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8(2004)년 12월호 Vol.4,No.47. Date of Issue 1 Dec ISSN:1599-337X 

 

 

 

 

 

 

 

 

 정성을 들이세요

범수

 "정성을 들이세요." 이 말은 필자가 신행 상담을 하거나, 대화를 할 때 가끔 들려주는 말이다. 정성을 들인다는 말은 곧 좋은 인(因)을 심는다는 말로써 좋은 원인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좋은 결과를 맺기 마련인데 우리는 이를 선인선과(善因善果 , 善因樂果)라고 말한다. 여기서 굳이 자연과학의 인과율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원인과 결과의 관계인 인과법칙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여러 현상적인 문제를 설명하는 법칙으로서도 반론이나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인과 법칙에는 선악에 따른 합당한 결과를 받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논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굳이 도덕이나 윤리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선(善)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복을 짓는다(作福)'라고 한다.
 복(福)
*이란 공덕(功德)을 닦는다는 뜻을 포함하는데, 행복의 행위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결과이다. 이러한 행복의 행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보면 먼저 자신을 다스리는 행위(自利, 修行)와 타인을 이롭게 하는 행위(利他, 作福)이다. 이 가운데 희사(布施)는, 재래로부터 수행덕목으로 적극 권장되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형평이나 여건에 따라 복을 짓는 일 즉 공덕을 닦는 일은 달라지기 마련이라서 따로 정해진 것은 없고. 다만 처한 상황에 따라 힘써 선행(善行)을 다한다면 결국 그것을 원인으로 해서 생사의 끈을 풀어 마침내 깨달음(成佛)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서로의 가치를 무시한 채 단순경쟁을 일삼으며, 경제논리에 의한 개인의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것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작은 손해라도 볼라치면 마치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것 같이 여기며, 자신의 잘못이나 어리석음은 도무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는 풍토가 만연한 속에 금년 수능시험 때 휴대 전화기를 이용한 부정행위 등과 같은 부정이 사회전반에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한 행위를 하는 것에는 정성을 들인다고 하지만, 악한 행위를 일삼는 것에는 정성을 들인다고는 하지 않듯이 온갖 부정행위나 악한 행위는 정성을 들이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루기 위해 그들 나름대의 가치관에 따라 정성을 들였다고 할런지 모르겠다. 이것은 올바르지 못한 마음으로 잘못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헛된 노력을 경주하는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다.  이와 같은 연결고리속의 정성이란 단순히 악한행위로써 고통만 더할 뿐,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좋은 원인이나 복, 공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惡因苦果)
  공덕이란 악(惡)이 다한 것이 공(功)이며, 선(善)이 충만(充滿)한 것을 덕(惡盡曰功, 善滿稱德)이라 한다. 그러므로 공덕을 닦으려는 자는 먼저 악한 마음 즉 잘못된 마음을 다스린 뒤 올바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정당한 방법을 동원하여 합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 뒤 혹 원하던 만큼의 흡족한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크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남에게 보여주고 평가 받기 위하여 억지나 거짓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善因樂果)
  자신의 삶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비단 육체에 따른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대가 흩어질 즈음 인과의 법칙이 분명한 줄 조금이나 느끼더라도 아무런 두려움 없으려면 말이다.
 
* 복(福), 又作功德, 福德. 指能獲得世間, 出世間幸福之行爲. 阿含經將善行分爲出世間無漏梵行(淸淨行)與世間有漏福德二種. 福德卽指布施等行爲, 係成爲生天之因的在家修行.
  *<불설제복덕복전경(佛說諸德福田經)> 忍穢修福事 我人所不汚 造厠施便利 煩重得輕安 此德除(我慢)貢高 因解生死緣 進登成佛道 空淨巍巍尊.

 

 

 

 그림일기

김경연

제목: 스킨 다이빙 테스트
 스킨 다이빙 마지막 날. 그동안 열심히 배운 것을 테스트 받았다. 3가지를 받았는데 2과제는 잘했지만 3번째 과제는 5m 깊이 바닥까지 내려가서 바닥을 짚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나는 직각으로 잘 내려가지 못하여 4m까지만 가서 다시 올라왔다. 나는 속상해서 울었는데 선생님께서 나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이라고 합격이라고 하셨다. 나는 기뻤다. 테스트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잡아 주시는 스킨 수쿠버를 하였다. 나는 그것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10세 이상만 할 수 있다고 한다. 10살이 되면 꼭 배우고 싶다.

 

제목: 미야
 방울아, 방울아, 너는 어쩜 그렇게 예쁜 새끼를 낳았니? 오늘은 미야에 대해서 쓸 것이다.
미야는 방울이의 새끼이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엄마 몰래 만졌다. 안고 있으면 느낌이 너무 좋다. 너무 이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 미야의 젖 냄새도 좋다. 미야를 내 털모자 속에 넣고 꼭 안아 주었는데 너무 잘 잔다. 오래 안고 싶었지만, 방울이가 자꾸 찾아서 돌려 주었다. 젖을 먹고 있는 그 모습도 너무 귀엽다. 방울이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고맙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김경연 어린이의 초등학교 1학년 그림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좋은 내용을 보내준 김경연 어린이에게 전자잡지 월간 좋은인연에서 고마움을 전합니다.

 

 

 

 나를 알아가는 길

문옥선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평지에서도 너무 급하게 걷거나 너무 느린 걸음은 사람을 지치고 활력을 잃게 하는데, 장시간의 산행에 있어서는 체력의 안배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이번 주에도 예정대로 산행을 했었다. 집안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나섰는데 예년 같으면 을씨년스런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초겨울의 날씨일 텐데 따뜻한 봄날처럼 좋았다.  한편으로는 추운 것이 점점 싫어지니 다가올 날들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차안에는 산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더러 타고 있었지만 그다지 붐비지는 않았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내려 약20분 정도를 걸어야 했는데, 일행은 아니었다지만 걸음걸이들이 어찌나 빠른지 난 한참을 뒤쳐졌다.  그렇지만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급할 것도 바쁠 것도 없이 걸어야 하고 올라야 한다는 것이 오래지 않은 산행에서 얻은 교훈이었기에 조급한 마음 없이 난 내걸음에 맞추어 갔다.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곱게도 물들었던 단풍잎들은 어느새 그 빛이 다해 바람결에 날리니 속절없는 세월 따라 청춘만 가는 것이 아닌가보다.  이제 저 낙엽들은 겨울을 나기위해 대지를 덮고 다시 이듬해의 싹을 틔울 준비들을 하겠지.
 10여분 만에 앞서가던 사람들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몇 번의 산행을 통해 난 나에게 맞는 산행시간은 4시간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정도로 마치면 집에 도착해서 밀린 일을 할 정도로 몸이 개운했는데 예를 들어서 그보다 두어 시간 정도 늦어지는 날에는 산행하는 것이 취미가 아닌 노동이었다.  너울너울 걷다보니 어느새 산모퉁이를 돌아서 좁다란 대숲 길로 접어들었고, 이내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오솔길이 나왔다.  가을의 정취가 길 위에 머물렀음일까. 걸음걸음마다 낙엽의 향취가 잔잔히 품어져 나왔다.  그렇게 얼마쯤 올랐을까, 힘들다는 생각마저 힘들어 생각 없이 지쳐갈 즈음, 멀리서 가느다란 쇳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 사람이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지만, 앞서가던 사람들과 나와의 차이가 점점 좁혀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난 계속해서 올랐고 결국 그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 한 분이 멋쩍게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아까, 한참을 뒤쳐져서 걸어오던 아주머니인 것 같은데 그새 따라왔어요?”조금은 놀라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놀라움과 달리 난 산을 빠르게 타지는 못한다.  그저 내 힘에 맞게 오를 뿐이다.  하긴 가끔은 산을 잘 탄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빠르진 못해도 대신에 지구력이 있기에 다른 이들이 아무리 가뿐가뿐 날것처럼 가더라도 난 내 페이스대로 걸어서 정상에 오른다.  뱁새가 황새걸음을 쫓아갈 수 없듯이,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이 다른데 똑같이 잘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내 힘에 맞춰서 천천히 오르다보면 앞서가던 사람들을 더러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그들이 중간에서 쉬고 있거나, 아니면 지금 만나게 된 이 일행들처럼 더 이상 속력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지치게 된 경우였다.  산행시의 내 걸음은 어쩌면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에 오를 때면 앉았다 가는 바위가 있다.  말 그대로 산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그곳에서 땀을 식히고 가뿐한 마음으로 내려오다가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 올라올 때 말을 하게 되면 지치거든요.” 힘들어 미처 대답 못한 미안함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웃어주었다.

 

 

 

 늦가을 오후의 단상

이분향

 가을이 깊었다. 곱던 단풍잎이 그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다하고 소리 없이 길 위로 내려앉고 있다. 그 곁으로 조금 더 차갑고 거칠어진 바람이 제자리라고  찾아드는데 마흔을 넘어 앞으로만 가야하는 이 아줌마는 왜 그 순리를 거역하고만 싶은지...,  이 땅 인간 세상에서 남녀의 구분에서 제외된 괄호 열고 상세설명을 요하는 대한민국의  그 대단한 아줌마들, 그 아줌마들이 그냥은 도저히 이 가을을 보내지도, 오는 저 겨울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겠다는 듯 아침부터 자지러지는 한숨을 토하다가, 급기야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이 땅의 현실을 외면한 채 무작정 길을 나섰다. 분위기 좋은 집을 찾아 자리를 잡고 여러 가지 맛나는 음식으로 시린 마음을 데우며, 또 한번 무너지고 이것밖에 또 다른 뭣이 없다는 현실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식당을 나서려는 그때에 작은 소형차 한 대가 식당 문 앞에 주차를 하였다.
 잠시 후 밤색의 베레모가 멋진 할아버지가 내리시더니 한 손을 들며 “미안합니다. 잠시만..., 제 처가 다리가 좀 불편해서” 그리고는 조수석으로 가 문을 열고 핑크색 바탕에 더 짙은 핑크색의 꽃무늬 블라우스가 어여뿐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를 마치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아버지와 딸의 손 모양을 하고 내리게 하시는 것이다. 마치 영화 속 파리의 여인을 연상케 하면서 두 분이 안으로 들어오시고,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우리의 사치병은 모두가 완치되었다.
“아이구! 소녀들 좋은 계절입니다. 단풍이 너무 고아서 나와 봤더니만, 역시 어여뿐 소녀들도 만나고” 우리들 아줌마 1,2,3은 마치 뭐에 홀린 듯 일어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모두 머리 숙여 인사를 하였다. 구부러진 어깨에 베레모가 어색하기도 하련만 그저 멋지게만 보였던 이유는, 지팡이를 짚은 그 작은 여인이 그렇게 아리따운 왕비로 보였던 이유는, 마흔의 시름을 토하던 우리를 아리따운 소녀로 봐준 것에 대한 보답만은 아니었으리라. 두 연인을 뒤로 하고 나오는 우리 모두는 차에 오르면서, 분위기 좋은 카페 타령도 잊고, 자연스레 집으로 향해 가는 동안 말이 없었다. 아줌마1이 모두의 생각을 읽은 듯 “오늘 저녁에는 무우 넣고 갈치 찌게나 해볼까” 아줌마 2, 3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돌아온 내 집, 내 옆지기, 내 아들 그래, 그들이 있어 내가 있고, 나 또한 그들과 같이 있으므로 행복해 질 수 있음을..., 
그 가고 오는 세월이라는 것, 누가 어떻게 해주는 것도, 억지로 되어 지는 것도 아닌 것임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인데, 오늘 하루 괜한 투정에 쓸데없는 감정의 사치를 부렸나 보다. 오늘 이 하루도 헛되지 않고 곱고 고마운 인연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나의 어떤 노력의 댓가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그 이유를 알게 해준 오래된 그 연인들이 언제나 행복하기를 기도해야겠다.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친구

김지민

 야마나카 히사시의 < 내가 나인 것>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내 호기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시험으로 인해 최저점수를 들고 와 엄마에게 엄청난 꾸중을 듣고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있던 나는 <내가 나인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공부에서 헤매기만 하는 초등학교 6학년 히데카즈이다.

 학교에서는 말썽을 일으키고 시험점수가 낮아서 문제아 취급을 받고,  집에서는 형편없는 아이로 취급받고 있었다. 엄마의 들볶아대는 잔소리에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여동생 마유미었다. 깜찍하고 영악한 마유미는 엄마와 한패로 히데카즈를 감시하고 쥐어 짤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러고 보니 우리가족 이랑 닮은 꼴이다. 공부 이야기로 나에게 겁을 주는 엄마와 나의 잘못을 낱낱이 일러 내가 혼나기를 바라는 남 동생까지. 히데카즈가 같은 동포인 것 같이 느껴졌다.
 히데카즈는 가출할 생각까지 한 것은 아니었는데, 주위의 압박에 충동적으로 낯선 트럭을 타고 가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는 도중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이 사람을 치어 죽게했다. 뺑소니었다. 그 순간 나도 히데카즈와 함께 이 엄청난 일에 숨이 막혀 버렸다. 다행이 운전사는 히테카즈를 보지 못했다. 차에서 몰래 빠져 나와 정신없이 뛰어 한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아무리 배고프고 피곤함에 지쳤더라도 낯선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는 용기가 나에게는 있었을까?" 나에게 물어보았다.
 문을 두드리자 나온 사람은 히데카즈의 또래인 상냥하게 보이는 소녀였다. 그 집의 주인은 나츠요라는 6학년 여자아이와 험상궂은 할아버지만 사는 집이었다. 자신의 사정을 말한 히데카즈는 방학동안 나츠요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엄마의 압박에서 벗어나서 전혀 다른 환경에 머물게 된 히데카즈는 생각이 많아졌다. 할아버지를 도와 집안일도 하고, 스스로 공부하며 의젓한 나츠요가 자기 또래인 것이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았다. 공부만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 대신 닭모이를 주고 잡초를 베고 아픈 나츠요를 병실에서 간호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믿음을 발견했다.
 새 학기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히데카즈는 더 이상 주눅 들어 사는 골칫덩어리가 아니었다.  나츠요네 집에 있을 때 그 집 밤나무 산에 다케다 신겐이 묻어놓았을 수도 있다는 보물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다케다 신겐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다. 드디어 관심이 있는 분야가 생긴 것이고 의욕을 가지고 할 일을 찾은 것이다. 이제는 엄마의 잔소리에 마음의 전부를 빼앗겨 혼란스러운 아이가 아니라, 나츠요 가족을 해치려 하는 뺑소니 트럭운전자 마사나오 일을 혼자 가슴에 품고 해결해야 하는 신중한 사람의 몫이 있었다. 히데카즈의 내면은 이렇게 커버렸지만, 그 자식을 알지 못하고, 시험점수나 보여 지는 행동에서 완벽을 원하며, 늘 잔소리를 해대는 그 엄마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가출 후 집으로 돌아온 히데카즈에게 이성을 잃은 듯 퍼붓는 엄마의 독설에 히데카즈는 예전과 달리 너무나 뻔뻔히 무시해 버려서 엄마는 다친 짐승처럼 주저앉아 펑펑 울었을 때, 엄마가 태산같이 믿고 있었던 형들이 사건에 휘말리고 엄마에게 등을 돌렸을 때, 히데카즈 엄마는 늘 무시무시한 괴물 같았는데, 자식을 두고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가지는 막막함과 불쌍함이 엿보였다.
 두 번째로 나츠요네로 갈 때는 엄마의 반대에도 용기있게 굴하지 않고 중요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다. 나츠요를 사랑하지만, 과거의 나쁜 일과 기억에 사로잡혀 나츠요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게 했던 할아버지를 과거의 장애에서 자유롭게 해 주고, 또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나츠요를 이용해서 할아버지를 빼앗고 재산을 가로채려는 마사나오의 계략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누가 자신을 믿고 인정해 준다는 것은 책임 있는 사람으로 되게하는 힘인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만의 성인 집이 불타 버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런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엄마는 쓰러진 후 이웃집에서 잠든 후 깨어나셨다. 그 때 히데카즈는 스스로 엄마에게 가기로 했다. 심호흡을 하면서. 가출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내가 나인 것에 대해 알게 된 히데카즈는 이제 자기를 욕하고 때릴 수도 있는 엄마 앞에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다. 내가 나인 것을 보여줄 용기가 있으니까. 어떤 모습이라도 엄마의 아들임을 이해시키고 잔소리만 해대는 엄마지만, 소중한 엄마이고 엄마를 사랑하는 자식임을 알았는 것이다.
 아직 나는 작은 점수를 들고 엄마 앞에 쫄지 않고 설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히데카즈처럼 나의 세상을 넓히고 책임있는 사람으로써의 중심을 찾아 내가 나인 것을 발견할 것이다.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친구, 히데카즈. 내가 힘들 때 내 얘기 많이 들어줘.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百喩經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四三)磨大石喩
譬如有人。磨一大石勤加功力。經歷日月作小戱牛。用功旣重所期甚輕。世間之人亦復如是。磨大石者喩於學問精勤勞苦。作小牛者喩於名聞互相是非。夫爲學者硏思精微博通多識。宜應履行遠求勝果。方求名譽교慢貢高。增長過患

 43. 돌을 갈아 소를 만든 사람
 어떤 사람이 부지런히 큰 돌을 갈아 조그만 소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에 비해 얻은 것은 매우 적다.
 무지한 사람들도 이와 같다. 큰 돌을 간다는 것은 부지런히 애써 공부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조그만 소 모양을 만들었다는 것은 명예를 위하여 서로 다투는 데 비유한 것이다.
 모름지기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자세히 연구하여 널리 알고 자세히 알아서 그대로 실행하여 훌륭한 결과를 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눈 앞의 명예만 구하면, 교만하고 허황되어 허물과 근심만 더욱 늘어 나게 된다.

 

(四四)欲食半병喩
譬如有人。因其飢故食七枚煎병。食六枚半已便得飽滿。其人애悔以手自打而作是言。我今飽足由此半병。然前六병唐自捐棄。設知半?能充足者應先食之。世間之人亦復如是。從本以來常無有樂。然其癡倒橫生樂想。如彼癡人於半番병生於飽想。世人無知以富貴爲樂。夫富貴者求時甚苦。旣獲得已守護亦苦。後還失之憂念復苦。於三時中都無有樂。猶如衣食遮故名樂。於辛苦中橫生樂想。諸佛說言。三界無安。皆是大苦。凡夫倒惑。橫生樂想

 44. 떡 반개에 배부른 사람
  배가 고파 일곱 개의 떡을 먹으려 하던 사람이 여섯 개 반을 먹자 배가 불렀다. 그는 화를 내며 스스로를 때리면서 말하였다. “내가 지금 배부른 것은 이 반개의 떡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에 먹은 여섯 개는 공연히 버린 것이다. 만일 이 반개로써 배가 부를 줄 알았더라면, 이것을 먼저 먹었어야 했는데....”
 세상 사람들도 이와 같아서, 원래부터 즐거움이란 항상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리석고 뒤바뀐 생각으로 제멋대로 즐겁다는 생각을 낸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떡 반개에 배부르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무지한 사람은 오직 부귀로 즐거움을 삼지만, 부귀란 구할 때도 매우 괴롭지만, 이미 얻은 뒤에는 지키기도 괴로우며, 혹 잃은 뒤에는 다시 괴로운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옷과 밥을 겸하기 때문에 즐겁다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으면서 제멋대로 즐겁다는 생각을 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 세계는 안락은 없고 모두 괴로움뿐인데, 중생들은 뒤바뀐 생각으로 미혹하여 제멋대로 즐겁다는 생각을 하느니라.”

 

 

 

사진
공간

 

 

편집부

 

 

 

절기
풍속

 

 제석청소

편집부

 섣달 그뭄 대청소를 하는데 이를 제석청소라고 한다. 집 안팎의 묵은 때를 깨끗이 청소하여 새로운 한해를 맞는 의식으로 몸과 마음도 같이 청소한다면 한결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불교
미술

 

 불기(佛器)

편집부

 

 

 불기(佛器)란 쌀이나 밥(마지) 등 공양물을 담아 부처님전에 올리는 것으로 다기(茶器), 촛대, 향로,화병˙다관˙다반등 있다. 위 사진은 부처님전에 밥이나 쌀등을 담아 올리는 것으로 보통 마지그릇이라고도 하고 그냥 불기(佛器)라고도 한다.
佛器 佛事所用之器具. 一般多指盛供佛飯之器具, 其形如菌類, 多以靑銅等金屬類製之, 罕 有陶器, 外部彫以蓮花或蔓草花紋.

 

 내년은 불기(佛紀) 2549년, 단기(檀君紀元) 4338년인 을유년(乙酉年)입니다. 다음 해 1월호는 원고 대신 신년 연하장(年賀狀)으로 갈음할 예정이오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 동안 바쁘신 가운데서도 '나눔과 어울림'이라는 마음으로 월간 좋은인연에 원고를 보내주셨던 모든 님, 그리고 구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자비광명이 가득하시길 불 보살님전에 발원하며, 다음해에도 좋은인연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좋은인연

 

 

 전북 김제시 부안군 개암사

 편집부

 

 정성을 들이세요

 범수

 

 그림일기

 김경연

 

 나를 알아 가는 길

 문옥선

 

 늦가을 오후의 단상

 이분향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친구

 김지민

 

 백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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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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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석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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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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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과 어울림을 지향하는 좋은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