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7(2003)년 11월호 Vol.3,No.34. Date of Issue 1 Nov ISSN:1599-337X 

 

 

 

 

 

 

 

 

 

 

 

범수

 

밑에 있다고 거꾸로 있는 것 아니듯이,
위에 있다고 바로 있는 것이 아니니,
어디에 있던 교만하지 말며, 비굴하지 말라.

수행자라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신념을 가지고 행할 뿐,
보여주고 평가받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느 가을 좋은 날 ....이 세상 모든 원력 보살을 위해 두 손 모읍니다.

 

 

 

치과가 좋아요

김지민

  저녁시간이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어금니를 감싸 쥐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우~아파 그냥 엄마한테 말해 버릴까?" 전에부터 어금니가 아프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면 볼수록 점점 거멓게 변해갔다. 이제는 욱신거리며 아프기까지 한다. 이럴 때는 엄마께 말하고 치과에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치과에 가는 것이 너무나 싫다. 초록색 마스크를 쓰고 언제나 우리를 기다린다는 듯 서 있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언니, 번쩍거리고 날카로운 여러 가지 도구들 모두들이 나를 겁먹게 한다. "너무 아파서 못 견디겠어" 나는 결심 한 듯 입을 크게 벌려보고 엄마에게 갔다. “엄마, 이가 아픈데요.” “어디 보자... 이런 많이 썩었구나, 내일 학교 마치고 바로 병원에 가자.” “아-네”
 정말 걱정이다. 가면 보나 마나 날카로운 도구들이 내 입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닐 텐데..."내가 지금 잠을 자면 아침이 오겠지? 그러면 치과에 가야겠지?" 내 머릿속은 치과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아침이 되었다. 공부 시간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그리고 차를 타고 바로 치과에 갔다. 이름 적고 의료보험증 확인할 동안 나는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서 이빨을 확인해 보았다. 시꺼먼 이가 너무 보기 싫었다. 가슴이 쿵쿵 거리고 있는데 저 쪽에서 “김지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엄마 손을 꽉 잡고 들어갔다.
 의자에 앉자 의자가 움직이고 눈을 꼭 감은 채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렸다. 의사선생님께서 입안을 죽 둘러 보시더니 “이가 썪은지 꽤 오래 되었군요.”라고 말씀하셨다. 왠지 아플 것 같았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입을 더 크게 벌렸다.
 "지지지직 위위위윙"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별로 아프지 않았다. "에이~ 괜히 떨었잖아"그런데 그것도 잠시 "위위위 키키킹" 거리더니 뾰족한 기계가 내 이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입을 벌리고 있어서 소리 지를래야 지를 수도 없었다. 잠시 후 치료가 끝났다. 난 아직도 훌쩍거리고 있었다. 허겁지겁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데 저 쪽에서 “지민이 이틀 더 오서야 합니다.”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마지막 날 모든 치료를 다 마치고 다시 거울 안을 들여다 보았다. 내 이가 은색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후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 매일매일 꼬박 333 칫솔질을 하고 단 것은 자주 먹지 않았다. 직접 치료를 해 보니 겁을 먹지만 않으면 생각보다 치과가 무서운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보면 내가 이빨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 그것을 고쳐주기 위해서 일어난 일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치아! 이제는 많이 신경써야지! 그리고 주위의 어린이들이 치과나 이빨에 대해 무서워 하거나 내팽개쳐 두지 말고 우리 웃는 모습을 예쁘게 만들어 주고 음식을 꼭꼭 잘 씹어서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파수꾼인 것을 알아야겠다.

 

 

 

 솜씨일지도 몰라

문옥선

  얼마 전 시외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볼일이 있었는데, 마침 가던 날이 장날이었다. 가을 장에는 할일 많은 시골 아낙네들도 바쁘다. 그녀들의 양손에는 가을걷이를 한 장바구니들이 들려져 있었고, 잰 걸음으로 파라솔 사이를 들랑날랑 바삐들 움직였다. 나도 그들을 따라서 파라솔 안으로 들어갔다.
 파라솔 안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감보'라는 별명답게 단감이 첫눈에 들어왔다. 반들반들 맛나 보이는 주황색 단감이 박스마다, 조용한 품새로 앉아있었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맛을 보았는지 바닥에는 껍질들이 수북했다. “어느새 저렇게 익었지?” 감을 좋아하다보니, 살 때는 좀 넉넉히 사서 소쿠리 같은 곳에 푸짐하게 담아놓고 눈으로 입으로 가을을 만끽하며 먹는다.
 배도 있다. 감기 걸렸을 땐 찬 음식을 먹지 말라는데, 왜 청개구리마냥 시원한 배가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버섯은 넉넉히 말려두었는데, 달리 가을걷이를 할 게 없는 나에게 버섯을 다듬고 말렸던 일은 조금쯤 가을걷이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어릴 때 먹었던 찐쌀도 보였다. 한입 가득 넣고서 오물오물 씹을수록 달콤한 맛과 구수한 향내가 입안 가득 퍼지는데, 찐쌀은 가을철에 먹을 수 있는 어린 시절의 별미였었다. 먹을 땐 찐쌀을 한 움큼을 손으로 쥔 다음 한 입에 다 털어 넣고, 양 볼이 빵빵해지게 먹어야 제 맛이었다. 또 있다.  밭에서 갓 뽑아온 듯 아주 신선해 보이는 무와 배추.
김치 담기에 적당한 크기의 무와, 속이 꽉 들어 찬 포기배추, 반으로 갈라진 배추는 속을 드러내놓고 천연덕스럽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어차피 소금에 절여야 하고, 또 배추 고르는 방법을 잘 모르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저런 판매방법이 나쁠 것 같지 않다. 그 외 애호박, 깐 마늘, 쪽파, 대파, 양파, 생강, 오이, 가지 등 가지가지의 이름도 가뭇가뭇 한 채소들과 건어물들이 즐비했다.난 적당히 둘러본 후 다시 뒤돌아서 조금 전의 김치담기에 알맞은 무를 파는 곳으로 갔다. 집에 김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싱싱하고 깨끗한 무를 보니 갑자기 무김치를 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김치를 담아 먹을 기회는 별로 없다. 호사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고마운 이웃을 둔 덕이다.
 무 한단을 달라고 하자, 부지런히 단을 묶던 아주머니는 아침나절에 가져왔던 것은 이미 다 팔고 다시 밭에 나가서 뽑아온 거라며, 손수 골라주셨다. 무가 두개나 더 묶여 있다며. 난 양이 많은 것보다는 무의 크기가 고른 것이 더 나을 것 같았으나, 아주머니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았다. 잎이 아직 드세지 않으니, 무와 함께 버무려도 맛있을 것이다. 한단을 샀으나 단이 크고 또 무의 무게 때문에 질질 끌다시피 들어야 했다. 하지만 무거워도 어쩔 것인가?. 힘겹게 무단을 들고 파라솔 사이를 막 빠져 나오려는데 이번에는 한쪽 손이 불편하신 아주머니가 큼지막 하지만 아직 풋풋한 호박 한 덩이를 내밀며 오백원만 내고 가져가란다.  무도 무거운 탓에 쩔쩔매고 있었건만, 결국 호박도 샀다.  “가만, 저 아주머님은 내가 호박 잘 사는 줄 어떻게 아셨을까?” 슬며시 웃음이 번져 나왔다. 팔이 아팠지만, 그냥 놔두면 금방 시들고 질겨지니 집에 오자마자 무와 배추를 서둘러 다듬고 절인 다음 맨손으로 양념 쓱쓱 버무려 담았다.
 김치에 맛이 배도록 한 뒤 다음날 냉장고에 넣었다. 그냥 슬렁슬렁 담았고, 조미료는 물론 갖은 양념을 넣은 것도 아니었는데 아주 맛깔스런 김치가 만들어져서 끼니 때마다 식탁에 앉히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진짜 일등공신은 무엇일까?  무? 솜씨? 혹, 실수?  사람들은 "음식은 재료가 좋아야 한다." 고들 한다.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김치 통을 바라보자니, 한단도 무거워 쩔쩔매던 생각은 잊어버린 채 "기왕살것 한단을 더 사오는 거였는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언제나 이 맛이라면!  아무래도 돌아오는 장날에는 그때 그 자리에 다시 가봐야 할 것 같다. 

 

 

 

 희망이 자라는 열린 학교

장남지

 열린 학교가 시작된지 한 주가 지났을 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열린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친숙해지고 있을 때 였습니다. 뒤늦게 한 학생이 우리 반의 한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박정호 학생입니다.
 정호는 겁이 좀 많지만, 의사표현도 가능하고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조금은 까무잡잡한 얼굴에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붉은 뿔테 안경, 배는 뽈록하게 나와서 걸어 다니는 폼은 여지없는 교장선생님이죠^^ 그렇게 우리는 모두가 사과반이 되어 같이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정호랑 같이 생활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 문제 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의사표현이 잘 안되는 학생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호를 보며 그렇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호는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나, 지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물어보고 또, 물어보는데, 알면서도 다시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선생님들께서 정호의 호기심 어린 질문들에 하나씩 꼼꼼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알고 있는 데에도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정호를 보면서 저 행동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사진: 정호랑 풍물반 선생님>

 처음에는 정호가 한 번 물어봤던 것은 기억할 수 있도록 또박또박 아주 천천히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당장 그 자리에서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호는 30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같은 질문을 아주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어보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호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수업시간외의 다른 질문들을 하면, 모두들 정호의 질문을 못들은 척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모든 선생님들이 지켜주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후의 방법인 벌을 주기로 했죠. 매일 아침 칠판에는 정호를 위한 동그라미가 3개 그려집니다. 정호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했을 때, 동그라미에 색이 칠해지고 이렇게 3번에 계속되면 벌을 주는 거죠. 점심이 되기 전까지는 "점심도시락을 선생님이 먹는다."고 말하거나, 점심 이후에는 "집에 가는 버스에 타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죠...이 방법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 잘 알고 있었지만, 정호는 열린 학교 첫 날부터 줄기차게 물어본 것이 “언제 마쳐요?”, “몇 시에 마쳐요? ”, “이것만 하면 집에 가요?”, 이런 질문 외에도 "밥은 언제 먹느냐?", "반찬이 이것인데 맛있다". 등등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 물어봤기 때문에 정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거든요.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죠. 그러다가 다른 방법도 생각해냈습니다.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물어볼 때, 그것을 제가 되려 묻는 거죠... “내가 뭐라고 말해줬지?” 이렇게요..쉽게 고쳐지는 행동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 동안은 정호가 질문하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죠.

 정호의 숫한 질문 덕에 정호가 어떤 선생님을 제일 좋아하는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같이 공부하기가 조금 더 수월하기도 했습니다.
 정호는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매일 아침 다른 테이프들을 가지고 와서 통학버스에 탈 때 빙그레 웃으며 버스 아저씨께 “이것 좀 틀어 주소~”하며 말하죠^^ 그리고 특히 트로트 노래가 나오면, 꼭 아저씨처럼 어깨를 들썩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가끔 정호의 같은 질문들로 선생님들의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할 때 쯤 정호의 어깨 덩실 춤 한 번이면, 화났던 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들 웃기에 바쁘답니다. 하는 말투나 행동이 정말 아저씨같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아주 열심히 하려고 하고 수업시간에도 뭐든 관심을 보이고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정호가 가장 무서워하던 물도 수영시간에 수치료실에서 물과 친할 기회가 생겨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뭐든지 혼자서만 하려는 경향을 보였지만, 어느새 친구들에게 자기가 싸온 맛있는 반찬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가슴 깊은 말들을 주고받지는 못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대하면 어느샌가 그 마음이 전해져 이해하는 마음과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정호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일기

김경연

 

제목: 병원

  할머니,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할머니가 무릎이 아프셔서 병원에 간 것이다. 할머니는 치료를 많이 받으셨다. 치료중에서 신기한 치료가 있었다. 그것은 롱부츠같은 것을 다리에 입히고 기계버튼을 누르면, 공기가 들어갔다 나왔다. 그 치료는 "다리를 주무르는 것과 똑 같다."고 할머니가 그러셨다.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조금 치료가 웃겼다. 나는 커서 할머니처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목: 치과

  치과에 갔다. 선생님이 "2, 3"하면 뽑는다고 하셨는데, "1"하고 뽑혀서 나는 놀랬다. 그러나 갑자기 뽑혀서 울지 않았다. 나는 이를 뽑은 후 순데 꼬치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왜 이를 뽑고 순데꼬치를 먹으니까 아주 맛있었을까?" 신기하다.
 치과에서는 타잔을 아주 그림이 예쁘다고 엄마가 그러셨다. 선생님 나에게 "몇 살이니, 이가 어떻게 하다가 흔들렸니?" 이렇게 물어보셨다.

 

 

 

 황산벌

조혜숙

 '퓨전' 요즘 흔히 듣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퓨전음악, 퓨전요리, 퓨전 인테리어....등등 이 단어가 안 쓰이는 곳이 없을 만큼 이젠 우리에게 아주 보편화된 스타일입니다. 영화 '황산벌'도 굳이 어떤 쟝르로써 구분을 짓는다면 '퓨전 역사 코미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데 황산벌의 기획자는 이 영화를 단순히 퓨전 역사 코미디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껏 그냥 보편적인 고정관념으로 알고 지내왔던 것에 대하여 뒤집어 생각해 보자." 라는 의도라고 합니다. 신라와 백제가 황산벌전투에서 싸울 때 과연 "지금껏 우리가 무심히 생각했던 것처럼 과연 표준어로 싸웠을까?" 전쟁터로 나가기 전 계백이 그의 가족에게 자살할 것을 강요했지만, 과연 "계백의 아내가 지고지순한 태도로 계백의 뜻을 따랐을까?" 신라와 백제의 충신이자 명장인 김유신과 계백의 삶이 정치가에 이용당함이 아닌, 과연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충정이었을까?" 진짜 "역사적 사실은 어떠했을까?" 하는 관점에서 즉 '리얼리티가 있는 것은 새로울 수 있다.'라고 이 영화를 만든 동기를 말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660년. 딸의 원수인 백제 의자왕에게 앙심을 품은 김춘추(무열왕)는 당나라와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김유신장군에게 당나라 사령관 소정방과의 협상을 명령합니다. 협상에서 밀리게 된 김유신은 7월10일까지 덕물도 앞 바다까지 당나라군사들을 위한 군량을 운반해야 하지만, 그 도중엔 백제의 계백이 버티고 있어 난감하기만 합니다.  백제의 의자왕은 쳐들어오는 신라의 김유신을 막기 위해 마지막 충신인 계백에게 황산벌의 사수를 맡깁니다. 계백은 불리한 이 전투에서 목숨 받쳐 싸울 것을 각오하고, 자신의 아내와 자식까지 모두 죽이고 황산벌로 향합니다.

 당나라와 약속한 7월10일은 다가오는데 죽기를 각오한 계백의 대항에 김유신은 전투의 승리를 위해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내놓는데....물론 여러분들이 이미 우리 역사에서 배워 그 전투의 승리자가 누구인지 그후의 역사가 어찌 전개되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시대의 비장했던 황산벌 전투를 한번 꼼꼼하게 짚어보고, 그를 다시 뒤집어보고, 그 역사 속에 숨겨진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진실과 해학을 찾아 본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이 영화를 무엇보다도 살린 것은 극 중에서 나오는 너무나 재미있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투리입니다. 비장함으로 백제의 결사대를 소집한 근엄하기만 했을 것 같은 계백장군의 입에서 "느그들 나랑 거시기 해야겄다.", "그러니께 이번 여그 황산벌전투에서 우리의 전략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뭐시기 할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한다. 바로 이거여 알것제."라고 말하고 군사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자신의 화랑까지도 희생시키는 엄격한 김유신장군의 입에서 "뭣이 어째고 어쪄! 아가리는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혔어. 호랭이는 가죽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땜시 디지는거여, 이 인간아!"라고 말합니다. 그냥 영화로서가 아니라 과연 그 시절에 그러했을거라는 생각이 들고 상상만 하여도 웃음이 나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역사적 영웅으로서의 김유신장군과 계백장군이 그저 먼 옛날의 역사속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처럼 똑같은 인간적 갈등과 욕망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느껴졌습니다. 한번쯤 우리들 모두도 굳어져버려 당연화된 고정관념을 뒤집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영화를 모두보고 난 후의 느낌은 '거시기'로 시작해서 '거시기'로 끝난 느낌이지만, 요즘 새로 불고 있는 일방적인 기존의 해석을 뒤집어 보여주는 사극의 열풍에 한몫을 하였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영화 Shine을 보고

손진숙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미치지 않고서는 연주할 수 없는 것이다. 저쯤이면 미치지 않나요?" 스승과 제자의 이 강렬한 대화들이 음악을 향한 열정에 더 이상의 수식어를 필요치 않게 한다.
 'Shine' 이 영화는 한 음악가가 음악에 대한 열망과 성숙을 생애의 과정을 통해 조명한 것이다. 주인공 데이빗 헬프갓은 어릴 적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이 집착이라 할 만큼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아버지는 정규 음악 공부를 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들의 재능은 훌륭했으나, 콩쿨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자신이 가르칠 수 없음에 결국 스승을 찾아 주게 된다. 제대로 피아노 교육을 받은 데이빗은 콩쿨에서 우승하고, 미국행 유학의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을 잃게된 유태 민족사의 충격에 갇혀있는 폐쇄적인 사람이여서 데이빗의 유학행 티켓을 태워버린다. 데이빗의 실망은 컸지만 아버지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청년이 된 데이빗은 또다시 영국 왕립 음악학교의 장학생 초청을 받게 된다. 아버지는 이번 역시 완고히 반대하지만, 더 이상은 아들을 막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고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아들에게 묻어 준다.
 영국 왕립 음악학교에서 데이빗의 천재성을 발견한 전설적인 음악선생님을 만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기로 하였다. 그의 연습은 오로지 음악만을 위한 존재의 모든 것이었다. "악보를 충분히 익히고 나면, 악보를 머리 속에서 지워버려라"는 스승을 이 말씀은 마치 영혼과 손이 악보와 하나가 되어 음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수행자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젊은 날 방탕의 한 마디도 있었지만, 그것이 음악의 운명적 열정을 꺾이게 할 순 없었다. 드디어 연주회 날 '악마의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부드러움 속에 숨어있는 한 줄기의 비장한 선율을 그으면서 연주가 시작되었다.
 양손 다섯 음을 동시에 짚어야 하는 격렬한 음에 그의 심장은 멈출 듯 전율이 흐른다. 혼신의 연주를 끝내고 관객의 환호에 일어서려다 쓰러져 버린다.
 데이빗의 연주 장면은 영화 관객이 연주자와 같이 호흡하고, 느끼고 음을 공유하면서 빠져 들게 하였다. 자칫 난해한 음들이 소음으로 들릴 수 있는데 “연주가의 표정, 몸짓에서 소음이 아닌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적 정보가 음악의 이해를 돕는구나” 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병원으로 실려 간 데이빗의 의식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깨어난 후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려고 전화를 하지만 아버지는 냉정히 전화를 끊어 버리고 커텐을 내려버린다. 부모가 자식을 향해 마음을 닫아 버리면 자식은 어떻게 될까? 결국 데이빗은 어린아이의 감정으로 돌아간 정신질환을 앓게 되고 긴 세월, 장년이 될 때까지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데이빗은 부모님의 뜻을 거역해서 벌을 받게 되었고, 피아노를 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피아노를 치면 안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피아노를 쳐다볼 때 본능적인 끌림은 어쩔 수 없었고 그의 내면에는 끊임없는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엇다.
 옛날의 유명한 데이빗으로 돌아가게 하고자 하는 어떤 부인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옛날로 돌아갈 수 없었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도 없는 우울한 어느 날 공원의 벤치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눈앞을 스치며 생기있게 뛰어가는 젊은 연인을 따라 무작정 뛰어가며 온몸으로 젖어 드는 비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아이같은 순수함,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떠오르는 비의 느낌을 악상으로 표현하고자 피아노를 찾아 다니는 장면은 생명의 절대절명의 이유 같다.  어느 카페에서 피아노를 발견했을 때 주변의 어떤 상황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피아노만 보일 뿐이었다. 곧 경쾌한 선율로 빗방울이 줄지어 흐르는 듯한 비의 향연이 시작되고 음악이 그를 가득 채우고 저절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그 카페에서 마음껏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성공해야 된다는 연주회의 무대가 아니라 어디에서든 피아노를 칠 수 있다면 자유롭고 행복했다. 드디어 그를 전적으로 이해 해주고 받아 주는 반려자를 만나 그렇게 원하던 가족의 따뜻함과 지지 속에서 옛 스승에게 편지를 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제대로 다시 칠 수 있겠다"고....
그의 재기의 연주는 시련의 긴 세월을 돌아와 아버지의 강압적인 부담에 1등이 되기 위해서 쳐야 하는 피아노가 아니라 열려 있는 단순함, 영혼의 피어남을 묻어 낼 수 있는 음의 승화였다. 마지막 장면, 관객의 기립 박수에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 Shine은 아는 것만큼 이해한다는 보편적인 말처럼 음악을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음악 영화다.  시간을 없앤 것처럼 세월을 보냈지만 시련을 딛고 성숙되어진 사람과, 성공의 연속적인 선상에서 시련없이, 자신의 성찰 없이 겉 껍질로 성공한 사람의 차이에서 어떤 것이 진정한 성공일까? 물어 지는 감동의 영화였다.
 

 

 

 

 분별

진선

 

神光不昧  萬古徽猷 入此門內  莫存知解 -中峰明本-
(신광불매 만고휘유 입차문래 막존지해)

본래 우리의 마음(神光)은 어둡지 않아, 오랫동안 밝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을 때 아는 체하는 분별심을 두지 말라.
중봉명본(1263~1323) 중국 원나라 때 스님






 

 

 

 

 일기

정가을

(4학년) 2000년 10월 30일 제목 : 나의 마음

 나는 피아노 학원을 다녀온 후 날짜만 생각한다.  '얼마 안 있으면'하는 생각이 든다. 11월 11일이면 피아노 경연대회가 열리는 날.  계산을 한다면 다음 주하고도 다음 주 토요일인데,  순천으로 가는 게 아니라 광주로 가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기대감에 부풀어있고 그 날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면서도 피아노 연습은 꾸준히 한다는 것이다.
 난 쉬고 싶어도 자꾸 연습을 하는 손가락도 아마 대회에 나간다는 것을 느끼나 보다.   이번이 처음이라서 너무나도 기쁘고 즐겁다.  나의 마음은 피아노와 시계 달력에 실리고 있다.

 

(4학년) 2000년 11월 11일 제목 : 즐거운 하루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머리를 감고 준비를 하기에 바쁘다.  바로 오늘이 피아노대회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준비하여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올리려고 하였다. 머리를 묶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묶은 후 엄마께서 "화장도 하라고 했지?"라고 말씀하시자, 나는 "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피아노학원에 가서 인사를 하고 연습을 한 후 차에 올라탔다. 모두들 차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간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있다보니, 어느새 광주에 도착하여 잠시 놀다가 점심을 먹었다.
 나와 엄마는 이모를 만나 점심을 먹고 가보자 형주가 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기다리자 드디어 중급편이 끝났다. 모두 다 최고상이었다. 바로 2번째로 높은 상이었다. 그리고 고급 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의 순서가 되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밖에 나와 단체사진을 찍고 놀다 들어가니 거의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드레스를 입는 곳에 들어가 윗옷을 모두 벗고 거기서 골라준 드레스를 입고 나가서 있다가 기다리니 금방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굉장히 긴장되어 손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열심히 쳤다. 종소리가 울리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계속 기다리니 다 끝나서 모두 갈 준비를 하였다. 결과는 2명은 빼고 모두 최고상 나머지 두 명은 준 특상을 받았다.

 

 

 

 사군자

구선화

 

 

 

 

 서울 북촌-영혼의 여정

도난주

북촌에 관한 마지막 연구부분입니다.
많은 부분이 그림으로 설명됩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반년 가까이 북촌에 관련하여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마지막회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좀더 좋은 글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티베여행

 이정숙

 

  -2003년 8월 12일 화요일-
 
아침 7시에 출발이라서 6시쯤에 아침을 먹었다. 난 죽만 한 그릇을 먹었다. 이상하게 입맛이 없어서... 아니 원체 음식이 맡질 않다. 간덴사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먹고 출발했다.
 라사에서는 2시간 거리. 한시간 정도 달리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비 포장길이다. 가파른 길... 근데 이게 웬일... 엄청나게 많은 차들이 있었다. 우리보다 더 일찍 출발한 사람들이 많았다. 차도 너무 많고, 사람도 너무 많고, 역시 축제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탱화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데 오전 9시에 한다는 것이 12시로 시간이 변경됐다고 했다. 2시간을 마냥 죽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정호와 나는 간덴사를 둘러보러 갔다. 한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라마스님들이 불경을 외고 계셨다. 사원을 구경하긴 했으나 그 자리를 스님들이 지키고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다시 우리는 그곳을 나와 대법당을 간다는 것이 잘못 들어갔다. 정면 출입구가 뒤쪽에 있는 것이 아닌가.... 다 와서 보니까 그런 거였다.
  우리는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그래서 스님께 물어봤는데,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해 바디랭귀지를 했다. 그제서야 알아 차리신 스님은 화장실을 가르쳐 주셨는데... 간덴사 입구에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급한데, 화장실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문을 열고 허물어진 건물로 들어갔다. 부서진 사원의 일부로 보수 중에 있었다. 그곳에서 화장실을 물었다. 한 분이 멀리 문 쪽을 가리켰다.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 하고 놀랐다. 아닌게 아니라 뻥 뚫린 화장실로, 멀리 사람들도 보이고... 화장실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경치는 좋았다.  150Cm정도의 'ㄱ'자형 담으로 화장실을 구획 짓고, 내부에는 돌들이 일정간격으로 여러 개 놓여있을 뿐이었다. 원하는 곳에 발을 올리고 볼일을 보면 되는 거였다. 어쨌든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시원했다.

우리는 탱화를 보기 위한 장소로 가서 탱화가 걸리기만 기다렸다. 오후3시까지 포탈라궁을 가야하기 때문에, 마냥 간덴사에 있을 수는 없었다. 가이드 언니는 12시30분에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12시15분쯤에 탱화가 벽면에 걸려졌다. 가까이 가서 봤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아쉽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교수님이 없어졌다.(여행일원중의 한분으로 사모님과 함께 여행에 참가 하신분) 차가 막혀 혼자 걸어가신다고 했는데... 근데 없어졌다. 우리는 다음 일정도 있고, 또 그분은 여행을 많이 하신 분이라 혼자서도 잘 찾아오시리라 생가하고 출발했다. 드디어 포탈라궁을 보게 되었다. 정말 크고 웅장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못을 박지 않고 지은 103m정도 높이의 건물이라고 했다. 유네스코 지정으로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근데 포탈라궁에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정호가 카메라를 찍다가 걸렸다. 카메라를 빼앗기기 직전까지 갔다. 다행히 정호가 재치를 발휘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새 테이프를 몰래 바꿔서 준 것이다.
  역시 포탈라는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규모면에서 달랐다. 엄청났다. 공부를 하고 왔어야 하는데... 아쉽다. 우린 관람을 마치고 차를 타고 호텔로 왔다. 넘 피곤해서 잠을 잤다. 씻지도 않고. 그리곤 오후 7시쯤에 일어나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근데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정호와 난 슈퍼에서 죽이나 사서 먹어야지 하고 가는데, 과일가게 앞에서 일행 두 분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제과점에 갔다. 그 곳에서 치킨을 판다고 해서... 우린 치킨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치킨은 먹을만 했는데.... 아이스크림은 영.. 맛이 없었다.  제과점을 나와 슈퍼에 들러 물, 죽을 사고 방에 왔다. 그러나 다시 밖으로 가 어제 주문한 반지 4개랑, 목걸이 2개를 사러 다시 나갔다. 한참 물건을 사고 있는데, 가이드언니가 왔다. 우리는 물건을 사고, 호텔로 왔다.
 언니 말로는 교수님은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오후4시까지 기다리시다가 돈을 간신히 바꿔서 버스를 타고 와서,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오셨다고 했다.  로비에서 교수님을 만났는데, 많이 피곤해 보였다. 맘 고생이 심했나 보다..방에 와 씻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 점심-6원(元), 저녁-5원(元), 선물-90원(元), 물?죽-4.8원(元), 간덴사 입장료-35원(元)


  -2003년 8월 13일 수요일-
 
오늘은 아침 8시에 시가체를 향해 출발했다. 먼저 우린 '얌드록초'에 들렸다. 정말 예쁘고 아름다웠다. 물빛이...장난 아니게 파랗고 깨끗했다. 사진도 찍고, 야크를 타고 사진도 찍었다. 야크를 한번 타면 5원이라고 했다. 그리곤 다시 '얌드록초'가까이 내려갔다. 물에 손도 담그고, 단체사진도 찍었다.
  우린 다시 버스를 타고 시가체를 향해 달렸다. 가는 중간 알 수 없는 곳에 내려다. 산에 눈이 쌓여 있었는데, 정말 멋있었다. 그곳에서 사진도 찍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화장실로 갔는데, 한 사람당 1원이라고 했다. 우린 6명에 5원을 내고 볼일을 봤다. 말이 화장실이지, 문도 없구, 담은 낮고, 안은 지저분하고 하여튼 좀 그랬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몇몇 남자는 화장실에 와서 언덕에 앉아서 우릴 보는거 였다. 황당해서.... 우린 숄로 가리며 볼일을 봤다.  '얌드록초'에서처럼 그냥 밖에서 볼일을 보는게 더 낮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우린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30분정도 달려, 어느 마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난 배가 아파서 먼저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은 식당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화장실 안은 이제까지 간 곳 중에서 제일 더러웠다. 어찌나 더럽던지... 정말 야외가 훨씬 나은거 같았다.
  간체의 쿰붐사원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20원. 우린 먼저 쿰붐을 보기로 했다. 근데 카메라를 들고 가려면 10원을 내라는 거였다. 우린 돈을 내고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갈수록 지쳐서 그냥 대충보고 꼭대기 층에 올라갔다. 그리곤 내려와 옆에 있는 대법당엘 갔다. 여느 법당이랑 똑같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웅장한 불상하며, 어때까지 본 것과 많이 달랐다. 아쉬움을 남기고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우린 나왔다. 우리 팀들은 차를 주차한 곳까지 릭사나 릭사를 개조한것(오토바이에 수레를 매단 것)을 타고 차있는 곳까지 왔다. 그리곤 다시 시가체를 향해 달렸다. 1시간30분정도를 더 가야한다고 했다. 시가체 도착 10분전에 주유소에 들렸다가 오후7시30분쯤에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이때까지 묵었던 곳 중에서 제일 깨끗했다. 샤워를 하고 TV를 켜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는데,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방영된 텔레토비가 아오고 있었다.
  TV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뚜드렸다. 저녁을 같이 호텔방에서 먹자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끼리 저녁을 컵라면, 죽 등으로 했다. 난 그냥 죽을 먹었다. 언니 말로는 죽이 맛있다고 했는데... 난 맛이 없었다. 컵라면도 맛있는 거라면서 고추장을 풀고 먹으면 맛있다고 했지만, 내 입맛에는 맡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시계를 보니 자정이 다 되었다. 우린 넘 늦어 각자 방으로 갔다. 난 양치하고 잤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卷第一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愚人食鹽喩 愚人集牛乳喩 以梨打破頭喩 婦詐語稱死喩 渴見水喩 子死欲停置家中喩 認人爲兄喩 山羌偸官庫喩 歎父德行喩 三重樓喩 婆羅門殺子喩 煮黑石蜜漿喩 說人喜瞋喩 殺商主祀天喩 醫與王女藥令卒長大喩 灌甘蔗喩
債半錢喩 就樓磨刀喩 乘船失釪喩 人說王縱暴喩 婦女欲更求子喩

(一九)乘船失釪喩
昔有人乘船渡海。失一銀釪墮於水中。卽便思念。我今?水作記。捨之而去後當取之。行經二月到師子諸國。見一河水便入其中覓本失釪。諸人問言。欲何所作。答言。我先失釪今欲覓取。問言。於何處失。答言。初入海失。又復問言。失經幾時。言失來二月。問言。失來二月。云何此覓。答言。我失釪時?水作記。本所?水與此無異。是故覓之。又復問言。水雖不別汝昔失時乃在於彼。今在此覓何由可得。爾時衆人無不大笑。亦如外道不修正行。相似善中橫計苦困。以求解脫。猶如愚人失釪於彼而於此覓

19. 물에 금을 긋는 사람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은 그릇 하나를 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는 생각하였다. "지금 물에 금을 그어 표시를 한 뒤 나중에 다시 찾자". 그후 두 달이나 걸려 사자국(師子國)에 이르렀다. 그 사람은 앞에 흐르는 물을 보고 곧 들어가 전에 잃어버린 은 그릇을 찾으려고 하였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쩌려고 그러는가?.”그가 말하기를. “ 전에 은 그릇을 잃어버렸는데 지금 그것을 찾으려 한다. 어디서 잃어버렸는가?. 처음으로 바다에 들어와 잃었다. 잃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 두 달쯤 되었다. 잃은 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찾겠는가?. 내가 은 그릇을 잃었을 때, 물에 금을 그어 표를 해 두었는데, 전에 표시해 둔 물이, 이 물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물은 비록 다르지 않지만 너는 전에 저기서 잃었는데, 지금 여기서 찾은들 어떻게 찾겠는가.?”
 이것은 외도들이 바른 행을 닦지 안고, 선과 비슷한 것을 닦다가, 중간에 잘못 생각하여 괴로워하면서 해탈을 구하는 것과 같다.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저기서 은 그릇을 잃고 여기서 찾는 것과 같이 말이다.

 

(二○)人說王縱暴喩
昔有一人說王過罪。而作是言。王甚暴虐治政無理。王聞是語卽大瞋?。竟不究悉。誰作此語。信傍?人捉一賢臣。仰使剝脊取百兩肉。有人證明此無是語。王心便悔索千兩肉用爲補脊。夜中呻喚甚大苦惱。王聞其聲問言。何以苦惱取汝百兩。十倍與汝。意不足耶。何故苦惱。傍人答言。大王如截子頭。雖得千頭不免子死。雖十倍得肉。不免苦痛。愚人亦爾。不畏後世貪渴現樂苦切衆生。調發百姓多得財物。望得滅罪而得福報。譬如彼王割人之脊。取人之肉。以餘肉補。望使不痛無有是處

20. 백 냥의 살과 천 냥의 살
 어떤 사람이 왕의 허물을 말하였다.“왕은 매우 포악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무척 화를 냈다. 그러나 누가 그런 말을 하였는지 끝까지 알아보지 않고, 곁에서 아첨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서는 어진 신하를 잡아 매달고 등에서 백 냥 가량의 살을 베어 내었다. 어떤 사람이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자, 왕은 뉘우치고 천 냥 가량의 살을 구해 와 그의 등에 기워 주었다.
 밤이 되자 신하는 신음을 하며 몹시 괴로워하였다. 왕은 그 소리를 듣고 물었다. “왜 그리 괴로워하는가?. 너의 백 냥 가량의 살을 베고 그 열 배를 주었는데, 그래도 만족하지 않은가?” 그는 대답하였다. “대왕이 만일 아들의 머리를 베었다면, 비록 천 개의 머리를 얻더라도, 아들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 또한 비록 열 배의 살을 얻었지만, 이 고통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아서 내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세의 즐거움만 탐하여, 중생들을 괴롭히고 재물을 짜내면서, 죄를 없애고 복의 갚음만을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왕이 사람의 등살을 베어 낸 뒤, 다른 살로 기워 놓고 그가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사진
공간

 

 

편집부

 <경남 통영>

 

절기
풍속

 

 하원, 손돌이 바람

편집부

 *음력 10월 첫째 오(午)일 말날(馬日)*
 우마(牛馬)를 이용하여 교통과 동력을 제공받던 시절에 말(馬)은 아주 소중한 짐승이었다. 그래서 시월 달 처음 드는 말날에는 마구간에 떡 시루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병없이 새끼 잘 낳고, 주인 말 잘 듣도록 해 달라고 소박한 기원이었는데 이를 마제(馬祭)라 부른다.

* 하원(下元- 歲祭, 음력 시월 보름날)*
 
음력 시월 상달의 보름날은 하원(下元)이라 하여 시제를 지낸다. 조상신은 5대까지만 사당에서 지내고, 그 이전 조상님들은 가을에 한꺼번에 모시고 제를 지낸다. 이것이 세제(歲祭)이다.

* 손돌이 바람(손돌풍, 孫乭風, 음력 10월 20일)*
 
음력 10월 20일경. 이 날은 상례적으로 바람이 크게 부는데 이를 '손돌이 바람, 손돌풍(孫乭風), 손석풍(孫石風)'이라고 한다. 절기(節氣) 상으로는 대체로 소설(小雪)과 겹친다. 
 뱃사공 손돌 - 고려 때 전란으로 왕이 강화도로 파천(播遷)을 할 때, 배가 통진(通津) 강화 사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풍랑이 일어 위험하게 되었다. 이 때 손돌이 왕에게 "안전한 곳에 피신한 후 바람이 잔잔해진 후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었지만, 파천하는 처지에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터라 그를 반역죄로 몰아 참살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광풍이 불어 뱃길이 매우 위태롭게 되었고, 할 수 없이 왕의 말을 목 베어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니, 비로소 바다가 잔잔해져 무사히 강화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 뒤 매년 이 날이 되면, 몹시 추워지고 광풍이 이는데 이를 손돌추위, 그 바람을 손돌이 바람이라고 한다.

 



좋은인연

 

 

 慶北 慶州 南山 拜里 石佛立像 觀音

 편집부

 

 원력보살

 범수

 

 치과가 좋아요

 김지민

 

 솜씨일지도 몰라

 문옥선

 

 희망이 자라는 열린 학교

 장남지

 

 그림일기

 김경연

 

 황산벌

 조혜숙

 

 영화 Shine 보고

 손진숙

 

 분별심

 진선

 

 일기

 정가을

 

 사군자

 구선화

 

 서울북촌

 도난주

 

 티벳 여행

 이정숙

 

 백유경

 편집부

 

 사진공간

 편집부

 

 하원, 손돌이 바람

 편집부

 

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발행인: 범수스님
(EDITOR E-mail   savaha@nate.com)
www.savaha.or.kr



 

 나눔과 어울림을 지향하는 좋은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