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믿음이란

-梵水-




들어가기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자신도 깨달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즉 자신 속에 잠재되어 있는 불성을 드러내어 확인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행 과정은 올바른 믿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만 무지(번뇌)에 물들어 있는 범부의 입장에서는 분별과 집착(思量 分別心), 잘못된 판단으로 오히려 번뇌를 일으키기(轉倒妄想) 때문에 자신의 믿음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믿고 있는지에 대하여 분명하지 않은 태도를 취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믿음이나, 수행'에 대하여 불교적인 관점에서 스스로를 검증할 필요가 있으며,  그 방법은 다음에 의해서 가능하다.
  고타마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께서 '믿음은 무엇이다'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 경전과 논서나 어록을 통해 직접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검증함으로써 불교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실천인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얘기하기

1 믿음이란

 '믿음(信)이란 무엇(何)이다'라는 전제 아래에서 믿음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믿음의 대상이 무엇이냐, 또 누가 믿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과 형식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 소고에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에 대한 필자의 의견만을 간략히 피력하고자 한다.

 2 주어와 술어와의 관계

'믿음'이라는 주어와 '무엇이다'는 술어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술어와 주어와의 관계는 술어가 주어를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보통 술어는 주어에 딸려, 주어를 도와주는 역할로서 주어 없이는 그 뜻이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 주어와 다른 의미일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 없는 술어는 별 의미가 없지만, 술어 없는 주어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잃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믿음은 무엇이다'고 정의를 내려 믿음의 폭을 한정 지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주와 객의 관계

'믿음은 무엇이다'에서 믿음의 전후 관계를 살펴본다면 누가 무엇을 믿는다 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다는 행위를 하는 것은 주가되고 믿는 행위의 대상은 객이 된다.
주와 객은 서로 상대적 개념이다. 여기서 상대적 개념이란 주 없는 객은 있을 수 없으며, 객 없는 주 또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화된 개념으로서 주와 객은 서로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상의성의 관계로서 유위(有爲)의 범주에 속하며, 또 유루(有漏)의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인천(人天)의 복락(福樂)은 얻을 수 있으나, 주와 객(主客), 유와 무(有無), 시와 비(是非)등의 상대적 개념을 떠난 의미의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번뇌를 동반한다.
 불교에서 믿음이란 이러한 상대적 차별을 떠난 것을 말한다. 주와 객이 하나가 되는 것으로 상대적 차별을 떠난 경지 즉 중생과 불이 둘이 아닌 경지를 믿고 또 도달하는 것이 바로 바른 믿음이 되는 것이다.

4 불성의 확인

그러면 올바른 믿음을 위한 전 단계로서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 그것은 바로 삼보에 귀의(歸依)하는 것이다. 귀의란 믿고 의지한다는 뜻으로 믿음의 첫 단계에서 오는 결과며 선행되어져야 하는 마음 자세이다. 믿지 않는 상태에서 귀의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귀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믿음도 또한 그렇다.
우리는 삼보(三寶)에 귀의한다. 이는 삼보를 믿고 의지한다는 뜻으로 삼보를 믿는다는 행위이며 다른 말로는 진리를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믿는다는 것은 곧 진리를 믿는다는 말이다. 또는 진리를 안다 는 뜻으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직접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만약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면 믿는다 하더라도 깨달을 수 없을 것이나, 부처님께서는 분명 모든 중생은 다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란 내가 깨달을 수(부처) 있다는 확신이며, 이의 실천이며. 완성이 바로 바른 믿음인 것이다.

나오기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는 확신(믿음)에 의해 자신 속에 내재된 불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작업 즉 수행은 항상 고타마 부처님(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의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믿음의 기초이다. 왜냐하면 사신(邪信)과도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와 반대되는 뜻을 명확하게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과 일치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불교에서의 믿음이란 결국 깨달음으로 가는 것이며 깨달음의 완성인 것이다. 그리고 방법으로서 고타마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내용에 의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