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사랑'...남산부처님

 [불교신문 2856호/ 10월17일자] 기획연재: 산사에서 온 편지 - 마산 광산사 주지 범수스님

문득 ‘경주 남산의 부처님을 참배해야겠다’는 생각에 필요한 것을 미리 챙기기 시작하였다. 일을 당해서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무엇인가를 빠트리는 일이 종종 있어 하루 전에 준비하는 없던 습관이 생긴 것이다. 다음 날 미리 준비해뒀던 걸망을 메고 길을 나서다가 문득 ‘전기 플러그는 뽑았나?’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강박관념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렇게 갔다 왔다 반복하다 보면 출발이 늦어지는데,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확인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마음 편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하고 있다. 한편 특별한 이유 없이 경주 남산을 자주 찾는 까닭은, 경주 남산이 그림이나 글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접할 수 있는 불국토(佛國土)의 한 단면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산의 곳곳에 위치한 탑이나 불상을 뜻하지 않게 문득 뵐 때면, ‘부처님 재세(在世) 당시 길을 가다가 부처님을 뵙는 것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처럼 경주 남산을 단순한 산으로 여기지 않기에 ‘산행’이라는 말보다 ‘성지순례’라 부른다. 그리고 남산 입구에 이르러서는 산을 향해서 먼저 합장을 한 뒤 잠깐 동안 눈을 감은 채 긴 호흡을 하는데, 이럴 때면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특유의 향이 몸 안팎으로 감싸는 듯하다. 그날도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가을공기 속에 더디지만 겨울의 찬 기운도 함께 감도는 것 같았다. 단지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것이더라도 그 속에는 이미 모든 계절이 함께 하고 있다. 찰라 변화하는 우주의 시간인 무상(無常)속에 있으면서도, 달력이나 시계를 통해서 시간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메마른 솔 갈비 더미를 지날 때 그 특유의 향으로 인하여 문득 옛날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주위에 보이는 것이라곤 줄지어 늘어선 나무뿐이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런 속에 혼자 남겨진 아이의 유일한 친구 또한 나무였다. 이 나무와 놀다가 기분이 나빴는지 미운 말을 내뱉고서 저 나무와는 깔깔거리다 신이 났는지 또 나무한테 대롱대롱 매달리던 아이도 아마 그 때는 나무였을 것이다. 나무 그림자와 아이 그림자가 서로 얼키설키 얽히면서 함께 커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속에서 움직이고 들리던 기억이라곤 똑딱거리던 추시계 소리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궁금하다. 비유하자면 마치 일요일 오후 텅 빈 교실 같은 곳에 혼자 있을 때의 적막감이었는데 말이다. 그랬던 영향인지 몰라도 여전히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오래전부터 몸으로 익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등등을 생각하며 무작정 걷다가 그만 지정 등산로를 벗어나고 말았다. “관세음보살!” 아무런 표식도 없는 곳에서 대충 감으로 위치를 정하고 가파른 비탈길을 가로질러 걸었다. 속으로 “아무리 걸어도 영화 ‘The Way Back’(1940년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서 수감자 7명이 자유를 향한 염원으로 탈출하여 걸어서 시베리아 벌판과 몽골을 거쳐 인도에 이르는 내용)만큼 걷을까? 영화 속의 주인공이 방향을 알아내던 그 기막힌 방법을 배워둘걸” 하며 영화 속의 여러 장면들을 떠 올리며 걷던 중 길이 나왔다. 그렇게 길 위에 서서 편안한 마음으로 조금 더 걷자 곧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서린 용장사지(茸長寺址)가 보였다. 언젠가 인연있는 불자님들과 함께 참배한 적이 있던 곳이다. 그 당시 어느 분이 석불좌상의 불면(佛面)이 없는 것을 보고서 “스님! 왜 부처님 얼굴이 없나요?”라는 물음에 자주 참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분 기다리시다가 목이 빠져서 그렇잖아요.” 하자 다들 한참 웃었던 일이 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하여 천년 동안 여기 계셨으며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라고 하자, 그 말을 들은 불자 한 분이 맨땅에서 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좌복(방석)도 없는데 무릎이 아프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한 번에 많이 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였더니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부처님 뵈었을 때 절을 많이 해둬야 합니다”라고 하던 그 말을 떠올리며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