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9(2005)년 2월호 Vol.5,No.49. Date of Issue 1 Feb ISSN:1599-337X 

 

 

 

 

 

 

 

 

 

 

 달 그림자

범수

 밤 늦게 시외버스를 탔다. 피곤도 하기에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였는데, 앞 좌석에서 어린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좁은 공간이라서 그런지 귀에 거슬릴 정도였지만, 재미있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이 예쁘게만 보였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승객을 내리고, 또 다시 탑승객을 태운 뒤, 중간 경유지를 떠나 목적지로 향하여 달리고 앞 좌석은 조용해졌다. 그렇게 한 참을 지난 뒤, 이번에는 앞 좌석에서 아이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속으로 "왜 그럴까?" 하면서, 그치지 않는 울음이 궁금해져 상체를 바로 세운 뒤, 앉은 자세에서 머리만을 앞으로 내밀어 앞 좌석을 내려다 보았다. 그런데 마치 큰 의자 위에 작은 가방 하나가 놓여져 있는 것 같이 아주 어린 남자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었다. 얼른 보기에 다섯 여섯 살 정도일까? 하여튼 늦은 밤, 컴컴한 버스 안에서 아이혼자 우는 모습이 너무 안스러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가야 울지 마라, 응, 왜 우니? 아이고 이쁘네" 하며, 일단은 아이를 진정시켜 보려고 하였다. 그러자 울먹이는 소리가 오히려 더 커졌다. 마치 자다가 일어난 뒤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울다가 엄마가 나타나면, 더 서럽게 우는 것처럼 말이다. 잠깐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아이가 진정하기를 기도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버스 안의 모든 이목이 필자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버스 기사도 빽밀러로 힐끔 거리며 필자를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아이를 달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여튼 그런 시선들을 뒤로 한 채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는 여전히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말하는데, 도대체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아이의 좌석 밑에 떨어진 휴대전화기가 보였다. 아마 "자다가 흘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른 주워 아이에게 "이거 너 꺼니?"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예"라고 하였다. "누군가와 연락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통화자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의 폴더를 여는 순간, 액정화면에 '관세음보살'이라는 자기이름이 입력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찰라 사시불공(매일 오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때 하는 청사(請詞)의 한 구절이 떠 올랐다. '...중생을 구제할 때 양식이 되어주시고, 병들은 이에게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주시며, 길을 잃은 자에겐 길을 보여주시고, 어두운 밤중에는 밝은 횃불되시며, 빈궁한 자에겐 복을 베풀어 주시는 등의 모습으로, 일체중생을 고루고루 평등하게 자비로써 보살피시는 부처님...(...以大慈悲 以爲體故 救護衆生 以爲資量於諸病苦 爲作良醫 於失道者 示其正路 於暗夜中 爲作光明 於貧窮者 永得福藏 平等饒益 一切衆生....)' 그 가운데서도 특히 '길을 잃은 자에겐 길을 보여주시고'라는 문구가 뇌리를 스쳤는데, 다행히 누군가와 연결이 되었다. 필자는 "아이와 같은 버스를 탄 승객인데 아이가 울어서 전화를 걸었다"며, 전화기를 아이에게 주고 난 뒤, 긴 통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아이를 데리고 내렸는데, 어떤 할머니를 보자 "할머니" 하고 아이가 뛰어갔다. 손자(?)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아이가 필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약간은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상황을 금방 알아채셨는지, 다가와 "스님 고맙습니다."하며 인사를 하였다. 필자는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긴 인사를 대신하였다.
 필자는 발길을 돌리며,  "우리는 지금 길을 잃고도 잃은 줄 모르며 헤매는 것은 아닐까? 가는 길에 힘들고 아플 때 서로에게 믿음과 의지가 되는 도반은 있을까? 외롭고 두려울 때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말로 지친 몸을 쉴 곳은 있을까? 부처님의 자비는 어느 곳, 어느 때나 항상 충만하지만, 스스로 못 받아 들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등의 물음을 던지며, 지난 시간들을 떠 올려 보았다.
 올해는 불기 2549년 을유년입니다. 개개인이 새로운 각오와 목표를 세우겠지만, 저마다 처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부처님의 자비를 몸소 실천하며, 또한 감사히 받아 들여, 물에 비친 달 그림자와 같이 부처님의 자비를 자신을  통해 투영해 가는 한해가 되시기를 발원해 봅니다.

 

 

 

 불자의  삶

김기남

 출세하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찬 어리석은 자신을 발견한 어느 날 맺은 스님들과의 인연이 오늘까지 지속하고 있음에 스스로 만족하며, 개인적으로 "참 행복한 삶을 산다"고 생각해 본다. 젊어서는 흔히 하는 말로 '성공'을 위해서 고생을 각오하고 크게 욕심을 낸 적도 있었지만, 그것을 모두 접은 지금 그 때를 돌이켜봐도 크게 후회되지 않는다. 굳이 후회하기 위해서 해본다면 불편한 것뿐인 경제적 어려움이라고나 할까?
 스님과 인연을 맺고는 일상에서 느끼는 것 중 무엇이든지 '아니다' 싶으면, 스님을 찾아 뵙고 논의와 상담을 거치면서 가끔은 참회를 염두에 둬야 할 정도의 논쟁에 가까운 열띤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곱씹어보면 오히려 그런 과정들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계기가 되었던 같다.
 30여년 동안 많은 스님들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사랑도 많이 받았고, 아름다운 추억도 가지고 있다. 1976년 전 조계종 종정이셨던 고암 큰스님으로부터 계(戒 불자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실천 덕목)를 받고 '선암(仙岩)' 이라는 법명(法名 불자가 계를 받은 뒤 가지는 이름)을 받았다.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누구나 걸터앉도록 자연스럽게 놓여있는 '선방' 즉 바위( 온갖 인생의 밑그림을 다 그리는 곳)는  곧 너의 자신을 갈고 닦음으로써 가르침을 주는 곳으로, 변함없는 불자로서 올곧게 살아가도록 하라"는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종정스님을 모시던 시절의 조계종 총무원 살림은 그리 넉넉하지 못한 편이라 월급 때가 되면 가끔 조용히 종정실로 불러 "급여가 적다"며, 마치 할아버지 손자에게 용돈을 어머니 몰래 주시던 것과 같이 보시를 주곤 하시던 인자하신 큰스님께 "못 받는다"고 말씀드리면, 오히려 야단치곤 하셨다.
 불자가 되고 난 뒤 사회에서 접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삶의 여러 모습을 스님들을 통해 직접 겪음으로써 불교의 참뜻을 공부하려는 마음에 밤을 세면서까지 경전이나 불교 관련 서적을 뒤적이곤 하였다. 그러다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해답을 찾지 못하면, 인연 닿는 스님을 찾아 뵙고는 논객으로서 논쟁을 벌이곤 하였다. 이것은 "다행히도 가까이서 스님들을 모시기 때문에 얻어진 행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스님들의  해맑은 가르침을 수없이 듣고, 또 의문에 대한 질문과 함께 불교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면서 살아온  지금까지도 여전히 스님을 모시면서 살고 있다. 아직도 생생하게 마음을 밝히면서 살기를 발원(誓願)한 중요한 가르침(法文)은  ”처처불상(處處佛像)이요 사사불공(事事佛供)“으로, "우주(法界)가 부처님 도량인데, 어찌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꿈도 현실도 변함없이 살아온 지금 인생의 반환점을 바라보면서 아직도 불자로서 해야 할 일이 남았다." 하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우리는 불자로서 어떤 역할이 있는가?". "우리는 왜 불자로서 당당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불자임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가?", "우리는 왜 불교인 이기를 주저하고 있는가?" 등등을 자문하면서 불자들에게  법우로서 마음의 글을 쓰고자 한다. (3회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부처님께 나아가 마음을 닦고 배우며, 개인과 가족 그리고 이웃, 나아가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거룩한 자리를 왜 남에게 권유하는데 주저하기도 하는 것일까요? 굳이 다른 종교인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불교를 위한 역할이 있었던가?를 스스로에게 자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즐겨 <반야심경>. <천수경> 등을 암송하는데, 과연 그 내용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까요? 그 어려운 경전을 암기하고 또, 손쉽게 암송하면서도 만약 뜻을 모른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뜻을 모르면서 소리만 흉내 내는 앵무새와 같으므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따지기 이전, 우리 모두 돌이켜봐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한편 불자(불교신자)로서 왜 당당하지도 못하며, 자랑스러워 하지도 못 하는 경우가 가끔 생기는 것일까요?  자유로운 자신의 선택에 의해 가지게 된 자신의 종교를 당당하게 밝히고, 또 그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혹 부처님의 가르침이 자신의 선행을 남에게 보이는 것에 대하여 자제토록 해서일까요?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성제(四聖蹄), 팔정도(八正道), 육바라밀(六波羅密) 등을 실천수행 덕목으로 삼으며, 열심히 불자이기를 서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이상 중생계에 더 바람직한 삶의 형태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만약 불자로서 당당하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다면, 감히 다시 한번 반성을 주문하고자 합니다.
 불교를 생활화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결 같이 이해하고 이행하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성스러운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감히 말씀드립니다. 신도님들 그리고 사찰을 찿는 이들 가운데는 불교의 아름다움과 정성스런 삶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며, 또한 지도 받기를 원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더불어 베풀고 서로 나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익히 알고 있지만, 때로는 참 '나'를 찾는 것에 대하여서는 혹 잊고 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위하여 인연이 닿을 때 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배운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인연 맺어 드리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수행이 선행되어야 하기에, 매년 납월 8일에는 3000배 참회 기도를 생활화한지 벌서 10여년이나 됩니다. 이 이야기는 진실이 오히려 허물로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부끄러움이 아니기에 용기를 내어 말씀드린 것으로 '자리'가 곧 '이타'이며, 개인의 정화가 곧 사회의 아름다움이기에 불자라면 저마다의 수행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불교는 한국인에게 만이라도 자랑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국가의 근간을 확립하고 자주. 자존. 자족의 민족사를 세계만방에 일깨워주신 민족의 성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보각국사 일연성사, 민족의 화해와 여명을 밝히신 화쟁국사 원효성사, 민족의 얼을 일깨워 주신 의상대사,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신 사명대사 등이 계십니다. 그리고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우수한 민족문화를 세계 속에 떨치고 자랑할 수 있도록 토대가 된 불교적 가치, 민족의 애환을 감싸고 정신적 갈등을 치유하는 정신적 귀의(의지)처로서 역할을 다하는 여러 사찰이 우리 곁에 있는 것은 분명 자랑입니다. 어찌 이러한 것에 대하여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는데 주저하기도 한단 말입니까?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모두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함께 합시다. 스님들께서는 여전히 중생의 아픈 곳을 찾아 적극적이고도 개방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평소 존경하는 스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생각나곤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다른 종교인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는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환경으로 전환을 유도하는 바람직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편안함보다는 노력을, 게으름보다는 근면을 강조한 스님의 가르침이겠지요. 백장선사께서도 "일일부작 (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필자가 귀감으로 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류의 지혜를 원만(구족)하게 하고, 화해와 평등을 구현하여, 중생 모두 평등한 삶을 살아가도록 지혜를 주시는 스승이 아니신가요?  그것은 비단 기복만을 바라는 사람만이 아니더라도, 사찰에 들어서면, 누구나 평안함을 체험케 되고, 텅 빈 마음을 가득 채워가는 이천만 불자로서 증명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천만 불자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여러분의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이면, 얼마나 큰 생각이 되는지를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마음을 나눠 0.1%만이라도 불교발전을 위하여 투자합시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합시다. 우리는 스님들의 수행을 믿고 따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통하여 자기를 탁마하며,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을 너무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스스로 자랑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고, 오히려 다른 이방인들로부터 역 칭찬을 듣는 예가 허다한 것 같습니다.
 한국불교의 우수함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인정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스님들께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발전시켜 온 결과일 뿐만 아니라, 삼보(三寶)를 열심히 호지한 재가불자들의 노력일 것입니다. 필자는 지금 종무원으로서 사찰을 찾아오는 불자와 비불자, 그리고 외국인을 상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루 업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자로서의 본분이기에 그저 열심일 뿐입니다. 그렇게 현장에서 열심히 일할 때, 가끔은 고마운 말씀도 전해 듣지만, 때로는 극렬 이교도나 내부의 반 불교적인 인사들과 부디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열정이 더해 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우리는 지금 우리끼리 무가치한 일로 다투거나 논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럴 시간과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작은 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모습들을 볼 때, 가슴이 메어지곤 합니다. 이것은 굳이 일일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겪고, 보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가슴 아픈 상황에 대하여 필자는 조용히 나름대로의 입장정리를 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사랑하는 불교에 대하여 주요한 역할이 되지 못했다 손치더라도 오늘까지 온 것에 대하여 후회되지 않도록 항상 처음처럼 발심 노력할 것을 말입니다.
  자연 속에 위치한 산사에 부처님이 계셔서 좋으며, 스님들의 법문이 있어 좋습니다. 또한 맑고 향기로운 인간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은, 우리의 불교 환경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을 포함한 각계각층에 있어서 최상의 의지처로 대명사화될 것이 자명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각자가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 노력하기를 바라는 한편, 여기까지 지켜온 스님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분발하고, 서원하기를 감히 당부드립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 분 한 분의 힘이 모아지면, 결과는 배가됨을 잊지 말고, 자랑하고. 노력하고. 칭찬하고 .뭉치는 불자가 되시길 말입니다.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방하착(放下着 집착에서 벗어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탐욕. 이기. 화냄. 분별 등 왜곡된 모든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 화두이며, 방하착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평화로운 삶. 지혜로운 삶. 맑고 향기로운 삶. 온갖 질곡에서 벗어난 상생의 삶. 등은 불자들의 자세이며, 생명 과제일 것입니다. 행복할 거라고 행복만을, 슬프다고 슬픔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아상(我相)으로써 본래부터 내 것이란 없는데도, 자꾸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써, 보편적 진리인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신의 개발과 이웃을 위한 자비의 실천을 통하여 더욱 아름다워 질 수 있습니다. 항상 한해를 보내면서 참회하고, 바로 새해를 맞이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발원하며, 일 년 내내 삶과 경쟁하면서도 스님들의 법문을 경청하며, 자신을 탁마하고, 또 다시 발원하고 서원하기를 반복하였기에 불자로서 지금까지 온 것에 만족하고자 할 뿐입니다.
- 이상은 필자가 배운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자로서의 자세를 피력하여 조금이라도 불교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쓴 글임을 밝혀 둡니다.  을유년 원단에..,-
 필자 소개: 現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사무국장

 

 

 

 아름다운 이들

문옥선

 털실을 산지 꼭 열흘만에 완성한 검정색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외출을 서둘렀다. 이번 동남아 지진해일로 피해를 입은 나라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전 "나올 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는데, 솔직히 남 앞에 내 자신을 드러내고 다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집을 나서니 모금함을 들고 다니는 것에 대한 어색할 것 같은 느낌은 웬만큼 가셨지만, 모금 액수에 신경이 쓰여 졌다. 명분은 좋다지만 경제가 워낙 어렵다보니 동참을 끌어낼 시기로는 그다지 좋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살면서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겪은 경험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번에는 그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조 편성 또한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사찰의 스님들과 신도들만으로 편성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속한 조에는 키가 호리호리하게 크신 스님과 또 반대로 아주 아담한 스님, 특이한 귀마개를 하시고 목탁만 치시던 스님, 모금하는 내내 한 말씀도 안 하시던 스님 등 이렇게 네 분의 스님들과 한 조가 되어 세분된 지역별로 흩어졌다. 스님들께서 앞장을 서고 모금함과 어깨띠를 두룬 우리들은 그 뒤를 따랐다. 모금함을 애써 외면하는 길 위의 사람들의 시선을 차마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도로 변의 상점 안으로 들어갔지만, 선뜻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어려운 상황이 피부로 와 닿는지라, 그저 눈빛만으로도 얘기를 하고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었다.  방송국 앞을 지나치면서 수위실에 계신 분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난 모금 안내문이라도 읽어보시라고 드려야겠다는 맘을 먹고 그 앞으로 갔는데, 뜻밖에도 지갑 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선뜻 꺼내주셨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지갑에 손이 간 그분께 깊게 감사드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금활동을 해보니 도처에 보살님들이 계셨다.  지금 누군들 어렵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단 돈 천원일망정 기꺼이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 몇 천원을 주면서도 많이 못해 미안해하던 보살님, 손님 없는 썰렁한 가게였지만, 지갑을 열어준 고마운 거사님, 자장면을 먹다가 벗어놓은 상의에서 지갑을 열어준 젊은 거사님, 우리를 보자마자 말없이 금고문에 손이 간 고마운 보살님들.......훈훈한 우리네의 인정을 맛본 감사한 하루였다.  
 나 역시나 내 집을 찾은 손님들을 빈손으로 보내드린 적은 거의 없다.  저 멀리서 목탁소리가 들리면, 비록 적은 액수일망정 미리 하얀 봉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린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오래 겪다 보니, 가끔은 감히 흉내를 내며 다가오는 사람들도 만나지게 된다. 그러나 난 내색 않고 그대로 봉투를 드린다. 말은 않더라도 서로의 느낌은 서로서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랑일 것도 없는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오늘 만난 어떤 보살님이 했던 말이 생각 나서이다.
 안내문을 한 장 드렸더니 꼼꼼히 살피는 기색이더니만, 대뜸 한다는 말이 “믿을 수가 없네요.”였다.  자신이 성금을 내놓더라도 그것이 지진해일 피해를 입은 나라로 직접 전달될지 중간에 어느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갈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느냐는 얘기였다.  그 분의 의구심을 이해 못하는 것도, 그런 성품을 탓할 마음도 없다.  본래는 남을 믿는 선량한 성품을 가졌을 것이나, 언젠가 심한 배신감을 맛보았기에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할말은 하며 살고자 한다면, 먼저 할말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주며 사는 것이 문화인의 도리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기부를 하는 이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과 달리 물품이란 것은 건네주고 건네받으면 닳아지고 낡아질 수 있다. 닳아지고 낡아졌다고 제 기능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운 좋으면 더 좋은 새것으로 교체될 수도 있다. 관상용이 아닌 바에야 닳아지고 낡아질 것이 두려워, 필요로 하는 곳을 외면한다면, 그런 물품을 지닐 이유가 무엇일지 묻고 싶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자연재해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어려움만을 생각하렵니다.” 어떤 거사님의 담백한 마음이 차라리 따스했다.  우리선조들께서는 참으로 현명하셨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라고 미리 말씀해두셨으니 말이다.

 

 

 

 새해에는 이런 불자이고 싶습니다

장태자

 좋은 일을 했다고 해서, 그 만큼의 좋은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으며, 나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만큼의 나쁜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겠지요. 그리고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빠른 시간내에 나타나지 않을 때, 저는 사유(思惟)라는 결과를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항상 노력에 대한 대가가 산술적인 1대1의 값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경험에 의한 내적 성숙이 따르며, 성공에 따른 성취감에 도취되어 교만해지기 보다는 겸손을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시련과 실패에 따른 고난에 빠져 절망하기 보다는 희망을  떠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 세상은 정확하게 우리에게 그 무엇인가를  준다는 것을 말입니다. 마치 빛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말입니다.
 오늘을 우리가 성실하게 산다면, 세상은  우리의  내일을 위해 기꺼이  바탕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을유년 한 해도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불자가 되려고 합니다.

 

 

 

 

김지민

아침이다.
엄마: 얘들아 일어나라. 야들이 개학되면 어떻게 일랄라 카노.
오후이다.
새얼: 엄마 엄마 저 빵 먹어도 되요?
엄마: 좀 그만 먹고 구몬해라.
새얼: 구몬하고 작은 누나야랑 오목 붙어도 돼요?
엄마: 그래, 빨리해라.
엄마는 빨래하러 나가신다.
엄마: 지민아 빨리 피아노 쳐라.
몇 분이 흐르고 새얼이가 마루로 뛰쳐나온다. 구몬을 들 한 채.
엄마:(노려 보시며) 구몬 다했나?

 

 

새얼:(멀쭘) 아니요!
엄마: 빨리 안 들어가나마!
새얼:(후다닥 뛰어 들어간다) 넵!
내가 언니야 방문을 두드린다.
엄마:(위엄이 가득 서린 목소리로) 언니야 건들지 마라.
나:(멀쭘!) 네.
시간이 지났다. 할아버지가 복숭아 밭에서 마른 풀을 태울 때 우리도 같이 끼어 들어 매운 연기 마시며 불 장난을 하다가 새얼이 머리카락을 태웠다.
새얼: (울먹) 누나야 머리 태웠다.
엄마는 새얼이의 태운 머리를 깎고 계셨다.
새얼: (떡 보자기를 두르고 앉아서)엄마, 바다 코끼리는 헤엄 못치죠?
엄마: 왜 못 칠까봐. 바다에 사니까 당연히 칠 수 있지.
새얼: 아 아~! (비명소리)
엄마: 엄마 손이 니 머리 눌렀다.
새얼: 머리 깎는 기계가 내 머리 눌렀다고요?
엄마: 아니 엄마 손이 눌렀다고.
새얼: 뭐가 눌렀다고요?
엄마: 아니다 됐다.
벌써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하루종일 우리와 함께하시는 엄마 커서도 난 엄마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혜숙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둘은 서로 사랑하다가 결국 헤어진다.  이것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기본 내용이다. 얼핏 보면 그냥 단순한 청춘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와는 다른 뭔가로 관객과 소통하려 한다. 이 작품은 일본 여류작가 타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 졌다.  2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원작 소설이 주인공 조제와 츠네오가 서로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이 시들어가는 과정에 집중되었던 것에 비해, 영화는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고 또 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로 각색되어 있다.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마작 게임장에서 일을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그곳에서 츠네오는 밤마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유모차 안에는 큰돈이나 마약이 들어있을 거라고 손님들이 추측하는 것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다 어느 날, 새벽에 언덕길을 달려 내려오는 유모차와 마주치게 된다. 그 안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츠네오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는 그렇게 만나게 된다. 할머니를 도와준 댓가로 할머니 집에서 밥을 얻어먹게 된 츠네오. 츠네오는 할머니가 다리가 불편해 걷지 못하는 손녀를 유모차로 산책시키고 있었단 것을 알게 된다.

 그 손녀의 이름은 쿠미코이나 그녀는 자신을 조제라고,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에서 따온 이름이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츠네오는 음식솜씨가 좋고 방 안 구석에서 주워온 책들을 읽는 것이 유일한 행복인 조제와 친구가 된다. 그런데 예쁜 여자친구도 있지만, 웬일인지 자꾸 이상한 조제에게 끌리는 츠네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게 가까워지며 사랑을 시작한다. 할머니가 죽고 동거를 시작한 츠네오와 조제. 둘은 서로만을 생각하며, 계속 사랑을 한다. 하지만 집에 조제를 소개시키는 문제로 츠네오는 고민을 하게 된다. 츠네오의 이런 고민중에 조제와 츠네오는 집에 인사드리러 간다는 구실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흔한 청춘영화와 이 영화가 구별을 두는 것은 허구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데에 있다. 아무 계산이나 생각없이 사랑만으로 동거를 시작한 조제와 츠네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어쩌면 처음부터 이루어 질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깊은 만큼 현실 또한 냉담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젊은 그들은 알고는 있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러브스토리는 무모하지만,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게 아닐까? 사랑은 따듯하게 이별은 가슴 아프지만, 담백하게 하는 캐릭터들이 이 작품을 유난히 돋보이게 만든다.
 이 작품을 살려주는건 다름 아닌 배우들의 연기와 살아있는 캐릭터이다. 츠네오 역을 맡은츠마부키 사토시는 사랑하지만, 현실에 부딪혀 사랑을 포기하는 감정을 밀도있게 소화해냈고, 조제 역을 맡은 이케와키 치즈루는 상처와 소외를 감추고 당차게 살아가는 소녀역을 무리하지 않고 잘 소화해냈다. 더군다나 원작의 감성을 뛰어넘은 와타나베 아야의 각색은 주연부터 조연 단역까지 모든 캐릭터를 잘 살려주고 있다.
 아직 추위가 매서운 시절, 추위를 따듯하게 녹여주는 그런 영화가 아닌가 싶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 - 經卷第三-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喩 고客駝死喩 磨大石喩 欲食半병喩 奴守門喩 偸리牛喩 貧人能作鴛鴦鳴喩 野干爲折樹枝所打喩 小兒爭分別毛喩 醫治脊루喩 五人買婢共使作喩 伎兒作樂喩 師患脚付二弟子喩 蛇頭尾共爭在前喩 願爲王剃鬚喩 索無物喩 답長者口喩 二子分財喩 觀作甁喩 見水底金影喩 梵天弟子造物因喩 病人食雉肉喩 伎兒著戱羅刹服共相驚怖喩 人謂故屋中有惡鬼喩 五百歡喜丸喩

(四五)奴守門喩
譬如有人將欲遠行。칙其奴言。爾好守門幷看驢索。其主行後。時린里家有作樂者。此奴欲聽不能自安。尋以索繫門置於驢上。負至戱處聽其作樂。奴去之後。舍中財物賊盡持去。大家行還問其奴言。財寶所在。奴便答言。大家先付門驢及索。自是以外非奴所知。大家復言。留爾守門正爲財物。財物旣失用於門爲。生死愚人爲愛奴僕亦復如是。如來敎誡常護根門。莫著六塵守無明驢看於愛索。而諸比丘不奉佛敎。貪求利養詐現淸白靜處而坐。心意流馳貪著五欲。爲色聲香味之所惑亂。無明覆心愛索纏縛。正念覺意道品。財寶悉皆散失

45. 문과 나귀 그리고 줄만 지킨 하인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주인은 하인에게 “문을 잘 지키고, 또 나귀와 밧줄을 잘 살펴라.”고 분부하였다. 주인이 떠난 뒤 이웃집에서 풍류놀이를 하는 자가 있었는데, 하인은 그것을 보고 싶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밧줄로 문을 매어 나귀등에 얹고 놀이터로 가서 그 풍류를 즐기는 사이  그만 도적이 들어 집안의 재물을 모두 훔쳐 가 버렸다.
 주인이 집으로 돌아와 하인에게 물었다. “재물은 모두 어떻게 되었느냐?” 하인은 대답하기를 “어르신께서 저에게 문과 나귀와 밧줄을 살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밖에는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 주인은 다시 말하였다. “너를 남겨 두고 문을 지키라 한 것은 바로 재물 때문인데, 재물을 모두 잃어버렸으니 문은 어디에 쓸 것인가.” 어리석은 사람이 애욕의 종이되는 것도 이와 같다.
 부처님은 항상 ‘여서 가지 감각기관(六根)을 잘 단속하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대상(六境)에 집착하지 말며, 애욕의 밧줄을 잘 살펴라’고 훈계하셨다. 그런데 부처님의 교훈을 받들지 않고 이양(利養)을 탐하여 구하고, 거짓으로 청렴한 체하며, 고요한 곳에 있는 척 하지만, 마음은 산란하여 밖으로만 달리며, 다섯 가지 쾌락에 집착한다. 즉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에 홀리며, 무명(無明 어리석음)은 마음을 덮고, 애욕의 밧줄로 자신을 묶어버린다. 그리하여 바른 생각과 깨달음의 뜻인 도품(道品)의 재물을 모두 잃어 버리는 것이다.

 

(四六)偸리牛喩
譬如一村共偸리牛而共食之。其失牛者逐跡至村。喚此村人問其由狀。而語之言。爾在此村。不偸者對曰。我實無村。又問。爾村中有池。在此池邊共食牛不。答言無池。又問。池傍有樹不。對言無樹。又問。偸牛之時在爾村東不。對曰無東。又問。當爾偸牛非日中時耶。對曰無中。又問。縱可無村及以無樹。何有天下無東無時。知爾妄語都不可信。爾偸牛食不。對言實食。破戒之人亦復如是。覆藏罪過不肯發露。死入地獄。諸天善神以天眼觀不得覆藏。如彼食牛不得欺拒

46. 소를 훔친 사람
  어떤 사람들이 남의 소를 훔쳐 잡아 먹어버렸다. 소를 잃어 버린 사람은 그 흔적을 따라 어느 마을까지 찾아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놓고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물었다. “너는 이 마을에 살지 않느냐, 그리고 소를 훔치지 않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내게는 마을이 없습니다.” “당신 마을 가운데에 못이 있는데 그 못 가에서 소를 나누어 먹지 않았는가?” “못이 없습니다.” “못 곁에 나무가 있지 않는가?” “나무가 없습니다.” “소를 훔칠 때 마을 동쪽에 있지 않았는가?” “동쪽이 없습니다.” “소를 훔친 때는 한낮이 아니었는가?” “한낮이 없습니다.” 그러자 소를 잃어 버린 사람은 “비록 마을은 없고 나무는 없다 하더라도, 어떻게 천하에 동쪽이 없고 한낮이 없겠는가?, 지금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너의 말은 모두 믿을 수가 없다. 너는 소를 훔쳐 먹지 않았는가?” “사실은 먹었습니다.”
 청정한 생활덕목(계율)을 깨뜨린 사람도 이와 같다. 자기의 죄를 덮어두고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면 여러 하늘의 선신(善神)들이 밝은 눈(天眼)으로 보기 때문에 다시는 덮어 둘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소를 잡아 먹은 사람이 끝내 속이며, 버틸 수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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