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5(2001)년 제4호 Vol.1,No.4. Date of Issue 1 Aug ISSN:1599-337X 

 

 

 

 

 

 

 

 

 

 

 

 

 기도(祈禱)

범수

  일상 생활 가운데 흔히 우리가 말하는 기도가, 마음 속에 원하는 것을 외부의 어떤 절대적 존재에게 빌면서 성취시켜 달라고 청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과 별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불교에서는 인과(因果)의 이치를 가르치기 때문에 직접적인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성취를 가르친다. 그래서 우상숭배와 같은 미신을 단정코 거부한다.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섬겨지는 절대적 존재는,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 길, 흉, 화, 복을 관장하는 절 대적인 직위를 부여 받지만, 어느 누구도 그러한 존재를 직접 본 일은 없을 것이다. 이유는 관념 속에 존재하는 개념은, 곧 그 고정 틀을 뛰어 넘으면 사라지는 허깨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모든 삶이 누군가의 관장 아래에 놓여 있다면, 자유의지에 의한 우리들의 노력은 모두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절대자가 임의 처방한 삶만을 살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마치 노예와 같은 모습으로 주어진 삶만을 살아야 하며, 인간에 의한 자유의 역사도 있을 수 없게 된다.
 불교가 무신론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이러한 신과 같은 개념을 하나의 관념, 하나의 우상으로 여기며 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타마 부처님 역시 스스로 신격화되는 것을 경계 하시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다.
                                                 "진리(법)를 보는 이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이는 진리(법)을 본다."
 개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애매 모호한 개념의 신이라는 공허한 관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한테 있는 것으로 자신에 의해 자신만이 자신을 구제할 수 있다. 이것은 자기 창조로써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나를 대신해서 나를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에는 구제자나 피 구제자가 없으며, 믿는 자와 믿는 대상이 없음으로 구제자에 대한 신앙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신앙(信仰)이라고 하지 않고 신행(信行)이라고 한다.
 불교의 수행은 이처럼 진리의 자각 즉, 깨달음의 직접적인 성취와 중생의 안락과 행복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숭고하며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수행도 역시 절대자와 같은 우상에게 매달려 구제를 탄원하는 식이나, 개인적 차원의 안위나 욕망 등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다.

 

 

 

 건강상식

김정숙

 더운 날 찬 음식을 많이 먹어 배가 아프면서 설사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지요. 이럴 때는 사과를 껍질 채 얇게 썰어서 뜨거운 물을 부어 함께 마셔보세요.사과의 향긋한 향도 느낄 수 있고 설사도 멈출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은 간단한 죽 종류를 드시는게 좋습니다. 그러나 변비 있으신 분들은 삼가하시는게 좋습니다.

 

 

 

 반사율

조유화

 깨끗한 유리를 통해 사물을 보는 것과 불투명한 종이를 덧댄 유리를 통해 사물을 보는 건 분명히 달라 보인다. 불투명한 종이를 덧댄 유리로 사물을 볼 경우,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며, 그 마나 따뜻한 온기마저 덜하다. 하지만, 투명한 유리로 본 바깥 사물은 또렷하게 보임과 동시에 따뜻한 햇빛까지 함께 가질 수 있다.
 
불투명한 종이를 덧댄 유리창이나 간유리는 불투명한 시야와 복사열 흡수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내부모습이 보이는 것을 차단함과 동시에 작은 양의 열도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용도를 정확히 나누는 건 유리의 투과율을 이용해 나눌 수 있다. 먼저 투과율에 대해 간략히 정의를 내리면, 어떠한 경계 층을 투과한 빛이나 파에 대해서, 들어간 양에 비해 나온 양을 백분율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깨끗이 닦은 유리창의 빛에 대한 투과율은 거의 100%라고 하는 것은, 100만큼의 햇빛 양을 비추었을 때 거의 100만큼의 빛이 나온다. 라는 뜻이다. 물론, 빛만을 두고 본 것이고, 간유리인 경우 3-40%에 불과하다. 이는 나머지 6-70%의 양은 되 튕겨져 나오거나, 유리창에 흡수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투과율이 낮은 유리일수록 시각적인 효과가 떨어져 투명하다, 투명하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있고 복사열이동을 방해해 따뜻함 정도도 떨어지게 한다. 이와 같이 빛에 대한 투과율에 따라 유리와 같은 매질의 성질이 달라진다. 빛에 대한 투과율이 낮게 만들기 위해 유리 자체에 불순물을 넣어서 색을 달리하던지... 이게 색유리가 대표적이고, 표면을 올록볼록하게 만들어 투과율을 낮춘 유리블록과 같은 것이 있다. 빛은 어떠한 매질을 지남으로 해서, 투과율, 반사율, 흡수율의 형태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3가지 성질을 이용해 많은 광학적 기기가 있지만, 오늘은 짧게 나마, 투과율에 대한 정의와 그 응용 형태를 간략하게나마 말하고자 한다.

 

 

 

 구만산

조혜숙

  경남 밀양에 위치한 구만산(785m)은 겉으로는 산 자락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깊숙히 자리잡은 산이다. 임진왜란 당시 9만명이 이 산으로 피신해 무사히 왜란을 넘길 수 있었다 하여 '구만산'이라 이름 지어졌다 합니다.
이 산은 정작 산행할 수 있는 몇 곳을 제외하곤, 모두
긴 계곡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영남지방은 그동안 가물었던 탓에 계곡 물은 비록 줄었지만, 그래도 구비구비 흘러 가는 시원한 물소리에 마음과 귀를 씻으며 오르다 보면, 내려 꽂히듯 쏟아지는 탕수 폭포의 시원함을 맛 보실 수 잇습니다. 이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벼락듬이, 부석듬이, 아들바위, 송곳바위, 얹힌 바위.....이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암 괴석과, 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소나무의 지고한 아름다움을 넋을 잃게 될 것입니다.
 폭포를 뒤로 하고 계속 오르다보니,
시야가 트이며 제법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멀리 저수지와 마을, 그리고 가느다란 신작로도 보였습니다.
 빙 둘러쳐진 산봉우리와 눈 높이를 같이 할 수 있을 때쯤 되면, 조금씩 겸손함이 생기기
시작하여, 산봉우리를 눈 아래 굽어 볼 수 있을 때쯤 산에 대한 경외심이 일어 났습니다.
 
법정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서 "산은 그저 산일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는 저만치 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본다. 대상과 그를 인식하는 주체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가 될 때, 갈등과 불화는 사라진다." 라고 말씀하셨듯이 마음속의 혼란스러운 상념들을 하나씩 밟고 오르다 정상에 다다를 무렵엔,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관망하는 자세가 되고, 마음속의 갈등과 불화는 사라지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만산 정상은 여느 산보다는 정상의 봉우리가 좁았지만, 더운 날씨에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간 나를 스스로 대견해 하며 "야호"를 크게 외쳤습니다.

 



좋은인연

 

 

慶南 山淸郡 道田里 磨崖佛

편집부

 

기도(祈禱)

범수

 

건강상식

김정숙

 

반사율

조유화

 

구만산

조혜숙

 

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발행인: 범수스님
(EDITOR E-mail   savah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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