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zine 월간 좋은인연 불기 2547(2003)년 2월호 Vol.3,No.25. Date of Issue 1 Feb ISSN:1599-337X 

 

 

 

 

 

 

 

 

 

 

 사의법(四依法)

범수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들은 대부분은 산 속에 위치하며, 내부에는 훌륭한 전각과 함께 자비로우신 부처님의 상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스님들은 일체중생을 위하여 깨달음을 추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신심을 키우며 불교에 귀의하게 되는데, 그러면 고타마 부처님 당시 스님들의 생활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런 물음을 가지고, 경전에 나타난 당시 생활상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그것은 불교 전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스님들의 생활에 대하여 논의된 책을 통틀어 율장(律藏)
*이라고 하는데, 출가자의 모임인 승단(僧團)의 대소사는 대부분 이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율장의 내용은 '일반인이 출가하여, 승단에 들어오는 의식인 수계의식(受戒儀式) 과정과, 이를 통해 승단의 일원이 되고 난 다음, 해야 할 의무와 권리, 또 교단의 운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북방과,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남방의 율장은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수계의식 등은, 율장 가운데서도 <사분율>에 근거하지만, 남방에서는 <경분별(經分別>, <건도부(건度部)>, <부수(附隨)>의 3 부분으로 이루어진 율장에 의거한다. 이 이외에도 경전의 전래와 번역 과정, 또는 교리 해석이나, 전래된 경전 등에 기인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모두 고타마 부처님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남, 북방의 불교도들은 지역만 달리할 뿐, 고타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추구하는 하나의 승단인 셈이다. 그러므로 일부에서 정열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단순 이분법적인 분류 방식은 오히려 무익하다는게 필자의 의견이다. 물론 학술적인 필요에 의해 그와 같은 연구도 활발히 이뤄져야 하겠지만, 깨달음이 단순히 글자 몇 개 아는것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표현 되어지지도 않는다는것 만큼은 간과해서 안될 것이다.
 삼귀의를 통해 부처님의 제자가 된 사람 가운데, 처음 출가한 사람을 사미(남자), 사미니(여자)라고 하며, 이들은 십계
*를 받은 다음, 일정 기간의 경과와 함께 자격을 갖춘 후 비로소 비구, 비구니 계인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된다. 그리고 재가자는 오계*를 받는다. 이처럼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윤리 덕목인 계를 받아 지키겠다는 수계(受戒) 의식을 통해, 불교 교단의 일원이 되고 난 다음, 그 일원으로서 의무와 권리가 따르게 되는데, 출가자는 재가자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는 법시(法施), 그리고 재가자는 승단을 보호하는 재시(財施)의 관계가 형성된다.
 승단의 구성원을 통칭하여 대중(大衆)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교교단을 가리키는 말로써 이 때 '중(衆)'이란 '화합(和合)'의 의미이다. 즉 '화합된 단체'라는 뜻이다. 그러나 교단(敎團) 또는 대중(大衆)의 구성원을 구별하는데는 이견(異見)이 있다. 흔히 4부대중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4부대중을 출가자인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로 하는 경우와. 사미, 사미니를 포함해서 출가자인 비구, 비구니와 함께, 재가자인 우바새(남자신도), 우바이(여자신도)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율장에 전해오는 출가자인 스님들의 생활 방식을 살펴보자.
 출가자들이 지켜야 할 생활의 원칙을 사의법(四依法)이라고 한다. 이는 고타마 부처님 당시 출가자들의 일반적인 생활 원칙이지만, 각 항마다 예외 조항을 둔 것으로 보아서, 원칙을 위한 엄격주의만을 고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진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출가자는 걸식(乞食)으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승차식(僧次食), 별청식(別請食),    청식(請食), 행주식(行주食), 십오일식(十五日食), 월초일식(月初日食)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2 출가자는 분소의(糞掃衣)에 의지하여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아마의(亞麻衣), 금의(금衣), 야잠의(野蠶衣), 갈의(褐衣), 저의(紵衣)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3 출가자는 수하좌(樹下坐)에 의지하여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정사(精舍), 평복옥(平覆屋), 전루(殿樓), 누방(樓房), 땅굴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4 출가자는 진기약(陳棄藥)에 의지하여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숙소(熟蘇), 생소(生蘇), 유(油), 밀(蜜), 당(糖),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위 인용문 가운데, '걸식'은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식(食)으로, 그 당시 스님들은 일반인 또는 신자로부터의 걸식에 의존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분소의'는 의식주 가운데 의(衣)로써 버려진 헝겊을 모아 옷(가사)을 만들어 입었다. 세 번째 '수하좌'란 의식주 가운데 주(住)인데, 말 그대로 나무 밑이나 바위 같은 곳을 의지하여 잠자고 좌선하는 것으로, 집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마지막 네 번째 '진기약'이란 혹 병이 났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약으로 소의 배설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스님의 생활 가운데 식생활은 원칙적으로 걸식이다. 한편으로는 신자들이나 일반인들의 초청에 의한 공양인 청식(請食)도 이루어졌는데, 그 둘 모두 출가자가 직접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의복 역시 원칙적으로 버려진 헝겊을 이용한 상의, 하의, 외의의 세 벌 이상 가질 수 없지만, 시여자에 의한 시의(施依), 즉 버려진 헝겊이 아니라, 신자나 일반인의 기증에 의한 옷도 가능해졌다. 여기서 버려진 헝겊이거나 시의거나 만족할 줄 알면 되었는데, 스님들의 옷인 가사의 색깔을 괴색(壞色)이라 하며, 옷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색 그대로 지어 입지 않았다. 가사는 시의이건 버려진 헝겊으로 옷을 만들었건 모두 고동색에 가깝게 물들여 입었는데, 이것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색천(色賤)이라고도 한다. 또한 옷감 자체도 원단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길고 짧은 여러 천을 잇대어 옷을 지었는데 이를 도천(刀賤)이라고 한다.
  고타마 붓다 당시 인도의 스님들은 비가 많이 오는 우기(雨期) 때, 90일 동안 한 곳에 모여 단체생활을 하였다. 이를 안거(安居)라고 하는데, 이 기간이 끝나면 포교하러 갔다가, 다시 안거 때가 되면 모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안거지의 정주화와 시설의 항구화가 필요하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큰 가람(사찰)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이상 이와 같은 생활 방식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구분하는 것이며, 또한 출가자가 다시 세속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출가자라면, 시대나 환경과 무관하게 기본정신에 충실해야 할 것이며, 재가자 역시 이와 같은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불교교단은 계속 청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새의 양 날개처럼 내호(內護 출가자)와 외호(外護 재가자)가 동시에 고타마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한 삶을 몸소 실천할 때 만이, 불교의 자비와 깨달음은 말 없이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 율장
계(戒)란 잘못을 막고, 악을 그치는 것으로, 마음을 제어(制禦)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며, 부처님 제자로서 해서는 안되는 행위를 밝혀 놓은 것이다. 그리고 율(律)이란 상황에 따라 계의 경중(輕重)을 염두에 두고 개차(開遮)하지만, 지키(守護)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며,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행위를 밝혀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책들을 통틀어 율장이라고 한다.
*사미십계
 1. 살생하지 말라는 불살생계(不殺生戒). 2. 훔치지 말라는 불투도계(不偸盜戒). 3. 음행하지 말라는 불음계(不邪淫戒). 4. 거짓말하지 말라는 불망어계(不妄語戒). 5. 술 마시지 말라는 불음주계(不飮酒戒). 6. 향수나 꽃다발을 바르거나 치장하지 말라는 불도식향만계(不塗飾香만戒). 7. 노래와 춤을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는 불가무관청계(不歌舞觀聽戒). 8. 사치스럽고 화려한 자리에 앉거나 눕지 말라는 불좌고광대상계(不坐高廣大牀戒).  9. 때 아닌 때 식사를 하지 말라는 불비시식계(不非時食戒). 10. 금이나 은 등의 보물을 받거나 비축하지 말라는 불착지생상금은보계(不捉持生像金銀寶戒). 이상은 모두 우리의 신체, 언어, 생각을 다스리기 위한 것으로, 금지의 명령보다는 자발적인 요청이어야 할 것이다.
*재가오계
위의 사미 십계에서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

 

 

 

 반지의 제왕

 조혜숙

 위대한 전설 반지의 제왕. 제 2막 두 개의 탑은 존 로널드 톨킨 원작의 대 서사시로 그 스케일의 방대함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영화화될 수 없었고, 또 과연 영화로 만드는 것이 꿈일 뿐. 현실 불가능할 거라는 사람들의 추측에, 감독인 피터 잭슨은 보란 듯이 너무나 훌륭하게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꼭 작년 이맘때 개봉을 하였고 1년만에 2편을 개봉하였으나, 사람들이 한결같이 기대하고 있음에 조금이라도 실망을 주기는커녕, 더 재미있어 하고, 또 다시 내년 이맘때의 3편을 기대하게 되는 영화로 확실한 자리 매김을 한 경우만 보더라도,얼만큼 재미있는

 영화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 반지의 제왕이 현대의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마침내 영화화되어 지금 2편째의 개봉을 맞이하였습니다.
 원정대는 사우론의 사악한 추격으로부터 반지를 지켜내지만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프로도는 충복 샘과 함께 반지를 가지고 불의 산으로 향하다가 반지의 옛 주인이였던 골룸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우르크하이에게 잡혀갔던 메리와 피핀은 나무의 요정인 엔트족의 구출을 받게 됩니다. 납치된 호빗들을 구하려고 우르크하이 군대를 추격하던 아라곤과 레골라스, 김리는 부활한 마법사 간달프와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 "사우론이 암흑세계의 두 탑을 통합해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고, 사루만이 로한을 점령한다면, 중간계는 단 숨에 사우론의 지배하로 떨어지게 될거"란 사실을 듣게 됩니다. 한편 백색의 마법사로 다시 살아난 간달프는 로한의 왕 세오덴을 지배하던 사루만과의 격돌에서 승리하고, 마법에서 풀려난 세오덴왕은 아라곤과 일행의 도움으로 로한 백성들을 이끌고 천혜의 요새라는 헬름 협곡으로 향하지만, 그들의 군대는 단 300명. 1만이 넘는 사루만의 군대와 싸우기엔 도저히 불가능하기만 합니다. 그들은 과연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반지의 제왕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기 입니다. 3000년 전의 전투에서 사라져야 했던 악의 제왕 사우론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반지와 함께 살아 남았고, 영화 속의 '현재'에서도 반지는 끝없이 그 소유자와 주위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최고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한때 반지의 소유자였던 골룸은 원래는 프로도와 같은 호빗족의 스미골이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속에 있던 또 다른 자신... 의심 많고 탐욕스러운 골룸에게 몸을 빼앗기고 끊임없이 반목을 거듭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준 프로도를 믿고 그를 도와주다가도, 뒤돌아 서서는 그에 대한 살의를 불태우는 골룸..
 원작자 톨킨은 이런 골룸의 모습을 통해 욕망 앞에서 나약하고 이중적인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문제들은 생각하지 않더라도 '반지의 제왕2 - 두 개의 탑'은 보는 즐거움을 만족 시켜줘야 한다는 영화의 제 1 원칙에 그 무엇보다도 충실한 영화입니다. 어디부터가 컴퓨터 그래픽인지도 분별하기 힘들만큼 리얼한 온갖 종류의 특수 효과와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 이입을 쉽게 해주는 명확한 선과 악 대립의 스토리 구조 등등..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하고 있는 '헬름 협곡의 전투'는 3시간에 걸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영화 내내, 온통 헬름 계곡에서 마치 내 자신이 전사가 되어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고 나온 것처럼, 영화 사상 가장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음에 행복했습니다.

 

 

 

 

성주

         불교의 보시(布施)사상과 사회복지
                                      -성주-
Ⅰ. 서론
Ⅱ. 개념정의
Ⅲ. 불교사회복지사상과 실천방법
Ⅳ. 불교사회복지사상과 실천의 경전적 근거
 (1) 자비사상
 (2) 복전복리사상(福田福利思想)
 (3) 보시사상(布施思想)
Ⅴ. 결론
 

Ⅰ.서론

 불교와 사회복지의 공통점은 인간과 인간이 처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인간을 고통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하는데 목적을 두며, 사회복지는 인간이 처한 상황이나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행복을 도모하는 데 목적을 둔다.
 미치하타 료슈(道端良秀)는 불교사회복지의 종교적인 측면에 대해, "불교는 해탈(解脫)의 종교, 자비의 종교이며, 철학적으로는 고(苦),공(空),무상(無常),무아(無我)를 통찰하여 완전한 인격자, 불타가 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며,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사람은 객체적 계기로서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며 동시에 주체적 계기로는 정신적 지주로서 자비를 필요로 하는데, 이 자비라는 것은 인간상의 바탕이 되는 것이고 사회적 인식을 위한 선행 조건으로 개개인에 의하여 개발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사회복지나 나아갈 방향은 사회보장이 완벽하고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회에서 오히려 인간 소외의 현상이 많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자각적인 삶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또한 일반 사회복지의 모순을 극복하고 보완하여 인간 중심의 진정한 사회복지를 완성해 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불교 사회복지는 그 근저에 "열반(涅槃)을 지향하고, 보시(布施)를 통해 이타(利他)의 사회로 나아가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의 해탈을 목표로 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불교 사회복지는 종교의 특성을 살려 자선 구제사업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근 현대에 와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빈곤과 질병 환경 등 심각한 병리현상이 야기됨에 따라 근대적인 사회사업으로 성격을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현대의 사회복지로 발전하기 위해서 여러 현상들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자선사업의 단계에서는 장애를 겪고 있는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 개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근대 사회사업의 단계에서는 복지 활동의 주체는 장애를 가진 대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자선사업에서는 복지의 주체와 대상이 은혜를 베풀고 시혜를 받는 상하의 종적인 관계였지만, 사회사업에서는 권리와 의무라고 하는 횡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에 기인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문옥선

  영화를 보려고 집을 나섰으나, 그냥 들어오고 말았다. 집 안과는 달리 밖은 너무 추웠고 게다가 맑은 하늘에 눈발까지 날리며, 바람도 세차게 불어와 온몸이 움츠려 들면서 그저 따뜻한 방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누구와 약속을 한 것이 아니기에 가기 싫으면 안 가면 그만 이지만, 그래도 추위에 몸을 사리는 것을 보면, 이제야 몸뚱이의 고마움을 아는 것도 같다.
 언젠가 감기를 호되게 앓은 적이 있다. 보름 이상을 싸매고 누웠는데 얼마나 심하게 앓았던지, 지금도 병중에 제일 무서운 것은 감기라고 여길 정도이고, 다른 이들한테도 "감기 조심하라"고 입버릇처럼 이르고 있다. 이렇게 된통 앓고 난 후로는, 바람결이 조금만 쌀쌀해도 패션과는 상관없이 목에다 스카프나 머플러를 매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내가 외출을 쉽게 포기 해버린 데는 추위 탓 보다는 실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연초에 경미한 차 사고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함박눈이 담뿍담뿍 내리던 어느 날....내리는 눈만 바라보면 그렇게 환상적일수가 없는데..., 눈  내리는 날 막상 운전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 미리 알았어야만 했는데....
마치 샛노란 은행잎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아스팔트 위로 나뒹굴 때, 청춘남녀들의 가슴은 울렁거려 좋을지 몰라도, 미화원 아저씨들의 걱정스러운 마음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즐기기 위해서 운전을 한 것만은 아니다.
 비록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저녁이라 집에 가야만 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눈 쌓인 고갯길을 넘는 운전을 한 것이다.
 출발지에서 고갯마루의 터널을 통과해, 집에까지는 도착하는데는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짧은 거리였고, 항상 다니는 길이라 눈에 익은 익숙한 길이었다. 그러나 체인을 감지도, 더군다나 폭설이 쏟아지는 날 운전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또 하나 가야만 했던 이유를 꼭 대야한다면, 눈길 운전을 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날은 내가 집에 돌아갈 즈음부터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눈은 삽시간에 쌓였다.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차에 올랐다. 그러나 출발 후 100m도 가기 전, 난 무모한 내 행동에 대하여 후회를 해야만 했다. 앞이 점점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거짓말처럼...... 더더욱 다른 차도 보이질 않고, 자주 다니던 길이었건만, 어디가 중앙분리대고, 중안선인지 거의 구분조차 할 수 없이 시야는 흐려져만 가고, 나의 공포심은 커져만 갔다. 그러니 난100m를 사이에 두고 천당과 지옥사이를 오간 셈이다.
 유행가처럼 몇 미터 앞에다 두고 돌아설 수 있는 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내 두려움과는 상관없이 그 밤의 눈은 더 많이, 더 세차게, 더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마을을 지나고서부터는 불빛하나 보이지 않고, 깜깜한 밤중에 그것도 허허벌판에 나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극도의 공포감에 숨막혔다.
 희다 못해 파리한 빛깔의 하얀 눈송이가 이렇게 암흑천지로 변할 줄이야. 출발할 때의 자만심과 설렘은 공포심으로 뒤바뀐 채,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순전히 감각에 의존하며, 아주 천천히 살기 위해서 차를 몰았다. 어차피 길 한복판에 멈춰 설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차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보낼 수 있는 신호는 다 보내면서 얼마나 갔을까, 저만치 희미한 불빛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차 한대를 발견한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도깨비 불빛이었더라도 상관없이 반가웠을 것이다.
 안도감과 위안을 느끼면서 천천히 가다보니 터널이 나타났다. 곧 이어 나타날 내리막길만 지나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내 뒤의 저 만치서 불빛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혼자는 아니었다. 그 불빛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터널을 막 통과하고 내리막길로 접어드는데, 탑 차 한대가 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걸 본 나는 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터널을 통과하자 뒤따르던 서너 대의 차들은 더 가까이 다가와, 우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치 한 덩어리 마냥 내려가는 형상이 되었다. 출발하면서부터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말이 있었다. "눈길에서는 절대로 브레이크를 밟아서는 안 된다." 절대로....
 난 "절대로 브레이크에 발을 대지 말자", 계속 뇌까리며, 온몸의 신경을 곧 세워가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내리막 길에서 커브를 도는 순간, 저 만치 앞에 서있던 승합차를 발견하곤 순간적으로 피해야 된다는 생각에 그만 브레이크에 발을 대고 만 것이다. "아!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차는 내 통제를 벗어났다. 그러기에 브레이크에 발이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핸들을 돌려봐도 내 의도와는 정반대로 돌아가는데, 얄미울 정도였다. 내 입에서는 “어머나, 어쩌면 좋아, 어떡해, 나 어떻게... 아! 네가 내 말을 안 들으니 나 어떡하니..." 하면서 걱정도 되지만, 한편으론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낭패감과, 꼭 남에게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기껏 잘 내려왔는데 이게 뭐람. 내가 지금껏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왔는데. 결국 여기서 이게 무슨 꼴이람." 다른 사람이 안다면... "그러게 무모한 행동은 말았어야죠. 아니, 눈이 그렇게 쏟아지는데, 기어코 운전을 했단 말인가요?” 이렇게 수군댈 것만 같았다.
 사실 그건 다른 이한테가 아닌, 내 스스로를 질책하는 소리였다. 나서질 말았어야 했다. 무모한 도전이었기에....아마 성공적으로 눈길 운행을 마쳤다고, 으스대고 싶어서 그랬을까? “아! 엊그제 그 폭설이 내리던 날 말인가요? 저도 그곳을 한 시간이나 걸려서 통과했지 뭐에요.” 이렇게... 꼭 그렇지는 않았더라도 아마 내 마음속에는 어리석게도 오만한 마음이 자리했을 것만 같다.
 차는 다리 난간에 부딪쳐 "뿌지직"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착 돌아서 섰다. 마치 누군가의 조작으로 할 일을 다해 마친 것처럼 말이다. 난 차안에서 대책 없이 지켜볼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 사이 뒤에서 오던 차들은 옆으로 스르르 밀려 내려가고, 난 그렇게 그곳에 홀로 남겨졌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밤에........".그 누구라도 이 위험한 눈길을 헤치고 이곳에 와 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하다 못해 레커차도 아마 내일 제설작업을 마쳐야만 올 수 있을 것이다. "걸어가야 할 텐데..." 아니 무엇보다도 그 고갯길에 나 혼자만 남겨졌다는 사실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멍한 채 한참을 보낸 후, 사고소식을 알리느라 통화를 하는 중에 "시동은 걸려?" 라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예전에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도 그랬다. 주행시험에서 시동을 한번 꺼뜨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어찌할 바를 몰라 넋을 놓고 있을 때, 시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빨리 시동을 걸고 다시 출발하세요."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던 기억이 났다.
 난 마음을 가다듬고 차 상태를 살폈다. 내려가기 위해서는 차를 제 위치로 돌려야만 했다. 천천히 후진을 해보니, 차는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기분을 무엇에 비유해야만 할까. 마치 어릴 때 큰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님께 혼날 것이 두려워 떨고 있는데, 부모님께서는 뜻밖에 인자한 미소를 보이시며,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된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용서해주실 때 느꼈던 그런 안도감 같은 것이라고 할까. "잘못의 댓가는 두려움에 떨었던 것으로 이미 치렀으니, 이 일에 대해선 더 이상 얘기 않겠다"는 말씀처럼. 마치 크나큰 잘못에 대해 면죄를 받은 느낌이었다. 바로 내 무모한 행동에 대한 후진을 할 수 있으니, 전진을 못하랴....
 처음 차가 난간에 부딪혔을 때 "뿌지직"하고 요란한 소리를 낼 때, 차 앞 쪽이 크게 부셔졌을거라고 여겼고, 또 그 여파로 운행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지례 짐작한 것이었다. 보통 차안에서는 조그만 돌맹이 튕기는 소리도 크게 들리니 말이다. 그런데 사방이 고요한 그 시간에 통제를 벗어난 차가 난간에 부딪치며, 옆으로 서버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들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 심정 오죽했겠는가.
 처음 겪어본 이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황을 대충 수습하고 정신을 차려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한 시간만에 집에 도착하여 차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정비 상식이 없으니 그저 육안이나마 살펴볼 수밖에... 운전석에서 내린 후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았다. 눈길에서 운전할 때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그런데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이럴 수가 마치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런데 조수석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차 상처를 발견했다. 범퍼는 뜯겨지고, 라이트는 깨지고, 물받이는 찢어져 뼈대가 들어 난 차를 바라보고 있자니, 상처 난 살갗을 보는 것 같이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상처는 그 뿐이었다. 차는 다음날 집 근처의 카센터에서 수리가 되었다.
 자연의 위대함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다니. 스스로 화를 자초한 나의 무모한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지금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난간 아래는 낭떠러지였다. 차가 조금만 속력을 냈더라도, 난 난간 밖으로 튕겨져 나갔을 것이고, 그러면 아마 지금 이 글을 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 차가 난간을 친 다음 옆으로 서지 않고 계속 굴렀다면, 감당 못할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 번 눈길 운전은 내 오만한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도 되었지만, 집에 들어와 생각하니 뭔지 모를 뿌듯함도 일었다. 그건 마치 어렵고 힘든 난관을 극복한 후 느끼는 심정과 같다고나 할까.
 어려운 일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웠으니, 이 또한 큰 소득이 아니겠는가. 위기 상황일수록 침착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 또한 평소의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으니....
 다음날 뜻밖에도 내가 사는 곳을 일 때문에 찾게 된 지인과 반가운 해후를 하게 되었다. 흩어지는 눈발을 바라보며 함께 차를 마셨는데, 어제의 사고 탓이었을까, 만남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때의 상황을 되돌아 보았다. 그리곤 그 날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왜 난 부처님의 명호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게을러진 탓에 수행을 않으니 염송이 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때 내가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 '석가모니 부처님', 아니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 했더라면 불자로서 좀 떳떳했을 것만 같다. 그동안 말로만 불자입네 하고선, 수행인들 제대로 했었던가, 열심히 절에 다니기를 했던가. 어느 때일까, 기도의 끈을 놓쳐버린 것이.....이번의 사고는 불자로서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금년에는 늦추었던 수행의 고삐를 당겨서 정진하는 해로 삼고 싶다. 그래서 순간순간 부처님의 명호를 떠올릴 수 있도록, 순간순간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갖도록 사랑하는 해로 살아가고 싶
다. 

 

 

 

 겨울켐프

장남지


<차 안에서 아이들이랑>

'연령은 3세 아동 정도이며, 겁이 많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식사는 도움이 필요하고, 대소변을 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은 가능하나, 뒤처리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주 소극적이고 활동은 느린 편이며,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지만, 동요를 좋아하는 성향입니다.'
 2003년 1월 15일부터, 16일까지 1박 2일 동안 저와 함께 생활했던 영주라는 9살 남자 아이의 행동 특성입니다.

 창원 특수교육센터의 주최로 장애 아동 캠프가 경주에서 있었습니다. 인원은 한 아동의 책임 보조 교사 역할을 하는 20명 정도의 자원 봉사자와, 특수 아동을 포함한 50명 가량이었습니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아동들은 작게는 4살부터 14살까지의 경증 장애 아동들이고 대부분이 이 센터에서 교육을 받는 아이들입니다.


<약 먹는 시간>

 경주로 가는 차안에서 저는 1박 2일 동안 영주와 잘 지내보기 위해 우선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 말도 걸어 보고, 손도 잡아 보았지만, 저를 슬쩍 한번 쳐다볼 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영주는 경증의 자폐 아동이었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나,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차 안에서 한 동안 밖만 바라보던 영주가, 제가 부르던 동요 노랫소리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기억하고 있던 부분을 천천히, " 아빠-얼굴- 그리고 나니-- 잠이 들고 말았어요∼♬"를 따라 부르면서 저와 눈을 마주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 저를 알아보는 것 같아 너무 기뻤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휴게소에 들러 각 아동의 어머니께서 싸 주신 김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영주는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씹지도 삼키지도 않고 30분을 저와 실랑이를 했습니다. 제가 "냠냠∼" 하면, "냠냠∼"하고, 말만 할 뿐 씹지도 않고 "꿀꺽∼"하면, "꿀꺽∼"하고 말 만하고, 삼키지 않아서 무척 애를 태웠습니다. 그러기를 한 참 지나 영주는 자기가 좋아하는 귤을 입에 넣고 나서야, 비로소 입안에 음식을 삼켰습니다.
 특수 아동들을 둔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과잉보호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로 인해 편식을 조장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나서, 우리들은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준비를 마치고, 행사 계획에 따라 경주 놀이 공원에 있는 눈 썰매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낮은 유아용 눈 썰매장에서 영주를 앞에 태우고 신나게 한번 내려왔죠. 그런데 그만 영주가 겁을 먹었나 봅니다. 제 손을 뿌리치고는 눈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가버리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같이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한번 겁을 먹은 이상, 더 이상 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어 담당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영주와 둘이서 놀이 기구를 타기로 했습니다. "영주야, 저거 탈까?.." 라고 물었을 때, "타 볼까..." 라고 얘기하면, 타자는 의미고, 대답을 하지 않고. 딴 곳으로 가 버리면 싫다는 의미였습니다. 영주는 묻는 말에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였으므로, 이 정도라도 말을 주고 받게 된 것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의사 소통을 하면서 두 시간 정도 함께 탄 놀이 기구는 단 2개였습니다. 하지만 영주와 많이 가까워진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영주가 나를 보며 "쉬이∼" 합니다. 순간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영주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영주가 좋아하는 자세> 

밖에서는 음식을 조금 밖에 먹지 안는다는 영주 어머님의 말씀과는 달리 점심때 많이 먹지 않아서 인지 주는 대로 잘 먹습니다. 그 때 만큼은 영주가 얼마나 대견하던지...이런 아이들에게는 식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특수아동에게는 특히 이 식사하기가 중요한 학습이기 때문입니다. 씹기와 삼키기,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까지 이런 동작들은 아동들의 뇌 기능 촉진은 물론, 사회 기능을 익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수 아동은 장애 유형에 따라 약을 먹는데 영주는 아침 저녁으로 경기약(驚氣藥)을 먹었습니다. 약 먹기를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젓하게 물약과 가루약을 잘 먹었습니다. 그리곤 피곤했던지 좋아하는 동요를 두 세 번 듣고서는 금새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노래 부르기를 중단하고 잠자리를 다시 챙겨주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영주는 일찍 일어나서 인지 조금 짜증을 부리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간식으로 쵸콜릿을 나눠 먹으며 즐겁게 동요도 불렀습니다. 저는 그렇게 짧은 일정 속에서, 길었던 영주와의 캠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캠프를 마치면서, 다시 한번 특수교육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수 아동들에게 일 더하기 방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씹는 방법과 삼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렵고, 글을 읽고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아픔을 아프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할 수 있어야 하는 행동들이기에 더욱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눈 설매장 갔다 온 후>

사람들은 그들이 글을 읽지 못하고 셈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그것보다 더 어려운 씹고 삼키는 방법을, 그리고 여러 가지를 느끼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들의 생존 방법이기에 숭고한 것이죠.
 지금 우리들이 바라보는 따뜻한 관심은 아마도 그 아이들이 사회에서 배운 것을 행하려 할 때, 좋은 배려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미연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정치와는 무관하게, 전시회만을 목적으로한 대통령 후보 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전시회를 같이 열기로 한, 다른 두 사람은 대통령 후보 가운데 노무현, 권영길씨의 일정에 따라 여러 모습을 담았고, 난 이회창 대통령 후보를 사진에 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그의 일정에 맞춰 다니면서 새로운 모습들을 접하게 되었고, 또 호감도 가지게 되었다.
 항상 엘리트에 딱딱한 이미지로만 여겨지다가, 문득 그에게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모습에 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동안 어려움도 있었지만, 우리는 계획대로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개표방송과 더불어 서울 대학로에 소재한 상명대학교 예술대학원 자하홀에서 전시회(2002년 1월 20~26)를 가졌었다. 그 가운데 몇 작품을 이곳에 소개하고자 한다.
 

 

 

 

 창경궁

도난주

 10월의 단풍을 이야기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해가 바뀌고 1월 달에 접어들었습니다. 다들 안녕하시지요.
궁궐 안내 가운데서도 1월의 겨울은 무척 힘든 시기입니다. 매서운 바람에 웃는 얼굴로 열심히 안내를 하지만, 당기는 피부~ 하여튼 겉옷에 있는 주머니에 어떻게든 손을 숨기게 됩니다. 그러나 전자잡지 월간 좋은인연에서는 추위를 느끼지 않고 만날 수 있어 좋습니다.

 작년 10월호까지는 창경궁의 외전을 중심으로 소개해 드렸는데, 이어서 머물렀던 발길을 내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창경궁의 빈양문을 나서면 큰 소나무가 문의 중심에 떡 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조경 문화로 보아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그 곳에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일제시대 때, 외전과 내전의 정기를 끊으려고 하였던 일본인들의 의도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사진: 빈양문 밖의 소나무)

여기서 시선을 평행으로 유지하고 앞을 보면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가 되는 담을 볼 수 있습니다. 창덕궁은 경사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창경궁을 내려다 보는 형세입니다.
  창경궁의 내, 외전을 구분하는 빈양문을 빠져 나와 내전으로 들어서서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인 담을 본 다음, 그 상태에서 오른쪽 즉,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함인정이라는 정자가 보입니다.
(사진: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인 담)

이곳은 임금이 후원에서 과거 시험을 치른 선비들 가운데 성적이 좋은 사람들을 격려하며 연회를 베풀던 곳입니다.
 격자형의 마루와 천장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루는 중심의 단을 높여 임금의 자리인 어좌로 이용되었습니다.
(사진: 함인정)

 함인정의 오른쪽으로 왕족들의 생활 공간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환경전은 중종이 승하하였던 곳으로, 왕이나 세자들이 이용하던 남자들만의 공간이었습니다.
 왼쪽으로 보면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경춘전이 있는데 이곳은 여자들의 공간으로써 사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건물입니다.
(사진: 환경전)

특히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괴롭히기 위해 건물 뒤에 인골을 숨겨 놓았던 곳이 바로 지금 환경전의 뒤뜰이기도 합니다.
(사진: 경춘전)
 경춘전을 지나 시선을 조금 북쪽으로 옮기면, 중전이 기거하였던 공간인 통명전을 볼 수 있습니다.

 (통명전은 건물 보수 관계로 사진을 찍지 못하였습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통명전은 내명부의 중심으로 중전의 역할이 기대되던 곳인 만큼 건축적으로도 차별화 되어있습니다. 월대가 나와 있으며, 드므가 양쪽 월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생활을 고려하여 왼쪽에는 인공 연못과 다리, 그리고 여러 가지 석조물, 화단 등이 꾸며져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임금과 중전이 함께 기거하는 공간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용이 한 지붕에 두 마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용마루(Tip : 지붕 위의 흰 부분)를 제거 되어있습니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양화당이라는 단아한 건축물을 접할 수 있습니다만, 다음 호를 위하여 남겨 두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왕족들이 기거하였던 공간의 일부를 둘러보았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양화당과 임금이 농사를 짓던 곳인 내농포, 그리고 해시계 등을 중심으로 창경궁 소개를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 하시구요. 마음이 따뜻한 겨울이 되셨으면 합니다.
(사진: 양화당)

 

 

 

이집트

채선화

  이집트의 겨울은 우리 나라의 여름만큼이나 덥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집트의 겨울을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여름에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건, 순전히 습한 기후 때문인데, 그런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습함이 없다면, 그리고 이집트의 고온 다습한 여름을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나름대로 좋은 조건에서 우리는 이집트를 종단했다.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 나일강이 바로 이집트 자체라는 사실은 과거엔 더 당연한 사실이었겠지만, 지금의 이집트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의 북에서 남으로, 다시 남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여행 경로는 이집트를 여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거스르지 않는 코스였고, 또 어느 숙소에 머무르든 나일강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카이로에서 룩소르 그리고 아스완까지 거의 기차로만 이동했다. 가장 남쪽 여행지인 아스완에서 다시 북으로 올라갈 때, 기차가 아닌 배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목적지는 콤옴보라는 곳이었고 아스완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이다. 문제는 배를 이용하면 1박 2일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꼽는다는 사람들의 말에 선택의 여지없이 택한 코스였다.  
 펠루카라는 이름을 가진 배. 한국의 돛단배를 생각하면 될 듯하다. 1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배인데, 순전히 바람을 이용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배의 본체에 비해 상당히 큰 돛이 달려 있다. 한 배를 탄 사람들은 나와 동생을 포함한 한국인 5명과 스위스에서 온 노부부 그렇게 아홉 명이었다.
 한국인들만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몰려다니는 성향이 있는 듯하다. 나 역시 그 분위기에 한껏 젖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오랜 여행중에 그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은 여행의 장점인 여유로움을 한껏 느끼고 싶다면 말이다.
 솔직히 배 위에서의 여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화장실 문제를 비롯해서 땡 볕에 종일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힘들어서 일까, 아니면  너덜 너덜한 천막 아래에서 올려다본 그림 같은 밤하늘을 보며 보낸 혼자만의 시간 때문일까... 기억 속에만 자리잡은 게 아니다. 피부로 느끼는 촉감까지도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내 발로 직접 걸어서 힘들었지만, 개척하는 마음으로 강행해왔던 여행이었는데, 배 위에 오르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때가 되면 선장이 해주는 이집트 토속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는 게 전부였다.
 선장까지 포함해 10명, 모두 똑같은 환경에 처해 있었지만 대처하는 방법은 모두 달랐다. 그러나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모습만은 마지막까지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었다. 다들 여행자들의 특권을 알고 또 누리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내내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노부부의 모습은 눈빛으로 대화하는 듯 거의 말이 없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누구보다도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건축을 전공하는 한 친구는 여러 나라의 건물 모습을 담은 디지털 카메라로 잠깐이지만, 나의 무료함을 달래 주었다. 건축 관련 지식이 없음을 감안해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 주었는데, 그 속에서 그 친구의 인생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단편들을 눈과 가슴속에만 담아온게 아님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다. 촉감으로 전해지는 순간들은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여행을 다녀온지 여러 달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따스한 햇살에 몸을 녹이고 있을 때, 예사롭지 않은 설레임과 감동이 밀려왔다. 그 순간 내 몸은 카파도키아에서 맞은 상쾌한 아침 공기와 햇살을 감지한 듯 했다. 아마 이 감동적인 순간들을 그렇게 자주 오랫동안 즐기긴 힘들 것 같다.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추억들이 희미해 버리기 전에 또 다른 감동의 순간들을 또 다른 곳에서 담아오고 싶다.

 

 

受持
讀誦

 

 백유경

편집부

    전자잡지 월간 좋은인연에서는 경전 읽기의 일환으로 <백유경>을 편역(編譯)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백유경(百喩經)>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간결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녀노소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교의 바른 수행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백유경>은 '백가지의 비유'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라는 뜻으로 A.D.5세기경 인도의 상가세나(Sanghasena)스님께서 어렵고 복잡한 전문 용어가 아니라 일상 생활을 비유로 들어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이 경전은 모두 4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실제로는 100가지의 비유가 아니라 98가지입니다. 그리고 <백유경>은 <백구비유경(百句譬喩經)>,또는 <백구비유집경(百句譬喩集經)>이라고도 하는데, 구나부릿디(Gunavrddhi)스님께서 서기492년에 한역(漢譯)하셨습니다.

 

百喩經卷第一                                                                     尊者僧伽斯那撰
                                                                                                        蕭齊天竺三藏求那毘地譯
愚人食鹽喩 愚人集牛乳喩 以梨打破頭喩 婦詐語稱死喩 渴見水喩 子死欲停置家中喩 認人爲兄喩 山羌偸官庫喩 歎父德行喩 三重樓喩 婆羅門殺子喩 煮黑石蜜漿喩 說人喜瞋喩 殺商主祀天喩 醫與王女藥令卒長大喩 灌甘蔗喩 債半錢喩 就樓磨刀喩 乘船失釪喩人說王縱暴喩 婦女欲更求子喩

(一) 愚人食鹽喩
昔有愚人至於他家.主人與食嫌淡無味.主人聞已更爲益鹽.旣得鹽美.便自念言.所以美者緣有鹽故.少有尙爾況復多也.愚人無智便空食鹽.食已口爽返爲其患.譬彼外道聞節飮食可以得道.卽便斷食或經七日或十五日.徒自困餓無益於道.如彼愚人.以鹽美故.而空食之.致令口爽.此亦復爾


1. 소금만 먹은 사람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집에 가서 그 집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는, 싱거워 맛이 없다고 불평하였다. 주인이 이 말을 듣고는, 음식에 소금을 넣어 주었다. 그러자 어리석은 이는 소금을 넣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는 생각하였다.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 것은 모두 소금 때문이다. 조금만 넣어도 맛있는데, 만약 많이 넣으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무지한 그는 공복에도 소금을 먹었다. 그 결과 입안은 상쾌했으나, 오히려 병이 나고 말았다.

비유컨대, 마치 외도들이 음식을 절제하여 도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일주일 또는 보름 동안 음식을 끊은 결과, 도리어 피곤하고 배만 고플 뿐 깨달음을 얻는데는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과 같다. 소금이 맛있다고 생각하여 공복에도 소금만 먹어 입은 상쾌해졌으나, 결국은 병이 난 것처럼 이 역시 그와 같다. 

 

(二) 愚人集牛乳喩
昔有愚人將會賓客.欲集牛乳以擬供設.而作是念.我今若豫於日日中穀取牛乳.牛乳漸多卒無安處.或復酢敗.不如卽就牛腹盛之.待臨會時當頓穀取.作是念已便捉牛母子.各繫異處.却後一月爾乃設會迎置賓客.方牽牛來欲殼取乳.而此牛乳卽乾無有.時爲衆賓或瞋或笑.愚人亦爾.欲修布施.方言待我大有之時.然後頓施.未及聚頃或爲縣官水火盜賊之所侵奪.或卒命終不及時施.彼亦如是


2. 말라 버린 소젖
 어떤 사람이 손님을 청하여 소의 젖을 대접하려 하였다. 그는 "내가 날마다 소젖을 짜두면 소젖은 점점 많아져 둘 곳이 없을 것이다. 또한 맛도 변해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보다는 소젖을 소 뱃속에 그대로 두었다가 필요한 때, 한꺼번에 짜는게 낫겠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곧 어미 소의 젖을 못 먹게 하기 위하여 새끼 소를 따로 떼어 두었다.
 한 달이 지난 후 손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리곤 소를 끌고 와서 젖을 짜려고 하였지만, 소의 젖은 말라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손님들은 성을 내거나 혹은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내게 재물이 많이 쌓인 뒤에 한꺼번에 보시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재물을 모으기도 전 수재나 화재, 혹은 도적을 당하거나, 갑자기 목숨을 마쳐, 보시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보시도 항상 인연 닿는대로 해야만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 재물을 모은 뒤 한꺼번에 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소젖을 한꺼번에 짜내려는 것과 같다.

 

 

 

절기
풍속

 

 중화절(中和節)과 머슴날(奴婢日)

편집부

 우리나라의 명절(名節)은 대부분 길일이나, 24절기와 연관되어 있다. 먼저 길일은 양수(홀수)가 겹치는 날(중양(重陽))로 설날인 1월 1일, 삼짇날인 3월 3일, 단오인 5월 5일, 칠석인 7월 7일, 9월 9일 등이다. 그리고 절기상 보름인  정월 대보름인 1월 15일, 하원(下元)인 4월 15일, 유두(流頭)인 6월 15일, 백중날(中元)인 7월 15일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작은 설인 동지절(冬至節), 2월 초하룻날인 중화절(中和節), 한식(寒食) 등이 있다.
 명절은 한 나라의 민속적 요소와 계절적 요소등이 내포된 것으로, 때가 되면, 조상 섬기기와 제(祭) 등을 지냈으며, 설빔이나, 단오빔과 같이 그 때에만 입는 옷을 장만하였다. 또한 절식(節食)과 같이 그 때에만 먹는 음식을 마련하고, 그네뛰기 등과 같이 놀이나 행사 역시 그 때에만 하는 것으로 가족이나 마을의 공동체 의식을 높였다.
월간 좋은인연에서는 매월, 그 달에 해당되는 명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방법은 양력 1월과, 음력 1월을 같은 달로 취급하여, 그 달에 드는 명절을 간략히 요약하고자 합니다.

* 중화절(中和節)과 머슴날(奴婢日) *
 
음력 2월 1일, 만물은 중화에서 자라난다고 하여 농사를 시작하는 날로, 집안청소를 하고 떡을 하여 나눠 먹었으며, 특히 머슴날이라 하여 일꾼들을 잘 먹였다. 또 이 날 지방에 따라서는 성인식을 겸했다고 하는데, 당년 20세가 되는 청년들은 동네 어른과 일꾼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어야, 비로소 성인 취급을 받고, 어른들과 같이 품앗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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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절(中和節)과 머슴날(奴婢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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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nthly Web Magazine DHARMA(ISSN: 1599-33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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