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7(2003)년 7월호 Vol.3,No.30. Date of Issue 1 Jul ISSN:1599-337X 

 

 

 

 

 

 

 

 

 

 

 

 인연

범수

  사바세계란 고통과 즐거움이 각각 반이지만, 고통스러운 일이 더 많다고 한다. 실제로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과, 불행의 비율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상식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더라도 그러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것은 모든 것이 변화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듯 고통을 유발하는 문제 가운데 대인관계는 매우 민감하기 마련인데, 특히 전 우주를 하나의 인연으로 봤을 때 사람과의 관계는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친구나 우정에 대한 격언이나 속담을 보더라도 쉽게 이해되는 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가끔 첫 대면에 마치 백년지기를 만난 것처럼 서로가 즐거운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 해보지도 않고,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편 서로에게 즐겁고 유익한 관계에서는 무엇을 준들 아깝지 않고, 못받더라도 서운하지 않지만, 때로는 준 것 없이 밉고, 받은 것 없이 싫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를 직접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이의 말에만 의존하여 평가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선입견이나, 첫 인상 또는 다른 이의 말에만 의지하여 미리 단정하는데서 오는 실수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착오를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다고 단정하거나, 시비를 논하지 말자, 또 남이 만들어 놓은 인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자.' 이다.  여기서 '남이 만들어 놓은 인연의 늪'이란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주위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누군가를 덮어놓고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경우이다. 마치 친구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나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덩달아 미워해야 하고, 좋아하면 따라 좋아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이 변화듯 사람 역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한 때의 특징만으로 누군가를 항상 동일하게 평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좋아하다 싫어하고, 싫어하다 좋아하는게 인지상정이라면, 사람과의 인연이란 항상 좋을 수만 없고 또 나쁠 수만도 없다. 그러나 좋을 때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이, 나쁠 때는 두 번 다시 안 볼 것처럼 행동하고 말들을 한다. 이렇듯 극단적이고 단정적인 사고, 말, 행동은 필자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돌아서면 금방 후회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것은 순간적으로 감정에 치우쳤기 때문인 같다. 따라서 서로 좋은 관계일 때 많은 대화를 통해 상호신뢰를 구축하며, 혹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는 신뢰와 대화를 바탕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꼭 헤어져야 할 상황이더라도 서로 악 감정을 가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견지할 수만 있다면, 대인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되어진다. 이상은 대인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것을 나름대로 이야기한 것인데, 필자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간단히 줄여 말한다면, '인연이란 서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의 초점을 바꿔 착한 벗과 나쁜 벗을 가까이함으로써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증일아함(增壹阿含)>, 선지식품(善知識品)을 통해 간단히 알아보자.

 "착한 벗과 친하게 지내며, 나쁜 행을 익히거나 나쁜 업을 믿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착한 벗과 친하면 믿음, 지식, 보시, 지혜가 더욱 많아지기 때문이다. 착한 벗과 친하고 나쁜 행을 익히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만일 나쁜 벗과 친하면 곧 믿음, 계행, 지식, 보시, 지혜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착한 벗과 친하고 나쁜 벗을 가까이 하지 말라."
聞如是。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當親近善知識。莫習惡行。信於惡業。所以然者。諸比丘。親近善知識已。信便增益。聞.施.智慧普悉增益。若比丘親近善知識。莫習惡行。所以然者。若近惡知識。便無信.戒.聞.施.智慧。是故。諸比丘。當親近善知識。莫近惡知識。如是。諸比丘。當作是學。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增壹阿含, 善知識品>, <<大正藏>>, 券 2, p 596 下

 위 인용문을 통해서도 착한 벗과 나쁜 벗을 가까이 함으로써 따르는 일련의 일들을 알 수 있지만, <선생경(善生經)>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호로 이어집니다.)

 

 

 

 공덕

진선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가 되는지라
일체의 착한 법을 길러내며
의심의 그물을 끊어 없애고  애욕의 물결에서 벗어나
열반의 위없는 길을 열어 보인다.

大方廣佛華嚴經賢首菩薩品第八之一
信爲道元功德母
長養一切諸善法
斷除疑網出愛流
開示涅槃無上道

 

<大方廣佛華嚴經>, <<大正藏>>, 券9, p 433 上

 

 

 

 바램

장태자

  우리지역 사찰에서 개설하는 불교교양대학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을 때 "과연 불교 교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실천하고 참회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글과 그에 근거한 사고는 마치 지도와 직접적인 실천으로써 불가분의 관계이겠지만,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체험을 통한 직접적인 체득인 아닐까 합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우리 모두 내 안의 부처님을 자각하고 너 안의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원을 세워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불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는 슬기로운 자비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불교 교양대 수업에 임하렵니다.

 

 

 

  나로 인하여

문옥선

 이 참담한 기분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30대 후반정도의 나이였을까?  예닐곱 살쯤 먹어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온 손님이었다. 처음부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자주 겪는 일상이었기에 무덤덤하게 대해질 수가 있었고, 다행히 아무런 문제없이 가게 문을 나섰다. 그러다 이십여 분이 흘렀을까 예의 그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구입해갔던 빵 봉지를 들고서 말이다. 그는 날 보자마자 험악한 눈빛과 표정으로 오늘의 날짜를 말하게끔 했다. 난 그 봉지를 보는 순간 사태를 짐작했고 의무를 소홀히 한 대가를 무섭게 치러야 했다. 그건 순전히 내 불찰이었다. 언제나 내 두 눈으로 확인을 했는데. 하필 반품하려고 따로 놓아둔 빵이 판매된 것이었다. 그는 날 쏘아보며 “대체 오늘이 며칠입니까?  어제는, 그제는요? 어제는 뭐했습니까, 그제는요?” 이렇게 불같이 호령하며, 내 방만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쇳소리가 섞인 날카로운 그의 음성은 내 고막을 터져 나가게 했다.
 어제와 또 그제 내가 뭔 일을 했던 간에 그가 물을 이유도 내가 답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으나 지금은 그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는 숨쉴 틈도 주지 않고 경멸에 찬 눈빛과 말투를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 손님은 산달이 가까운 부인이 그 빵 조각을 먹었다며, 만약 그에게 이상이 생기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노발대발하는 것이었다. 거듭 사과를 드렸으나, 그 손님은 받고 싶지 않다며 지금 당장 소비자 보호원에 고발을 하겠으니 부르는 대로 확인서를 쓰라고 하기에 난 순순히 써주었다. 그러나 걱정스런 마음에 “제가 지금 부인을 모시고  병원에 가겠습니다.” 했으나, 그 손님은 내 얘기는 외면한 채 계속해서 큰소리로 나의 잘못을 꾸짖으며 더욱더 참담하게 만들었다. 그는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을 판매한자에게 이런 모멸감은 응당 받아야 할 대가인양 쉼 없이 그리고 거침없이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게 되겠지만, 정말 이런 일은 건너뛸 수만 있으면, 건너뛰고 싶다. 진정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는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실수를 용납 못하는 성품을 지닌 분이었다. 물론 먹을 음식이었으니 실수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난 쏟아지는 비난의 소리에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어떻게 그 손님한테 관대한 심성을 바란단 말인가. 임신한 부인이 그걸 먹었다고 하는데. 약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처지가 아닌가.  삶이 언제나 내 편만이 아니듯 나를 이해하는 사람하고만 만나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와중이지만 부인이 걱정되어 밤에라도 이상이 있으면, 모시러 가겠으니 연락 달라며 전화번호를 적어드렸고, 나 또한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한참 후 그 손님은 떠났고 난 허탈한 심정을 뒤로 한 채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부인이 어떤 상태인지 걱정이 되었고 또 사과를 하기 위해서 였다. 전화는 마침 그 부인이 받았는데 뜻밖에도 아주 평온한 음성이었다. 난 먼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괜찮으신지 물었다. 그런데 부인의 전화응대는 손님의 화내던 태도와는 너무나 달랐다. 게다가 약간 웃음 마저 띤 음성으로 “괜찮아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걱정스런 마음에 전화를 건거였지만 오히려 그 전화로 인하여 난 조금쯤 안심할 수 있었다.
전화로 사과를 하는 중에 남편인 그 손님이 집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부인이 문을 열려는지 좀 기다리라고 했는데 누군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난 다시 걸었다.  "몸 상태가 안 좋으시면 꼭 연락을 주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였다.  그러나 남편인 그 손님은 계속해서 화난 음성으로 “오늘 당장 몸 상태를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요.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전화하지 마세요.”하고서 뚝 끊어버렸다. 난 이일을 계기로 내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남한테 모질게 했던 적이 없었나? 그러자 아마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일이 선명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스물 대엿 해 전 한복을 맞출 때의 일인가보다.  진회색의 치마에 저고리는 주홍색이었는데 치맛자락에 학이 수놓아진 아주 고왔던 한복이다. 나중에 난 이 한복을 즐겨 입었다.  한복을 찾던 날, 지금까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겨야 하는 그래서 그때마다 내 잘못을 뉘우쳐야만 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오늘의 그 손님처럼 나 역시나 말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참혹하게 일그러뜨려 모멸감을 주었던 것이다.
 난 한복치마의 어깨 끈 색깔이 내 맘에 들지 않는다며 그걸 트집으로 그 아주머님께 모질게 했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 색깔이 거기에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상식운운하며 몰상식한 행동을 해댔으니, 그 아주머님 속으로 얼마나 기가 차셨을까. 쉰이 넘어 보이던 그 나이에 새파랗게 젊은 여자한테 수모를 당했을 그 아주머님의 참혹한 심정은 아마 오늘 겪었던 나의 심정보다 더했으리라. 그때 아주머님 말씀이 천이 부족해서라고 했는데, 부족한 천 대신으로 매달았던 어깨 끈 색깔이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또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난 그런 기억되지도 않을 하찮은 일로 포악을 떨며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악으로 두고두고 참회해야만 했다. 그 당시 나는 오로지 한복치마의 어깨 끈 색깔만이 중요했는데, 정작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외적인 요소는 지금 내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단지 그 분의 마음에 큰 상처를 드렸을 거라는 생각만이 지금껏 또렷이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한복 집 아주머님은 참으로 너그러우신 분이었다.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다시 해주겠노라며 내 못된 성깔을 다 받아내셨으니 말이다.
 아주머님 그때 정말 죄송했었습니다. 오늘 또 아주머님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너무나 못되게 굴었지요.용서하세요. 아주머님께 못되게 굴었던 과보를 오늘 또 이렇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해드렸던 것보다는 훨씬 가볍게요.

 

 

 

  불교수행은 기초와 기본에 충실한 것

덕선

 상대적으로, 똑똑하다는 것은 '욕심이 있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지혜롭다는 것은 '욕심이 없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똑똑하다는 것은 마음이 욕심에 사로잡혀서 어둠이 깊은 상태, 즉 무명(無明)속에서의 생각과 그 행위를 말하는 것이고, 지혜롭다는 것은 마음에 욕심이 없어서 무명이 줄어든, 즉 밝음(明)이 증장된 상태의 생각과 그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무욕이라는 것이 그냥 욕심을 안 부리면 얻어지는 것이냐? 그렇지가 않으니까 욕심 없는 사람이 많지 않고, 지혜가 쉽지 않은 것이겠지요
 욕심이란 무명이 원인이 되어서 일어나는 깊고 깊은 번뇌입니다. 그러므로 무욕이라는 것이 그저 맘만 먹으면 저절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이 있는, 나와 우주의 본질적인 앎(이해)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명을 밝음으로 바꾸어가기 위해서 여러분이 이 자리에 계시고, 저도 또한 출가를 해서 이렇게 글을 쓰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무욕을 성취하고 지혜의 밝음을 성취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하신 팔만사천법문의 목적인 것입니다.
 무욕과 지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참선수행의 관점으로 보면, 지(止)와 관(觀)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지혜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다음에 다시 설명 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니까 지금은 단순히 지혜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혜(무욕)의 드러남은 전체적인 것이라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겠습니다만 일단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지혜가 드러나는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를 말한다면 '정직, 용기, 성실' 이 셋을 들 수 있습니다. 차례대로 예를 들어서 지혜의 드러남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먼저 정직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숲 속에 앉아서 선정에 들어 계셨습니다. 그때 사냥꾼에게 쫓기던 토끼 한 마리가 급히 달아나다 부처님의 가사 속으로 숨었습니다. 뒤따라온 사냥꾼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방금 토끼 한 마리가 이곳으로 왔는데 혹 못 봤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는 말없이 손을 들어 숲 속을 가리켰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부처님께서 정직한 답을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손을 들어 가리켰지만 결국 거짓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 왜 부처님은 정직하지 않았을까요? 사냥꾼에게 거짓을 말했다고 추궁을 당할 수도 있고, 또 이러한 일이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일을 당해서 또 그와 같은 답을 한다면, 아마도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을텐데, 왜 당신께서는 거짓을 말하고 굳이 토끼를 살렸을까요?
   진정한 정직이란 그럼 어떤 것일까요? 만일 자신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욕심의 양만큼 정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정직하면 손해를 볼 테니까요.
 이 세상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을 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직을 가장한, 혹은 빙자한 정직, 겉은 정직인데 속은 거짓인, 그런 정직도 있을 수 있으며, 때로는 정직을 위한 정직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정직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욕심이 있는 한 진정한 의미의 정직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정직한 사람을 알 수 있으며, 참된 정직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그 참된 정직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고, 또 그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남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직이란 바로 남을 위하는 마음의 양이고, 그 마음의 힘입니다. 누구나 남을 배려하고 위하는 그 양만큼만 정직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겉으로 들어 난 정직과 부 정직은 그리 중요한 것이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거짓이 오히려 남을 위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러므로 '정직이란 이타심(利他心 지혜, 무욕)에 비례한다.'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참된 정직입니다.
   다음은 용기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약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반대로 건장한 체격을 가졌지만, 이기심에 찬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만일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그 집단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둘 중에 어떤 사람이 목숨을 던져서 싸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람일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만, 사실은 그러한 신체적인 조건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자기의 목숨을 던지지는 못 할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먼저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목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앞서는 가치이기 때문에 두렵다는 생각이 들고 또 비굴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용기란 이타심(지혜, 무욕)에 비례한다.'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사심 없이 남을 위하고 그 집단을 위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장화, 홍련

조혜숙

   차창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 따라 이쪽저쪽으로 휘날리는 억새풀, 제법 누릇한 빛을 띄는 나뭇잎들과 저수지의 끝없는 물살을 일으키는 소리가 전부인 늦가을 풍경이 지나갑니다. 제법 외딴곳에 위치한 일본식 주택의 고옥에 서울에서 오랜 시간 병원생활을 마친 수미(임수정)와 수연(문근영) 자매가 아버지 무현(김갑수)과 함께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선 계모인 은주(염정아)가 호들갑스럽게 두 자매를 맞이 하지만, 자매는 엄마의 자리를 빼앗고 수연을 학대하는 은주가 증오스러울 뿐입니다.
 자매가 집에 오면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수연은 누군가 방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고, 수미는 끔찍한 악몽을 꾸고 또 은주 역시 송곳같이 날카로운 불안에 휩싸이지만, 이 세 사람의 동요를 전혀 모르는듯 관심없어 하며 냉정하기만한 사람은 아버지 무현뿐입니다....왜일까?

  몇 년 전 개봉되었던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를 보았던 관객이라면, 이  유령 들린 집에 모인 가족인 무현, 은주, 수미, 수현 중 누군가는 이미 죽은 사람일거라는 추측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관객들이 알고 있으리라 것을 감독도 미리 알고 그에 대한 반전을 연출합니다.혹자는 장화,홍련을 보기 전,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고전 장화홍련을 연상하며, 가장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원귀를 그리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원귀란 죄의식이 만들어낸 피학적인 주체의 상상이며, 그 상상이 만들어낸 가상일 뿐입니다.
 손님을 초대한 자리에서 아내가 기묘한 행동을 하거나, 수미가 엄마의 자리를 뺏고, 동생을 학대하는 계모에 대한 증오심이 폭발을 할 때 아버지 무현은 시종일관 같은 표정으로 모든 상황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처해가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왜 일까?라는 관객의 갑갑증을 그대로 유예시키며 영화는 계속되어 집니다. 그러나 관객으로 하여금 일부러 호러를 의식하게 하는 의도적인 장면들은 도리어 지루함을 주기도 합니다.
 장화,홍련의 세트장은 전남 보성의 율어 저수지 야외세트장과 양수리 종합 촬영소안에 건설한 네 개의 실내세트로 유령의 집을 짓는데만 예정된 비용보다 두 배를 더 쓸 만큼 많은 비용을 들였다고 합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섬뜩한 아름다움이 부조화와 같이 어울러져 각자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기괴함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김지운 감독의 노력은 벽지를 비롯한 의상 소품등 세트장식에 들어갈 후보 화일이 6권에 달할 만큼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또 하나, 아무도 아니기도 하고, 혹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혹은 자기자신이면서 또다른 내가 되어야 하는 그래서 너무나 날카로워 보기만 해도 베어질 것 같은 은주 역을 염정아는 너무도 매끄럽게 소화한 것 같습니다. 지금껏 가졌던 그의 이미지를 모두 지워야 할만큼 훌륭하였고, 한편 감독은 그 여배우의 매력을 너무나 잘 찾아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이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지우려 해도 지울 수가 없어서 평생 유령처럼 따라 다니는 기억이야" 이것은 풀리지 않는 한을 풀기 위해 원귀라는 상상이 끊임없이 나타나며 괴롭히는 것 보다는 오히려 감추어두고 양심을 속인 가해자의 죄의식에 대한 기억이 더 무섭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림일기

김경연

  월간 좋은인연에 딸 경연이의 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경연이는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늦둥이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서 그런지 발표도 잘하고 자신감으로 가득차 모든 일에 의욕을 갖고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반면에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적어 안타까워 하고 있었습니다. 3학년이 되어 처음 반장선거를 하였는데, 떨어지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는지 조금은 겸손해지고 남을 위하는 마음도 생겼지요. 가끔 씩 엄마를 위하여 방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해주지요. 좋은 인연을 계기로 경연이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고 더 큰마음을 갖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경연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목: 산책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엄마와 함께 안양천 둔치에서 산책을 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엉겅퀴 꽃을 보았는데 작고 보라색으로 가시가 많은 꽃이다. 엄마는 그 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그 꽃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 그루지만 앞으로는 많이 피었으면 좋겠다. 보라 빛이 많으면 아름다울 것이다.

 

제목: 상장

 월요일에 상장을 받았다. 6.25전쟁에 대한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이다.그리고 잊어 버리고 오늘 엄마에게 자랑을 했다. 엄마도 좋아하셨다. 엄마는 아빠한테 전화를 하라고 하셨다. 아빠도 기뻐하셨고 나는 아빠께 맛있는 것을 사 달라고 했다. 아빠는 오늘은 바빠서 안되고 다음에 사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너무 속상했지만 그러자고 했다. 내가 크긴 컸나 보다.

 

 김경연 어린이의 그림 일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것입니다. 일기의 내용은 그림 일기장에 있는 그대로 싣도록 하겠습니다.  -편집부-

 

 

 

 SANTOSA

장남지

약 10일동안의 싱가폴 여행에서 센토사(SANTOSA)라는 섬을 다녀오면서 멋지게 마지막을 장식했던 기억이 납니다. 싱가폴을 여행한다면 꼭 한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 곳에는 싱가폴의 상징인 머라이언상이 있는 곳인데요, 머라이언은 싱가폴의 전설에 나오는 몸은 물고기지만, 그 머리는 사자의 상을 하고 있는 동물이랍니다.

센토사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는 그 중 하나인 케이블카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멀리 커다란 머라이언 상이 보이고, 붐비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섬에 들어온 사람에게 모든 교통시설을 무료로 제공
<사진: 머라이언 꼭대기>

하고 있었습니다.
 섬 전체를 아울러 구경할 수 있도록 트레일이 있었고, 또 해변가는 또 해변가대로 작은 기차가 수시로 다녔습니다. 그리고 구석구석까지 이동할 수 있는 버스도 다녀서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지 쉽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이 참 편리했습니다. 한편 원한다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충분한 자전거 도로도 확보되어 있었습니다. 볼거리가 많아서 하루 동안에 모든 것을 구경하기가 참 힘들었었는데, 그 중에서 정말 멋진 곳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제가 처음에도 말씀드렸던 머라이언 상인데요, 가까이 갔을 때 그 장엄함과 수려한 조각이 싱가폴의 상징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높이는 10층 아파트 정도되는데 안으로 들어서면 여러 가지 물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엘레베이터를 타고 머라이언의 입이 되는 곳에 내릴 수 있었습니다.입을 통해 센토사섬을 봤을 때 날씨가 조금 흐려 아쉽긴 했지만, 그 때의 그 감동은 마치 사자성에 갇힌 공주 같은..^^; 또 머라이언의 제일 꼭대기에도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요, 그 탁 트임과 센토사섬 전체의 아담한 풍경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팔라완 비치로 갔습니다. 친구와 함께 연두 빛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사진: 머라이언 입 속>

  작은 다리를 건너서 아주 작은 섬에도 가볼 수 있었습니다. 솔 나무가 있던 한국의 해수욕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시간만 맞춘다면 센토사의 자랑거리인 핑크빛 돌고래의 쇼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돌고래 쇼를 본적도 없지만, TV에서도 본적 없는 돌고래는 꼭 인형 같았습니다.내친 김에 한번 만져보기도 했는데 미끌거릴 줄 알았던 제 기대와는 달리 ‘아.. 물고기 종류였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고등어를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던데 별로였던 것 같아요.^^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의 사이에는 원숭이나 다른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고,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플레이 월드나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날씨가 흐려 많이 놀지는 못했지만, 물놀이는 그만하고 말로만 듣던 ‘분수 레이져 쇼’를 보기 위해 급하게 Musical Fountain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늦게 온 사람들은 입장 시켜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차 시간도 있고 해서 다음 쇼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 채 미처 구경하지 못한 곳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 친구와 즐거워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돌아다녔는데, 글쎄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르게 이미 분수 쇼를 하는 곳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밖에 줄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본의 아니게
<사진: 머라이언>

레이져 쇼를 아주 즐겁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엷은 분수를 쏘아 올리는 가운데 레이져를 쏘는 방식인데, 마치 분수가 스크린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분수 속의 불 쇼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마지막 케이블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약 40분을 달렸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렀는데, 땀 흘리는 모습을

 

비 맞은 것으로 착각한 본 직원이 “비를 많이 맞았는데 괜찮냐”고 묻더군요..^^* 배가 고파 햄버거를 사서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가 갑작스런 강풍으로 모두 날아갔던 기억, 애기 같은 원숭이와 사진을 찍었던 기억, 앵무새가 내 목소리를 따라 하던 기억들... 센토사에서의 하루는 저에게 참 많은 것을 남겨준 아주 유쾌한 여행이었습니다.
 <사진: 센토사 분수 쇼>

 

 

 

 만남

최형란

   며칠 전 친구로부터 반가운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물어 가는 30대 초반에 솔로가 싫어 친구의 소개로 소개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 마음은 "그냥 성격만 맞으면, 사귀고 싶다."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막상 그 사람을 보고 나서는 또 다른 자기가 자기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조금만 잘생겼으면..., 옷을 좀더 잘 입었으면..., 하는 등등의 마음이 일어 났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처음 생각과 너무나 다르게 변해가는 본인의 감정에 스스로 놀랬다며, 욕심으로 채워진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메일을 읽으면서 지난 날을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한 때 저도 그랬기에...
 예전에는 누굴 만나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혼자 걸어왔던 날들이 점점 날 초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요즈음은 "남자를 만나서 60%만 맘에 들면 결혼한다."는 친구 언니의 말에도 수긍이 갑니다. 내가 상대에게 100%맘에 들 수 없듯이 말입니다.
 3년 전 친구의 소개로 2대 2 소개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누굴 남자 친구로 사귀고 싶다."는 생각 없이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밥 한끼와 차 한잔 해결하려고 그곳으로 향했던 같습니다. 처음 만남이지만, 상대의 인상이 강해 보였습니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던 같았습니다. 하여튼 그 때 그 자신감이 오히려 당돌한 태도로 느껴져 화를 내고 돌아서서 헤어졌습니다. 사실 그 때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 소개팅을 주선했던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용인즉 "한 번만 더 만나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지만, 단호히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한번 만난 것으로 어떻게 사람을 판단할 수 있나?" 하며 재차 마음을 달래려고 하였지만, 그럴수록 콧 방귀만 더 세게 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친구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요 근래 소개팅을 주선했던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너 아직까지 결혼할 생각이 없니?" 하며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니! 하고 싶은데 남자가 없어." 그러자 "그때 그 선배 다시 한번 만나지 않을래,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며 너무나 쉽게 되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내가 했던 태도 때문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에 언질을 주겠노라 하며, 며칠 흐른 후 "그 사람을 한번 볼까?"라며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두 말 없이 알았다며,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3년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며칠 전 두번째 만남에 그 남자는 집 앞까지 날 데리러 왔었습니다. 그 때 깜짝 놀랬습니다. "이 사람한테 이런 면도 있구나" 하며..., 우리는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요즘 인연이란 단어를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도 하구요. 그리고 이번에 찾아온 이 사람과 작지만 소중하게 인연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저에게 찾아온 작은 인연 이루어질 수 있겠죠.^^더 이상 시린 옆구리보다  땀띠가 나도 좋으니까,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이...^^

 

 

 

 

동강과 래프팅이 만났을 때

 이은옥

   5월은 원래 아름다운 달이지만, 1999년 5월5일은 더욱 더 아름답고 오래 간직 하고픈 날이었다.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떠오르며, 여러 장면의 스크린처럼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몇해 전 '영월댐과 동강 래프팅 탐사' 라는 제목으로 TV나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내용이지만, 막상 딸과 함께 참가하기까지는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내가 어떻게 래프팅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도 "그래 한번 해보자. 남들이 해보는 것, 나라고 못할까?" 라는 오기로 결단을 내리고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동강에 도착하였다.
 래프팅의 출발지인 진탄 나루에 도착하니 맑은 하늘이 어두침침해지며 금방 소나기라도 쏟아질 듯하였다. 내 마음은 더욱 심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이젠 어쩔 도리가 없음을 느끼며 진행하는 분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헬멧과 구명조끼가 생명선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단단히 입었다. 조가 결성되고, 아는 사람과 흩어짐을 아쉬워하며 7조인 우리 배는 나이 지긋한 부부 3팀과 젊은 부부와 어린이, 나와 딸 이렇게 11명으로 출발하였다. 하늘은 다시 따사한 햇살이 내리쬐고 물결은 잔잔하였다. 170여명이 입은 구명조끼와 보트의 원색은 자연의 초록빛, 드높고 청정한 하늘의 코발트색과 기가 막힌 궁합을 이루고 있었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나의 물 공포증은 조금씩 무감각 해져갔다. 우리 팀은 그런대로 호흡이 잘 맞았고, 이젠 한 공동체로서의 운명을 느끼며 서로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물살이 흐름이 알맞은 상태라 무섭지도 않았고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강의 경관은 비경중의 비경이었다. 특히 이 날 본 비경은 래프팅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으로 옛돌이 왜 그동안 진행하던 트레킹(걷기)을 접어두고 이 래프팅 코스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중간중간 적당히 떠있는 바위와 급류의 접목은 정말 가관이었다. 모두들 초보자인지라 다른 조의 배는 바위에 걸려서 뒤집힐 듯이 보이기도 하고, 어느 배는 암초에 얹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지만, 모두들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내가 탄 배도 바위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자 나와 딸은 배에서 나와 밀어내고 다시 탔다. 아슬아슬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나니 재미있는 추억거리로 기억되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심 어린 질투로 다른 배를 견제하며 열심히 노를 젓고 나니 중간 휴식 처에 닿았다. 그 유명한 어라연 계곡이었다. 태고의 신비함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고나 할까? 가히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것... 지나친 나만의 욕심인가? 이 좋은 곳을 나만 봐서는 안되겠지, 다른 사람도 이 좋은 곳을 보려고 여러 가지 망설임을 이기고 왔을테니까. 30분 정도 쉬고 다시 래프팅은 시작되었는데 얼마 안가 제일 급류가 센 된꼬까리에 이르렀다. 저 만치 보니까 만만치 않아 보여 겁은 났지만 오히려 설레임이 일었다. 드디어 그 물살과의 투쟁은 짜릿짜릿한 스릴과 엄청난 폭소를 자아냈다. 일행 중 한 아저씨가 급류의 힘에 정신을 잠깐 잃으셨는지 배 안에 넘어졌다.
 노 젓는 것이 힘들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어서 옆의 아줌마는 더 하고 싶다고 야단이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물싸움이었다. 6살 어린이부터 70살 노인까지 나이를 잊은 회원들은 자기 팀과의 작전아래 물을 튀기는 장난싸움으로 마지막 래프팅의 회포를 풀었다. 도착지인 섭새 나루에 도착해서도 회원들의 얼굴은 아쉬움이 그득했고, 한 배를 탔기에 동지애 비슷한 것을 느끼며 수고했다고 서로를 칭찬했다.
 버스 있는데로 가면서도 웃음이 자꾸 나옴을 느끼며, 새로운 체험을 한 것 같아 뿌듯하였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기분 좋은 피곤함으로 눈이 저절로 감겨왔다. 문득 같이 탔던 아줌마의 말씀이 떠 오른다. "내가 언제 다시 이런 것을 해보겠어? 오늘은 어린이날이 아니라 어른들 날이야!"

 

 

 

 서울 북촌

도난주

 우리는 친구의 집들이나 방문을 위해 새로운 도시나 장소를 가끔씩 접하게 된다. '낯선 곳으로의 초대'라는 노래처럼 낯선 곳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을 가진 채 목적지를 향해 가고, 또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목적지가 속해 있는 도시를 먼저 접하게 된다. 그러면 일산을 예로 들어 이야기 해보자. 계획 도시인 일산은 낮은 건물들과 건물 아래층에 위치해 있는 여러 유흥 음식점들과 인테리어점, 그리고 호수공원 등을 거닐고 있는 연인들을 볼라치면 웬지 낭만적이고 여유있는 곳으로 느껴진다.


 <사진: 경기도 고양시 일산>

 그러나 분당의 고층 아파트들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들, 강남으로 강남으로 향하여 꼬리를 물어있는 자동차 등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삭막함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새로운 도시를 접했을 때의 느낌을 도시의 이미지로 이야기해 보면, 미국의 케빈린치(미국 MIT공과대학교 도시설계교수)는 도시의 느낌이 삭막해지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도시의 느낌(이미지)이 어떤 것으로 결정되는 것인가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미국의 3개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대상

 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지도를 그려보게 하여 분석한 결과 5가지 공통 요소인 도로, 지구, 결절 점(도로와 도로가 교차하는 곳), 가장자리(건물 외벽과 외벽이 만나는 곳), 랜드마크(상징물)를 가지고 있었으며, 쾌적한 환경일수록 이 다섯가지 요소가 분명히 그려지는 특징을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특히 랜트마크(상질물)가 잘 활용된 곳이 사람들에게 쉽게 도시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도시의 느낌(이미지)에 대한 연구들은 신도시를 개발하거나 기존 도시의 재정비 계획을 세울 때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로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다.
 <사진: 경기도 고양시 일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도시의 이미지에 대한 연구방법을 살펴보면 미국의 케빈린치가 증명한 5가지 요소를 우리나라 대상지에 적용시켜 보고,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 확인하는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현대 도시를 중심


 <사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

으로 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케빈린치의 주장만을 따른다면,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전통 도시인 북촌을 대상으로 전통 주거지의 도시 느낌(이미지)에 대한 요소가 무엇있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며, 그 요소를 중심으로 신도시나 재정비 계획등에 적용시킴으로써 전통적 분위기의 우리 혼이 담긴 도시이미지를 재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단의 방법으로 우선 북촌의 이미지를 알아보기 위해 북촌을 4부분으로 나누어 주민들에게 지도를 그리라는 무리한 요청을 시도하였고, 예전(10년전)의 북촌에서 느꼈던 것과 현재 북촌의 느낌을 서술하도록 설문 조사를 하였다. 그리고 향후 북촌이 가장 북촌답게 되려면 어떤 것이 바뀌어야 할지도 함께 질문하였다. 이런 결과


 <사진: 서울시 종로구 북촌>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첫 번째로 미국의 케빈린치는 연구는 일반적인 도시를 중심으로 특히 계획된 도시를 대상지로하여 하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구성되어지는 도시의 요소들이 대표적으로 보여졌지만, 우리나라의 전통도시는 한옥이라는 특이한 건축물의 집합들이 구성되어져 북촌에 대하여 하나의 느낌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요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세부 요소 즉 공포양식, 창의

  모양, 담의 모양, 바닥 재 등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 연구가 진행 중에 있기에 섣불리 결론을 맺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데, 다음호에서는 세부적인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반장

정보음

   나는3학년이 되어서 반장을 하게 되었다.반장이 되어서 우리 반이 뭐든지 잘하는 반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데....남자 아이들은 무엇 때문인지 숙제를 안 해오기 일쑤며 선생님만 안 계시면 말썽을 부린다. 우선 제일 말 안 듣는 남자 아이들을 보면, 첫째 수봉이, 수봉이는 쉬운 숙제는 해오는데 조금 어려운 숙제는 안 해오고 말썽만 부린다. 그것도 엉망으로 해온다. 그렇지만 힘도 세고 마음씨도 착한 편이다. 숙제만 열심히 해오면 참 좋겠다.
 다음은 경준이, 경준이는 남자애들 중에서 숙제를 제일 잘해온다. 그래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는다. 마음씨도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수학 셈하기 평가는 우리 반에서 아주 잘한다. 그러다 가금씩 숙제를 제대로 안 읽고 풀어서 선생님께 꿀밤도 맞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수영이, 수영이도 숙제를 해오지 않는다. 약속도 잘 지키지 않고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팽개치고 운동장에서 큰형들과 함께 항상 논다. 그래서 체육 왕이다. 못하는 운동이 없다. 작은 체구에 운동장을 누비며 날아 다닌다. 우리 반 남자 친구 수봉, 경준, 수영아! 우리 여자들처럼 좀 잘해보자, 숙제 좀 잘해와. 그리고 장난 좀 그만 치고 공부 좀 열심히 해 알았지!  우리 모두 사이 좋게 잘 지내자. 우리반 파이팅!

 

 

 

 사랑하는 딸에게

이재란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계곡 아래로 조용한 평상 위에 앉아 가만히 널 그려본다. 갓난 아이 때부터 울고 보채는 일없이 무엇이든 잘 먹고 잠도 잘 자서 엄마를 무척이나 편안하게 해주었던 우리 보음이!  봄이면 뒷동산에 핀 진달래를 한 묶음 꺾어다 유리병에 꽂아 두고선 즐거워하고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다슬기며 송사리도 잡고 물장구 치며 멱도 감을 수 있어 좋고, 그보다 텃밭에 심은 옥수수를 삶아서 먹으며 밤하늘에 별을 셀 수 있어 좋고, 단풍 드는 가을이면, 달콤한 밤을 실컷 먹을 수 있어 행복하고, 흰 눈 내리는 겨울이면, 눈사람을 아주 많이 만들 수 있고 비료 포대 하나 들고 나가면, 신나게 눈 썰매 탈수 있어서 시골이 정말 좋다고 항상 엄마에게 말하지...
 놀 때는 개구쟁이처럼 신나게 놀고 공부할 때는 이해가 될 때까지 설명 해 달라는 우리 보음이. 엄마 아빠가 잠시라도 누워있으면, 어느새 달려와 손바닥이며 발바닥을 정성스럽게 맛사지 해주는 우리 보음이. 보음아! 넌 그렇게 엄마 아빠를 항상 즐겁게 만드는 선녀란다. 지금처럼 늘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착한 학생으로 나보다 친구들을 먼저 생각하고 언니에게는 말 잘 듣는 귀여운 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음이를 무지 사랑하는 엄마-

 

 

 

 서울의 북촌 가꾸기

신행우

신행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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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아파트나 다 가구는 그냥 사는 것뿐이지, 집이 무엇인가를 준다.'라는 이런 느낌이 없죠. 그런데 한옥은 늘 그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국내 방송에서 북촌 주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던 내용입니다. 
 언젠가부터 한옥은 그저 거추장스런 집이었습니다. 지붕에선 물이 새고, 화장실은 지저분하고, 지붕의 기와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해 한 장 한 장 세월에 휩쓸려가고...하지만 한옥에 대한 이런 생각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듯 합니다. 적어도 서울의 유일한 한옥 밀집지역인 북촌에선 말이죠.
 오랜 기간 북촌은 개발이 제한되어 왔습니다. 이로 인해 정부와 북촌 주민사이에선 오랫동안 그 반목이 깊어져

  갔고, 규제 위주인 정부의 정책은 그동안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90년대 들어서 일부 지역에 대해 규제를 풀고 개발을 허가했습니다. 그러자 북촌은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옥들이 헐리기 시작했고, 다세대 주택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북촌이 간직하고 있던 역사와 정취는 조금씩 사라져
<사진출처 : 북촌네트워크 http://www.bukchon.net>

  가기 시작한거죠. 그러나 1999년에 북촌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합니다. 훼손되어가는 북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죠.
 1500여 동에 이르던 한옥이 900동 남짓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한옥을 헐은 자리에 옹색하게 붙여 지은 4층 다세대 주택들이 동네의 모습을 흉하게 만들고, 주거환경 또한 오히려 나빠졌음을 목격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배경으로 그동안 한옥 보전에 반대하여 규제를 철폐하고 개발을 원하던 주민들은 거꾸로 한옥 마을의 보전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IMF 이후 다세대 주택을 짓는 것보다 한옥을 지키고 살리는 것이 한옥의 가치는 물론 동네의 품격과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한 주민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이걸(한옥) 보존하려고 노력을 하는구나, 예전에는 전혀 그게 없었으니까”
 2년 전(2001년) 시작된 서울시의 한옥 보존대책으로써 ‘북촌 가꾸기’가 가져온 변화입니다. 무조건 개발을 제한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공사비의 3분의2를 지원해 줍니다. 그리고 보전 가치가 높은 한옥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사들여 각종 전시장으로의 활용이나, 여러 가지 형태로 보전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 ‘북촌 가꾸기’ 사업은 진행 중에 있지만, 지난 2년 사이 이곳의 한옥 900여 채 가운데 250여 채가 새 단장을 마쳤거나 준비 중입니다.
 인사동의 상업화로 인해 미술관들도 북촌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북촌 일대의 땅 값은 두 배 이상 올랐고 음식점 등 상업시설도 대거 들어설 태세입니다. 자칫 인사동에서와 같이 지나친 상업주의의 침투로 인해 북촌이 또 다른 방향으로 훼손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북촌 가꾸기’가 기존의 규제 위주의 정부정책과 크게 다른 것은 그 시작이 마을을 지키고 되살리려는 주민들의 노력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주민들의 자유의사에 기초하여 한옥의 보전과 재생을 유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며, 이러한 노력들은 자치정신에 입각한 지역보전 방식이라는 점에서 ‘북촌 가꾸기’는 주민들의 마음과 의지에 의해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과 도시를 공부하면서 국내의 많은 전통 주거나 사찰 등을 답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떠나지 않는 생각 중에 하나는 옛것을 지키고 보전하는 정부와 주민들의 인식부족이었습니다. 이제 옛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한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마 많은 곳에서 우리의 옛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봅니다. 무조건 새것이 좋다는 개발논리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합니다. 비단 외국의 경우를 예로 들지 않아도 이제 우리의 문화가 곧 우리를 지탱해주는 자산이란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북촌 가꾸기’는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 쓰기는 저한테 많은 고통을 주지만 동시에 많은 가르침을 주기도 하더군요. 처음 글 쓰기를 부탁받았을 때는 ‘"그럼 할 수 있지~! 하고 싶어~"라고 자신 있게 말을 했었지만, 막상 닥친 숙제와 같은 글 쓰기는 저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처음은 어려운 법이라 자신을 위로해 봅니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卷第一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愚人食鹽喩 愚人集牛乳喩 以梨打破頭喩 婦詐語稱死喩 渴見水喩 子死欲停置家中喩 認人爲兄喩 山羌偸官庫喩 歎父德行喩 三重樓喩 
婆羅門殺子喩 煮黑石蜜漿喩 說人喜瞋喩 殺商主祀天喩 醫與王女藥令卒長大喩 灌甘蔗喩 債半錢喩 就樓磨刀喩 乘船失釪喩 人說王縱暴喩 婦女欲更求子喩

(一一)婆羅門殺子喩
昔有婆羅門自謂多知。於諸星術種種技藝無不明達恃己如此。欲顯其德遂至他國。抱兒而哭。有人問婆羅門言。汝何故哭。婆羅門言。今此小兒七日當死。愍其夭傷以是哭耳。時人語言。人命難知計算喜錯。設七日頭或能不死。何爲豫哭。婆羅門言。日月可闇星宿可落。我之所記終無違失。爲名利故至七日頭自殺其子以證己說。時諸世人각後七日聞其兒死。咸皆歎言眞是智者所言不錯。心生信服悉來致敬。猶如佛之四輩弟子爲利養故自稱得道。有愚人法殺善男子詐現慈德。故使將來受苦無窮。如婆羅門爲驗己言殺子惑世
 

11. 자식을 죽인 제사장
옛날 어떤 제사장이 스스로 많은 것을 안다고 자랑하였다. 그는 하늘의 별을 보고 미래를 알며, 갖가지 지혜를 밝게 통달하였다며, 자기의 재주를 믿고 뽐내려, 다른 나라에 가서 자식을 안고 울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우는가.” 그는 말하였다. “이제 이 아이는 이레만에 죽을 것이다. 일찍 죽는 것이 가여워 우는 것이다.” 그들은 말하였다. “사람의 병은 알기 어려워 실수하기 쉽다. 혹 이레만에 죽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왜 미리 우는가.” 그는 말하였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떨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내 예언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예언을 입증하기 위해 이레 째가 되자 스스로 자식을 죽여, 자기가 한 말을 입증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레 뒤에 그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다. 그의 말이 맞았다”고 탄복하면서 마음으로 믿고 우러러 모두 와서 공경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이와 같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도를 얻었다고 자칭하면서, 삿된 가르침으로 착한 이를 죽이고 거짓으로 자비의 덕을 나타내려다 장래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되나니, 마치 저 제사장이 자기 말을 입증하기 위해, 자기 자식을 죽여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과 같다.

 

(一二)煮黑石蜜漿喩
昔有愚人煮黑石蜜。有一富人來至其家。時此愚人便作是念。我今當取黑石蜜漿與此富人卽著少水用置火中。卽於火上以扇扇之望得使冷。傍人語言下不止火扇之不已云何得冷。爾時人衆悉皆嗤笑。其猶外道不滅煩惱熾然之火。少作苦行臥극刺上。五熱炙身而望淸량寂靜之道。終無是處。徒爲智者之所怪笑。受苦現在殃流來劫
 

12. 석밀을 달이는 사람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검은 석밀(石蜜)장을 불 위에 얹어 놓고 달이고 있었다. 때마침 어떤 사람이 그 집에 가게 되었다. 그러자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석밀장을 그에게 주리라"고 생각하고는 불 속에 물을 조금 붇고는 부채로 불 위를 부치면서 석밀장이 식기를 기다렸다. 옆에 있던 사람이 말하였다. “밑불이 꺼지지 않았는데, 부채로 부친다고 식겠는가.” 이것은 마치 외도가 왕성한 번뇌의 불을 끌 수 없는 것과 같다.
 어찌 외도가 번뇌의 불을 끌 수 있겠는가. 그들은 얼마간의 고행을 행한답시고 가시덤불 위에 눕거나 혹은 여러 가지 불로 몸을 지지면서, 맑고 시원해하며 고요한 도를 구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갓 지혜로운 이의 비웃음을 살뿐 현재의 괴로움을 미래로 돌려보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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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월 칠석(七夕), 우란분절(盂蘭盆節) 또는 백중(百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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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 칠석 날 밤 빗발이 뿌리기도 하는데, 이는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 번 만나기 때문에 너무나 반가워 흘리는 눈물이라 한다. 또 이들이 만날 때, 까치와 까마귀가 몸을 맞대어 다리를 놓는데 이를 오작교라고 한다. 옛날 조상들은 이 날 낮에 옷과 책을 말리기도 하였다. 
음력 7월 15일 우란분절(盂蘭盆節) 또는 백중(百中)   이 날은 불교의 하안거 해제일 이기도 하는데, 햇 과일과 곡식으로 불공을 드리며, 또는 돌아가신 분을 위하여 재를 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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