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5(2001)년 제8호 Vol.1,No.8. Date of Issue 1 Nov ISSN:1599-337X 

 

 

 

 

 

 

 

 

 

 

 

 무상(無常)

범수

  우리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잘 알지만, 불행이나 절망이 엄습해 올 때면, 모든 것이 고통스럽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럴 때 흔히 '무상'하다는 말로 마음상태를 표현하지만, '무상'이란 '변화한다'는 말로, 고정 불변의 영원성을 부정하는 말이지 허무나 염세와는 거리가 멀다.
 불교에서 '무상'이나 '무아'라는 말은 '허무'나 '염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오히려 '연기(존재의 법칙)'를 나타내는 말로써 적극적인 표현으로는 '창조'이다.
  존재나 요소가 고정되어 있다면 변화가 일어 날 수 없지만,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변화를 겪는다. 그 무엇도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 짧은 순간의 행복도 지속될 수 없으며, 고운 피부와 윤기 있는 머리카락, 그리고 건강한 육체도 결국에는 병들고 고통 받는다.
 누군가 우리의 삶은 "절대자에 의해 미리 예정되어 있으며, 또 결정 되어있다"고 한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나, 누구를 사랑하고 원망하는 일, 투쟁과 다툼 등도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추악한 전쟁은 곧 포악한 절대자에 의한 것으로, 무지와 탐욕으로 물든 인간들을 통한 대리 전쟁일 뿐이다. 그러므로 결코 인간들에 의한 인간들의 역사란 있을 수 없으니, 그런 잔인무도한 절대자를 받들 이유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고정되거나 미리 예정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사고 할 수 있으며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소원을 세우고 그에 합당한 사고를 바탕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다.
 우주는 서로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되어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가운데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소멸적인 면만 본다면 허무나 염세에 빠질 수 있으며, 생성적인 면만 본다면 자칫 쾌락이나 탐욕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극단을 떠난 현명한 고찰을 '중도(中道)'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중도적인 입장에서 깨달음을 향한 수행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에 선행해서 연기(여러 조건으로 인해 발생함)에 의한 존재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서로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한다.'는 말을 자신한테 적용시켜 보자. 먼저 우주로부터 독립된 몸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 육신 역시, 우주와 서로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되는 유기적인 상황 속에 있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을 '우주는 하나의 생명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말은 상호 원인과 조건 그리고 결과로 작용하는 연기의 다른 표현으로써, 어느 것 하나 독립 자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들이 개별적으로 독립되어 아무런 연관 없이 존재할 것 같지만, 상호작용하면서 존재한다.'는 말을 현실에 적용시켜 보자. 만약 존재들이 개별적인 집합체에 불과하다면, 100원짜리 동전 열 개를 모아 놓은 것은 100원짜리 동전 열 개라고 말하지, 1000원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이렇듯 존재란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서로에게 원인과 조건 그리고 결과로 작용하는 것이다.
 무상이란 '존재들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결코 동일성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은 무상한 것이며, 무아란 '고정돤 영혼은 없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실험실

조유화

 약간 더러운 듯한 실험 복, 주머니에는 항상 드라이버랑, 볼펜이 가득하고,며칠 감지 않은 듯한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쌓아 놓은 원서들 뒤에서 무언가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곤 하는 연구에 정진 중인 대학원생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걸 가까이 서 보는 난.. 그들이 무얼 생각하는지 대충은 안다. 
 더러운 듯한 실험 복을 입은 이유는 단지 추워서 그렇다.  실험 가운의 원래 취지는 신체를 독극물 내지 체내 오염 방지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빨래하는 것을 잊어버린 탓도 있지만, 깊어 가는 가을의 한기와 국물 있는 음식을 먹을 때 보다 안전히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꼭 실험 복을 입는다. 하긴 실험 가운을 입으면 왠지 열심히 실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있어 보이기도 하는 자부심 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주머니엔 볼펜과 드라이버만 있는 게 아니다. 디스켓, 동전, 실험관, 테입, 열쇠 꾸러미, 클립, 음료수, 빵, 메모지, 휴지, 작은 약병들, 등등 넣을 수 있는 건 모두 넣는다. 왜냐면,, 원래, 얼른 챙기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챙기니까.. 그렇다..^^
 세 번째.. 왜 그리 많은 원서와 책, 페이퍼를 쌓아 놓는지.그건,, 책꽂이가 없을뿐더러,, 제자리에 가져다 놓지 않은 이유도 있고, 대출 기한 2달을  넘은 책들도 있고, 공부한다고, 무조건 출력한 것도 있고,, 그러다 보니.. 모니터보다 높게 쌓이는 이유다. 특히.. 교수님의 눈총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사각 지대를 구축을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마지막으로 항상 복잡한 프로그램을 돌린다.? 채팅이나, PC게임, 게시판 글 올리기 등의 원조는 대학원생이다. 지금도 물론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대학원생이다. 따라서, PC랑 떨어져 지낼 수 없지 않을까? 혹 이 글을 읽으시고 모든 대학원생이 모두 그럴거라고 염려하지는 마세요.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로 우리들에게 유익한 글을 주셨던 조유화님께서 불기 2001년 10월 14일 결혼하셨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기를 불, 보살님전에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