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5(2001)년 제10호 Vol.1,No.10. Date of Issue 1 Dec ISSN:1599-337X 

 

 

 

 

 

 

 

 

 

 

 

 

업(業)

범수

 업이란 중생들의 몸과 말, 그리고 정신적 행위의 전반을 말한다. 업 즉 행위의 성질은 크게 착한 행위(선업)와 악한 행위(악업)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업의 종류로는 신체적 행동의 신업(身業)과 언어적 표현의 구업(口業), 그리고 정신적 활동의 의업(意業) 세 가지로 나누며, 이를 삼업(세 가지 업)이라 한다. 또한 업은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를 말하는 것으로, 행위자의 정신적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한 이유는 업 이론이 기계론적이거나, 숙명론적인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와 노력의 결과인 동시에 정신적인 면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즉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은 모두 정신적 작용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업은 우리들의 행위에 따라 열 가지 착한 업(십선업(十善業))과 열 가지의 나쁜 업(십불선업(十不善業))으로 나누는데, 이 가운데 열 가지 나쁜 업(습관)이란 다음과 같다. 
                   살생(殺生), 도둑질(偸盜), 사음(邪淫)의 육체적인 업, 
                   거짓말(妄語), 이간질(兩舌), 욕설(惡口) 희롱하는 말(綺語)의 언어적인 업, 
                   탐욕(貪慾), 성냄(瞋애) 그릇된 견해(邪見)의 정신적인 업.
그리고 열 가지 착한 업이란 이 반대이다. 그러나 이 모두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착한 행위를 하고자 하는 마음과 악한 행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절대자 같은 존재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행위의 주체자에 의해 업의 성격이 결정 지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를 '자기창조의 가르침'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고정적이거나 실체적인 자아에 대한 부정으로써 무아를 말한다. 이것은 고정된 자아(영혼)나, 그를 유지시켜 주는 절대자와 같은 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연기설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그 실체가 없기 때문에 생성하고 소멸한다. 생성과 소멸하는 존재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에 실재하거나 실체적인 자아란 있을 수 없다는 무아의 입장과, 모두 연기의 법칙에 속하기 때문에 항상 변화한다는 무상의 입장을 취한다. 만약 변하지 않는 자아가 실재로 존재한다면 종교적 실천등을 통한 삶의 변화란 있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결정된 자아나 영혼, 그리고 결정된 삶에서 자신의 노력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이나 삶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인격과 삶의 형태를 누릴 수 있다. 이 말은 곧 '자신의 업(행위, 습관)에 따라, 자기 삶의 형태가 스스로 결정된다'는 이야기이다.
 업이란 인식적 행위와 신체적 행위를 통해 익혀지는 습관으로 숙명이나 운명의 뜻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은 자기가 짓는대로 결정된다. 그리고 그런 업의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위에 따라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 마치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달마야 놀자

조혜숙

 조직 폭력배 재규(박신양) 일당이 몸을 숨기기 위해 찾아간 깊은 산 속의 절, 그리고 조폭들이 '짐승보다 못한 놈'에서 '헤어지기 아쉬운 사이'가 되기까지 그들은 '스님'에 대한 호칭으로 '오야봉', '영감님', '스님', '큰스님' 식으로 변해 갑니다. 그것은 순화되어가는 감정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일주일만 머물겠다며 온갖 말썽을 다 부리고 절을 휘젓던 일당이 약속을 어기고 다시 일주일을 더 머물겠다고 할 때, 스님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5판 3승의 대결을 벌이지만 무승부가

 난다. 그래서 마지막 대안으로 '10분 안에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는 스님의 문제를 독 채로 물에 담금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조폭 일당은 더 기고 만장하여 절을 휘젓게 됩니다. 그러나 청명스님은 '짐승보다 더 못한 놈'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조폭들의 방식으로 조폭들을 제압합니다. 그런 이후 '스님들의 하루 일과', '너희들의 하루 일과'라는 일정표를 조폭들의 방에 붙여 놓습니다. 확실한 제압의 결과죠.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많은 해프닝으로 박장대소하게 되지만 지면상 일일이 말씀 드리기 어렵워서 그 중 하나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청명스님이 조폭들의 기강을 잡자 조폭들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법당 청소를 하다가, 부처님이 어느 국적 사람인가를 놓고 다투면서 불상 밑을 보게 됩니다. 그들 생각으론 made in....이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만 실수로 불상은 넘어지고, 그 바람에 한쪽 귀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엉겹결에 억지로 귀를 붙여 놓긴 했지만, 스님들께서 예불하시던 중에 그만 그 귀가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자 스님들은 주지스님께 조폭의 잘못을 이르게 되지만 오히려 "부처는 자신의 맘속에 있거늘 어찌 허상에 메달리냐" 며 조폭들을 감싸줍니다.
 조폭인 재규는 주지스님께서 왜 자기들에게 "특별한 어떤 훈계나 가르침도 하지 않으면서 보살펴 주는지..." 이유를 묻습니다. 스님은 가만히 "너희들이 밑 빠진 독을 물에 던져 넣었던 것처럼, 내 마음에 너희들을 던져 넣었을 뿐이야"라고만 대답합니다.  또 조폭들의 아침 공양을 손수 준비하는 주지스님을 만류하는 청명스님에게 "자기 수행만이 성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달마야 놀자를 한마디로 '조폭들의 성장영화'라고 평하지만, 전 그보다도 스님들의 지혜가 더 돋보였던 영화 같았습니다.
 산사에서 좌충우돌하던 조폭들이 속세로 돌아간 다음 어느 날, 재규에게서 온 편지에 "부하들이 스님들께 24K 순금 목탁을 보내드리자고 하는 것을 말리느라고 혼났습니다." 라고  한 구절에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달마야 놀자에선 향신료나 조미료는 되도록 적게 쓰고, 자연스런 그대로의 맛을 살린 것 같았습니다. 내용적으로 주연과 조연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강요하는 웃음이 아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생기게 하는 영화입니다.

 

 

 

 상대성이론에 대해.  

조유화

 아인슈타인(Einstein, Albert)을 생각하면 '상대성 이론'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이 이론은 지난 수 백년간 지켜 오던 뉴턴 역학과 갈릴레오의 이론을 뒤흔들었으며, 기존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새로이 창조했다. 
간단히,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면, "시속 200Km로 달리는 기차"를 여러 방식의 관점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존 이론에서는 기차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사람이 뛰는 것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나타내지만, 상대성 이론에서는 다르게 말할 수 있다.
 상대성 이론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기차 안에 앉은 승객이 느끼는 경우 기차는 가만히 있지만 창 밖의 바깥 풍경이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멀리 들판에서 기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사람은 그 빠른 기차가 굉장히 느리게 움직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간단히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게 상대성 이론이다. 하지만, 아이슈타인이 이 이론으로 노벨상을 탄 건 아니다. 양자역학의 한 분야 중 아주 까다로운 식을 풀었기 때문이다.
 위의 상대성 이론은 자연과학에서 단지 이론일 뿐이지, 뉴턴의 '만유 인력의 법칙'이나 갈릴레이의 '지동설처럼 법칙으로 통용되지는 않고 있다. 누군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완벽한 타당화를 시켜 법칙화가 될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야기-우리들의 예진아씨- 

윤경민

 요즘은 연예인들의 '수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여자 연예인들이 소위 '비디오 사건'으로 본의 아니게 감추고 싶은 사생활마저 드러나는 수모를 겪었고, 또 그 여파가 물러가자 '마약'파동으로 다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구속된 탤런트 황수정씨와 가수 싸이씨에 대한 여론과 주변의 동정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쉴 새 없습니다. 
대부분의 의견은 그간 청순하던 황수정씨의 이미지에 대한 배신이라며 싸이씨의 구속보다 그녀의 '범법' 행위에 더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에게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연예인이 갖는 위치는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예인들은 청소년들의 정신적인 우상으로 군림하며, 또 문화 예술 종사자라는 면에서 우리 나라 상업문화를 대표하는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우리는 촉각을 곤두세우며 설령 그것이 '관음증적 태도'라 비난받을지언정 그들의 사생활마저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런 태도는 '알 권리' 또는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행동 중에서도 특히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정당한 것일까요? 다시 말해 연예인 스스로도 TV속의 자신에 대해 '설정'을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황수정씨가 "예진 아씨"이길 바랬던 우리의 기대나 '알고 보니 예진 아씨가 아니더라' 하며 실망하는 우리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약간 보수적이기도 한 제가 황수정씨의 범법 행위나 그녀의 난잡한 사생활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연예인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연예 활동을 할 뿐, 연예인이라는 닉네임은 단지 그들의 직업이기 때문에 모범적인 생활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이 팬들과 함께 하는 이상 공인입니다. 그들이 방송 및 각종 언론 매체에 데뷔할 때에는 이러한 부분들은 고려했어야 됩니다. 즉 연예인이라는 자리는 자신이 원치 않아도 감추고 싶은 치부마저도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들의 위치가 이렇다면 단지 자신들의 '예술'로서만 판단해 달라는 그들의 외침은  공허할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 쪽의 손도 저쪽의 손도 잡고 싶지 않습니다. 선택은 분명 각자 개개인의 몫입니다. 남의 허물을 보기 전에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보라는 말씀도 공허하게만 들리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타인에게 냉정하고 자신에게는 너무나 관대하지 않나 하는 반성일 것입니다. 요즈음은 진정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냉정한 자존심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 자존심은 한 사람의 가치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개인의 가치관을 지나치게 억누르지 않아 도 그 자체로서 (누가 보아도) 타당해질 때 우리 사회는 서로 자기 기준으로만 보려고 하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나를 찾아서

차지은

 7월 6일.  
 친구가 내일 아침 떠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쇼핑을 위주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중국 고유의 차를 보러 다녔다. 맛도 좋고 향도 좋고 하지만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흠흠^^ 쇼핑은 늘 비슷해서 그런지 별로 재미없다. 특히 백화점 같은 곳은 진짜 재미없다. 그러나 재래 시장 같은 곳은 나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친구랑 인사동 같은 곳도 가보고 또 문방사우를 전문으로 파는 곳 등 여러 군데를 다녔다. 그러나 친구가 내일 떠나기 때문일까?  괜히 서운하고 걱정되고 조금은  우울 해진다. 역시 사람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다. 친구도 내가 걱정이 되는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같이 여행하는 동안 손짓 발 짓으로 말하는 날보고 감탄하던 친구도 막상 나 혼자 두고 떠나려니 걱정되겠지.....
그러나 "친구야 걱정 마~~!  
7월7일 
친구는 갔다. 갖고 있던 물건을 다 주고 갔다. 히히 횡재했다. 파우더, 선글라스. 약 등등 그러나 친구가 떠났다는 사실에 시간이 갈수록 우울해진다. 쓸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어제 예매했던 기차를 타고 진시황릉 보러 갈련다. 기차로 열 여섯 시간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예매한 좌석 표는 네 사람이 같이 앉는 자리라서 장난이 아니다. 직각 의자에 테이블은 작고 또 자리도 좁다. 음! 직각이라.....음음^^열 여섯 시간만 참자! 라는 마음으로 잠을 청하지만 잠도 안 온다. 마주 앉는 의자라서 자연히 앞 사람과 마주 보게 되지만  의사 소통이 안되어 그런지 서먹하다. 어휴 모르겠다. 그냥 계속 웃는 눈빛만 보내다 눈을 감는다. 그러자 또 다시 친구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러면 안돼 하고 맘 잡으려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흐른다. 내가 왜 이리 감상적으로 변했지?
 바보 같다! 힘내자 힘! 조금만 참으면 서안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 자리에 앉기 싫다. 좁고 답답하다. 차라리 요금을 조금 더 내더라고 좋은 의자에 앉고 싶다.

 

 

 

바로 설 수 있는 사람

채선화

   남자보다 여자 쪽이 자신감을 잃기 쉽다」는 미국의 연구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성인 남녀에 한한 것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기게 된다는 연구입니다.
여성은 실패하면,「내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결론을 짓기 때문에 자신감을 상실하기 쉬운 반면, 남성은 실패해도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여성들에 비해 자신감을 잘 잃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꾸중은 듣는 경험이 아주 적습니다. 주위의 어른들은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정하게 대하고, 나쁜 짓을 해도 눈감아 주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서도 그렇습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남성에 비해 꾸중 듣는 횟수가 적고, 꾸중의 방식에서도 온정이 개입되기 쉽습니다. 그것을 성 차별이라고 말하는 여성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꾸중 듣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꾸중 듣는 일에 강하지 못합니다. 회사 같은 조직 내에서 이따금 남녀의 구별을 두지 않는 상사와 충돌할 경우, 남성사원과 똑같은 꾸중을 들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그런 경험이 없었던 여성은 심한 충격을 받고, 업무능률도 갑자기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성의 구분을 떠나 부모님의 자식사랑은 지극해져만 갑니다. 그러나 장애인 아들을 마라톤 대회에 내보내기까지 하는 억척스러운 지극함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실패나 꾸중에 약한 유형이 내 아들 딸들의 모습이라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그럴 때면 다른 이들을 원망하곤 합니다. 부모와 자식 모두 다른 이를 원망하는 것으로 맘을 달래려고 할 것입니다.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부모는 자식의 손을 꼭 잡아 줍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손을 놓아야 합니다. 그때 잡은 손을 놓고도 흔들림 없이 걸을 수 있도록 한다면 부모의 자식사랑은 적당한 지극함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강한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 자식, 그런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하루였습니다.

 

 

 

사진공간

김인수

 

                           두륜산 대둔사(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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