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물음)
마땅히 선 바라밀(禪波羅蜜=선(禪)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행방법)도 함께 말해야 하는데, 어찌하여 단지 선(禪)만을 말할 뿐인가?

(
대답)
선(禪)은 바라밀(=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닦아야 할 수행법을 총칭)의 근본이다. 선(禪)의 참뜻을 깨달아야 바로 그 다음에 중생을 어여삐 여겨 그들이 다음과 같은 상태에 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즉 그들은 자기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선정(禪定=몸과 마음이 깊이 통일된 상태. 마음의 평정)의 불가사의한 즐거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찾는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부정과 수많은 괴로움 속에서 외면적인 즐거움만을 찾고 있다.라고, 이와 같이 관찰하여 보살(=깨달음을 구하여 수행하는 사람)은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크나 큰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이다. 즉 나는 반드시 중생으로 하여금 내면적인 선정의 즐거움을 얻어 부정한 즐거움을 떠나게 하고, 다시 이 선정의 즐거움에 의해서 이윽고 깨달음(佛道)의 즐거움을 얻도록 해야 한다 라고. 이러한 선정이야말로 참으로 바라밀이라고 하는 이름에 어울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선정 속에 있음으로써 단지 선(禪)만의 즐거움에 빠지지 않고, 보답을 구하지 않고, 보답에 의한 미래의 삶을 찾지 않으며, 다만 마음을 조절하기 위하여 선정에 들고, 지혜의 방편(좋은 방법)에 의해서 다시 욕망의 세계에 태어나서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고 해방하는 것으로, 이러한 때의 선을 바로 바라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보살이 깊은 선정에 들고 있을 때, 일체의 하늘 나라나 인간들이 사는 곳에서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그의 마음은 가히 짐작할 수 없으며, 그의 마음은 그가 의거하고 인연 맺는 바의 견문각지(見聞覺知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일체의 인식 작용)의 분별 속에 있으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마치<유마경>에 유마거사가 부처님의 제자이신 사리불존자를 위하여 '연좌(=좌선)의 방식'을 이야기하여, 몸에 의거하지도 않고, 마음에 의거하지도 않으며, 삼계(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것에도 의거하지 않아, 삼계 가운데 어디에서도 그의 몸과 마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을, 바로 '연좌(宴坐)'라 부른다고 말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