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9(2005)년 12월호 Vol.5,No.59. Date of Issue 1 Dec ISSN:1599-337X 

 

 

 

 

 

 

 

 

 法體如何

범수

 空門속에서 因果의 분명함을 알면서도 때로는 隨眠을 핑계 삼아 顚倒妄想하며 四恩을 등지기도 하였습니다. 때가 되면 흩어져 버리기에 보존할래야 할 수도 없는 無常한 몸 뚱아리와 이름 붙여 고집할래야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만을 위할 줄 알았지, 慈悲門中에서 功德의 種子와 般若의 功能에 管見으로 轉傳하였습니다. 자연히 障山苦海를 만나 業障만 두터워질 뿐 寂照明靜에 어두워 그물 속의 傍生처럼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온전히 감수하여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것이 ‘長大敎網 擄人天魚’의 願力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의 삶은 餘生이기에 稽首禮하면서 뗏목에 의지하며 自他가 利行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한편으로는 見山忘道할까 염려스러워 小分의 힘이나마 願力行者의 加被를 發願합니다. 비록 諸佛之母의 慈愛에 진실로 感應하지는 못하였지만, 種子가 쌓인 곳집도 원래의 性品을 갖추었다고 하니 痴見慢愛을 轉得하여 크고 맑은 거울로 서로 비추고자 합니다. 衆生隨器得利益이니 是非를 들추기 전에 “自未得度 先度人者 菩薩發心”으로 거듭 佛緣을 삼으며 衣鉢에 懺悔와 發心으로 報恩코자 합니다.
 자취가 끊어진 곳에 머무르는 것은 무릇 一念未生之前의 소식을 알릴 時節因緣을 기다리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晦迹逃名은 자신의 我慢과 慾望이지 결코 本分事로 삼을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市政의 煩雜을 下化라면 道場의 焚修는 上求이므로, 모두 本來面目을 交徹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燒紙하더라도 朋友가 아니라면 감히 亂說치 못했을 것입니다.
                                                                                                      乙酉年 初冬 到鳳山 아래에서 梵水和南

 

 

 

희망

도난주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제품들이 세계 속의 일류브랜드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조금의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막론하고 한국의 브랜드를 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 있다는 스타벅스가 없는 이곳 칼스크로나에도 어김없이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도로의 곳곳을 누비고 아파트 주차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유학생들에게는 어색한 현다이(현대) 자동차가 외국 친구들에게 일본메이커로 알려져 있었던 상황과는 다르게 한국의 이미지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칼 스크로나 전자제품 매장에 처음으로 가게된 날 가슴 한 곳이 찡하게 느껴졌던 것은 한국의 제품들로 가득찬 그곳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이유였습니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티비, DVD, 휴대폰, mp3, 데스크 탑, 노트북, 모니터 정말 상품들이 한국의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외판원이 외국인들에게 삼서엉, 엘지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힘이 솟더라구요.
 얼마 전 버스를 타고 학교 가는길 테니스 장에 기아 자동차의 협찬광고판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이곳 칼스크로나에는 저를 제외하고 한국인이 한명도 없지만 어딜 가나 한국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예로 현재 스웨덴의 대부분 대학교 컴퓨터 모니터는 삼성이 독점을 하고 있습니다. 프린트기 또한 마찬가지고요. 점심시간 음식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려던 순간 다시한번 엘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얼마 전에 그러더라구요. "정말 한국상품이 유럽을 휩쓸고 있다"고요. 자신들도 모르고 있는 사이 생활 곳곳에 한국상품들이 차지하고 있다고요. 그리고 그 상품들에 큰 만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가장 뿌듯하였습니다. 다시 상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친구가 대부분 이었거든요. 그리고 포르투칼의 경우 한국드라마가 현지 티비에 방영되고 있어 한국인이면 정말 아름답고 세련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의 말을 전하면 이러한 티비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고 하구요. 상품과 문화가 유럽의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증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살고 있는 유학생들과 교민들이 그 덕분에 자기도 모르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외국사회에 접근하기도 훨씬 수월해 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틈에서 좀더 힘을 내어 한국의 발전가능성을 높여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꾸베씨의 행복여행

조혜숙

 프랑수아 를로르의 소설 <꾸베씨의 행복여행>은 "자기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꾸베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라고 시작된다. 꾸베씨가 살고 있는 도시는 문화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모든 것이 풍족하다. 그럼에도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

 꾸베씨는 환자들에게 능력있고 성공적인 정신과의사로 인정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꾸베씨는 만족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환자들을 진정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걸 깨닫기 때문이었다. 꾸베씨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설문조사를 생각하고 여행을 떠난다. 처음 목적지는 사업가로써 성공한 친구 뺑상이 사는 중국으로 정하고 여정에 오르게 된다. 여행중에  꾸베씨는 사랑하게 된 여인을 가슴 아파하고, 노승을 만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죽음을 눈앞에 둔 여인도 만난다.

 여러 환경의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건지를 묻고 메모하며 생각한다. 꾸베씨의 메모장엔 이렇게 써 있었다.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며, 뜻밖에 찾아오며, 미래에 있다고 여기며, 부자가 되고 중요한 사람이 되며, 아름다운 숲길을 걷고,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며, 자기가족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집과 채소밭을 갖는 일이며, 제도적으로 안정된 나라에서 사는 일이며, 쓸모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일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일이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일이며, 아름다운 자연이며,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일이이다."
 꾸베씨는 여행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노승을 찾아간다. 노승과 함께 바라보는 경이롭고 장엄한 초록으로 눈부신 풍경은 그것만으로도 생각이 멎고 충만감이 느껴지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다. 그 순간 꾸베씨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것보다 진정한 배움을 알게 된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란 것을.
 행복에 대한 욕망이나 추구마저 잊어버리고 지금 이순간과 하나가 되어 존재할 때, 저절로 얻어지는 근원적인 행복감이었다. 노승이 강조하는 것은 행복이 목표가 아닌 과거나 미래의 일들과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지금 이순간,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눈을 뜨고 바라보기만 하면 발견 할 수 있는 행복이었다. 즉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며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에게 쓸모있다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꾸베씨는 자기 일을 좋아하며 특별한 여행에서 발견한 배움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그의 삶이 되었다.

 

 

 

 인도기행

진선

 "순례, 여행, 기행, 방문 등의 이름으로 우리는 낯 설은 곳을 찾는다. 그러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곧 자신이라는 사실에 그저 미소 지을 따름이다."

 

 

 

 쓸데없는 이야기

정재진

 雜說 辛巳初冬
日月日益向至,而氣亦進寒.門隙入風,而烈如苦草,便然我心,而甚感凄愴.毁垣之下,自生菊草,時熟晩秋,一齊開花.不過數十,偏狹我庭,時各所長,發花滿堂,可以俱四時者也.於春千里香與牧丹,於夏楢花及百日紅,於初秋玉簪,於晩秋黃菊,每花時華,嗚呼!天之秀惠,萃在我庭.自然若是,而不分貧賤,不差富貴,而覆乎天下,又有不遲不速,不急不緩,時然而後生,時然而後落,其節度儀範,宜當法之,爲之師表.然,予以有愛之眼,見乎自家,則目前萬事,惟見善者,而何獨有善者,且人之所識,得乎彼此之別,而致於知者,其長短也,僅在此愈於彼,豈爲樂乎?雖家有數花,而比於有者,又爲小者,是亦物之所以爲自然也.凡物者,生者以見,盡爲生耳,且死者以見,皆作死已而,物之所以存兩面者,使其本然也,而見者,或以短見,或以偏見,而唯見一面,不見背面,物之何獨有單面耶?生亦若然,而覺夢不分.若覺者以見,維見覺耳,而夢者以見,維見夢耳,各以所見者爲言,然而覺與夢,何以別乎?莊周有言,夢飮酒者,旦而哭泣,夢哭泣者,旦而田獵.方其夢也,不知其夢也.夢之中,又占其夢焉,覺而後知其夢也.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而愚者,自以爲覺,竊竊然知之,君乎牧乎.固哉!丘與女皆夢也.予謂汝夢亦夢也.是其言也,其名爲弔詭.萬世之後,而一遇大聖,知其解者,是旦暮遇之也.言者或爲荒唐之辭,然,或理在其中,夢卽覺,覺卽夢,而何分夢與覺?誠余不知也.故我有言,凡物之所以有兩面者,勢之其然也,而恒見偏面,以見狹隘,何不哀哉?喜悲相生,貧富相存,又高低一室,長短相須者,其依乎自然也.人之廣覽,見聞以識,以致聖人,世之學者,宜當包通,則期乎天長地久,混爲自然.

 쓸데없는 이야기 신사년 초겨울
 세월이 점차 동지로 나아가며 기후 또한 겨울로 접어드니, 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맵기가 여뀌와 같으며, 문득 나의 마음에 처량한 느낌이 든다. 무너진 담 장 밑에 저절로 태어난 국화무더기에도, 가을이 익어가자 일제히 꽃을 피웠다. 불과 몇 십 평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나의 마당에도 계절에 맞는 꽃들이 피어 마당을 가득 채우니, 가히 사계절이 온통 나의 집안에 있는 듯 하다. 봄엔 라일락과 모란이. 여름에는 석류꽃과 백일홍이. 초가을에는 옥잠화가. 늦가을에는 노란 국화등 모든 꽃들이 때에 따라 피어나니, 아! 자연의 수혜가 오직 나의 집에 있는 듯 하네.
 자연이란 이와 같이 가난함과 미천함을 구분치 아니하며, 신분의 높고 낮음을 차별하지 아니하며, 또한 늦지도 빠르지도 아니하며, 급하지도 늦추지도 아니하여, 때가 그러한 후에 라야 태어나고, 때가 그러한 후에 라야 떨어지니(죽으니), 그 절도와 본보기됨은 마땅히 본받아 사표로 삼아야 하리. 그러나 나는 사랑스러운 눈으로써 나의 집을 보기에 곧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오직 좋은 것 만 보일 뿐, 어찌 좋은 것만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이 사람의 아는바 지식이란 이것과 저것의 구분함에서 얻어서 지식에 이르는 것인데, 그것의 조금 나음과 못함이란 겨우 '내가 상대보다 조금 낫다'는 것이리니, (조금 나음을)어떻게 즐거워만 하겠는가? 비록 나의 집안에 몇 포기의 꽃들이 있다지만, (나보다 더욱)가진 자에게 견준다면 또한 적다 할 것이니, 이 또한 만물이 자연 되는 까닭일 것이다.
무릇 사물이란 태어난다는 의미로 본다면 모두 태어남만 될 뿐이며, 또한 죽는다는 것으로써 본다면 모두 죽음이 될 뿐이리니, 이 또한 만물이 양면(두 가지의 얼굴. 양면성)을 가진 까닭이 본래 그러함임에도, 그러나 보는 이에 따라 어떤 사람은 적은 지식으로, 어떤 사람은 편벽된 지식으로써 오직 한 쪽 면만 보고서 다른 면은 보지 못하니, 만물이 어찌 홀로 한쪽만을 가지리오?
사람의 인생이란 또한 그러한데, 깨어남과 꿈이 나누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만일 깨어난 것으로만 사물을 본다면 모두 깨어남 뿐일 것이며, 그러나 꿈으로만 사물을 본다면 모두 꿈일 뿐일 진대,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가 보는 바(가치관. 관점)로써 말을 한다면, 과연 깨어남과 꿈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장주(莊周:기원전4세기 중국 전국시대 초엽의 인물로써, 사상가임.‘장자’라는 책의 저자)가 말을 하기를, 「꿈속에서 즐거이 술을 마시던 사람은 아침에 깨어나서 비참한 현실에 목 놓아 울고, 꿈속에서 목 놓아 울던 사람은 아침에 깨어나 즐겁게 사냥을 떠난다. 꿈을 꿀 적에는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며, 꿈속에서 또한 그 꿈을 점을 치기도 하는데, 꿈속에서 깨어난 후에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아는 것이며, 또한 크게 깨달음이 있은 후에 라야 그것이 큰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스스로를 깨어있다고 여겨 잘난 체하며 자기는 그러한 사실을 안다고 여기면서, 혹 자기의 말을 맞다고 하면 군자라 칭찬하고, 자기의 의견에 맞지 아니하면 촌놈이라 욕을 한다.
 "어리석구나! 공자와 더불어 너는 모두 꿈이로다. 나는 너의 꿈 또한 꿈이라 말 하나니, 이것이 바로 그 말인데도 세상 사람들은 이를 궤변이라 하는구나.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라야 한 사람의 큰 성인을 만나 이 말을 풀이할 줄 알 것이지만, 이것 또한 잠시 뿐일 것이리라." 이 말을 두고 어떤 이들은 황당하다고 여기겠지만, 그러나 이치가 그 가운데 있다 하겠다. 꿈이 깨어남이요. 깨어남이 곧 꿈이니, 어찌 꿈과 깨어남을 구분하겠는가? 참으로 나는 알지 못하겠다. 그러므로 나 또한 말을 하나니
 "
무릇 만물이 양면을 가지는 까닭은, 그 세력이 그렇게 함인데도, 사람들은 항상 한쪽 면만 보려하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기쁨과 슬픔은 같이 만들어지고, 가난함과 부유함이 같이 존재하며, 또한 높고 낮음이 하나에 있으며 길고 짧음이 서로 뒤따름은, 스스로 그러함에 의한 것.
 사람이 넓게 봄은 보고 듣는 것(견문)으로써 지식을 삼아, (그 지식으로써)성인에 이르고자 함이니, 세상의 학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모든 것을 포함하고 관통한다면, 곧 하늘과 땅처럼 영원하고 혼연히 스스로 그러함(자연)에 합치되리라."

 

 

 

 오해

장남지

 Q. 같은 수화가 아니라구요?
 손이 하는 말, 수화는 수화로 만든 노래나 동아리활동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저 또한 특수교육과를 들어와 수화를 배우면서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여러 가지 노래를 수화로 배우며 지냈던 적이 있는데요.
 사실 지금 보고 듣는 수화는 청각장애인들이 쓰는 수화와는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이 주로 쓰는 수화는 기본적인 동사나 명사와 같은 기본적인 요소는 같지만 대부분의 문장의 구조나, 형태가 많이 다른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수화는 국어의 문법에 따라서 주어, 동사를 기본으로 관형어나 조사, 복문 등을 쓰는 ‘문법적 수화’라는 것이고 청각장애인들이 쓰는 수화는 주어-동사, ‘- 고’등 간단하고 반복적은 구조로 구성되어 청각장애인들이 구성하여 만든 ‘자연적 수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이렇게라도 의사소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만큼 노력하고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Q. 날 자꾸 때려요!
 혹시 자녀의 반에 공격적인 문제행동을 보이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으신가요? 또는 지금 같은 반 친구 중에 이런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나요?
 정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정신지체, 또는 눈에 뛰는 문제행동을 가진 학생들의 경우, 자칫 공격적인 행동이나 과잉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생활에서 수업시간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거나, 소리를 지른다거나 하는 행동들도 나타나고, 또래와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행동들은 많이 나타나는데요. 처음에 이런 아동들은 본 저 또한 처음에는 그저 이상하게만, 부정적인 마음으로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동들에게 다가가서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은 자신만의 의사표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대게 수업시간에 수업이 너무 지루하거나,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을 경우에 이런 행동들을 많이 보이는 경우도 있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같이 어울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거나 내가 갖고 놀고 싶은 물건을 친구가 가지고 있을때도 이런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을 모르는 우리 아동들이 자신만의 표현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하여 우리의 눈에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을 조금만 바꾸고 나니까 저도 모르게 친구이든 누구이든 어떤 행동을 하든 그저 보이는데로 판단하지 않고,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아리

 보리는 가을에 심어 추운 겨울을 지내고 늦은 봄에 수확을 한다. 씨앗 보리에서 열매 보리가 되기까지는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이 있었고 추운 겨울을 기다리며 이겨내는 인내의 시간도 있다. 그리고 보리 자신을 위한 일이긴 하지만 추운 겨울 인간들의 발에 밟혀야 얼지 않고 뿌리를 잘 내리고 싹을 잘 틔울 수 있다. 그렇게 겨울을 지나 늦은 봄에 수확한 보리는 방아를 찧어 보리쌀이 되기도 하고 싹을 튀워 질금으로 만들기도 한다.
 질금으로 만드는 과정 또한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깨끗한 물에 넣어 10시간정도 불려 조금씩 포대 또는 바구니에 담아 3시간 간격으로 물을 주어 싹을 틔운다.(옛 분들은 큰 시루를 사용했다고 함) 그렇게 싹을 틔운 젖은 질금은 다시 깨끗한 곳에서 말린다. 말리는 과정에서 새들이 쪼아 먹으로 날라온다.  새들이 먹어보았자 얼마나 먹을까 만은 새를 쫒아 보내는 이유는 말리는 질금에 똥을 싸기 때문이다.
 질금이 잘 마르면 포대에 담아서 단술도 만들고 엿도 만든다. 씨앗 보리에서 씨앗 열매를 지나 인간의 뱃속에 들어가면 보리의 할 일은 일단 마무리를 한 셈이다.
 씨앗 보리에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단술이나 엿이 되기까지는 여러 번 그 모양새가 바뀐다.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우리의 모양새도 계속 변하고 있지만 찰라에 깨어있지 않으면 자신이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잊기 쉽다. 우린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가? 씨앗 ‘보리’인가? 추운 겨울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보리’인가? 더 잘 자라기 위해 밟히고 있는  ‘보리’인가? 스스로가 정검해 볼 일이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 - 經卷第三-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喩 고客駝死喩 磨大石喩 欲食半병喩 奴守門喩 偸리牛喩 貧人能作鴛鴦鳴喩 野干爲折樹枝所打喩 小兒爭分別毛喩 醫治脊루喩 五人買婢共使作喩 伎兒作樂喩 師患脚付二弟子喩 蛇頭尾共爭在前喩 願爲王剃鬚喩 索無物喩 답長者口喩 二子分財喩 觀作甁喩 見水底金影喩 梵天弟子造物因喩 病人食雉肉喩 伎兒著戱羅刹服共相驚怖喩 人謂故屋中有惡鬼喩 五百歡喜丸喩

(六三)伎兒著戱羅刹服共相驚怖喩
昔乾陀衛國有諸伎兒。因時飢儉。逐食他土經婆羅新山。而此山中素饒惡鬼食人羅刹。時諸伎兒會宿山中。山中風寒然火而臥。伎人之中有患寒者。著彼戱本羅刹之服向火而坐。時行伴中從睡寤者。卒見火邊有一羅刹。竟不諦觀捨之而走。遂相驚動一切伴侶悉皆逃奔。時彼伴中著羅刹衣者亦復尋逐奔馳絶走。諸同行者見其在後謂欲加害。倍增惶怖越度山河投赴溝壑。身體傷破疲極委頓。乃至天明方知非鬼。一切凡夫亦復如是。處於煩惱飢儉善法。而欲遠求常樂我淨無上法食。便於五陰之中橫計於我。以我見故流馳生死。煩惱所逐不得自在。墜墮三塗惡趣溝壑。至天明者喩生死夜盡智慧明曉。方知五陰無有眞我

 63. 가짜 귀신에 놀란 사람들
 옛날 간다르바국에 흉년이 들어 여러 사람들이 양식을 찾아 다른 나라로 가게 되었다. 도중에 바라신산(山)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산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나쁜 귀신 락사사가 많았다. 산중에는 바람이 몹시 찼기 때문에 불을 피워 한데 모여 잠을 잤다. 그 가운데 추위를 몹시 타는 사람이,  장난 삼아 귀신 락사사의 옷을 입고 불을 쪼이며 앉아 있었다. 그때 어떤 이가 잠을 깨어 보니 불 옆에 귀신 락사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 그만 그 곳에서 달아나 버렸다. 그 바람에 잠자던 사람들도 놀라 영문도 모른채 모두 내달았다. 그러자 락사사의 옷을 입은 이도 그만 놀라서 그들을 쫓아 뒤따라 달렸다. 뒤에 락사사가 쫓아오는 것을 본 그들은 자신을 해치러 오는 줄로 생각하고는 더욱 더 두려운 나머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마침내는 구렁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몸도 다치고 극도로 피로하여 모두 쓰러졌다 날이 밝아서야 비로소 귀신이 아님을 알았다.
 범부들도 이와 같다. 번뇌 속에 살면서 선한 법에 굶주려, 위없는 법을 구하다가, 다섯 가지 쌓임(五蘊) 속에 ‘나’라는 소견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니면서 번뇌에 쫓기어 자유를 얻지 못하고 세 갈래 나쁜 길(지옥 , 아귀, 축생三惡道)의 구렁에 떨어진다.
 날이 밝았다는 것은 생사의 밤이 다하고 지혜의 밝은 새벽이 되어 비로소 다섯 가지 쌓임 속에는 ‘참 나’가 없다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六四)人謂故屋中有惡鬼喩
昔有故屋人謂此室常有惡鬼。皆悉怖畏不敢寢息。時有一人自謂大膽。而作是言我欲入此室中寄臥一宿卽入宿止。後有一人自謂膽勇勝於前人。復聞傍人言此室中恒有惡鬼。卽欲入中排門將前。時先入者謂其是鬼。卽復推門遮不聽前。在後來者復謂有鬼。二人투諍遂至天明旣相睹已方知非鬼。一切世人亦復如是。因緣暫會無有宰主。一一推析誰是我者。然諸衆生橫計是非强生諍訟。如彼二人等無差別

64. 문을 밀고 당긴 두 사람
오래된 집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집에는 나쁜 귀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두려워하며 감히 거기서 자거나 쉬지 못하였다. 그때 자기가 대담하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 방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리라.” 그는 곧 들어가 잤다. 그런 뒤에 또 자신을 대담하고 용맹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마침 곁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했다. “이 방안에는 항상 나쁜 귀신이 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문을 밀고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앞의 사람은 그것을 귀신이라 생각하고 안에서 문을 막고 서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뒤의 사람도 또 이것을 귀신이라 생각하고 밀고 들어가고자 하였다. 그렇게 다투다가 날이 밝아 서로를 보고서야 비로소 귀신이 아닌 것을 알았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인연이 잠깐 모였을 뿐 아무것도 주인이 없는데 낱낱이 분석해 본들 그 무엇이 ‘나’인가. 그런데 중생들이 제멋대로 옳고 그름을 헤아려 굳이 다투는 것은 저 두 사람과 다툼이 없다.

 

  

 내년은 불기(佛紀) 2550년, 단기(檀君紀元) 4339년인 병술년(丙戌年)입니다. 다음 해 1월호는 원고 대신 신년 연하장(年賀狀)으로 갈음할 예정이오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 동안 바쁘신 가운데서도 '나눔과 어울림'이라는 마음으로 전자잡지 월간 좋은인연에 원고를 보내주셨던 모든 님, 그리고 구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자비광명이 가득하시길 불 보살님전에 발원하며, 다음해에도 좋은인연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좋은인연

 

 

 경북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

 편집부

 

 법체여하

 범수

 

 희망

 도난주

 

 꾸베씨의 행복여행

 조혜숙

 

 인도기행

 진선

 

 쓸데없는 이야기

 정재진

 

 오해

 장남지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아리

 

 백유경

 편집부

 

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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