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50(2006)년 2월호 Vol.6,No.61. Date of Issue 1 Feb ISSN:1599-337X 

 

 

 

 

 

 

 후진 없는 포니2

범수

 80년대 말 제주도의 어느 사찰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특별하거나 급한 볼일은 아니었지만, 포니2라는 자동차를 운전하여 시내로 갔다. 한 참을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아 되돌아 나오려고 일단 차를 멈춰 세웠다. 그런데 처음 다뤄보는 차종이라 후진 기어 조작이 낯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차는 기어를 중립에 놓고 위에서 밑으로 눌러 후진 쪽에다 밀어 넣으면 되는 것인데,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좌우회전을 포함한 직진밖에 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내내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가는 자신이 왜 그렇게 우습던지, 결국 시내를 한 바퀴 빙 돌아서 되돌아 왔다.
 한갓 기계도 앞과 뒤의 구분이 이렇게 분명할진대 인생에서의 진퇴문제는 더욱 명확해야 할 것이다. 언제 나아가고 물러 서는지는 단순히 상황에 따른 처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수신(修身)의 의미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은 그리 녹녹치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한편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과 자신의 상호관계에 따른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인식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로써, '왜'라는 반문만 할 줄 알아도 감각에 끌려 다니는 생각이나 행위는 확연히 줄어 들 것이다.
 만약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어하지만 소유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갖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 날 때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래도 충동적인 사람은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지려 할 것이지만, 현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우선 그에 걸 맞는 노력을 할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자신을 다스린다는 것은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가지고 싶은 대상의 실체와 그것을 가지려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살핌으로써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현실에 적용을 시켜 이야기해 보자.  가지고 싶은 것, 바라는 것 등을 물으면 머뭇거림 없이 대답하지만, "왜"라는 질문에는 즉답을 주저하기 일쑤일 것이다. 설사 이유를 댄다고 하더라도  "좋을 것 같으니까" 내지는 "그러고 싶으니까" 또는 얼토당토 않은 말로써 적당히 얼버무리기 쉽다. 그것은 '하고 싶다, 가지고 싶다' 등의 단순한 바램만 있을 뿐 욕망의 실체나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으로써 비롯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왜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뜻 나아가지도 못하고 물러서지도 못하는 불안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즉 할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인 것이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소유하였을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한테서는 물질이 곧 기준이 되겠지만, 형상이란 시시각각 변화(成住壞空 生住異滅)의 과정을 겪는 것으로 영원성이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형상만을 쫓아 취사선택한다는 것은 찰라찰라 변화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써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외형에만 의존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여름 햇볕에 얼음조각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얼음(相)은 언제든지 변화 가능한 것으로, 이의 본래 형태는 물이며 그 본성은 곧 습(本性)한 것이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그 본성은 보지 못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만을  가지고 좋아하고 싫어하며 진퇴를 결정한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로써 고통을 자초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때로는 욕망의 주체인 자신을 돌이켜 보자. 그리고 진실하게 반문해보자. 왜냐고

 

 

 

 인도기행

진선

 통과의례의 방법은 달라도 축복을 내리며 명복을 빌어 주는 마음은 똑 같을 것이다. 비록 생소한 모습을 접하더라도 그것은 그들만의 오랜 시간이며 역사이기에 고유의 문화는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져야 하며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관에 대하여

정재진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보는데, 문득 시사란에 '역사를 보는 안목'에 대하여 논한 것이 보여 평소 내가 생각함과 같아, 이것으로 역사를 보는 안목(歷史觀)의 경계로 삼았으면 한다.
 신문에 실린 바를 살펴보면 곧 요사이 텔레비젼에서 방영되는 사극에 대하여 논평하였는데, 이른바 「여인천하」(중종조의 역사적인 사실을 그리되, 특히 중전 ‘문정왕후 윤씨’를 중심으로 한 사극)와 「명성황후」(조선조 말기 고종조 고종의 비인 ‘왕후 민씨’를 중심으로 한 사극)와 「왕건」(통일신라 말기 후삼국 시대를 반영하되, 고려 태조 ‘왕건’에 초점을 맞춘 사극)과 「상도」(조선 후기 ‘의주’의 대상인 ‘임상옥’을 중심으로 한 사극)등이니, 가히 사극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사극이 전성을 구가함은 마땅히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는 환영할 일이겠지만, 그러나 실제의 상황은 그렇게 환영할 바가 아니며, 오히려 양식 인들의 근심이 됨은 무엇일까? 그 이유인 즉 각 방송사들은 오로지 시청률을 높이기에 급급하여 어떤 것은 사실을 왜곡하기도하고, 어떤 것은 사실을 변형하여 극 중에서 잘 못된 것이 많음 때문인데, 그의 폐단은 이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리라. 즉 잘못된 역사의식의 전파. 더욱이 텔레비젼은 현대 매체의 총아로써 그 전파력이 지대함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우려 할 수준이다. 예를 들면 ‘침대는 과학이며, 가구가 아니다’라는 광고를 본 아이들은 시험문제에 침대를 과학이라고 기재하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말한다면, 팔공산(대구.영천.경산.군위 등지에 분포된 산 이름)이 팔공산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름이 유래한 것을 어떤 사람은 사극을 보고서 말하기를 "왕건과 견훤의 공산전투 이후로부터 팔공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사극 중에서 왕건 휘하의 8명의 공신이 죽어서 ‘팔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지만, 이는 아직 학계에서 정론화하지 않는 하나의 ‘설’일 뿐이지, 이렇게 일의적으로 왕건과 견훤의 전투 이후에 그 이름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려움)고 하는데, 어찌 그 이름이 왕건이라는 사극이 방영됨을 기다려 그 이름을 얻었겠는가?
 우리나라의 역사가 단군 이래로부터 반만년을 기약하며, 또한 강과 산의 숫자가 수 천 수 만뿐이 아닐진대,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을 것이며, 강과 산의 숫자가 적다하지 못하건마는, 그런데도 산과 강을 이름 지음이 그 전에는 없었다는 것인가?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의 시조를 비로소 사극)을 본 이후에야 알았다"라고 말하니, 이 또한 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로다. 그렇다면 이 말은 지금까지 나의 성씨의 기원을 알지 못하다가, 사극에서 방영됨을 기다린 이후에야 비로소 내가 근원 한 바를 알았다는 말이 되므로, 어떻게 가히 더불어 말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내 비록 똑똑하지 못하고 아는 바는 없다 해도, 그러나 감히 한마디의 말을 하여 세상의 교화하는 「잠언」(경계가 되는 말)으로 삼고자 한다.
 맹자(기원전약376년경 제나라의 ‘추’라는 땅에서 태어난 사상가. 이름은 ‘가’(軻). 저서로는 <맹자>가 있는데, 주된 내용은 정치.경제. 심성론(성선설) 등이 있다.)가 말하기를, "만일 <서>(書 즉 서경을 말하며, 고대 하.은.주에 이르는 역대 왕들의 말씀을 기록한 책. 일명 상서)에 기록된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면 차라리 <서경>이란 책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러므로 나는 무성(武成:무력적인 행사로써 은왕조를 멸망시키고 주왕조가 건국되었다는 뜻으로, 서경 중 주나라 시대 초기의 기록. 기원전1123년 이른 봄 주나라의 ‘무왕’은 태공망 등과 더불어 3,000의 군사를 이끌고서 ‘목야’라는 들판에서 당시 은나라의 왕인 ‘주’와 더불어 전쟁을 치루고, 돌아와서 전쟁에 승리한 전말을 기록한 글)에서 불과 2~3가지의 사실만 취할 뿐이다. 어진 사람(여기서는 무왕인 ‘희발’을 지칭)은 천하에 그를 적대시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어진 사람(무왕)이 지극히 어질지 않는 사람(은나라 주왕)을 공격하는데 어떻게 피가 흘러 쇠로 만든 절구 공이가 흘러 갈 수 있겠는가?(즉 사람을 많이 죽여 흐르는 핏물에 쇠로 만든 절구공이가 흘러감)" 라고 말했다.
 무성이란 <서경>의 주나라 편의 이름인데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공격하고서 돌아와 사실들을 기록한 글이다. 무성에 실린 내용은, "무왕이 주왕(紂王)을 공격함에 있어 은나라 주왕의 앞선 무리가 방패를 거꾸로 들고서 두 따르는 자국의 무리를 공격하여 그것으로 은나라가 패배하여, 핏물에 쇠로 만든 무거운 절구공이가 떠내려 갔다"는 것이니, 맹자의 말씀은 스스로 "나라의 주왕은 지극히 어질지 않는(나쁜)사람이고 주나라의 무왕 희발(姬發:주나라 문왕의 둘째 아들로서 문왕이 죽은 후에 주나라의 두 번째 왕인 ’무왕‘이 됨. 본래 문왕의 가계는 ’희‘씨성을 가졌음)은 지극히 어진 사람(좋은 사람)인데도, 목야(은나라의 당시 서울 ’박‘에서 가까운 들판)에서 접전함에 당하여 병장기 들이 서로 뒤 엉키고, 조금 후에 은나라의 병사들이 무기를 거꾸로 들고서 자기편과 싸웠으니, 이는 곧 어진 사람이 어질지 않는 사람을 공격함에 어떻게 이렇듯 많은 사람들을 죽여 쇠로 만든 절구공이가 떠내려 갈 수 있겠는가? 이것은 바로 '기록 한 사람의 잘못이다'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대저 역사서라는 것은 반드시 전쟁에서 이긴 사람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것이므로, 그 사이에 반드시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드러내고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감춤이 있을 것이므로, 이것이 이른바 춘추필법(春秋筆法:원래 춘추란 봄.가을 즉 시간을 의미하며, 기원전770~403년에 이르는 시기에 좌구몽.곡양.공양등의 사람들이 주나라와 노나라의 입장에서 기록한 편년체식 역사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은 드러내며, 자신들에게 해로운 것은 감추는 역사 기록 방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보는 사람들은 반드시 역사관을 정립하여 역사관으로써 역사책을 보아야만 한다. 만일 역사관을 정립하지 아니하고서 역사적 사실을 본다면, 곧 참과 거짓을 판단하지 못할 것이며, 역사적인 사실의 더해지고 빼어버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여, 역사책에 기록된 것을 모두 믿어버린다면 그것의 해로움은 이보다 더 함이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학문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사관을 정립하여 그것으로 역사를 보게 하여야 한다.
 역사관이라는 것은, 역사적 가치관을 말하는 것으로서 자기의 안목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니, 반드시 뜻을 세움을 먼저하고 동기가 순수하여야 하며, 널리 관련서적들을 읽어 중용을 잃어서는 아니 된다. 이와 같이 공적을 쌓게되면, 두루 앎에 이르고 중용에 도달하여, 이윽고 역사관을 세워 믿음은 반석과 같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의지하는 바는 올바름과 사실이니 폭력에도 굽힘이 없게 되리니, 이를 두고서 역사관이라 부르니, 잘못된 풍속을 바꾸고 세상 사람들을 교화함에 있어 그 어떤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는가?

 史觀- 辛巳 陽復月
今朝早起,而讀新聞,便見時事,論於史觀,以余素思者,相符如節,於是,以爲史觀之箴焉.觀其所載,則論乎近者爲放之史劇,所謂「女人天下」「明成皇后」「王建」「商道」等也,可以到來乎史劇之全盛也.夫若是盛然,宜當以史學者爲歡者,然而實相爲反,士之爲患何耶?其故則,專治視聽,或以歪曲,或以變形,而劇中多有差失,其弊莫大乎此焉.以例言之,八公之爲八公,其名由來者,或謂自王建與甄萱之公山大會以後,得名八公,此名者,豈待’王建‘放映以後,其名得乎?夫我邦之史,自檀君以來,期乎半萬年,亦江山之數,其麗不億,然則邦域之歷,不爲不久,江山之數,不爲不多,然而山川命名,豈爲空前?或謂我祖始知觀劇以後,是亦惑者甚矣.然則是言自今不知乎吾身根源,而待放劇以後,始知余之所自出,何可與言?於是我雖不敏,所見淺近,然敢有一言,以爲敎世之箴.孟子曰,「盡信書則,不如無書.吾於武成,取二三策而已矣.仁人,無敵於天下.以至仁,伐至不仁,而何其血之流杵也?」.夫武成者,書經周書篇名,武王伐紂,歸而記事之書也,’武成‘載書者,「武王伐紂,紂之前徒,倒戈,攻于後以北(背),血流漂杵」.孟子之言,自意殷紂爲至不仁,武王姬發爲至仁,當會于牧野,兵刃旣接,少焉,殷紂之徒,倒戈攻此,是則以至人,攻至不仁,然則何有多殺,而血流漂杵?是則記者之過明矣.夫史乘者,必書勝者,而其間必有顯隱,是所謂春秋筆法.是故讀者必立史觀,以史觀,讀乎史書.若不立史觀,以觀史實,則不辨眞僞,不別加減,而書者盡信,其害莫大於是,宜當必使學者,定立史觀,以觀史矣.夫史觀者,言史之觀,則以己之眼,觀乎史實,而必先立志,必爲純粹,周察書物,不致偏倚.若然積功,到乎博識,能致中庸,旣立史觀,故所信盤石,於風不擾,所賴眞情,於暴不屈,是所謂史觀,於移風易俗,世人敎化,孰能優哉?

 

 

 

 이터널 선샤인

조혜숙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그들은 설레는 만남을 갖고 서로 사랑하다가 결국 서로에게 지쳐 그들의 끈을 놓아버린다. 그들에게 사랑은 아픔으로 남았다. 그들은 이 아픔을 지우고 싶다. 하지만...과연 그들에겐 아픔만이 남았을까?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모토로 시작하는 <이터널 선샤인>은 CF감독 출신의 미셀 공드리가 연출을 맡고 <존 말코비치 되기>의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을 맡은 멜로 드라마다.이 영화는 평단과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77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발렌타인데이. 조엘(짐 캐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눈을 뜬다. 출근 길을 서둘던 그, 자신의 차에는 흠집이 나있다. 그냥 누가 긁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기차역에 도착한 그는 '발렌타인 데이'라는 사실이 우울하다. 건너편 몬타우크로 가는 기차가 있다. 조엘은 무작정 뛰어가 기차에 오른다. 자신이 왜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몬타우크에 도착한 그, 바닷가의 한 편에 주홍색 머리를 한 여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닷가에서 마주쳤던 주홍색 머리를 한 여자와 같은 칸에 탔다. 소심한 조엘과 달리 여자는 쾌활하고 적극적이다. 여자의 이름은 클레멘타인.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렇게 만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위 줄거리는 영화도입부의 시퀀스에 불과하다. 영화는 그들이 사랑하는 장면 뒤에서 다른 분위기로 출발한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공개하지 않겠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주목할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짐 캐리의 재발견이 아닐까 싶다. 여타영화에서 코믹한 캐릭터로만 분한 그의 연기변신은 변신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섬세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 외에도 <반지의 제왕>의 엘리야 우드,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 <스파이더맨>의 커스틴 던스트 등이 출연하지만 짐캐리의 매력은 가히 그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이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은 기억을 지운다는 내용의 다소 판타지적인 느낌을 주지만 주인공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은 관객의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러가지만 결국 사랑했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무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도망다니는 것처럼 사랑과 아픔은 함께 존재했던 것임을 피력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니체의 격언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와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격언 "행복은 순결한 여신만의 것일까? 잊혀진 세상에 의해 세상은 잊혀진다.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여기엔 성취된 기도와 체념된 소망 모두 존재한다.`는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아무리 기억을 지운다해도 사랑의 느낌은 남아있다. 사랑이 아무리 가슴아프게 다가와도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속가능한 개발

도난주

 문화재청장의 서울시 역사도시화 계획 발표에 즈음하여 '역사도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인터넷의 인스턴트식 정보에 익숙해질수록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감성을 담을 수 있는 nostalgia(향수)적 공간이 그리워지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연합(EU)은 막대한 지원금을 들여 역사도시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학문적 성과와 함께 유용한 경험을 축적해 가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 주목 받고 있는 정책인 '지속 가능한 개발'을 통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없는지 간단하게나마 짚어보자. 그것은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정부 중심으로 역사도시 만들기 계획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속가능한 개발에 앞서 지속할 수 없는 개발은 어떤 것인 지부터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관광객의 눈으로 관련 정책을 계획하고 수립한다면. 이것은 현재에다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써 만약 관광자원이 관광객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경우 곧 바로 관광객의 감소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는 이미 지난 시점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회복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업 계획시 지역주민의 입장이 적절히 반영되지 못한다면 호응을 받기 힘들어짐으로써 자발적인 참여를 기약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역발전의 계기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 역시 기대하기 곤란한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어떤 내용인지 간단하게 보자.  
  역사도시 만들기 진행시 우선적으로 지역주민을 위한 경제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도시개발 등, 지역과 주민을 중심으로 계획이 추진된다. 뿐만 아니라 지역 환경을 보호하고, 발전을 위한 회사건립 등이 동시에 추진됨으로써 경제활동도 함께 이루어져 지역 전체가 활기를 띄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간단히 말한다면, 역사문화 도시 만들기 계획에 있어서 지역주민의 참여가 배제된 것이라면, 그것은 단순 관광자원의 개발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별 헤는 밤

장남지

올 1월 7일과 8일 양일간 강원도 횡성에 있는 천문대를 찾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원주로 간 다음 횡성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습니다. 횡성에서는 천문대에서 마중 나온 차로 옮겨 타고 오후 3시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상상 속의 강원도는 무릎까지 쌓인 눈과 겹겹의 산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눈이 그다지 많지 않아 큰 눈사람을 만들자던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강원도라는 그 자체가 주는 약간의 신비함과 호기심만은 여전하였습니다.
 겨울에는 대체로 달이 지면서부터 별이 밝게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을 지새우면서 별을 보게 되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지 하루 묵게 될 방은 찜질방의 불가마만큼이나 뜨끈했습니다.  
 오후 5시부터 일정이 시작됨으로 일행은 주변을 구경하는 여유를 가졌습니다. 천문대를 끼고 흐르는 작은 내는 영하의 날씨를 알려주듯 꽁꽁 얼어붙었고, 썰매는 주인을 기다리듯 놓여져 있었습니다. 평소 겨울이라도 변변한 눈 한번 제대로 구경해보지 못한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곧장 얼음 위로 뛰어갔습니다. 엉덩이가 아픈 것도 잊어버릴 만큼 재미있던 썰매놀이는 캠프 일정 때문에 그만 두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추운 날씨 때문인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을 뭉쳐도 소금처럼 낱낱이 흩어졌으며, 깨지는 얼음 조각도 하나같이 예쁜 틀에 맞춘 보석 같아 보였습니다.
 천문대 직원으로부터 별과 별자리에 대한 소개를 듣는 것으로부터 일정은 시작되었습니다. 6시경에 뚜렷이 보이던 카시오페아 별자리, 날이 너무 밝아 보기 힘들다던 플레이아데스 성단(수백개의 별들이 모인 산개성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년에 약 60일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별보기 좋은 날을 잘 골라 주변에 빛이 전혀 없었음에도 그날 밤 달은 어느 때 보다 뚜렷하게 보였고, 달빛 또한 훨씬 더 밝았던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 필름처럼 오리온자리, 토끼자리, 쌍둥이자리, 북두칠성 들이 순서를 지키며 차례차례 산 너머 보였습니다.

 손발이 꽁꽁 어는 것도 모르고, 별들이 벌이는 축제에 참여한 듯 정신없이 별을 헤아렸습니다. 무엇보다 감동이었던 것은 그렇게 보고 싶었던 별똥별을 본 것이랍니다. 별을 자주 보는 분들이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세 번 말하기란 거의 불가능한데 딱 한 가지 가능한 것이 바로 “돈돈돈!!” 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땐 별똥별을 보는 것만이 제 소원이었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지만요.
 밖에서 먹던 김치와 고기가 그 자리에서 얼어 버리고, 보리술은 뚜껑을 열기도 전에 이미 얼음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을 보며 영화20도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사물이 얼음땡 놀이를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군불에 익혀 먹던 군밤과 고구마만은 언 배를 녹여주고 채워주는데 더없이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천문대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칠 즈음 친근해져버린 하늘, 따뜻한 소장님의 마음, 별을 향한 애뜻함, 코끝 찌릿한 날씨 등이 눈송이처럼 다가왔습니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 - 經卷第三-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喩고客駝死喩 磨大石喩 欲食半병喩 奴守門喩 偸리牛喩 貧人能作鴛鴦鳴喩 野干爲折樹枝所打喩 小兒爭分別毛喩 醫治脊루喩 五人買婢共使作喩 伎兒作樂喩 師患脚付二弟子喩 蛇頭尾共爭在前喩 願爲王剃鬚喩 索無物喩 답長者口喩 二子分財喩 觀作甁喩 見水底金影喩 梵天弟子造物因喩 病人食雉肉喩 伎兒著戱羅刹服共相驚怖喩 人謂故屋中有惡鬼喩 五百歡喜丸喩

 (六五)五百歡喜丸喩
昔有一婦荒음無度。欲情旣盛嫉惡其夫。每思方策規欲殘害。種種設計不得其便。會値其夫。聘使린國。婦密爲計造毒藥丸。欲用害夫。詐語夫言。爾今遠使慮有乏短。今我造作五百歡喜丸。用爲資糧以送於爾。爾若出國至他境界。飢困之時乃可取食。夫用其言。至他界已未及食之。於夜闇中止宿林間畏懼惡獸上樹避之。其歡喜丸忘置樹下。卽以其夜値五百偸賊。盜彼國王五百疋馬幷及寶物來止樹下。由其逃突盡皆飢渴。於其樹下見歡喜丸諸賊取已各食一丸。藥毒氣盛五百群賊一時俱死。時樹上人至天明已見此群賊死在樹下。詐以刀箭斫射死屍。收其鞍馬幷及財寶驅向彼國。時彼國王多將人衆案跡來逐。會於中路値於彼王。彼王問言。爾是何人何處得馬。其人答言。我是某國人而於道路値此群賊共相斫射。五百群賊今皆一處死在樹下。由是之故我得此馬及以珍寶來投王國。若不見信可遣往看賊之瘡痍殺害處所。王時卽遣親信往看果如其言。王時欣然歎未曾有。旣還國已厚加爵賞。大賜珍寶封以聚落。彼王舊臣咸生嫉투而白王言。彼是遠人未可服信。如何卒爾寵遇過厚。至於爵賞踰越舊臣。遠人聞已而作是言。誰有勇健能共我試。請於平原校其技能。舊人愕然無敢敵者。後時彼國大曠野中有惡師子。截道殺人斷絶王路。時彼舊臣詳共議之。彼遠人者自謂勇健無能敵者。今復若能殺彼師子爲國除害眞爲奇特。作是議已便白於王。王聞是已給賜刀杖尋卽遣之。爾時遠人旣受칙已堅彊其意向師子所。師子見之奮激鳴吼騰躍而前。遠人驚怖卽便上樹。師子張口仰頭向樹。其人怖急失所捉刀。値師子口師子尋死。爾時遠人歡喜?躍。來白於王。王倍寵遇。時彼國人卒爾敬服咸皆讚歎。其婦人歡喜丸者喩不淨施。王遣使者喩善知識。至他國者喩於諸天。殺群賊者喩得須陀洹强斷五欲幷諸煩惱。遇彼國王者喩遭値賢聖。國舊人等生嫉?者。喩諸外道見有智者能斷煩惱及以五欲。便生誹謗言無此事。遠人激?而言舊臣無能與我共爲敵者。喩於外道無敢抗衝。殺師子者喩破魔旣斷煩惱又伏惡魔。便得無著道果封賞。每常怖怯者喩能以弱而制於彊。其於初時雖無淨心。然彼其施遇善知識便獲勝報。不淨之施猶尙如此。況復善心歡喜布施。是故應當於福田所勤心修施

 65. 독이 든 약
 옛날 어떤 여자가 음탕하여 법도가 없었다. 그는 욕정이 왕성해지자 그 남편을 미워한 나머지 늘 죽일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갖가지 계책을 다 써 보았지만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마침 남편이 이웃 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부인은 가만히 계획을 세우고 독이 든 환약을 만들어 남편을 해치려고 거짓으로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지금 멀리 사신으로 가시는데, 혹 배고플 때가 있을 까 걱정입니다. 나는 지금 이 환희환 오백 개를 만들어 당신에게 드립니다. 당신이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시는 도중에 배가 고프실 때에는 이것을 드십시오.” 남편은 그 말대로 그것을 받고 다른 나라로 갔으나 아직 그것을 먹지 않았다. 밤중이 되어 숲 속에서 자다가 모진 짐승들이 무서워 나무에 올라가 피해 있었다. 그러는 사이 환희환은 잊어버리고 나무 밑에 두었다.
 마침 그 날 밤에 오백 명의 도적이 그 나라 왕의 말 오백 마리와 여러 가지 보물을 훔쳐 가지고 오다가 그 나무 밑에서 쉬었다. 너무 빨리 달려 왔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마침 나무 밑에 있는 환희환을 보고 그들은 제각기 한 알씩 먹고는 독약의 기운이 거세어 오백 명이 한꺼번에 죽고 말았다.
 날이 밝아, 그는 도적 떼들이 모두 나무 밑에 죽어 있는 것을 보고, 거짓으로 칼과 화살로 그 시체들을 베기도 하고 찌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말들과 보물을 거두어 가지고 그 나라를 향해 달려갔다. 그때 왕은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도적들을 뒤쫓아 왔다. 왕은 도중에서 그를 만났다. 왕은 물었다. “너는 어떤 사람인가? 그 말은 어디서 얻었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아무 나라 사람입니다. 길에서 도적 떼를 만나 서로 싸우다가 칼로 베고 활로 쏘아 지금 오백 명의 도적 떼가 모두 저 나무 밑에 죽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말과 보물을 얻어 왕의 나라로 가져가는 중입니다. 만일 믿지 못하시겠다면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 보십시오.”
 왕이 신하를 보내어 확인해 보았더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처음 보는 일이라 찬탄하였다. 그리고 나라에 돌아가서는 곧 많은 보물을 주고 또 마을을 봉(封)해 주었다. 왕의 대신들은 모두 그를 시기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저 사람은 멀리서 온 사람으로서 아직 믿을 수 없사온데, 왜 갑자기 그처럼 심히 사랑하고 우대하십니까? 그리고 벼슬이나 상은 저희들보다 더 많군요.”그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누가 용맹스럽고 힘이 세어 나와 시합하려는가? 저 넓은 벌판에 가서 기능을 겨루어 보자.” 그 뒤에 그 나라에는 사나운 사자가 있어서 길을 막고 사람을 죽이므로 왕성으로 가는 길까지 끊어졌다. 그 때에 대신들은 서로 의논하였다.
“멀리서 온 사람은 스스로 용맹스럽고 힘이 세어 아무도 대적할 이가 없다고 한다. 지금 만일 저 사자를 죽여 나라의 화를 없앤다면 그것은 참으로 장하고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의논하고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칼과 몽둥이를 그에게 주어 곧 보내었다. 그 때 그는 이미 왕의 명령을 받은 지라. 뜻을 굳게 하여 사자에게로 향해 갔다. 사자는 그를 보고 분격하여 고함을 치면서 뛰어나왔다. 그는 당황하여 곧 나무 위로 올라갔다. 사자는 입을 벌리고 머리를 치켜들어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섭고 급한 나머지 잡았던 칼을 떨어뜨렸다. 마침 그 칼은 사자 목을 찔러 사자는 이내 죽었다. 그는 기뻐하며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왕은 더욱 사랑하고 우대하였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도 그를 인정하고 공경하며 모두 그를 찬탄하였다.
 그 부인의 환희환은 더러운 보시에 비유한 것이요, 왕이 사신으로 보낸 것은 선지식에 비유한 것이며,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은 여러 하늘에 비유한 것이요, 도적 떼를 죽인 것은 다섯 가지 탐욕과 온갖 번뇌를 굳게 끊는 데 비유한 것이며, 다른 나라의 왕을 만나는 것은 성현을 만나는 데 비유한 것이다. 그 나라의 신하들이 시기한 것은, 외도들이 지혜 있는 사람이 번뇌와 다섯 가지 탐욕을 끊는 것을 보고 그럴 수가 없다고 비방하는 데 비유한 것이다.
또 그가 ‘그들 대신으로는 아무도 나와 대적할 이가 없다’고 말한 것은 외도들이 감히 저항하거나 다투지 못하는 데 비유한 것이며, 사자를 죽이는 것은 악마를 부수어 번뇌를 끊고 집착이 없게 된 데에 비유한 것이다.

 百喩經卷第四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口誦乘船法而不解用喩 夫婦食병共爲要喩 共相怨害喩 效其祖先急速食喩 嘗菴婆羅果喩 爲二婦故喪其兩目喩 唵米決口喩 詐言馬死喩 出家凡夫貪利養喩 駝瓮俱失喩 田夫思王女喩 구驢乳喩 與兒期早行喩 爲王負机喩 倒灌喩 爲熊所齧喩 比種田喩 미후喩 月蝕打狗喩 婦女患眼痛喩 父取兒耳?喩 劫盜分財喩 미후把豆喩 得金鼠狼喩 地得金錢喩 貧兒欲與富等財物喩小兒得歡喜丸喩 老母捉熊喩 摩尼水竇喩 二합喩 詐稱眼盲喩 爲惡賊所劫失疊喩 小兒得大龜喩

(六六)口誦乘船法而不解用喩
昔有大長者子。共諸商人入海採寶。此長者子善誦入海捉船方法。若入海水선洑회流磯激之處。當如是捉如是正如是住。語衆人言入海方法我悉知之。衆人聞已深信其語。旣至海中未經幾時船師遇病忽然便死。時長者子卽便代處。至회복사流之中唱言。當如是捉如是正。船盤회旋轉不能前進至於寶所。擧船商人沒水而死。凡夫之人亦復如是。少習禪法安般數息及不淨觀。雖誦其文不解其義。種種方法實無所曉自言善解。妄授禪法使前人迷亂失心。倒錯法相。終年累歲空無所獲。如彼愚人使他沒海

 66. 말로만 배를 잘 운전하는 사람
 옛날 어떤 장자의 아들이 여러 장사꾼들과 함께 보물을 캐러 바다로 갔다. 만일 바다에 들어가 물이 돌거나 굽이치거나 거센 곳에서는 어떻게 배를 잡고 어떻게 바로 하며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 등에 대해 자신 있는 장자의 아들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바다에 들어가는 방법을 나는 다 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깊이 믿었다.
 바다 가운데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장이 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그래서 장자의 아들이 그를 대신해서 일을 맡게 되었다. 물이 굽이쳐 돌며 급히 흐르는 곳에 배가 이르렀을 때 그는 외쳤다. “배를 이렇게 잡고 이렇게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배는 빙빙 돌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물이 있는 곳에 이르기도 전에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범부들도 그와 같다. 참선하는 법이나 숨길을 세는 법이나 또는 부정관(不淨觀)을 조금 익혀 비록 그 문자는 외우지만 이치나 갖가지 방법을 알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잘 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망령되이 선정의 법을 가르치니 앞의 사람을 미혹케 하고 어지럽혀 마음을 잃게 한다. 또한 법에 대한 해석이 뒤섞여 일생 동안 아무 소득도 없게 하니, 그것은 저 어리석은 사람이 남들을 바다에 빠져 죽게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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