무엇이 아니라, 왜 가지며,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우선시한다. 그리고 " 뽈뽈이니까, 메르세데스 보다는 검소해"하는 식의 굴절된 생각을 가지는 것은 더욱 더 아니다. 하여튼 세상에 다양한 삶이 존재하듯 다들 나름대로의 이유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상황을 이해한다면 상호존중할 수 있다. 승려가 메르세데스를 타기 때문에 어색하게 보이고, 걸어 다니기 때문에 승려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우선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 실례로 여러분들이 지금 보고 있는 '전자잡지 월간 좋은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필요에 의해 검퓨터를 가지게 되면서, 인터넷 전용선까지 더해지자, "이왕 사용하는 것, 좀더 활용 가치를 높여 이롭게 사용해보자"는 생각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질은 활용하기 위한 것이지, 받들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평소의 생각에 공감하는 뜻 있는 분들의 도움이 더해지면서 필자가 소유한 여러 가지 물건은 단순 소유에서 벗어나 도구로서 자리 매김하며,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데 쓰이는 칼은 이롭지만, 선량한 사람을 해치는데 사용되면 흉기가 되듯이.

 
*비구6물(僧用六物): 스님의 옷인 가사 세 벌, 물을 걸러서 마시는데 이용되는 녹수낭, 그릇인 발우, 자리에 앉을 때 사용되는 좌구(방석 같은 것)  (出僧祇律)
*
知足功德 (만족을 아는 공덕)
 汝等比丘.若欲脫諸苦惱,當觀知足.知足之法,卽是富樂安穩之處.知足之人,雖臥地上,猶爲安樂.不知足者,雖處天堂,亦不稱意.不知足者,雖富而貧.知足之人,雖貧而富.不知足者,常爲五欲所牽,爲知足者之所憐愍.是名知足.
 만약 모든 번뇌(苦惱)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만족할 줄 아는 것에 대하여 관찰해 보라. 만족함을 아는 법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평온(安穩)한 곳이다. 넉넉히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오히려 편안하고 즐겁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록 천당(天堂)에 있을지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비록 부유한 듯 하나 가난하거니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한 듯 하나 부유하다. 만족을 모르는 자는 항상 오욕(五欲 재물욕, 음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에 이끌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불쌍하게 여기는 바가 된다. 이것을 만족할 줄 앎(知足)이라 한다. (出佛遺敎經)

 

 

 

 그림일기

김경연

제목: 관현오빠 사촌누나의 결혼식
 오늘은 고모네 친척의 결혼식이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빨간 투피스를 입고, 어제 오빠가 사주신 부츠를 신으니까 기분이 날아갈 것 결혼식은 전통 혼례로 했는데 TV에서 본 왕과 왕비의 결혼식 같았다. 남산 한옥마을의 전통 혼례식과는 달랐다.
 나는 전에 결혼식장에서 공중에서 내려오는 꽃수레를 타고 결혼식을 하고 싶었는데, 오늘본 결혼식도 하고 싶다. 어떤걸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어른이 되기 전에 생각해 나야겠다.

 

제목: 경북궁
 경북궁에 갔다.경북궁에서 제밀 먼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면 잔치를 벌이는 연못에 갔다. 날이 추워서 사람들이 별로 안왔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왔다. 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복잡했고, 엄마를 잃어 버릴 것 같았다. 들판에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만든 허수아비들이 있었다. 허수아비 중에서 인어공주가 있었는데 그것은 은상이었다. 왕관도 씌우고 하트 단추로 귀걸이를 만들고, 인어 옷 같이 다리에 입혔다. 졸라맨 허수아비도 있었다. 제가 문제를 내볼게요. 허수아비의 아들은?

 

 

 

 방명록 2004年 4月 6日

유승(幼僧)

"맙소사라 한다지요!
천불사라고도 한다구요!
아뿔사라고도 한데요."

 

산 밑에는 벌써 봄이 와서 한껏 바람을 일으켜 난리법석인데, 산 중턱에 자리한 이곳에선 진달래 피자마자 목련 꽃 봉우리 그때서야 햇살 받아들여 늦장 부리는 것이,  먼저 피고 져버린 아랫마을 목련 꽃 놀리듯, 우아하게 기지개 펴는 것이 어찌보면 능청스러워도 보이더군요. 풀 사이 빼꼼이 고개 내민 할미꽃은 그런 목련 가소롭다는 듯이 "네가 피어 지려하거든 내가 그때 피어주지" 목련의 기를 죽이는 듯 눈웃음을 흘깁니다.
 산 그림자 푸른 하늘 짙게 머무르는 곳이 멀리서나마 "바다인가.." 말도 안될 말을 묻고 보니, "산 10개 넘으면, 바다가 있다고...?" 처마 밑 땡그랑 풍경은 코 웃음 치는 듯 합니다.  
                                                                        " 하    하   하"
 산지기 소나무 장기 한 판 두는 듯 푸르름이 호탕스러운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하루

문옥선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일상에 활력도 불어넣을 겸해서 근처학교에서 열리고 있는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따로 주부만을 위한 반이 오전에 개설되어있으나, 일부러 아침 시간대를 선택했다.  이 시간은 학생들 위주의 수업이기에 당연히 긴장되고 때론 내 자신의 무능함을 통탄할 때도 있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은 결국 내가 잘 살아나가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란 없으니 어쩌겠는가, 모르긴 싫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알아지는 것도 아니니,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수밖에.  밤늦게 일과를 마치는 일상이라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만큼의 보람도 있다.
 학생들은 나로 인해서 자극을 받는다면서 꽤나 부지런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빼고는 상당히 게으른 축에 낀다.  집안 살림도 반들반들하게 잘 해낼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말끔한 것을 좋아하지만, 걸레를 손에 들고 쫓아다닐 만큼 잰 성격도 못된다.  그렇다고 지저분한 것도 참질 못한다.  청소건 빨래건 마음이 내켜야 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꼭 방문하겠다는 사람을 제외하고 내 스스로 누굴 초대한 적은 없다. 고백하건데 난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순전히 내 위주의 생각이다.  더더욱 윤기 나게 살림 잘하는 주부들로 인해서 내 삶의 방식에 주눅들기도 싫다.  아마도 내가 주부반을 외면하고 학생들과 어울리는 이유도 다분히 이런 이유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주부이면서도 주부의 대화에 빈곤을 느껴야하는 생활에 어쩌면 상처받기 싫어서 미리 방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싱그러운 아침에 학생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다.
 집을 나서 길 따라 걷다보면 얼굴을 감싸고 도는 상큼한 바람이 있다.  좁은 공간에 갇혀있었다면, 이런 상큼한 바람의 맛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 보며 걸어가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행복한 사색의 길이다.
 지난 밤, 잠 못 들고 뒤척였던 고달픔도 강물에 흘려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집을 나서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언제까지 고단한 몸을 뉘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에는 갓 피어난 시들지 않은 꽃들을 만날 수 있다. 나뭇잎 사이를 넘나들며 지저귀는 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와 맑디맑은 하늘과 영롱한 이슬방울을 발견하는 것 또한 잔잔한 아침의 행복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솔길, 자갈 깔린 좁다란 오솔길로 들어서노라면, 이제 막 잠에선 깬 풀잎들의 도란거림이 들리는 듯 하다.  오솔길이 끝나는 자리 왼편엔 운동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매일아침 그곳에서는 건장한 남자들이 축구를 한다.  눈비 오는 날이라고 예외가 없다.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싱그러운 그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내게도 한때는 저런 넘치는 젊음이 있었으리라.  피 끓는 저 젊음, 저 용솟음치는 혈기가 바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국력일 것이다. 그 한편으로 트랙을 열심히 돌고 있는 주부들도 보인다. 학교운동장을 열심히 돌아서 체중조절에 성공했던 친구가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날씬하게 변해버린 그 친구의 모습에 탄복했었다. 피나는 훈련을 거쳐 탄생된 의지력의 결실이었다. 운동장을 벗어날 때쯤 꼭 만나게 되는 부부가 있다. 언제나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에 방울방울 땀방울들이 맺혀 있다.  난 그들을 보면 방긋 미소 짓게 된다.  모습이 아름다운 부부다.  교정은 이제 산수유를 시작으로 벚꽃과 목련이 지고 나자 철쭉이 한창이다. 꽃이 피고 지듯 모든 것들은 때가 있는 법이건만 빠르게만 외쳐대는 현실에서 중심 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멀잖아 커다란 연못에는 수련이 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전에 버찌가 까맣게 익어갈 것 같다.  땅의 기운을 흡입한 나뭇잎들은 나날이 짙고 푸르러 간다.

 

 

 

 두려움에 맞서기

손진숙

 캄캄한 밤, 시골 과수원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나가기가 무섭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밤만 되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고 그 무섬증은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족쇄 같았다. 더 이상은 인간으로써의 자유를 침해당할 수 없다 여기고 두려움에 대한 실체를 알아보기로 했다.
 화가 잔뜩 나서 과수원 밤길을 걸을 때는 무섭지가 않다. 혹시 머리 푼 귀신이 나오더라도 내팽게쳐 버릴 독기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의 마음으로 과수원 밤길을 걸을 때는 온갖 귀신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머리카락이 쭈삣서고 마음은 콩알처럼 작아지고 약해진다. 이 두 차이는 뭘까? 결국 두려움도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느껴진다. "골프선수 박세리는 정신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공동묘지에서 혼자 골프 연습을 했다 하지 않는가..."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그 나름의 노력의 댓가를 치루고 나서야 얻어 낼 수 있는가 보다.
 세상 살면서 내 뜻을 거역하면서 일어나는 일, 첨예하게 부딪치는 일들은 마음에서부터 꼬는 일 없이 놓았을 때만 풀리고 해결됨이 우주의 신비한 마력 같다. 그러나 한가지, 두려움만은 놓으면 갇혀버리고 맞서야만 극복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의식의 한 귀퉁이에 밀쳐두었다가 틈만 나면 꺼내서 두려워했던 그 실체를 뒤져 볼 방법을 마련했다. 전에는 웬만하면 밤에는 나가지 않으려 하고 나갔다가는 검은 나무 그림자에 놀라 후다닥 뛰어 들어왔지만 이젠 아니다. 캄캄한 과수원 밤을 천천히 걸어보고 가만히 서있으면서 어둠 속에 있는 것들을 쳐다본다. 상상으로 만들어 내는 귀신의 무서움과 태연한 척 하려는 노력의 생각까지 자세히 간파한다. 일단 마음을 실험대에 올려놓고 치열하게 살피겠다고 겨루니 마음이 어느 쪽으로도 도망을 갈 수 없어서 힘이 붙었다. 얼마 전 어느 법당에서 본 불상은 꽤 인상적이었다. 대개 불상의 모습은 도를 이루고 난 후의 넓고 깊은 부드러운 표정인데 그 불상은 베일 듯이 절제되고 날카로운 표정이었다. 느슨한 마음, 밖으로 떠도는 마음을 한칼에 베어 버리고 내면의 치열한 정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귀신의 두려움 또는 사람 살이의 두려움 모두가 작은 마음의 살림 살이 인데 두려움에 맞서는 큰마음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모든 소리와 형상을 잠재우고 본래의 고요함으로 돌아간 밤에 그 고요함이 내게 전해질 때까지 밤길 과수원 산책을 계속해야겠다.

 

 

 

 산행

불원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경남 통영시 사량도(蛇梁島)는 옛날 어사 박문수가 고성군 하일면에 있는 문수암에서 이를 바라보니, 섬 두개가 마치 짝짓기 직전의 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사실 뱀이 많아서 뱀과 천적관계인 동물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는 그 곳을 드디어 가기로 하고 우리는 통영으로 출발했다. 통영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사량도를 향해 부두로 출발하였다. 부두에서 40분쯤 들어가니 멀리서도 자태를 뽐내는 사량도의 지리산이 나타났다.
 섬이라고 하기에는 꽤 큰 곳, 육지의 조그마한 읍내보다는 크다고나 할까?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있고, 은행, 노래방 등도 있었다.
 사량도 지리산을 오르는 길은 여럿이 있으나, 우리는 종주코스를 선택하고 금평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돈지리까지 갔다. 여정은 다음과 같다. 돈지리-지리산(398m)-불모산(399m)-가마봉-옥녀봉(281m)-금평항. 시간은 대략 5-6시간을 잡고 출발했다. 우리는 마지막 배를 타기로 하고 여유있게 산행을 시작하였다. 채 400m가 안 되는 산이지만, 얕보면 큰일 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만심을 가지면 안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량도, 남쪽으로는 돈지항의 평화스러운 모습과 함께, 한려수도의 수많은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사천시를 앞세운 지리산의 장쾌한 주능선이 펼쳐지고, 시야에 들어오는 바다 풍경 덕분에 돌길이 지루하지 않고 아기자기하기만 곳 하지만, 곳곳에 위험구간이 있다. 위험구간 옆에는 항상 우회로가 마련되어 있는 자상함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어떨 때는 우회로보다 위험구간이 덜 위험하고 주위경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옥녀봉까지 이르는 코스에는 2개의 철사다리, 밧줄타고 오르내리기, 수직로프사다리 등, 유격훈련 받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에게 제일 힘든 코스는 밧줄 타고 내려 오기였다. 머리로는 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여기서 우회로도 갈 수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까스로 내려오니, 또 위험구간... 주저앉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 정도에 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은 들었지만 이런 재미가 있어서 산행이 덜 지루하고, 다음에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다.
 모든 코스를 다 지나와서 금평항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가 되었다. 배를 타고 나올 때 사량도를 마음에 두고 해지는 남해의 바다를 쳐다보니, 동양화 한 폭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 멀리 지는 노을과 남해의 섬들, 거기에 어우러진 배들, 아!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이 이것일까?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한 남해의 모습, 너무나 아름다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보통의 산행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고 하면, 사량도 지리산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가는 산행이었다. 보너스로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노을까지 볼 수 있으니 이처럼 멋진 선물이 있을까.

 

 

 

 할미꽃

김지민

 

 

내 책상에 놓인
할미꽃

꼬브라진 등을 하고
둘째 딸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그 슬픔에 난 후회했다.

둘째 딸을 실컷
부르고 찾을 수 있게
놔 둘걸...

집에 꺾어 온 걸
후회했다.

 

 

 

 관심

장남지

 

 1. "어서오세요~ 모든 분께 행복을 드립니다.."

  ....

  "와~~ 여기 분위기 너무 좋다.."
 

 2. "와~~ 여기 분위기 너무 좋은데~.."

  ...

  어,...  사소한 높이...
 

 3.  나만...아는 사소한 높이.

  나만 느끼는 높은 벽.



 

주변을 둘러보세요..우리에게는 발한번 내딛으면 지날 수 있는 곳이지만, 실제 휠체어를 타는 친구들에게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보도블럭의 작은 높이에도 아주 힘겹게 발걸음을 합니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卷第二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二九)貧人燒추褐衣喩
昔有一人。貧窮困乏。與他客作得추褐衣而被著之。有人見之而語之言。汝種姓端正貴人之子。云何著此추弊衣褐。我今敎汝當使汝得上妙衣服。當隨我語終不欺汝。貧人歡喜敬從其言。其人卽便在前然火。語貧人言。今可脫此추褐衣著於火中。於此燒處當使汝得上妙欽服。貧人卽便脫著火中。旣燒之後於此火處求覓欽服都無所得。世間之人亦復如是。從過去身修諸善法得此人身。應當保護進德修業。乃爲外道邪惡妖女之所欺광。汝今當信我語修諸苦行。投巖赴火捨是身已。當生梵天長受快樂。便用其語卽捨身命。身死之後墮於地獄備受諸苦。旣失人身空無所獲。如彼貧人亦復如是

 29. 베옷을 불사른 어리석은 사람
 가난한 사람이 품을 팔아 굵은 베옷 한 벌을 샀다. 이웃 사람이 “그대는 귀족의 아들인데, 왜 이런 낡고 굵은 베옷을 입었소? 당장 그대에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옷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터이니 내 말을 따르시오.  나는 결코 그대를 속이지 않을 것이오.”라고 하자 그는 기뻐하면서 그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 사람은 베옷을 입은 사람 앞에서 불을 피워 놓고 말하였다. “지금 그 추한 베옷을 벗어 이 불 속에 던지시오. 그것이 탄 자리에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옷을 얻도록 하겠소.” 그는 입었던 옷을 불 속에 던졌다. 그러나 그것이 탄 자리에서 아무리 좋은 옷을 얻을려고 해도 얻을 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도 그와 같다. 온갖 착한 법을 닦아 사람의 몸을 얻었는데, 그것을 보호하여 덕을 쌓고 업을 닦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외도의 삿되고 나쁜 말과 헛된 욕심에 홀려 버린다. 곧 "너는 지금 내 말을 믿고 온갖 고행을 닦아라. 또는 하늘 나라에 가면 언제나 즐거울 것이다"라는 말을 따라 목숨을 버리고 죽는다면, 뒤에 지옥에 떨어져 갖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사람의 몸을 잃고 아무 얻음도 없는 것은 마치 저 가난한 사람과 같다.

 

(三○)牧羊人喩
昔有一人。巧於牧羊其羊滋多。乃有千萬極大간貪不肯外用。時有一人善於巧詐。便作方便往共親友而語之言。我今共汝極成親愛。便爲一體更無有異。我知彼家有一好女。當爲汝求可用爲婦。牧羊之人聞之歡喜。便大與羊及諸財物。其人復言汝婦今日已生一子。牧羊之人未見於婦。聞其已生心大歡喜重與彼物。其人後復而語之言。汝兒生已今死矣。牧羊之人聞此人語。便大啼泣噓희不已。世間之人亦復如是。旣修多聞爲其名利필惜其法。不肯爲人敎化演說。爲此漏身之所광惑妄期世樂。如己妻息爲其所欺。喪失善法。後失身命幷及財物。便大悲泣生其憂苦。如彼牧羊之人亦復如是

 30. 양치는 사람의 어리석음
 어떤 사람이 양을 잘 키워 무려 천만 마리나 되었다. 그러나 매우 탐욕스럽고 인색하였다. 간사한 사람이 계교를 갖고 그 사람을 찾아 “나는 지금 너와 아주 친해서 한 몸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예쁜 여자를 알고 있다.  너를 위해 주선할테니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자, 양치는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많은 양과 재물을 주었다. 그 사람은 다시 말하였다. “네 아내가 오늘 아들을 낳았다.” 양치는 사람은 아직 그 아내도 보지 못하였는데, 벌써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또 그에게 재물을 주었다. 그 뒤에 그 사람은 또 그에게 말하였다. “네 아들이 태어났다가 그만 죽었다.” 양치는 사람은 그만 그 말을 듣고 슬피 흐느껴 울었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이미 많은 명예와 이익을 얻고도 그것을 아끼며, 남을 위해 이롭게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번뇌스러운 육체에 홀려 허망하게 세상의 향락에 기댄다.  또 그것을 자기의 처자식처럼 여기다가 거기에 속아 착한 법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뒤에 자기의 신명과 재물을 모두 잃고 슬피 울면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니, 마치 저 양치는 사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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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오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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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 5월 26일입니다.(음 4월 8일)
 복전(福田)에 신심(信心)의 씨앗을 심어 수행(修行)으로 깨달음을 길러내는 불자(佛子)라면, 진리(眞理)의 등(燈), 자비(慈悲)의 등, 평화(平和)의 등을  밝혀 이 세상이 바로 불국토(佛國土)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불교는 내세(來世)나,  신(神) 중심의 가르침이 아니다. 따라서 고타마 부처님께서도 <유행경(遊行經)>에 "방일(放逸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방탕하게 놂. 또는 게으름)하지 말라. 나는 방일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정각(正覺)을 이루었다. 한량없는 온갖 착함도 또한 방일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일체 만물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이것이 여래의 최후의 말씀이다.(無爲放逸。我以不放逸故。自致正覺。無量衆善。亦由不放逸得。一切萬物無常存者。此是如來末後所說. 出佛說長阿含經)"라고 하시며, 누구나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깨달음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의미는 온갖 것에 얽히고 매여 고통받는 삶에서 스스로를 창조하며, 주인되는 삶이 바로 우리 자신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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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고(法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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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가운데 하나로서 홍고(弘鼓) 또는 법고(法鼓)라고 한다.
 북(鼓)은 나무로 몸통을 만들고, 양면은 소가죽을 사용한다. 의미는 축생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으며, 기능으로서는 불교의식에 여러 모로 사용되는데, 주로 아침과 저녁 예불 때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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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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