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10월 8일> 범수스님 - 복권과 복-

 ‘오월농부 팔월신선(五月農夫 八月神仙)’이라고 하듯 가을들녘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씨 뿌리고 열심히 가꾼 사람은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분은 추운겨울을 대비해 복권이라도 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복권 열풍은 한 풀 꺾인 것 같지만, 당첨에 대한 기대만큼은 여전할 것 같다.
 복권에 대한 열기가 광풍처럼 우리사회를 휩쓸고 지나갈 때, 대화의 중심에 ‘누가 얼마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내심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쉬움을 숨기면서 말이다. 이런 사회현상에 대해 관련 종사자는 “기금 마련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겠다.”며 사행성과 무관한 것처럼 선전했다. 그리고 시류에 잘도 편승하는 일부는 확률을 들먹이며, 마치 과학실험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면서 열병이 번지는데 한 몫 했다. 그런 여파 때문인지 여전히 ‘어디에 가면 잘 된다. 또 어떻게 하면 잘 된다.’며 복권에 대한 저마다의 소신을 늘어놓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그렇게 잘 알면 본인이나 하지..."라는 냉소 섞인 핀잔을 듣는다는 것을 알 텐데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사실 어떤 일이든지 자기가 제일 잘 아는 것처럼 떠벌리는 분류들은 대부분 그럴싸한 말로 꾸며대며 현혹시키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되짚으면 금방 그 실체가 탄로 나기 일쑤다.
 한편 복권을 구입하면서 당첨되면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자신보다는 우선적으로 남을 위해 쓰겠다고 한다. 정말 말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천신만고(?) 끝에 얻은 당첨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쓸 줄 안다면, 평상시에도 그런 마음을 가졌을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적던 많던 ‘기부’는 뉴스거리며, 또 반드시 ‘걸리면’ 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복권과 관련해 친한 사이마저도 다툼을 벌이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한 ‘복권에 당첨되면 행복해지는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언론을 통해 알려졌듯이 '복권에 당첨된 이후 삶이 더 불행해 졌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복권 당첨금의 사용처 역시 평소 갖고 싶어 하던 물품구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 소문에 어두워서 인지 몰라도 공익적인 곳에 썼다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다. 꼭 그래야만 된다고 정해 놓은 법은 없지만...
 누군가는 복권에 당첨된 것을 두고 '복이 많아서'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복이 많아서 복권에 당첨된 것일까. 그러면 복권에 당첨되지 않으면 복이 적다는 말인가. 도대체 복과 복권은 어떤 관계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복'이라는 글자가 같기도 하다.
 복권(福券)이란 번호나 그림 등의 특정 표시를 기입한 표(票)로 추첨 따위를 통해 일치하는 것에 대해서 상금이나 상품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복은 추첨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인가. 혹자는 또 복권에 당첨된 것을 두고, 흥부의 박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흥부가 제비한테 박씨를 얻은 것이 복권을 구입한 것과 같다는 말인가. 복(福)이란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것으로 불교에서는 인과(因果)적으로 해석한다. 먼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을 가져오는 선한행위(業)를 복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복을 짓는다는 뜻에서 작복(作福)이라 하며,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 바라는 식의 기복(祈福)이 아니다. 그리고 얻어지는 행복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득복(得福)이라 한다. 그렇기에 작복과 득복은 지음, 즉 자신의 행위(業)에 따른 결과이므로 다 쓰고 나면 결국 사라지고 만다. 이것을 복진(福盡)이라 한다. 이런 관계에서 보면, 복이란 원인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로써 무한한 것이 아니니, 지속적인 선행(善行)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복을 일확천금을 노리며 요행으로 하는 복권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가당찮은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