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6(2002)년 8월호 Vo2.1,No.19. Date of Issue 1 Aug ISSN:1599-337X 

 

 

 

 

 

 

 

 

 

 

 

  공(空)

범수

 불교를 접하다보면 공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공이란 일체의 법 즉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인연을 따라 생멸 변화하는 것으로 그 속에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또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즉 무자성이기 때문에 여러 조건을 따라 변화가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외로 공을 신비하게 생각하거나,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 또는 모든 것은 허무하다 쯤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공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 전체나, 개인적 차원의 깨달음에서 볼 때 쉽게 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공이란....음 역시 어려운 것이구나", 내지 공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이것도 공 저것도 공" 하는 식의 태도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단 공과 친숙해지기 위한 개념 정리 정도의 차원에서 이야기해 보자.
 공(空)이란 무 실체성의 의미로 상주 불변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반면 인연을 긍정하는 말이다. 이 때 실체에 대한 부정은 단순히 소극적인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개념이나 속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사실 여러 인연(조건)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조건이 다하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마치 자성(自性)을 가지며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보이는 어떤 존재라도 결국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흔히 금을 좋은 것으로 치부한다. 여기서 금은 '좋은 것이다'는 개념을 자성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 자성은 언제 어느 때라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 하면 변화하지 않는 것을 자성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쌀만큼이라도 눈 속에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얼른 뽑아내지 않으면 안되기에. 그러므로 이 때 금은 좋은 것이다는 관념은 아주 간단히 사라지며 그 자성은 곧 부정된다. 또 하나의 잔에 물을 마실 때는 물 잔이지만, 차를 마실 때는 찻잔이라고 하듯 잔 자체에 정해진 속성 즉 자성이란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그 자체에 절대적인 값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이름이나 성격을 달리 한다. 이와 같이 변화가 가능한 것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무 자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 자성이기 때문에 여러 변화가 가능하며 이를 공(空)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공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면 여러 관념이나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상의 설명은 단지 공에 대한 막연한 생각으로부터 오는 거리감을 없애기 위하여 쓴 글이다.
 끝으로 어떤 존재든지 인연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영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잠시 무지개처럼 나타났다 그 인연을 다 하면 곧 사라지고 마는 것을 공이라고도 한다. 

 

 

 

 Portfolio

지미연

작가 소개 (Martin Parr 1952~)
 마틴 파(Martin Parr 1952~)는 영국 출신이며, 매그넘(MAGNUM) 회원이다. 매그넘 이라는 것은 다큐멘터리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꼭 회원이 되고 싶어 하는 사진 집단을 말한다.
 마틴 파의 사진 스타일은 언뜻 보기에는 매그넘의 사진 스타일하고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매그넘 멤버들 또한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사진에는 처음에 당기는 강한 맛은 없으나, 먹으면 먹을수록, 보면 볼수록 생각하게 하고 뒤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숨어 있다. 지금까지 그는 5권의 사진 집에 나와 있다. 그런데 그의 사진들은 한 권 한 권이 분리되어 있기 보다는 꼭 연작 시리즈처럼 한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환경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그의 작업 중 최종적 사진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세계>이다. 마틴 파의 <작은 세계> 라는 말은 어느 곳의 집단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집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광이라는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행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 어느 특정인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즐기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하나의 세계로 본 것이다.마틴 파는 앞에서 말했지만, 강렬하게 보여주던 다큐멘터리의 스타일을 바꾸게 해주었다. 이것은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전에 보여주었던 다큐멘터리의 스타일은 전쟁의 참상이나 드라마틱한 장면, 쇼킹한 장면 아니면 스토리가 있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소재의 다큐멘터리는 ENG 카메라나 8mm, 6mm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은 총과 미사일이 아니다.

<작은세계>

<작은세계>
<
작은세계>

 요즘은 카메라가 먼저 달려간다. 이런 모습을 실시간으로 생 중계 해주는데 이것을 카메라에 담고 인쇄로 나가는 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도 시대의 뒤떨어진 발상이다. 그래서 요즘은 예전에 누렸던 다큐멘터리 스타일과 다르게 새로운 소재와 깊이 있는 연출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소재주의 사진에서 주재주의 사진으로 변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그 선두에는 마틴 파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진

우리는 저마다의 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