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6(2002)년 7월호 Vol.2,No.18. Date of Issue 1 Jul ISSN:1599-337X 

 

 

 

 

 

 

 

 

 

 

 

 不遇靑眼 困駕鹽車(불우청안 곤가염거)*

범수

 이백락(李伯樂)은 주(周)나라 사람으로 말(馬)을 잘 보았다. 한 때 길을 가는데 사람들이 천하의 준마를 알아보지 못하고는 소금수레의 멍에를 씌우는지라 자기가 타고 있던 말과 바꾸었는데 과연 그 말(馬)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였다. 어떤 사람이 이를 보고 "꽃에는 매화(梅)가 있고 새에는 꾀꼬리(鶯)가 있어 일찍 피고 먼저 울어 사람을 기쁘게 하지만, 가련하다 고죽(孤竹)과 염거마(鹽車馬)는 지음(知音)*을 만나지 못해 일생을 저버리는구나." 라고 하였다.
 위에 인용한  不遇靑眼 困駕鹽車(불우청안 곤가염거)란 '천리마가 눈 밝(청안靑眼)
*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 소금수레나 끈다'는 말로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그것을 알아봐줄 사람이 없으면 그 진가를 드러내지 못한다.' 또는 '천하를 품을 능력을 가졌지만 뜻을 펼치지 못한 채 고사하고 마는 심정'을 나타내는 말로써 요즈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견주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온 국민이 열광하고 환호하던 그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 때문에 질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청안을 만남으로써 소금수레의 멍에를 벗어던진 천리마처럼 훌륭한 모습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말과 사람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이처럼  어쩌면 우리도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온갖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 개발을 통해 꾸준히 노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간다면 지음과 청안을 만날 수도, 아니면 스스로 청안과 지음이 되어 염거마(鹽車馬)
* 나 백아와 인연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 不(아니 불)  *( 만날 우)  *(푸를 청)  *(괴로울 곤) *(멍에 가)  *( 소금 염)  *(수레 거)
      (천리마가) 청안(靑眼)을 만나지 못해(不遇) 피곤스럽게(困) 소금수레나(鹽車) 끈다(駕).
*지음(知音)《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백아가 거문고를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타면 종자기는 옆에서, "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나타나는구나" 또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 유유히 강물이 흐르는구나" 라고 감탄하였다. 하지만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다음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거문고 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없기에................
*청안(靑眼) 우리에게는 잠재된 능력과 함께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능력과 가능성은 스스로의 개발과 노력으로 빛이 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을 알아봐주고 또 드러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을 때에 따라 '선지식', '청안' '스승'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염거마(鹽車馬)  소금수레를 끄는 말, 여기서는 소금수레를 끄는 천리마를 가리킴

 

 

 

 패닉룸

조혜숙

 이혼하고 딸과 살게 된 멕(조디포스터)은 전 남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부유한 동네에다 4층짜리 집을 구한다. 이곳엔 전 주인이 은밀히 꾸며놓은 '패닉룸'이란 공간이 있는데, 대형거울로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어 겉으론 결코 알아볼 수 없으며, 또 일단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는 열 수 없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집안 곳곳을 비추는 모니터와 비상용품과 환풍기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사한 첫날 밤 뒤척이다 잠이 깬 멕은 침입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급히 딸을 데리고 패닉룸으로 피하게 되지만, 폐쇄공포증과 함께 모니터에 나타난 괴한으로부터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당뇨병을 앓고 있는 딸을 위해 스스로 패닉룸을 나오게 되면서..... 멕의 역할은 처음 니콜 키드먼이 맡기로 했었는데 그녀의 부상으로 조디 포스터로 바뀌면서 전혀 다른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 영화의 핵심은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과 빈틈없는 구성 속에서 관객의 시선을 단 한 순간도 뺏기지 않고 몰고 가는데 있습니다. "카메라가 전지전능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찍었다."고 하듯이 벽과 문을 자유자재로 관통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훑고 다닙니다. 이것은 관객에게 더 긴박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제한된 시공 속에 갇힌 사람들의 서스펜스와 스릴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과 영상기법을 알고 있는 감독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한 '쎄븐', '파이트 클럽' 등은 다시 보아도 온몸을 긴장하게 만드는데 그는 " 영화가 남겨주는 상흔에 더 관심이 있다. 내가 '죠스'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영화를 보고 난 뒤 절대로 바다에서 수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고통받고 또 그 고통의 의미를 느끼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미연

 

 

작품에 대한 모든 권한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차이점

예진

어른들은 돈 떨어지면
택시 탄다 하고
아이들은 돈 떨어지면
얼른 줍는다 하네

어른들은 구름에 가린 달이라 하고
아이들은 달이 깨졌다 하네

어른은 구름에 덮힌 산이라 하고
아이들은 왜 산이 하얗냐고 묻네

 

 

 

 

 문화 넘나들기

채선화

 누구든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맘 내키는 대로 벗어날 수 있는 만만한 일상이 아니더군요..
 2002년 3월, 만만하지 않은 일상을 뒤로 하고 한달 일정으로 터키와 이집트를 다녀 왔습니다. 사람들은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 위한 세가지 조건을 항상 염려합니다. 세가지 조건이라 함은 금전적인 여유, 시간적인 여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의 여유이다. 이런 조건들의 염려 속에 매번 머뭇거리게 됩니다. 저의 이번 여행 역시 세가지 조건이 전혀 충족되지 않음으로 인해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간절히 원했던 일이어서 인지 여행 동반자인 동생과 나는 어느덧 터키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하고 오래 전부터 준비하던 사람은 동생이었고 전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여행목적지가 분명해서인지 우리는 알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관련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유럽이 아닌 터키와 이집트라는 나라를 택한 것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공부하고 간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진 모르겠지만 알고 보려고 해서인지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착각 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합니다. 앞으로 이 글을 통해 두 나라의 문화적인 부분들을 들춰 보려고 하거든요. 여행경로와는 무관한 글이 되겠죠(이 점 양해 바랍니다!!)
 문화적인 부분이라고 얘기해 놓고 보니 너무 거창하군요. 아주 낯설고 어려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터키탕이라고 들어보셨죠. 단순히 몸을 청결히 하는 목욕탕일까요?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긴 한 건지 있다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극적으로 구조된 문화 유산들의 얘기가 주가 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앞으로 전개될 내용의 개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혹시 여행 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연락 주시면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음 호에 더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마음속에 흐르는 강

문옥선

안면 있는 남자손님이 들어오면서 사탕과 캔 음료를 찾는다. 이미 입에서는 술 냄새가, 들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에선 튀김 닭 냄새가 솔솔 풍긴다. "닭을 튀기셨군요. 아이들 주시려고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이 얘기가 나오자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예, 이발하는 동안 튀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치 아비노릇이 나를 참 행복하게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정말, 부모님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자식을 위하는 그 마음이, 그 사랑이...누군가의 입에서 자식의 말이 화제에 올려질라치면 벌써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언젠가 동네에서 미장원을 하는 아주머니한테 막내아들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요 녀석이 참으로 괴짜다. 난 그 녀석과 장난치기를 즐겼는데. 샌들을 신고 나타난 그 아이를 골려 줄 요량으로 샌들 끈에 가려져 발가락이 세 개밖에 보이질 않는 것을 구실 삼아 말을 걸은 적이 있다. “넌 왜 발가락이 세 개밖에 없는 거니, 남들은 다 다섯 개인데” 하고서.. 내 발가락까지 동원하여 다섯 개임을 증명하면서... 그런데 그 녀석한다는 말이, “아직 어려서 그래” 다섯 살 먹은 아이가 이렇게 시원스럽게 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일부러 그 엄마한테 했더니 마치 신동을 낳은 것마냥 행복에 겨워했었다.
 남자가 평소와 다르게 많은 양의 음료를 사기에, "어디 인사 가실 건가요?"물었더니, "아니요, 우리 어머님 밭에 가실 때마다 하나씩 드시라고 그러네요. 뭘 드시려고 하질 않네요. 많이 말라 계시는데."  "아, 예"  난 무슨 말이든 대꾸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머님께서 무슨 걱정거리가 계신가 보군요. 뭘 못 드신다니 말 이예요." 그냥 무심히 인사로 한 말이었는데..... 남자는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저 때문이지요" 하면서 한숨을 토해냈다. 순간적으로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남자는 그렇게라도 자신을 자책하고 어머님께 용서를 빌고 싶었던 것이었나 보다. 남자는 또 다시 어머님 얘기를 했다. "뭘 도통 안 드시려고 하시니, 단것이라도 사다 드리려고요." 난 그 남자의 효심에 내 부모님을 잠시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방학 때 한번 찾아 뵈어야 할 텐데.... 부모되어서야 부모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냥 마음이 아늑해져 왔다. "그럼요. 단 것을 드시면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지요."  남자는 재차 말한다. "휴, 저 때문에, 잘 아시죠, 아시잖아요?" 마치 나를 욕해주세요. 난 이런 놈 이예요.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이렇게 절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몰라도 알아주길 바랐을까, 왜 그러신가요, 물어주질 바랐을까.... 누군가를 붙들고 그렇게라도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싶었을까.
 내가 30대 중반의 그 남자에 대하여 들은 얘기는 이렇다. 여느 집과 다름없이 지내고 있던 가정이었는데 부인이 어린 두 아들을 두고서 가출을 했다고 했다. 말을 전해준 이에 따르자면, 남자의 주벽이 원인이라고 했고.... 그 말을 뒷받침하듯 늘 남자 입에서는 자주 술 냄새가 풍겼다. 언젠가 늦은 시간 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휘청거리던 손님도 바로 그 남자였다. 그러나 남자는 언제나 공손했고 말투도 도전적이지 않고 조용하고 차분했기에 난 주벽이 있다고는 생각되질 않았었다. 허나 사람의 모습만으로 어찌 전부를 알았다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더더군다나 부부사이의 문제에 대하여는 감히 다른 누가 어찌 정답을 제시한단 말인가. 그랬기에 아이들은 자연히 할머니가 떠맡게 되었고, 그런 아들을 바라봐야 하는 모정은 갈수록 입맛을 잃어간 것이다. 그런 말을 듣기 이전에 난 큰 아이의 습성을 알게 되었었고, 늘 꽤 재재하게 차려 입은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었다. 저 아이들의 엄마는 뭘 하는 사람일까 하면서... 그런데 그런 사정을 듣고 난 다음부터 난 그 아이들도 그 남자도 다 가엾어졌다. 그래서 마음으로나마 아이들한테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관심 있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들의 모습은 갈수록 안정이 되어 갔고 옷차림도 깔끔해져 갔다. “좋은 분 만나지겠지요.” 결국 난 이렇게 위로를 하고 말았다. 아이들 엄마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는데... 난 속으로 계속해서 말을 했다. 그렇게 괴로워하지 마세요. 누구나 실패와 좌절을 겪는답니다. 그러면서 성숙 되어지는 거구요. 가는 사람을 어떻게 붙잡을 수가 있었겠어요. 그냥 지나간 시간은 잊어버리세요...이렇게 “무슨 말씀을, 고맙습니다.” 남자가 따뜻하게 웃는다. 난 웃는 그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심으로 좋은 만남을 이루었으면 하고 바랐다. “내일 쉬시는 날이라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겠네요.” 난 아이들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예, 고맙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다시 밝아진다.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인 그 남자가 어서 상처에서 훌훌 털고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결국 그들의 상처가 나의 상처 우리 모두의 상처이기에...

 

 

 

 웅녀 이야기

이지현

딱 1년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여름방학을 맞으면서 꿈꾸어 왔던 일들에 대한 열기도 날씨만큼이나 뜨거워지던 하루 하루였습니다. 이번 방학 때는 영어공부도 좀 해보고, 교육학 학원도 열심히 다니면서 임용 스터디도 열심히 해야지 하면서 유창한 계획들을 품었었습니다.
 고3들의 수험생 병만큼이나 대학교 4학년들에게는 취업 병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각자의 진로에 대한 부담과 노력이 커지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관절 부위가 아파서 약간씩 절뚝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며칠동안 운동장 뛰기를 무리해서 그런가 보다 싶어..운동으로 생긴 병은 운동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밤마다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절뚝거림이 더 심해지길래 나의 판단이 너무 무식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음날 정형외과에 가서 X-ray촬영을 하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진단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어찌나 염려스럽던지..
 무슨 큰 병에 걸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짖 누르며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처럼 애절하고 안타까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며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더 마음이 답답하고 죄어져 올 수밖에 없었지요. 결과는 엑스레이로는 정확히 판단이 불가능하지만 고관절(골반과 대퇴골을 잇는 관절)에 뼈가 채워져 있어야 할 부위에 다른 물집같은 성분이 채워져 있으니.. 몸을 지탱해주는 뼈가 힘이 약해져 금이 생겨 통증이 오는 거라더군요..
 좀 더 세부적인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어 난생처음 MRI촬영도 해보았습니다. 다시 그 당시를 떠올려 보니 심한 소음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불안을 가져다 준 검사였습니다. 결과는 수술로 그 물집이 찬 부위를 제거해 주고 뼈를 이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정확한 병명은 몰라서 조직검사까지 받아봐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2번의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결국 조직 검사결과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병으로 판단이 났지만..
 태어나서 몸에 칼을 데어보지 않은 저에게는 충격도 컸을 뿐더러 앞으로의 방학 계획이며 남은 학기 동안 해야할 일 들을 못하게 될 것 같아 정말 인정하기 싫은 일이었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서도 2달동안 목발생활을 조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습니다. 나이는 손가락으로 23개나 꼽히는 어른이었지만 아이처럼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시기에 이럴게 뭐람..하며 그냥 삶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건 어쩌면 이 병으로 인한 아픔보다 나의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거부감 섞인 생각들 때문에 더 힘들었던것 같습니다.
 내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일이며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인데도 이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생기는 마음의 갈등은 더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빨리 회복하기 위한 길은 이왕 이렇게 된 일 좀 아픈거 견디고 나면 다시 건강한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병실생활 긍정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걸 마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표현도 긍정하지만..
 정말 아픈 만큼 성숙하려면 그 아픔들 속에서 자신의 아픔으로 다가온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도 한 가닥의 희망과 자신을 바라볼 때 긍정적인 믿음의 시선으로 보는 작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아니면 아픔은 아픔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2002 World cup

도난주

우리나라에서 '국민적 축제'란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 대한민국 일본 공동 개최의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는 축제란 단어를 몸과 마음으로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며, 사회 여러 분야에도 긍정적인 파장을 미친 것 같다.
 월드컵 개최국이 확정되고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 통신 매체에서 짜증스러울 정도로 외국인을 내세워 '친철'을 강요하고 또 차량 2부제 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주는 것 같아 부정적 이미지도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리고 16강 진출시 무료라는 문구로 상업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풍길 때만 해도 월드컵은 축제가 아닌 행사 분위기 같았다.  

 그러나 첫 경기가 시작되면서 경기장에서나 가끔 볼 수 있었던 붉은 악마(레드데블스)들이 시청 앞과 광화문에 모여 외치는" 대~한민국"의 함성은 경기와 함께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같다. 그리고 황선홍의 멋진 첫 골을 시작으로 2:0 으로 대한민국의 첫 승이 확정되었을 때, 우리는 마치 하나가 되어 옆 사람이 누군지 개의치 않고 서로 부퉁켜 안고 울었으며

    승리를 기뻐했다. 또한 16강 8강 4강으로 선수들이 전진할 때 우리들도 깔끔한 메너와 질서 정연한 응원으로 선수들 못지 않게 전진했다. 그리고 붉은 옷과 태극기로 나라사랑을 표현했었는데 이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국민화합을 국민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축제를 자연스럽게 즐기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단순히 보는 축제가 아닌 몸소 체험하는 축제. 에너지를 내뿜는 축제. 그러면서 자신감을 얻고 단결성을 확인하는 자세를 말이다.

이 같은 성공적인 축제는 우리 모두의 값진 결과이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아름답고 훌륭한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누구나 공감하듯이 이러한 거대한 에너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작업 즉 승화의 단계가 필요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경기였던 터키와의 3, 4위 순위전 때 나라를 지키다 순국하신 분들의 명복(極樂往生)을 빕니다.

 

절기
풍속

 

 입추, 처서

편집부

입추(立秋 24절기의 열 세 번째, 음력으로는 7월 절기임이며, 양력으로는 8월 8, 9일쯤 든다.)
입추는 대서와 처서 사이에 있으며, 가을(秋)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즉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의 석 달간은 가을인 것이다.

처서(處暑 24절기의 열 네 번 째. 음력으로는 7월의 중기, 양력으로는 8월 23일쯤 든다.)
처서가 되면 신선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이 때쯤 되면 벼가 익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라고 하기도 한다.

 



좋은인연

 

 

 慶北 漆谷郡 松林寺

 편집부

 

 소금수레

 범수

 

 패닉룸

 조혜숙

 

 공포

 지미연

 

 차이점

 예진

 

 문화 넘나들기

 채선화

 

 삶 속에서

 문옥선

 

 웅녀 이야기

 이지현

 

 2002 World cup

 도난주

 

 입추, 처서

 편집부

 

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발행인: 범수스님
(EDITOR E-mail   savah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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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과 어울림을 지향하는 좋은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