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7(2003)년 9월호 Vol.3,No.32. Date of Issue 1 Step ISSN:1599-337X 

 

 

 

 

 

 

 

 

 

 

 관세음 보살님

범수

  "스님! 어른들께서 종종 관세음보살이라고 되 뇌이시는데 무슨 뜻입니까?". 가만히 그를 쳐다 보았다. 세상의 모진 풍파가 힘겨운 듯 묵묵히 일하는 가운데, 불쑥 건네는 말 속엔 "왜 이렇게 삶이 고단합니까?" 라는 하소연이 담겨있는 듯 하였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그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고 물끄럼히 쳐다보는데, 재차 "스님"이라고 부르며 답을 재촉하는 듯 했다. 그제서야 "예, 관세음보살이란..."이라고 막상 운을 떼었지만, 말 끝을 흐려 버렸다. 그리고는 교학적인 관세음보살에 대한 설명보다는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항상 관세음보살이라고 하세요, 그러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라며 그의 삶에 불보살님의 가피* 가 함께 하기를 기원하였다.
 우리는 "관세음보살" 이라는 말과 글을 자주 보고 듣고 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원력(願力)
*을 세워 열심히 수행하거나, 이익이나 명예와 관계 없이 남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당신은 관세음보살입니다." 라고 할 때가 종종 있다. 이 때 말하는 "당신은 관세음보살입니다."란 누군가를 지칭해서 그가 곧 관세음보살님과 동격, 또는 동일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뜻은 누군가가 관세음보살님께서 세우신 원과 같은 행을 하는 부분 즉, 자비행을 실천하는 것을 가르켜 찬탄하는 것이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에 대한 교리적 설명에 앞서 특성을 간략히 요약해보자.

"...或慈或威 分形散體 應諸衆生 心所願求 拔苦與樂  大慈大悲 觀自在菩薩...."

    (혹자혹위 분형산체 응제중생 심소원구 발고여락 대자대비 관자재보살)

때로는 자애스럽게 때로는 근엄하게 몸을 나투시는 관세음 보살님,
중생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응하시여 고통을 덜어주시고 또 즐거움 주시네...
                                                                                            <觀音請 由致 부분>

그러면 '자비의 화신'이라고도 불리는 관세음보살님에 대하여 사전적인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관세음보살님(觀世音菩薩)은 대자(大慈) 대비(大悲)를 근본 서원으로 하며, 아미타부처님의 보처보살님으로서 모든 중생의 교화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비는 넓고 깊어서, 중생 구제의 면에서 큰 공덕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관세음'이란 '세간의 모든 소리를 다 듣고 보며, 그에 따라 중생을 돕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관세음에 따르는 많은 별칭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예컨대 구세(救世) 보살, 대비(大悲) 성자(聖者),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구호(救護) 고난자(苦難者), 두려움을 없애 주는 시무외자(施無畏者), 두루 원만하게 통하여 방해됨이 없다는 의미에서 원통(圓通) 대사(大士) 등이다. 이외에도 여러 별칭들이 있다. 한편 법당에서 관세음보살님을 뵐 때 손에 연꼿을 든 것을 접할 수 있는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왼 손에든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갖춘 불성(佛性)* 을 표시하고, 그 꽃이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성불한 뜻을 나타내며, 그 봉오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나타낸다. 이상 관세음보살님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여러분들께서도 마음속에 아름다운 연꽃 하나씩 들고 계시기를 두 손 모아 발원합니다.

* 아미타부처(阿彌陀佛) 정토 신행의 핵심이 되는 부처님. 무한한 광명을 지니며, 무한한 수명을 지닌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중생 모두가 깨달음을 얻어서 성불할 것을 바라며, 극락 정토에 왕생하기를 염원하는데, 극락 정토를 마련해 놓고 중생을 구제하고 계시는 부처님이다. 이명으로는 무량광불(無量光佛),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청정불(無量淸淨佛), 아미타바(阿彌陀婆), 아미타유사(阿彌陀庾斯). 아미타(阿彌陀), 미타(彌陀) 등이 있다.
* 가피(加被) 불 보살님께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위해 힘을 더하는 것.
* 원력(願力) 어떤 목적을 성취하고자 바라고 구하는 결의
* 보살(菩薩) 깨달음을 구하여 수행하는 사람. 깨닫고자 하는 뜻을 세워 수행하는 구도자. 깨달음의 지혜를 얻기 위해 수행하고 있는 사람. 발심하여 불도를 실천하는 사람. 미래의 부처. *사홍서원과 *6바라밀로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려고 노력하는 수행자.
* 불성(佛性) 본래 갖추고 있는 무한한 능력

 

 

 

 그림일기

김경연

 

 

제목: 엄마한테 혼났다.

 학교에서 우재와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수빈이가 바보라고 해서 한번 때려서 엄마한테 혼났다. 엄마는 수빈이와 나 때문에 속상하시다고 하셨다. 앞으로는 수빈이를 때리지 안고 상관하지 않고 엄마 말씀도 잘 들어야겠다. 먼저 건드리고 약올리는 수빈이를 안보는 여름 방학이 빨리와서 다행이다. 2학기 때는 서로 참고 사이 좋게 놀아야 겠다.

 

 

제목: 도서관

 진주와 함께 도서관으로 책을 읽으러 갔는데 제헌절이라서 도서관은 열지 않았다. 그래서 야외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읽다가 집에 와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땅 따먹기를 했다. 이기려고 애쓰는 나를 보고 엄마는 "이기는게 목적이 아니고 재미있게 노는게 놀이이다."  라고 하셨다. 진주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자꾸 떼를 쓰는 나를 봐줘서 진주야, 미안해. 앞으로는 안 그럴께.

 

 

 

 불교수행은 기초와 기본에 충실한 것

덕선

 끝으로 성실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일 어떤 아버지가 자기의 부인과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 아버지는 부인과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감내하면서 가정을 지키고 또 가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할 것이고, 사업을 하시는 분은 사업을 또한 열심히 할 것이고,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사에 전념하여 자식을 교육하고 남보다 더 잘 해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어렵고 고단한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가정을 생각하고 또 부인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예를 들었습니다만 이러한 마음을 쓰는 것이 이기적으로 나의 가족에게만 적용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나의 가족을 떠나서 중생계에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비로소 보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수없이 목도하는 것은 거리에 침을 뱉고, 또 차에서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공공의 이웃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남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러한 행동부터 절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앞의 예와 마찬가지로「참된 성실은 이타심(지혜, 무욕)에 비례한다.」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든 세 가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머리의 똑똑함이나 지식의 축적된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자신의 이익만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이나 남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심의 차이가 우리의 삶 속에 얼마나 큰 결과로 무의식적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 조건(이타심, 지혜, 무욕)이 충족되어 있지 아니하면, 수행을 해도 발심이 일어나지 않으며, 혹 발심이 일어났더라도 마장에 걸리게 되고, 또 정체되어 성장이 되지 않는 근본 원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들은 결코 남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내 자신에게 먼저 그와 똑 같이 적용되고 인과(因果)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나 자신이 그러한 마음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대하는 맘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곧 내가 나 자신에게 쓰는 마음입니다. 또 우리 자신이 남에게 쓰는 가치만큼만 자신도 꼭 그만큼만 행복도, 불행도, 받아 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은 부처(열반)를 누리고 있는 분이며,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일 뿐입니다.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 즉 앞에서 예를 든 정직, 용기, 성실 등과 같이 지혜가 작용하고 드러나고 성장하는 원리를 이용해서 좀더 수행의 빠른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선지식께서 쉽고 적확(的確)하게 시설(施設)해 놓으신 것이 바로 육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바라밀의 제일 첫째 바라밀이 보시바라밀(남을 배려하는 일체의 생각과 행위)이 되는 것입니다.

 ■  지혜는 무욕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욕은 또한 무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바라밀인 보시바라밀은 지(止) 즉 무욕의 측면에서 수행을 시작해 가는 것이며 관(觀)은 여섯 번째 즉 혜 바라밀이 됩니다. 이 둘은 분리 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가 성숙되면 다른 하나는 저절로 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바라밀의 시작은 지(止, 보시바라밀, 무욕, 무아)가 되고 육바라밀의 끝은 관(觀, 慧)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관(止觀)이나 정혜(定慧)의 원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 덧붙여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 그 누구라도 남을 생각하는 맘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을 위하는 맘이 있는 것은 모두 똑같으나 다른 것이 있다면 남에게 내가 무었을 베푼다고 했을 때, 금강경의 무주상보시의 말씀과 같이 반대급부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있고 없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바라는 맘 없이 그저 평등한 마음과 순수한 마음으로 행하는 보시바라밀, 이것이 바로 지혜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고 주되 주었다는 마음 없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혜의 성장 목표임을 말씀드립니다.

    왜 보시바라밀을 제일 첫 번째 바라밀에 두었는지 이제 아시겠지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 즉 보시바라밀이 이루어지면 앞에 예를 들어 설명한 것과 같이 저절로 지계가 이루어지고 인욕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며 정진하게 되고 당연히 선정과 지혜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 흐르듯이 저절로 연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육바라밀 중에 제일 첫 번째에 보시바라밀을 둔 것입니다.
 방향을 바꿔서 다시 설명을 좀 더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명에서 내가 있다는 생각(아상 我相)의 착각이 일어났습니다. 무명에서 내가 있다는 착각이 일어나면 그와 동시에 내 것이라는 집착이 일어나게 됩니다. 내 것이라는 집착이 일어나면 또 그와 동시에 팔만사천의 번뇌가 일어나게 되고 고통과 두려움이 따라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생각(我相)이 크면 비례적으로 집착이 커지고 비례적으로 번뇌가 커지고 비례적으로 고통이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를 살면서 느끼는 일체의 무수한 고통들은 다름 아닌 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집착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보시바라밀은 내가 있다는 생각(我相)의 착각(집착)을 점점 줄어들게 하여 마침내 자신을 바르게 볼 수 있는 힘을 자라게 하고 어두운 의식(무명, 욕심)에서 밝은 의식(명, 무욕)으로 전환케 하는 첫 번째 단추를 끼우는 바라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욕의 참된 지혜로만 이루어지는 보시바라밀이 진정 깊어지지 않는다면 비례적으로 나머지도 그리 힘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지혜는 보시바라밀 즉 이타심(무욕, 무아)의 총량에 비례한다.」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생각하는 맘이 지극하면 그때 비로소 보살이 되고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사홍서원 등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남을 지극히 생각하는 사람만이 서원의 발심을 낼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서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나지 아니하고서는 큰 도를 성취할 힘 또한 생길 수 없는 것입니다.

 

사홍서원(四弘誓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그래서 사홍서원, 화엄경 십지품의 보살 10대원, 아촉보살 11원, 관세음보살의 서원, 무량수경의 법장비구 48대원, 지장보살의 지옥중생구제원 등을 경전마다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리와 이타의 나와 남을 위한 서원을 세우고 실천하는 수행자를 대승(자리이타의 서원이 있는 수행자)이라고 부르고 보살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수행이 깊어지면 질수록 저절로 더 큰 발심과 서원이 자라게 되고 그러므로 대승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반대로 수행이 깊어지지 않았을 때는 대승을 하고 싶어도 즉 서원을 세우고 싶어도 마음에 발심이 잘 일어나지 않고 또 마음이 소승(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수행자)에 머물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러한 서원의 양이 곧 그 사람이 현재 가지고 있는 수행의 깊이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으며 발심과 근기의 양이다. 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처음 주제로 돌아가서 여러분들이 모두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보살행을 닦아 마침내 성불하리라!” 하는 서원과 발원이 있을 것입니다만 그 서원과 발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똑똑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을 많이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말씀드렸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 (남을 배려하는 마음인 보시(布施)바라밀, 서원(誓願), 하심(下心) 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원리로 나에게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하며 성불을 이루는 그날까지 오직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에 성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더욱 깊이 이해되고 익어지고 더욱 더욱 사무쳐져가도록 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얻으려하고 이루려하는 그 지혜의 전부인 것입니다. 기초와 기본을 떠나지 마십시오. 시작도 그곳이고 끝도 그곳 일 뿐입니다. 그 속에 진정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믿고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完)

 

 

 

 아이에게서 배우는 기다림의 미학

장태자

  큰 아이가 시험인데도 좀처럼 책상 앞에 진중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텔레비전 앞을 왔다갔다 하기에, 보다 못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방에 안들어가면 텔레비전 끈다." 엄청 섭섭해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다시 방영 중인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가 거실로 나오더니 하는 말, "엄마 요즘 불교대학도 공부해야 된다고 하던데, 지금 안하시면 어떻게 해요? 텔레비전 끌까요?" 장난기 없이 정색을 하며 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보이지 않는 폭력에 온몸이 휘청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역지사지'라고, 아까 아이에게 그 말을 했을 때, 아이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의 입장을 되짚어 생각하니, 금세라도 아이에게 달려갈 듯 내 안에 잠재하던 화가 어느새 가라앉는게 보였다.
 큰 아이의 한마디에 충격을 받은 그 날, 나는 오래만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다. "나는 그동안 부모의 역활을 제대로 알고 했는가? 요즘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현재 우리지역 어머니모임의 회원인 나는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엄마들로부터 종종 전화를 받는다. "갑자기 아이가 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하는데, 댁의 아이는 어떠세요?"
 엄마들의 목소리는 하나 같이 다급하고 절박하다. 나는 일단 "기다리라"고 하지만, 엄마들에게 가장 힘든 게 바로 ‘기다리는 것' 임을 너무 잘 안다. 대부분의 평범한 엄마들은 아이가 하루만 학교에 안가도 큰일 나는 줄 안다. 아니 설사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대낮에 떡 하니 제 방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봐 넘길 속 좋은 엄마는 대한민국에 별로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이 사실을 모를까...그들도 부모가 기다림에 약하다는 것과, 어떤 일에 화를 내는가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제 문제가 급하다. 뭐가 나인지, 또 나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끝없이 무엇인가를 시도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십대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권위와 전통에 대한 반항은 바로 그들이 정체성을 학교와 교사 그리고 부모에 대해 일단은 쌍심지를 켠다. 한마디로 좋게 안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제일 참지 못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 내에도 엄연한 위계 질서가 있기 때문에 어릴 땐 응석을 부려도 마냥 귀엽기만 하지만, 일정 시기가 되어 반발하는 모습에 대하여서는 쉽게 받아 들이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 학부모 모임에서 한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서 상소리를 들었다고 하자, 거기에 있던 대부분의 학부모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았다. 부모 앞에서 거친 말과 상소리를 하고 또 방문을 부셔져라 힘껏 닫으며, "짜증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 그럼에도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까봐, 또는 불 필요한 갈등을 일으킬까 봐, 대응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의 반복되는 잔소리에 속으로 애국가 4절까지 부른단다.
<사진: 대웅전 앞에서 두 아들과 함께>

   내가 아는 아이들 중에는 부모가 외식을 가자고 하거나, 특별한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하자"고하는 것이 제일 싫다고 한다. 아이들이 볼 때, 부모가 하자는 대화는 쌍방의 소통이 아닌, 부모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불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큰 아이에게 "결국은 이해하지도 못할 거면서, 제발 이해한다고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와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갇혀 있던 내가 나름대로의 출구를 발견한 것은 여행이었다. 많이 보고 듣는 것이 산 교육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산사, 오죽현등 여러 곳의 문화유적을 공부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쏘다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들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숙소에 있는 수영장에서 그냥 한가롭게 놀기를 원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오색온천에서 만난 다른 아이들의 하소연을 듣고서야 알았다. 부모 손에 이끌려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한결 같이 "아휴 힘들어 죽겠다"고 투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날 숙소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너네 엄마랑 아빠랑 돌아다니면서 구경 하는게 싫으냐고?" 그러자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엄마가 실망할까 봐 얘기 안 했을 뿐이에요." 그것을 계기로 나는 이후의 목표를 놀고 쉬는 것으로 잡았다. 아이들 눈 높이에 맞추자고 작정하게 된 것이다. 실은 부모들이 어떻게든 아이와 대화 한번 더 해보기 위해 끌고 나가는 외식이라는 것도 그렇다. 어른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취향에 맞추거나, 혹은 지레짐작으로 아이들이 좋아 할만한 곳을 선정하여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 생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우리 집의 경우, 외식 장소를 정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곳은 맛있는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은 패밀리 레스토랑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일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뚱하게 있지 말고 뭘 먹고 싶은지 말해, 그 쪽으로 가면 되잖아... 엄만, 내가 뭐 밥 한끼 먹고 싶어서 나온 줄 아세요? 조용하고 멋진 곳에서 가족끼리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며 싶다고요." 한마디로 모든게 다르다.
 나는 지하철1호선 같은 곳의 무대 공연을 즐기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영화 초대권이나 문화 상품권으로 제가 보고 싶은 것을 직접 선택하기를 원한다. 그러니 부모의 우격다짐식 목소리 사이로 번져 나오는 아이들의 작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부모된 처지에서 아이에게 신뢰를 받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돈으로 해결되는 것도, 마음만 앞서가서도 안된다.이런 원리를 알게 되었으니, 적어도 아이가 나의 분신이라거나 소유물이라는 착각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타인으로서 존중할 줄 알고, 또 대화의 기술과 기다림의 묘미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록 아이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섭섭하게 대해도, 독립하기 위한 한 과정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요즈음 자주 한 걸음 늦추고, 한 호흡 깊이 들이 마시려고 노력한다. 자식과 함께 성장하는데 끝이란 없기에...

 

 

 

 일기

정가을

(4학년) 2000년 2월 23일 수요일 제목 : 게으름


오늘은 학교를 안 가서 그러는지 아침부터 늦게 일어나고 학원 갈 때도 놀고 싶었다.
그리고 책도 안 읽고 컴퓨터 게임만 하고 저녁에는 어머니께서 일찍 자라하면 늦게 자고 이제 방학이라 슬슬 게으름을 피우게 됐다.  내가 더 게으름 피우기 전에 착한 버릇을 길러야 할텐데....

 

(4학년) 2000년 2월 28일 월요일 제목 : 개학날을 며칠 앞두고


이제 곧 있으면 개학하는 날이다. 방학동안 친구들과 연락한 적이 없었다. 내일이라도 해봐야겠다. 또 개학할 때 무엇 무엇을 챙겨서 가져 가야될지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일기도 꼼꼼히 썼나 살폈다. 이젠 새 학년 새 학기이니 방학동안 피운 게으름을 없애고 좋은 버릇을 기르고 놀았던 기억은 이제 버리기로 다짐하였다.  '꼭 그렇게 해야지'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

장남지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 첫째 날, 협재해수욕장에서 피곤하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잠 자리에든 우리는 어제 늦게 합류한 한 명을 포함하여 다섯 명이 되었습니다. 음...다섯이라...뭔가 심상치 않은 숫자가 되었지요?^^ 독수리 오 형제가 타고 다니는 것처럼 멋지지는 않지만, '오'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며, 오늘의 목적지인 중문해수욕장으로 출발!. 그런데 다들 늦잠을 잔 탓에 오늘은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는 코스로 정하였습니다. 그렇게 막상 지름길이라고 정하기는 하였지만, 오르막,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계속 높아지는 긴 오르막길이라서, 자전거에 달린 기아를 이용하더라도 무척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마치 거북이가 산을 오르듯 두 시간쯤 지나, 신혼여행의 필수 코스라는 분재원에 도달하였습니다. 이 곳을 둘러보면서 나무를 가꾸고 사랑하는 분들 덕택에 분재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멋져 보이는 모습을 보며, 잠깐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어려운 길을 달려야 했습니다. 끝없는 오르막길과 뜨거운 햇볕에 지친 우리는 예정한 시간보다 더디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이끌고 격려하면서 우정을 다지는 계기로 삼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올라왔으니, 아~ 이제는 시원스럽게 내려 가볼까!

 다들 흐믓한 미소와 짧은 탄성을 지르며, 시원스럽게 뻗은 내리막 길을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젠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힘들게 올라온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 여유를 부리며, 시원한 바람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며 4시가 다 될 쯤, 제주도에서 몇 안되는 산 중에 하나인 송악산에 도착하였습니다. 넓은 평지와 멋진 바다 풍경이 어우러진 송악산. 그리고 보니 여기로 오는

  동안 산이든 밭이든, 소보다는 말을 더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어쩌다가 도로를 달리는 말도 본 적이 있을 정도니 말이죠. 하여튼 우리는 주차장에 자전거를 두고 10분 남짓을 걸어 송악산의 현무암 절벽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송악산을 지나 동굴 안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는 산방산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배할 상황이

 안되어서 그 안까지 가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보는 산방산은 여느 산과는 달리 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주변에만 나무가 조금 있는 특이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저기 구름 속에 덮여 있는 산에, 아마 머털 도사가 살 것"이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 지났습니다. 산방산 허리까지 오르는 길이 그리 길지도, 많이 가파르지도 않았지만,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랐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이 너무

 시원하게 보여 모두 함성을 지르며 너나 할 것없이 자전거를 타고 내려 오게 되었습니다. 선두였던 저는 그 신난 기억이 더욱 더 했습니다.
 산에 둘러 싸여 나무밖에 보이지 않던 길이 커브를 돌자, 갑자기 탁 트인 들에 얼룩 젖소들이 그림처럼 서있고, 그 뒤에 펼쳐진 바다는 저를 저절로 함성을 지르게 했습니다. 그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들을,  말하고 싶었던 마음들을, 모두 놓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직도 잊을 수 없었던 멋진 풍경이 있는 곳에서 그만 친구 중 한 명이 다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바람에 자전거 한 대가 완전히 쓸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친구도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많이 놀라서 그런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아저씨께서 트럭으로 태워주셔서 오늘의 도착지인 중문해수욕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날 밤은 내일  집으로 돌아갈 저와 친구 한 명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그동안 아껴왔던 돈을 가지고 먹고 싶었던 것을 모두 사 먹으며, 친구들과 나란히 누워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보배

진선

 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華嚴經菩薩問明品-

     종일 남의 보배을 헤아려 본들

     자기 것이란 하나도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이와 같아서 비록 많이 듣고 본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수행치 않으면, 마찬가지이다.

     -화엄경 보살문명품-













 

 

 

 초록바다

문옥선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은 휴가와 방학을 맞은 가족이나 친구끼리,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경관 좋은 산이나 바다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올해는 그동안 관망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기꺼이 동참했다. 그간에 가족간의 오붓한 여행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꼭 떠나야지 하는 마음은 없었는데 올 여름에는 이상스레 어디든 가고 싶었다. 어디가 좋을까? 곰곰 생각한 끝에 일주일정도의 일정에 그리 멀지 않은 바다를 선택했다. 이제는 거칠고 힘든 여정으로 내 몸을 단련시키기보다는 조용하고 번거롭지 않으며 바라보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바다를 떠올린 것은 그저 좋아서이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편안해지면서 가슴속이 후련해진다.나에게

  있어 바다는 어떤 말보다 더 강한 치유력이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동요의 가사 ‘초록빛 바닷물에 두발을 담그면...’처럼 바닷물에 두발도 담그리라.

사진: 발리의 바롱댄스(The Barong & Kris Dance)

평범하게 사는 일상이니 그리 바쁠 것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막상 집을 나서려니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뿐이다. 그러나 훌훌 털어버리고 짐 가방 하나 챙겨든 채 밤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일까?. 일상을 따라 일어나던 잡다한 상념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만남들과 새 기운으로 무뎌져갔다.  특히나 낯선 곳에서 초록빛 바다와의 만남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바다 속이 훤히 비치는 맑고 깨끗한 바닷물은 손으로 떠먹어도 될 것 같았고, 하얀 손수건을 꺼내서 바닷물에 담근다면, 아마 초록빛의 손수건이 되어서 나올 것 같았다.  
 배를 타기 위해서는 모래사장을 따라 물 속으로 조금쯤 걸어가야 했기에 긴 바지를 둘둘 말아 올리고 초록빛 바닷물에 두발을 담갔다. 깊은 산 계곡에서나 가끔 보았을 법한 그렇게 맑고 투명한 물에 에메랄드빛 바다였다.  아득한 수평선, 한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파도타기의 스릴을 만끽하는 젊은 그들, 보기 좋게 구릿빛 피부로 가꾼 중년 부부의 다정한 뒷모습, 정답게 걸어가는 맨발의 젊은 연인들, 뛰노는 강아지들의 평화스런 모습까지 모두 담아 끝없는 바다의 향연을 꿈꾸듯 바라보다 문득 저 망망대해에 내가 표류하고 있다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현실의 나로 돌아오게 했다.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반 잠수함을 타고서 들여다본 바다 속은 신비함 그 자체였다.  마치 육지를 옮겨다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곳엔 길도 나무도 돌도 보였다. 저들도 물 밖을 나와 우리를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까? 우리 같은 세상이 여기도 있었네 하면서,  누군가 그랬었다. 물 속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진 말라고. 바로 이런 바다 속을 두고 하는 말이었나 보다.

 바다 속을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자니 배에서 내려 길 따라 걷고 싶고, 또 형형색색의 물고기 행렬을 따라 가고 싶었다.  그렇게 물길 따라 가다보면 용궁이 어디쯤에서 나타나 주지 않을까.
홀로 해변가를 산책하면서 바라보았던 석양의 모습도 오래도록 해변의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왔으니 입어봐야 한다며, 모녀가 권하는 바람에 별 생각 없이 입고 찍었던 사진 한 장이 발리의 기념이 되어 주었다.

사진: 원주민이 입혀주는 대로 입고 찍은 전통의상.

 

 

 

 4인용 식탁

조혜숙

  유난히 공포 영화가 눈에 많이 띄는 올 여름 극장가. 4인용 식탁은 ‘패밀리 호러’라는 쟝르에 '당신 미쳤어..'란 도발적 광고 카피를 내세우며, 감성 미스테리를 표방하였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의 섬뜩함은, 너무나 당연시 되어있는 모성애와 가족애의 진실이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한번쯤은 냉정하게 생각해보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우린 가족이니까...”하는 전제하에 표준화 되어있는 우리의 고정관념에서의 당위성과 인간의 본성을 분리해서 본다면? 과연 여러분은 생각하실 수 있을런지요?

 이수연 감독은 이 영화속의 4인용 식탁을 통해 모성애와 가족애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주인공 정원(박신양)은 늦은 밤 지하철에서 졸다가 종점에서 급하게 내립니다. 내리자마자 지하철문은 닫히고 전동차가 떠나는데 잠이 들어 미처 내리지 못한 듯 보이는 두 명의 여자아이를 의아해하며 보게 됩니다. 다음날 정원이 본 아이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어머니에 의해 살해되어 버려진 것이라는 뉴스를 듣고 몹시 놀랍니다.

 그후로 정원은 이상한 환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약혼자가 신혼살림으로 미리 들여놓은 4인용 식탁의자에 앉아있는 그 두 아이의 환상을 보게 되고, 매일 밤 같은 악몽을 꾸면서 두려움과 극심한 혼란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중에 우연히 기면증 환자인 연(전지현)을 만나면서, 그녀도 자신이 본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박한 심정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연을 통해 정원은 자신의 기억속에 가리워져 있던 끔찍한 가족사와 맞대면 하게 되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워 합니다. 연이 영화속에서 몹시 힘들어하는 정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믿지요”라고. 이처럼 정원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 들이고 더 이상의 발전을 멈추게 됩니다.
 이 영화속에서 연출된 자동차의 소음과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잡음은 항상 들리지만 거대한 아파트촌 속에서의 음울하고 고립된 느낌, 잠든 듯 죽어있는 아이들의 늘어진 몸, 지상으로 추락하는 위층 여자의 미소, 삶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던, 잃어버린 과거 기억의 재생등으로 볼 때, 이수연 감독이 이 영화를 “한 남자의 실패한 성장담‘이라고 말했지만 호러이기보다는 너무나 슬픈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인용 식탁은 결코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우선 설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전체 주제까지 훼손시킬 정도고, 우연에 우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는 매끄럽지 못해 늘어지고 삐걱대며, 배우의 연기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듯 하여, 좀처럼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테마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타인에게 다가선 사람들은 서로를 상처 입히고, 숨겨져 있던 끔찍한 진실을 알게된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든 그 무게에 짓눌립니다. 그렇게 서서히 망가져 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현실 사회가 인간 관계,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가족관계를 붕괴시켜 나가고 있다는 무거운 주제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대안이나 희망적인 실마리조차도 보여주지 않으니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정말 지독한 허무주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 북촌

도난주

  북촌 설문은 인지도와 주관식 설문지로 진행되었다. 저번 호에서는 인지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번호에서는 주관식 설문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설문은 '의식하고 느끼는 북촌과 의식하지 않고 느끼는 북촌', 그리고 '전통주거지로서 분위기 향상을 위해서 어떠한 방향으로 북촌을 살려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또한 본 설문지는 거주 5년 이상의 주민들과, 북촌내 건축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두 그룹을 비교 분석하였다.

| 분석결과
 
1.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올려지는 북촌의 이미지(우리가 일반적으로 관광지로 알고 있는 북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 주민들의 경우 생활환경에 대한 대답이 25%, 한옥자체라고 대답한 경우가 37%로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주민들이 한옥자체에 가장 북촌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전문가의 경우 푸근함이나 정겨움 등 심리적 요소가 17%, 한옥 자체가 66%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전문가들 또한 한옥자체에 가장 북촌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두 집단을 종합해 보면, 거주인의 경우 생활환경측면을 전문가는 심리적인 부분을 한옥자체 다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것은 직접생활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점으로 보여진다. 결론적으로 두 집단 모두 북촌은 생각하지 않고도 한옥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2. 의식된 상태에서 떠올려지는 북촌의 이미지(거주해보거나 그곳을 대상지로 건축이나 도시 일을 해본 후 느끼는 북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 주민들의 경우 한옥자체라는 대답이 44%로 전문가들은 한옥자체라는 대답이 83%로 압도적이다. 이는 북촌에 살면서 그리고 북촌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가장 북촌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요소가 한옥자체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결과이다.

 3. 설문조사 결론
 설문결과 일반인은 60%이상이 40대 이상으로 오랫동안 한 곳에 거주하였으며, 북촌의 변화를 직접 체험하였으며, 전문가는100%가 2년에서 10년의 기간동안 북촌을 대상으로 건축이나 도시설계 일을 하였다. 주민들과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북촌의 이미지와 관련해서 인식을 하기 전과, 하고 난 이후 공통적으로 한옥자체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종합해 보면 북촌은 전통주거지의 기능이 강한 곳으로 한옥으로 구성되며, 구성된 요소들의 집합이 전통주거지가 되었다. 이러한 점은 북촌을 구성하고 있는 한옥들간의 공간 속에서 주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분석해 보면, 전통주거지를 구성하는 요소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다음호에서는 어떠한 요소가 공공적 한옥의 공간이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티베여행

 이정숙

  2003년 8월 9일 토요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오다 말다 잊은게 생각이 났다. 어째 시작부터 위태롭다. 그러고 보니 아직 환전도 안했다. 또 12시까지 공항에 집결인데.... 아직 경기도 안성이라니...좀 늦을 것 같다. 차가 안 막혀야 할텐데. 늦었지만, 그래도  9시20분 인천공항행 버스를 탔다. 어쩌지...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핸드폰도 없는데... 12시 10분쯤에 공항에 도착했다. 다들 아줌마, 아저씨들, 그리고 여자들뿐이다. 항상 내가 가는 곳은 그렇다.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심사서를 쓰며, 기다리고 있다. 역시 단체니... 나원 참...아직 시작은 안 했지만... 개인 여행과는 좀 다르다. 아~이 일을... 재미있고 무사한 여행이 될지... 좀 걱정이다. 다음부턴 개인여행을 해야겠다. 별 어렵지도 않은데.. 단체로 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벌써 사건이 터졌다. 아~~ 단체비자 증명서가 문제였다. 출국 심사서에서 걸리고 말았다. 짜증이다. 휴~~ 신경 쓰지 말고 다녀야지... 이게 얼마짜리 여행인데.... 글쎄, 3명이 한 팀을 이루는데, 나랑 같은 팀의 사람들은 다 들어가고, 홀로 남겨져 있다. 이게 뭔지.... 그래서 나만 이상한 애가되고 말았다. 단체여행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떻게 하냐구..... 휴 내 잘못인가?... 짐 붙이는 것을 끝내고 나니 없었는데... 진짜 짜증이다. 참으려고 해도 안 된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는지.. 오후 2시 30분 출발인데... 연착이다. 기내 준비가 아직 멀었다나.... 휴~~~ 기분 좋게 시작해야지... 이제 들어가려나 보다. 기장과 스튜디어스가 들어갔다. 이제 여행의 시작! 어떤 일이 있을지... 좋은 일만 있으면 한다.

 

 30분 늦은 3시에 이륙했다. 인천에서 중경까지 소요시간은 3시30분 정도.. 도착하면 6시 30분쯤(우리나라 시간으로) 될 것 같다. 도착해서 다시 성도로 가면... 밤 9시쯤...공항에 내려 현지 가이드와 미팅 후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 메뉴는 '샤브샤브'. 기대가 되었다. 담백한 맛, 매운 맛이 있다고 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길을 몰라 돌고 돌아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을 찾아가는 동안 중경의 큰 길가 모습과 뒷골목의 모습을 두루 볼 수 있었다.

  뒷골목 풍경은 정말 영화나 어디에서 봄직한 모습이었다. 닭을 죽여 털을 그을리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들...
 중경은 중국의 4대 직할시 중의 하나란다. 북경, 상해, 천진(?), 중경. 근데 이 중경은 위의 세 개 직할시를 합쳐놓은 크기라나... 그리고 가이드는 중국의 교통수단을 빗대어 무엇이라 부르는 줄 아냐고 물어봤다. 대답인즉슨... '자전거→쥐, 택시→아가씨, 봉고→아줌마, 오토바이→과부, 트럭→주정뱅이...' 재미있는 말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식당. 들어서는 순간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 나는 숨이 확 막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는 순간..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일본식 “샤브샤브”가 아니었다. 어찌나 느끼한지... 생각만 해도 지금도 속이 메스껍고 느끼하다. 나는 콜라만 들입다 마셨다. 식당을 나와 성도로 출발했다. 5시간 걸린다고... 아이고~~ 도착하면 12시가 넘을 것이다.
 우리가 저녁을 먹고 나온 시간이 오후7시 30분쯤이었으니까.... 차를 타고 2시간을 달리다 휴게소에 들렸다. 한국처럼 깨끗하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먹을 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었다. 컴컴하고, 조용하고, 먹을 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그만 가게에 뭔가 알 수 없는 상자들이 진열되어 있을 뿐... 화장실에 가는 순간, “내가 중국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도 좀 놀랐지만, 그래도 문은 있었다. 그러나 이건 문도 없고, 허리 높이의 칸막이에 우리나라 푸세식처럼 구멍만 나 있었다. 불도 켜지지 않고... 단체로 화장실에 갔다가, 우린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중간중간 엄청난 비도 만나고, 어느 터널 안에서는 어떤 아저씨가 터널 벽을 깨고 있었는데, 손에 연장만 들고 말이다. 어떻게 손으로... 역시 인구가 많은 동네라 그런가 보다... 난 잠이 와서 잤다. 이리저리 구겨가며 말이다

 

 

 

  보고 싶은 선생님

이재란

  "풀 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내가 제일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동요이다. 유난히 희고 길던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풍금을 치시며, 마치 성악가처럼 근사한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부르시던 우리 선생님. 학창시절 만났던 선생님 중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잊지 못할 선생님이시다. 곱슬머리에 작은 눈 손등에 까만 점. 검정색 찬송가 책을 끼고 다니셨던 산골 초등학교 6학년 4반의 우리 담임선생님. 그때 선생님께서는 노총각이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사춘기를 눈앞에 둔 여학생들은 선생님이 느끼하다면서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며, 온갖 이상야릇한 소문을 퍼뜨리기 일수였다. 하지만 나는 항상 다정스럽게 내 이름을 불러 주시고 심부름도 자주 시키시던 선생님이 겉으론 표현할 수 없었지만 무척 좋았다.
 점심 시간이 되면 "맛있는 반찬 나도 좀 줄래"하시며 도시락을 들고 우리 책상으로 오시던 선생님. 다 쓴 일기장을 꼭꼭 묶어주시며 "재란이는 글을 참 잘 쓰는구나"하시며 늘 칭찬 해주셨다. 그래서 글짓기 숙제만 내주면 신이 나서 원고지를 메꾸어 가면, 언제나 교실 뒷 편 우리들의 솜씨자랑에 항상 붙여 주셨던 선생님. 노래를 잘 못해서 음악시간을 두려워하던 나는 어느 날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책가방을 챙기러 교실에 갔더니 선생님께서 합창대회에 나갈 몇 명의 아이들과 풍금을 치시며 노래 연습을 하고 계셨다. 그 때 선생님께서 방긋 웃으시더니. "재란아 이리 와봐, 같이 노래 한번 해보자"하시며 수줍어하는 날 부르셨다.
 그 날 처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자신있게 불렀던 노래가 바로 '푸른 잔디'이다. 또, 음악시간이면 아이들을 차례차례 나오게 해서 풍금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시커먼 때가 더덕더덕 붙은 산골 아이들의 손을 끌어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그렇게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께선 내게 "손가락이 길어서 풍금 치는 걸 배우면 참 좋겠구나!"하시며 쉬는 시간마다 쳐보라고 하셨다. 나는 5학년 때까지만 해도 있는지 없는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6학년이 된 나는 달라진걸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칭찬과 따뜻한 관심은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가 된 지금도 '푸른 잔디'란 동요만 들으면, 그 때 그 시절로 되돌아 간 것처럼 가슴이 떨리고 벅차다. 무척이나 수줍음 많고 조그맣던 산골소녀를 선생님께서 기억하고 계실까? 많은 칭찬과 격려로 큰 꿈을 갖게 해 주셨던 선생님께선 아주 평범하게 밥짓고 빨래하는 아줌마로 변한 제자를 보시면 실망하지 않으실까? 박춘석선생님 다정하신 선생님의 목소리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디계시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卷第一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愚人食鹽喩 愚人集牛乳喩 以梨打破頭喩 婦詐語稱死喩 渴見水喩 子死欲停置家中喩 認人爲兄喩 山羌偸官庫喩 歎父德行喩 三重樓喩 婆羅門殺子喩 煮黑石蜜漿喩 說人喜瞋喩 殺商主祀天喩 
醫與王女藥令卒長大喩 灌甘蔗喩 債半錢喩 就樓磨刀喩 乘船失釪喩 人說王縱暴喩 婦女欲更求子喩

(一五)醫與王女藥令卒長大喩
昔有國王産生一女。喚醫語言。爲我與藥立使長大。醫師答言。我與良藥能使卽大。但今卒無方須求索。比得藥頃王要莫看。待與藥已然後示王。於是卽便遠方取藥經十二年。得藥來還與女令服將示於王。王見歡喜卽自念言。實是良醫。與我女藥能令卒長。便?左右賜以珍寶。時諸人等笑王無智。不曉籌量生來年月。見其長大。謂是藥力。世人亦爾。詣善知識而啓之言。我欲求道願見敎授。使我立得善知識。師以方便故敎令坐禪觀十二緣起。漸積衆德獲阿羅漢。倍踊躍歡喜而作是言。快哉大師。速能令我證最妙法

15. 어떤 왕의 어리석음
 
어떤 국왕이 딸을 낳았다. 왕은 의사를 불러 말했다. “나를 위해 공주에게 약을 먹여 빨리 자라게 하라.” 의사는 “공주님께 약을 먹여 곧 크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 약을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약을 얻을 때까지 왕께서는 공주님을 보지 마십시오. 약을 쓴 뒤에 왕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곧 약을 구해 오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12년이 지난 뒤에 약을 가지고 돌아와 공주에게 먹게 한 뒤, 왕에게 데리고 갔다. 12년 동안 공주를 보지 못했던 왕은 공주가 큰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의사다. 공주에게 약을 먹여 갑자기 자라게 하다니.” 왕은 명령하여 의사에게 보물을 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왕의 무지를 비웃었다. “공주가 12년 동안 자란 것은 알지 못하고 그 장성한 것만을 보고 약의 힘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선지식을 찾아가 말하기를, “나는 도를 구하려고 합니다. 원컨대 나를 가르쳐 당장 선지식이 되게 하소서” 한다. 스승은 방편으로 그로 하여금 좌선시키면서, 열 두 가지 인연(十二因緣)을 관(觀)하게 하고, 차츰 온갖 덕을 쌓아 아라한(阿羅漢)
*이 되게 한다. 그러면 그는 크게 기뻐하면서, “스승님은 훌륭하시다. 나로 하여금 가장 빨리 묘한 법을 증득하게 하셨다” 고 한다.
* 아라한(阿羅漢) 수행의 완성자. 공양을 받기에 적합한 사람. 존경해야 할 수행자. 근본 불교에서 수행의 최고 단계에 도달한 성자. 모든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든 최고 단계에 있는 사람. 응공(應供). 나한. 부처님의 열 가지 호칭 중의 하나. 원래는 부처님의 호칭이었으나, 나중에 불제자가 도달하는 최고의 단계로서 구분되었다.

 

(一六)灌甘蔗喩
昔有二人共種甘蔗。而作誓言。種好者賞。其不好者當重罰之。時二人中。一者念言。甘蔗極甛。若壓取汁還灌甘蔗樹。甘美必甚得勝於彼。卽壓甘蔗取汁用漑冀望滋味。返敗種子所有甘蔗一切都失。世人亦爾。欲求善福恃己豪貴。專形俠勢迫脅下民陵奪財物。用作福本期善果。不知將來反獲其患殃。如壓甘蔗彼此都失

16. 사탕수수를 망친 사람
 
두 사람이 사탕수수를 심으면서 서로 맹세하였다. “좋은 종자를 심은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좋지 못한 종자를 심은 사람에게는 벌을 주자.”그 때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사탕수수는 아주 달다. 만일 그 즙을 짜서, 사탕수수에 다시 주면 그 맛은 다른 것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사탕수수 즙을 짜서 나무에 붇고는 맛이 좋아지기를 바랬다. 그러나 도리어 그 종자만 못 쓰게 되고 많은 사탕수수 나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재물과 권력을 위해 힘을 쏟고, 세력을 빙자하여 남을 협박하고 재물을 빼앗는다. 이렇게 얻어진 재물과 권력으로 복을 구하려고 하면서 좋은 결과만을 기대한다. 그것은 마치 사탕수수 즙을 짜서 사탕수수 나무에 부어서 도리어 이것저것 모두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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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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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9월 9일 중양(重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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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重九) 또는 중양(重陽)이란 9인 양수가 겹친다는 뜻으로 홀수가 겹친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처럼 9월 9일을 가르킨다. 보통 이 때 상국(賞菊), 등고(登高), 시주(時酒)를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기일(忌日)을 모르는 조상의 제사를 모시거나, 연고자 없이 떠돌다 죽었거나,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등고(登高) 등고란 산에 오른다는 뜻으로 보통 이 무렵 단풍이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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