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6(2002)년 9월호 Vo2.1,No.20. Date of Issue 1 Sept ISSN:1599-337X 

 

 

 

 

 

 

 

 

 

 

 사음수성독 우음수성유(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

범수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든다.'는 뜻인 '사음수성독 우음수성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래 이 말은 지눌스님(知訥1158~1210)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 나오는 말로써 똑 같이 불교에 귀의하여도 '어떤 사람은 생사 문제에나 매달리지만, 현명한 이는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뒷문장과 연결되어 있다.
 불교를 믿는다는 말은 글이나 배우고 맹목적인 신행을 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경전을 배운다는 말은 믿고 따른다는 말로 실천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불교 본래의 길인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똑같이 불교라는 물을 마시지만 그 나아가는 방향은 너무나 다르다. 이를 현실에서 이야기하면 이럴 것이다.
 똑같이 법을 배우지만 어떤 이는 이것을 악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또 어떤 이는 막힌 곳을 뚫고 맺힌 곳을 풀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또 재물을 가지고 투기나 악한 곳에 사용하는 반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의로운 곳에 사용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약을 독으로 또 어떤 이는 독을 약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처럼 똑 같은 것을 가지고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 가운데 하나인 '시비(是非 옳고 그름)'의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불교에서 '시비'를 논할 때 주로 '진리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 즉 이 가르침은 진리인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누군가를 두고 '옳니, 그르니' 하는 식의 '시시비비'를 통해 감정적인 '다툼'으로 이어지는 '시비'와는 거리가 멀다.
 불교에서  '시와 비'는 논서에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를 '시와 비'라고 하지 않고 '파사현정*(破邪顯正
잘못된 견해에 사로잡힌 것을 타파하고, 옳은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즉 진리이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근래에 이런 종류의 책을 본적이 있다. 어떤 이가 학벌이라는 권위와 대중의 인기를 내세워 '설'을 풀다가 뒷덜미가 잡혔는데, 여기서 논하는 것은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시각에서 그 오류를 바로 잡는 것이었다. 물론 표현의 과격함은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문제를 바로 잡는 노력까지 흐릴 만큼 큰 오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보통 사람사이의 시비는 '그 일이 합당한가?'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가?' 등, 사리(事理)를 따라 정(正)과 사(邪)를 나누는 방식으로 문제를 헤아리기보다는, 먼저 자신의 감정이나 성향등으로 판단했다가, 그것을 드러낼 때는 시비쪼로 다툼이라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감정적인 '폭로성' 내지 '비난성' 발언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 또 상대 역시 감정적인 '맞불성' 발언으로 방어와 공격이 이루어지는 양상을 띠며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필자가 가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성숙한 비판 보다는 "저 사람은 어떻고.......", "그 곳은 어떻 고...."하는 식의 '시비'를 자주 듣게 된다. 따라서 그런 자리에서는 먼저 일어나면 곤란해진다는게 필자의 경험이다. 이유는 미루어 짐작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옇튼 이럴 때 마다 생각나는 것은 <계초심학인문>에 '대객언담 불득양어가추 단찬원문불사(對客言談 不得揚於家醜 但讚院門佛事)'라는 말이다. 이것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 집안의 나쁜 점을 드러내기보다는 좋은 점을 찬탄하라'는 뜻으로 비난성의 시비 논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왜 힘써 좋은 점은 찬탄하지 못하는가" 하고 반문해보고 싶다.
 오늘도 투쟁적인 '시비 (是非)'의 화살들이 난무할 것이다. 그 화살은 결국 자신을 향해 되돌아 온다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엄청난 양을 쏘아댈 것이다. 그러다 그 화살이 자신을 향해 되돌아 올 때 '다툼'이라는 방패로 막으려 들것이다. 이런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이 하는 일은 옳고 남이 하는 것은 틀렸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는게 보통이므로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려다 보니 어느 한 구석 마음에 드는게 없다. 결국 '시비'라는 독 화살을 꺼내 들고 무차별 공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이는 자신을 향해 '파사현정'이라는 '시비'의 화살을 과감히 쏠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견해나 독선, 아집 등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 蛇(뱀 사) 飮(마실 음) 水(물 수) 成(이룰 성) 毒(독 독) 牛(소 우) 飮(마실 음) 水(물 수) 成(이룰 성) 乳(젖 유)
* 破(깨뜨릴 파 ) 邪(삿될 사) 顯(나타낼 현) 正(바를 정)

 

 

 

 

지미연

 

 

<2002년 여름 사진 스케치 중에서>

 

 

 

 오아시스

조혜숙

 홍종두(설경구)는 전과 3범입니다. 뺑소니로 여름에 들어가 2년6 개월을 살고 나오니 한겨울이지만 여름 옷 차림입니다. 그래도 집을 찾아 가면서 엄마 선물까지 챙길 정도로 표정은 밝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집은 이사를 가버렸고 연락처도 막연합니다.
 저녁이 되어 배고프고 추워서 무조건 식당에 들어가 무전취식을 하다 출감한 날 다시 경찰서에 잡혀가고 동생을 만나게 됩니다. 결국 집을 찾아 가게 되지만 가족들은 모두 종두를 반겨하지 않습니다.
 종두는 뺑소니 사고 때 죽은 피해자의 집을 찾아 갔다가 피해자의 딸인 공주(문소리)를 보게 됩니다. 공주는 뇌성마비 장애인 입니다. 공주의 오빠와 올케는 공주를 낡은 서민아파트에 홀로 남겨둔 채 두 사람만 장애자 특혜아파트로 이사를 갑니다.

 옆 집 사람에게 공주의 식사를 부탁하는 댓가로 얼마의 돈을 준다는 것만을 내세우면서..........
 종두는 혼자 남겨진 공주가 안쓰러워서, 그 다음엔 호기심으로, 그렇게 만남은 계속되어집니다. 도저히 사회적응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종두와 눈에 띄면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 당하는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의 보편적이지 못해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질기디 질긴 생명력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도덕적 판단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란 사회에 적응을 잘하여 자신의 이익도 챙길 수 있고, 남들에게 피해도 주지 않으며, 남들에게 인정받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종두는 정상과 바보의 경계에 있습니다.
 어찌보면 영악한데, 어찌보면 너무나 한심합니다. 그러나 장애인 공주와 바보인 홍두의 눈맟춤으로 보면 두 사람의 영혼은 너무나 맑고 순수합니다.
 영화 오아시스는 멜로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멜로가 아닙니다. 우리의 상식이나 관습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두 사람의 사랑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엔 마치 가슴속에 습기 찬 바람이 가득 몰려와 축축하게 적셔 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창동감독은 소외된 인간들의 사랑이라 해서 별난 사랑으로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감히 욕심을 부리자면 누구나 다 해보는데 가장 본질에 가까운 사랑을 그리려고 했고, 사랑이 본질에 가장 가까워지면 가장 흉하고 추한 사람들의 사랑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의 만남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합니다.
 훌륭한 감독과 몸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두 배우(설경구, 문소리)의 연기가 기가 막히게 호흡이 잘 맞추어진 참으로 괜찮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밥상이라는 사원

이정미

  몇 년 전 저는 우연히 만난 일본 스님과 벨지움에 있는 그의 식이요법 센터를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자취생활을 해오던 저는 식사라 하면 배고프지 않을 만큼이면 되었고, 그나마 그것도 불규칙하여 어떨 때에는 차라리 그런 알약이 있다면 식사를 기꺼이 대신하고 싶을 만큼 먹고 마시는 일이 귀찮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이 우연한 방문은 일대 충격이 되었습니다.
 그 센터를 담당하고 있던 영양사 미사꼬는 저에게 '당신은 당신이 먹는 바로 그것이예요.'라고 영어속담을 인용하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저에게 결핍된 영양소와 건강상태를 체크해 주고 필요한 식품들을 권해주었습니다.
 그녀와의 만남으로 저는 음식이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역사를 가지고 식탁까지 오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음식이 부드러운 위장을 거쳐 온몸으로 흡수되고 배설되어 다시 자연으로 환원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존재들이 음식물로서 인간의 몸에서 용해된다는 것은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가 생각할 때 당신이 무얼 먹고 마시냐는 아주 진지한 물음일 것입니다.
 건강을 생각한다는 명목아래 폭력적으로 음식을 취하지는 않았는지, 급한 마음으로 음식을 몰아치며 먹지는 않았는지, 필요한 음식의 양보다 과하게 먹지는 않았는지 나에게 스스로 묻습니다.
 무엇을 먹느냐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음식을 맞이하는 식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당신은 식사에 앞서 어떤 감사의 인사를 하시나요? 얼마 전 저의 선생님께 들은 공양게 하나를 적어 보렵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들어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있습니다.
  이 음식으로 주림을 달래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사하 대중을 위하여 봉사하겠습니다.

주림을 달랠 만큼의 소박한 밥상에 앉아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성스러운 의식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에게 이토록 귀한 음식을 준비해 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잊지 마세요. 이 땅에 밥을 짓고 상을 차린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연륜(年輪)

문옥선

 자동차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지요. 눅눅한 날씨에 빨래 말리기가 고역이었는데 차에 습기가 유난히 많이 끼는 바람에 얼마간 이중으로 고통을 겪었답니다. 차가 전과는 다르게 희뿌옇게 습기가 차오르는 겁니다. 몰지 않고 세워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차들을 둘러보아도 차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물론 짙게 선팅을 한 차는 예외가 되겠지만) 유독 내 차안은 안개 속이었습니다.
 차가 오래되어서 그런가, 언제나 문을 꽉꽉 닫아두어서 그런가, 물기가 있어서 그러나 별별 생각을 다하며 문도 조금씩 열어보고, 신문지도 펼쳐놓고 습기 제거제도 사다 넣어보고...몇몇 가지를 시도해보았건만 습기는 걷히질 않더군요.
 차를 오래 다루어본 사람이 내 차를 몰아보더니 바닥에 습기가 꽉 차있다면서 볕 좋은 날 창문 열고 모두 걷어내 말려야겠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시트아래에 왜 그렇게 습기가 차 있단 말인가. 문 열어놓고 비 맞은 적이 한번도 없는데... 당장 생각나는 것이란 세차 할 때 물이 스몄을까? 그 외는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차를 얼마 전에 했다고 하니 그분은 아마도 그곳에서 실수로 물이 들어갔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려주었습니다. 어쨌거나 카 센터에 가서 알아보리라 마음 먹고 있는데 마침 예전에 오랜 동안 운수업을 하셨던 분이 오시더군요.
 '한 가지 병에 약은 만 가지니 몸의 병은 자랑하라'고 하셨던 어머님 말씀을 떠올리며 그분한테 물었습니다. "도대체 제 차는 왜 이렇게 습기가 차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분들은 차를 어떻게 관리하기에 이렇게 비가 오는 날도 차안이 환히 비칠 수가 있는 건가요?"라고.
 에어컨과 선풍기를 싫어해 집안에도 들이지 않고 살고 있건만, 어쩔 수 없이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에어컨을 켜고서 달려야 했으니 그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습기 때문에 옆과 뒤는 잘 보이질 않지, 앞도 에어컨에 의지해 달리니 답답하고 눅눅한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으니까요. 더군다나 세워둔 차의 습기가 에어컨을 켠다고 바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수건을 이용해 유리창을 닦아야만 했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차 트렁크 바닥에 물이 괴면 그럴 수가 있는데 그곳을 한번 확인 해보았느냐고. 물 웅덩이를 다니다보면 그곳에 물이 스며들어 괼 수가 있다면서. 그럼 지금 당장 확인해봐야겠다며 차 트렁크를 열고 스페어타이어를 들어 낸 다음 바닥을 본 우리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트렁크바닥에는 물이 아주 얌전히 들어 차 있었습니다. 그것도 육안으로 보아선 맑은 물이...
 물이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가 있는가! 스며든 물은 빠져나갈 수가 없어서 고여 있었던 거라는 그분의 설명을 듣고 두어 해 전의 수마의 상처란 것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 년 전인가 지리산에 폭우가 내렸던 바로 그 날. 전 인근사찰의 수련법회에 참석했고 차는 절이 아닌 주차장에 세워두었습니다. 회향하기 하루전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억수로 내렸던 비. 마치 커다란 물통으로 내리 붓는 듯한 폭우가 쏟아지던 날, 그 비에 아까운 인명들이 강물에 휩쓸리고 매표소는 떠내려가 흔적이 없어지고 집들이 물에 잠기고 다른 차들도 잠기고 물에 떠내려가던 날....
 그 날 절에도 비 피해를 입었고 법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주차된 차들을 옮기느라 경황이 없었는데 산 위에서도 물난리로 비상사태였건만 전 절까지 차를 갖고 오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안심하고 있었답니다. 수련법회를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배낭을 메고 주차장으로 향한 전 깜짝 놀랐습니다. 주차장이 이상했습니다. 차는 있는데 매표소가 안 보이는 겁니다. 대신에 경찰관의 모습이 보이고...
그러나 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차 문을 여는 순간 얌전히 고여 있는 차 바닥의 물이었습니다. 시트는 젖지를 않았으나 앞 뒤 자리 바닥에 들어 차 있는 황토 물을 보는 순간 전 놀라서 경찰관한테 달려갔습니다.
"아니 제 차가 왜 이런가요?" 너무나 황당하여 그렇게 물을 수밖에... 내려오던 날은 날이 활짝 개어서 무서운 기세로 흐르는 계곡 물만 아니면 큰비가 왔다는 것을 별로 실감할 수 없었으니까요.
"시동은 걸리나요? 어서 시동을 걸어보세요."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시동을 거니 평소와 다름없이 걸리는 거였습니다. 엔진에 물이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다른 차는 떠내려갔는데 저더러 운이 좋다고 하더군요. 매표소 직원은 아니 그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내려와 보지도 않았느냐고 저에게 책망 아닌 책망을 하더군요.
 매표소 바로 옆에 주차시킨 제 차는 화단에 놓여진 바위의 돌에 앞바퀴가 걸려서 떠내려가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그때 경찰관아저씨는 저한테 저쪽에 산 위에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니 그곳으로 차를 옮겨서 바닥의 물을 퍼내고 가라고 친절히 말씀하면서 저를 안심시켜 주었답니다.
출렁거리는 차를 조심스럽게 운전하여 한적한 곳으로 댄 다음 바가지를 빌려서 두 시간에 걸쳐 차안의 흙탕물을 퍼내고 가지고 갔던 수건을 이용해 물기를 닦고 집으로 돌아왔었답니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내렸던 바로 그 날의 비로 차 트렁크에 물이 고이게 된 것이라니............그것도 몇 년 전의 일인데 아직 그 물이 고여 있었다니...
고무뚜껑을 들어내고 물을 차 밖으로 흘려 보내면서 우리들은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비록 저는 감각이 예민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긴 했지만요. 출렁거렸을 텐데 그걸 몰랐을까 하면서 저를 놀리는 것도 참아내야 했으니까요. 하도 많이 놀려대기에 결국에는 저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얼마 전 차 수리를 위해서 하루를 카 센터에 맡겨둔 적이 있었는데 프로들도 알아내지 못 하더군요” 하면서...
 겉으로 보기에 맑은 그 물은 타이어에 이끼까지 생기게 만든 아주 미끄러운 액체로 변해있었습니다. 고여 있던 물은 차를 세워둔 아스팔트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서야 그쳤습니다.
새 물을 떠다가 타이어를 닦고, 바닥을 닦고, 트렁크 안의 덮개를 들어내고, 차안의 바닥재를 모두 들어 낸 다음 해가 쨍쨍한 날을 택하여 바짝 말렸습니다.
 정말 선지식은 처처에 있었습니다. 세월의 더께
*인 경험의 소산은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는 삶의 교훈이란 것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 '더께'라는 말을 구어체로 자주 쓰이는 말로써, 사전상의 뜻으로는 몹시 찌든 물건에 더덕더덕 달라붙은 거친 때, 즉 여기서는 연륜을 뜻함.

 

 

 

  터키의 목욕문화

채선화

 터키를 여행하면서 현지인을 통해 터키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터키탕을 운영한다는 현지인은 명함을 내밀면서 꼭 들르라고 당부했다. 동생과 나는 가능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말없이 동의했고, 벗어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까지 했다.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위험한 순간을 잘 헤쳐 나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린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히려 터키탕이라는 단어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무지한 상태에서 내 잣대로 판단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터키의 문화를 넘나들어 보겠다는 나의 의도가 헛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터키의 목욕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터키 사람들은 청결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중세부터 ‘하맘(hamam)’이라 불리는 공중 목욕탕이 있었다. 터키식 목욕탕 ‘하맘’은 터키어로 ‘따뜻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맘’은 은그릇에 더운 물을 받아 조금씩 몸에 끼얹으며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목욕법으로 오스만 투르크 시대부터 내려오는 역사 깊은 목욕 방법이다. 역사가 깊다는 사실 말고는 한국의 공중 목욕탕과 별반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 미미한 차이를 통해 우리와 다른 그들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구체적인 살펴 보자.
 터키탕에는 남녀 탕이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에 목욕탕이 하나뿐일 때는 시간이나 날짜를 정해 번갈아 가면서 사용한다. 대기실에서 옷을 벗고 줄친 면수건(pestamal)을 허리에 걸친다. 발에는 나막신(nalin)을 신는다.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자 함일 것이다.
 ‘하맘’은 우선 바닥과 벽면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은은한 장작 열기로 서서히 땀을 내게 되어 있다. 우리식 공중 온탕은 없고 중앙에 둥근 대리석 바닥이 있어 그 위에 누워 두어 시간 땀(?)을 낸다. 그리고 나서 개인 샤워실에서 몸을 씻는다. 특이한 사항은 터키 차를 마실 수 있는 바, 그리고 분수까지 있는 완벽한 화랑 등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넓은 대리석 열 판 위에 누워 온갖 주제로 담소를 나누며 차 한잔 마시는 터키인들의 여유로운 시간은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이완되어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훌륭한 사교장의 역할을 하며 여론 형성의 산실이 되기도 하는 터키탕은 터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앞으로는 터키의 터키탕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궁궐 이야기

도난주

  서울에는 5개의 궁궐이 있습니다. 5개의 궁궐이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 경희궁으로 대표적인 조선시대의 건축물들입니다.
 궁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왕과 왕비 등 왕족들이 거쳐하는 장소의 기능뿐만 아니라  지금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그리고 정부청사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종합적인 장소입니다. 어떻게 궁궐에 많은 기능을 가질 수 있냐고요? 궁궐은 크게 외전과 내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외전에서 대부분의 기능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외전은 지금의 국회의사당의 역할을 하는 곳과 정부청사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임금이 직접 업무를 보고 정치를 하는 곳으로 나라의 대외적인 일을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내전은 우리가 알고 있던 장소~ 왕과 왕비 등 왕족들이 기거하던 생활공간입니다. 그리고 내전 외곽 지역에는 큰 정원을 두어 궁궐의 경계선을 만듦니다. <사진:창경궁>

 5개의 궁궐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복궁은 우리나라의 법궁으로 (가장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임금이 오랫동안 기거하였던 궁) 현존하는 것 가운데 최고의 크기와 가치를 가진 궁이며, 명성황후가 시해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거대한 크기에서 남성적인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답니다.
 창덕궁은 창경궁의 일부분과 함께 이용되다가 창경궁이 분리되었지만, 두 궁을 합쳐 동궐이라고도 합니다. 창덕궁의 특징은 왕족인 고 이방자 여사가 80년대 후반까지 머물렀던 곳이어서 아직 사람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또한 지금은 창덕궁에 속하여 있지만 창경궁 소속의 함인정과 그 주위에 있는 몇 개의 건축물은 단청을 하지 않아 검소하고 단아한 느낌이 듭니다.
 창경궁은 궁내에 왕비 등 여성들이 늘어나자 거주공간을 위하여 추가로 만든 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 궁궐에 비해 화단이 많고 아기자기한 장식품이 많아 여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경운궁은 우리가 덕수궁으로 알고 있는 궁궐입니다. 궁궐의 특징은 근대에 지어진 이유로 석조전과 같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 많다는 것과 주위게 해외 공사관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상 다섯 곳의 궁궐 특징을 간단히 알아 보았습니다.

 

 

 

고향 가는 길

이정숙

  바캉스 기간이라고 하긴 이른 7월 중순에 얼굴도 제대로 몰랐던 두 친구와 그리고 그 친구들을 알게 해준 언니 이렇게 넷이서 안성에서 통영으로 가게 되었다. 사실 모르는 사람과의 여행은 좀 부담스럽고 걱정도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괜한 걱정이었지만......
 여행은 생각과 달리 처음부터 순조로웠고 가면서 맛난 것도 먹으며 재미있게 내려갔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기도 했지만 우린 무사히 통영에 도착했다. 스님이 계신 곳은 바다를 내려보는 경치 좋은 곳이었데....꼭 옛날 시골 할머니 집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스님께서 주신 차를 마시고 한숨 돌리고 난 뒤 우린 텃밭도 메고 일명 '작가촌'이라고 불리는 곳에도 가봤다. 그러나 작가는 없었던 같다.

 다음 날 엄청난 비가 내렸다. 소매물도에 가려고 했었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 우린 무작정 차를 타고 미륵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그 때 까지도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여객터미널에 갔다. 우린 소매물도가 아닌 한산도로 가기로 하고 표를 끊고는 점심으론 충무 김밥을 샀다. 20여분을 기다린 후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 갔는데 섬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우린 섬에서 내리자마자 마을 버스를 타고 한바퀴 돌기로 했다. 시골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종점으로...  경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포근했었는데, 꾸미지 않은 모습이라서 그런지 정말 좋았었다. 버스 종점에 내려 밥을 먹고 바닷가를 한 번 거닐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배타는 곳까지 되돌아 왔다.

 육지에 도착해서는 슈퍼에 들려 저녁 찬거리를 사서 돌아 왔는데, 스님께서 처사님들과 함께 대문 입구 계단공사가 한 창이었다. 일행 중 키가 183이 넘는 건장하고 마음씨 좋은 우리의 머시기 승민씨도 스님을 도와 같이 모래도 나르고 돌도 나르고, 그 사이 우린 참거리로 국수를 준비하고, 부침개를 부쳤다. 부침개와 국수를 하면서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부침개가 어찌나 맛이 있던지 우린 저녁을 못 먹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리고 보니 부침개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이거 다 먹으려면, 음.....그런데 마침 저녁에 다른 분들께서 잠깐 들렀기에 저녁과 함께 부침개를 내놓고는 피곤해서 일찍 잤다. 내일 출발도 걱정되고 해서 말이다.
 다음 날 일찍 출발하기로 한 예정보다 늦게 출발하게 되었는데, 결국 점심때 어제 만들었던 부침개를 먹었다.

 

 

절기
풍속

 

 한로, 상강

편집부

한로(寒露 24절기의 열 일곱 번째, 음력 9월, 양력 10월 8일쯤이다.)
대기 가운데 공기가 차츰 선선해지면서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 때쯤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 등 겨울새가 바뀌며, 국화가 노랗게 피기 시작한다.

상강(霜降 24절기의 열 여덟 번째, 음력 9월 중이며, 양력 10월 23일, 24일쯤이다.)
이 시기는 대체로 맑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운이 뚝 떨어지면서 서리(霜)가 내리기 시작한다.그리고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땅 속 등으로 숨으며 동물 역시 동면(冬眠)을 준비한다.

다음 달부터는 겨울 절기(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가 시작됩니다. 기후적으로는 12월 1월 2월이 겨울에 해당되지만, 24절기의 처음인 입춘(음력 1월)을 봄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웹 메거진 월간 좋은인연에서는 음력 1월을 양력 1월에 해당시켜 절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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